소설리스트

고대생활 (292)화 (292/504)

292화. 명성 

왜 그런 것인가? 바로 명성, 이름값 때문이었다. 

그랬다. 명성과 유명세 말이다. 그가 쓴 산술 서적 때문이든 아니면 일련의 화본 때문이든, 이번 왕조에서 고청운은 민간에서 일정한 명성을 이룩해 내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아는 정도로 높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보잘것없는 무명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 그가 이번에 쓴 상주문이 굳이 주옥같은 글자로 경천동지할 내용을 쓴 게 아니더라도 그의 상관은 인내심을 가지고 봐 줄 것이고,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었다가 치워버리고 휴지통에 처박혀 다시는 햇빛을 못 보게 하지는 않을 터였다.

다시 말하면, 고청운이 써낸 것들은 이제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자격이 생기게 된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그간 그가 추구해 온 것들이었다. 열심히 산술 서적을 썼든, 돈을 벌기 위해 화본을 썼든, 결국 고청운이 가장 얻고자 했던 것은 명성, 바로 영향력이었다. 

그는 유명해져야만 반드시 안정감이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사심을 더 넣어 말하자면, 유명해야 남들의 중시를 받을 자격이 생길 테고, 죽기 전까지 지금까지 노력한 성과로 잘 살 수 있을 것이었다. 나중에 혹시라도 무언가에 말려들어 관직 생활에서 풍파에 휩쓸리더라도, 좌천이나 직위해제를 당할 뿐 죽임을 당하거나 하는 일도 피할 수 있을 터였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의 명성에 관한 사상은 이 관료 조직에 몸을 담고 나서 생긴 것이지, 그전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이백(*李白: 중국 고대 유명 시인)의 경우, 그가 존재했던 시기는 시부를 잘 써도 관직을 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의 실력이라면 진사에 합격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이백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즉, 그가 하늘을 찌를 만한 재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료 조직 체제로의 진입이 어려웠다는 것인데, 이처럼 한 사람의 재능이 너무 뛰어나도 다른 관리들의 배척을 받게 되었다. 이는 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었다. 

한 개인의 너무 뛰어난 우수함은 다른 사람에게 위협감을 주기 때문에, 설령 체제 안으로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삐걱거리게 될 뿐이었다. 결국 성격 등 다른 방면은 고사하고, 고청운은 그가 너무 유명했던 것도 한 요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백과 같은 예는 아주 많았다. 과거 시험 전에는 명성이 하늘을 찌를 듯 높았으나, 결국에는 과거에 낙방해 손산(*孙山: 송대(宋代) 오(吳) 사람으로 익살스럽고 재주가 있었음. 함께 과거에 응시하였다가 낙방한 사람에 대하여 ‘名落孙山(이름이 손산 뒤에 있다)’라고 익살스럽게 말한 데서 후세 사람들은 과거에 낙제하였을 때 ‘名落孙山’이라고 함)의 이름 뒤로 서 있는 사람이 한가득이었다. 

고청운과 방인소는 이 문제에 대해 일찍이 토론한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은 늘 시험 문제가 주임 시험관의 성향을 봐야 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었는데, 시험 당시 인재를 아끼는 주임 시험관을 만나게 되면 합격의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내심이 어두운 사람을 만나면 이름이 배제되어 내쫓길 확률이 높았다. 고청운은 과거 시험을 준비해 오면서 너무 유명세를 탔던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있었는데, 그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만 떠오를 뿐이었다. 이 말은 확실히 근거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조직 내에서 만들어진 유명세라면 또 다른 대우를 받게 되었는데, 모두들 같은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만 해도 명성이 생기고 난 후에는 다른 사람보다 일을 편하게 할 때가 많아졌다.

이때 그가 쓴 문장은 봉 상서(封尙書)에 의해 호명 받아 칭찬을 들었는데, 이는 이 일의 반을 성공시켰다는 뜻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황제와 조정 대신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려있었다. 

* * *

저녁에 돌아와 방인소에게 이 일을 이야기할 때, 고청운은 약간 의기양양해 하며 말했다.

“스승님, 만약 조정에서 제가 쓴 책론에 따라 시행한다면 운남의 각종 세금을 해마다 쉽게 거둘 수 있게 되니, 우리가 동분서주하면서 긁어모으러 다니지 않아도 될 겁니다.”

올해 집계에서도 운남은 여전히 꼴찌로 세금이 적게 걷혔는데, 이로 인해 운남사는 또 한 번 봉 상서에게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방인소는 이번에 고청운이 책론을 냈다는 걸 알면서도 놀리지 않았는데, 필경 처음부터 고청운이 문서를 다 작성한 후에 내용을 이미 한 번 봤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제자가 조정에 건의한 선진 농경 기구와 고수익 작물을 도입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그도 매우 찬성하는 바였다. 

백성들은 먹는 것을 제일 중요한 문제로 보았다. 그 지역의 백성들이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 자연히 조정에 대한 충성심 또한 올라갈 것이었다. 

염광을 어떻게 개발할지에 대해서도 고청운은 상주문에 아주 잘 작성해 두었다. 특히 제자가 말하는 천연 염광은 무슨 지하 몇백 미터 되는 물을 취수해야 하고, 정화되어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천연 물질이라는 것부터 직접 섭취하면 몸에 좋아서 다른 소금보다 더 높은 값에 거래할 수 있다고 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전문적으로 상위 노선에 진입해 설명을 해 두어서 더욱 흥미를 끌었다. 만약 이 방법들이 실제로 진행이 된다면, 거둬들이는 세금의 양이 정말 크게 오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때 가서 실로 이 일이 실현만 된다면, 이는 고청운이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는 것을 의미하게 될 것이었다.

“그래, 네가 쓴 상주문은 비록 화려한 미사여구가 없어 딱딱하지만, 간단명료하고 그 안에 도표와 상세한 수치가 적혀 있어 어느 좌표이든지 수치의 높고 낮음의 변화를 잘 알아볼 수 있겠더구나. 그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보아하니 서학이라는 것도 보고 배울 게 있나 보구나. 네가 언제 <기하학>을 번역해 올지는 모르겠다만, 이 노부에게 제일 먼저 보여다오.”

방인소는 이제 더 이상 그를 자극하는 말투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 제자의 성격이 너무 온화하여 그런 방법이 큰 진취성을 나타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제자는 분명 손에 좋은 패를 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통 그 패를 꺼내 쓰지를 않았기에, 방인소는 요즘에는 기회를 잡는 대로 그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때론 ‘제자가 정말 여느 관료들과 다를 바 없이 매일 이익만을 쫓는 삶을 살고 있다면 과연 그것이 내가 알고 있던 제자의 모습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방인소는 휴무일에 제자가 가끔씩 자신과 동행하며 낚시를 다니는 것을 보고 다른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눈빛을 생각하면 또 망설여졌다.

‘되었다, 그냥 제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어야겠다.’ 

올해 말에 관직에서 물러나는 방인소는 그간 많든 적든 그를 위해 노력했고, 최소한 그를 다듬어 냈다. 

방인소가 <기하학> 번역에 대해 묻자, 고청운은 그저 머리를 긁적이며 답답해했다. 그는 최근 한 달 내내 쉬는 날만 있으면 계속해서 축국 경기에 끌려갔던 것이었다. 왕가준에게 강의해 주는 시간조차 억지로 겨우 쥐어짜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번역하는 속도는 자연히 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의 영어 실력은 아직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지금은 영어를 읽고 쓸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는 해도 <기하학>에는 많은 전문 용어가 사용되었기에, 정확하게 번역을 해야 하다 보니 정말 머리를 많이 써야 했다. 

좌표계의 경우 대수와 기하학적 개념이 합쳐진 것인데, 기하학적 개념을 대수적으로 묘사했고, 바꿔서 해도 그러했다. 이런 신기원적인 내용을 다루는 내용이 대다수이다 보니, 고청운은 번역에 어려움이 있어 중간중간 끊임없이 톰 신부와 소통해야 했는데, 때로는 그도 모르는 말들이 있어 또 다른 서양인을 찾아 물어봐야 했다. 게다가 한동안 잠시의 짬도 나지 않았으니, 번역 진도가 늦어지기 마련이었다.

* * *

“미아, 집사에게 말 좀 해 주시오. 다음에 누가 축국 하러 가자는 사람이 찾아오면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막아달라고 말이오.”

결국 고청운은 다시는 놀러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축국이 재미있어 피가 끓어오르긴 했지만, 정사를 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소어야, 항상 공만 끌어안고 있지 말고, 시간 날 때 책을 몇 장이라도 더 읽거라.”

고청운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소어를 한 번 노려보았다.

아버지의 말에 어리둥절하던 소어는 입에 물고 있던 음식을 반쯤 삼키지도 못하고 멍하니 아버지를 바라보다 문득 몹시 억울해졌다.

고청운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왜 그러느냐? 설마 아버지의 말이 틀렸단 것이냐? 전에 배운 공부를 얼마나 오랫동안 복습하지 않았는지 스스로 한번 세어 보거라. 자왈온고이지신(* 子曰温故而知新: 공자님이 말씀하시기를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 것을 안다.’)…….”

“알았어요, 아버지. 그렇게 할게요.”

결국 소어가 의기소침하게 대답했다.

* * *

고청운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이전의 생각을 물리고 싶었다. 

“<백사전> 독자들의 원성이 대단하다고 하는데, 그게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고청운은 아주 불만스러웠다. 현재 그는 여자 주인공이 뇌봉탑에 갇히는 대목을 연재 중이었다. 

“이 화본이 유명해졌기 때문일세. 민간에 꽤 재주 있는 자들 일부가 자네가 쓰던 문풍을 ‘산곡거사’의 것과 비교해서 산곡거사가 자네라고 특정해냈지 뭔가. 지금 우리 가게의 방명록에는 자네 욕설로 도배가 되어 있다네. 애초에 <매화 반지> 때의 결말에 대한 광풍도 그렇고, 특히나 주요 독자들이 여성들이라면 더욱 그렇지.”

사장정은 불평으로 가득 차서 저도 모르게 허리를 문질렀다. 

고청운은 호기심에 그를 훑어보다가 화본의 일은 잠시 제쳐 두고 문득 이상해서 물었다. 

“자네 요즘 왜 그러나? 최근 이상하다는 말이지. 하루 종일 허리가 아프다고 하지를 않나, 온몸이 다 아프다고 하지를 않나. 내 권유를 좀 들어. 자네, 설령 공주 전하와 아이를 갖는 일을 하더라도 쉬엄쉬엄해야 하네. 시간을 오래 보아야 아이를 가질 수 있으니 말일세.”

이 말이 나오자 사장정은 펄쩍 뛰며 떨리는 목소리로 되받아쳤다.

“자네, 그게 무슨 헛소리인가? 그런 것이 아닌데…….”

뜸을 들이던 사장정은 눈을 반짝이고 안색이 붉게 물들었다가 다시 말했다.

“어쨌건 그 일 때문에 한 번만 더 헛소리하면, 다시는 자네 일에 신경 안 쓸 것이네. 아, 그 여인도 정말이지 나를 너무 힘들게만 하는구나!”

고청운은 반박하고 싶었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니 지금은 저력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고청운은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했으나, 이런 유치한 말까지 꺼내는 것으로 보아 사장정이 더 이상 말하기가 곤란하여 그랬겠지 싶었다. 다만 그의 눈 밑이 검은 것을 보니 마냥 상황을 무시하기도 쉽지 않았다. 

아이를 갖고 싶어 할 때의 중압감은 고청운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나 쌓인 것이 많길래 그러지?’

두 사람은 화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청운은 역시 수입 배분에 있어서는 이전 정책을 고수하며 다른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은 6월인데, 사장정에게 반년 동안 건네받은 고료는 모두 대략 3백 냥 정도가 되었다. 

“원시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산술 서적 1권 판매량이 요즘 절정을 이루고 있다네. 하지만 자네의 산술 서적이 출간된 후부터 불만도 생겨났는데, 출간 후 시험 문제도 덩달아 어려워졌다는 의견이었네. 이성적이지 못한 동생 출신의 문인들이 자꾸 방명록에 글을 쓰는데, 낙방하고 나쁜 말을 쓴 것뿐이니 보고 너무 화내지는 말게나.”

사장정은 말을 마친 뒤 두꺼운 방명록 한 권을 건넸는데, 그의 말투에서 아주 고소해 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하하, 내가 오해를 하게 만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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