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291)화 (291/504)

291화. 영향

“올해에는 원시도 있고 내년에는 향시도 있지요. 그러니 지방직으로 나가 3년간 학정(*学政: 각 성(省)의 교육 행정 장관)직을 수임하거나 혹은 다른 성에서 향시 부 시험관으로 가는 것도 방도가 아니겠습니까?”

고청운이 장수원에게 권유했다. 예부는 바쁜 시기가 그리 많지 않으니, 장수원이 학정이나 부 시험관으로 부임할 수도 있을 터였다. 그렇게 되면 한림원에서 편수직까지 지낸 그가 금방 두각을 나타내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었다. 그만 원한다면 관계를 좀 더 물색하여 목표를 달성할 수도 있었다. 

장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런 방법은 생각해 보았네만, 대장부는 하루아침에 될 수 없지 않나. 나는…….”

그는 도성의 번화함을 버리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쉬웠다. 또한 지금 그의 생활은 또 얼마나 말쑥하고 멋스러운가. 마음 내키는 대로 시화 한 폭을 그려내도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을 수 있는 삶을 영유하고 있으니, 경성을 벗어나는 것은 쉬이 마음먹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또 많은 식솔을 거느리고 있었고, 아이들도 아직 어렸다.

“또 아이들도 아직 어리니…….” 

장수원이 한마디 더 했다.

장수원에게 3남 2녀가 있다는 건 고청운도 잘 알고 있었다. 장녀와 장남은 방 누님의 소생이었고, 다른 자식들은 모두 서출이었다. 하지만 고청운은 아이들 문제라는 게 장수원의 핑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은 다 자신만의 생활 방식이 있어, 장수원처럼 지방관으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는 안정된 생활을 좋아했는데, 현재 경성에서의 생활이 매우 안정되고 좋으니 다른 변화가 찾아오는 것이 싫을 수도 있었다. 그가 주동적으로 변화를 자초하거나 원하지 않더라도 강압적으로 해야 하는 상황만 아니라면 말이다. 

“난 예전에 서원으로부터 시문 강의를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었는데, 예부는 겸직이 안 된다는 내부 규정이 따로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고사해야 했네. 참, 자네 집의 소어는 서원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던가?”

장수원이 소어의 얘기를 꺼내자, 고청운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황립 서원은 몇 명이 지원을 하든 받아들일 수 있는 정원수에 한계가 있어, 원칙상 각 가정마다 한 명의 아이들만 입학이 가능했다. 당연히 황제의 친척이나 황제의 특별한 윤허가 있는 경우는 제외였다. 

그의 신분으로는 황제의 특별 윤허가 있지 않은 이상 소어의 황립 서원 입학은 불가능했기에, 그것은 희망이 없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다. 만약 육택이나 사장정에게 부탁을 해 본다면? 그렇게 해도 어려울지 몰랐다. 필경 소석이 이미 황립 서원에 다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곧 그들은 이야기를 멈추어야 했다. 가족들이 있는 곳에 이미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의 승리에 가족들은 모두 비할 바 없이 기뻤지만, 장수원이 곁에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었다. 소어조차 붉고 윤이 나는 작은 입을 오므린 채 큰 눈으로 고청운을 쫓으며, 시도 때도 없이 입을 가린 채 웃고 있었다.

모두들 축국 시합에 대해 별다른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서둘러 주변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고청운 역시 땀으로 끈적끈적해진 몸을 닦아내고 싶었지만, 옷이 몸에 달라붙어 불편했기에 더 이상 놀 기분이 나지 않아, 육훤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넨 뒤 가족들과 마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 * *

단청 누각 위의 정자에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천천히 흩어지는 광경을 쳐다보던 안락공주는 아직 가시지 않은 여운이 담긴 시선을 거두어 고개를 돌렸는데, 갑자기 눈앞에 원망스러움이 가득한 얼굴 하나가 나타났다.

“본궁에게서 떨어지지 못하겠습니까!”

안락공주는 깜짝 놀라 옥 같은 손가락을 내밀어 사장정의 코를 건드렸다. 

사장정의 눈빛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전하-.”

그는 일부러 소리를 길게 늘려 불렀다. 

“공주 전하께서는 왜 그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보고 계시는 겁니까? 그동안 저는 한 번도 봐주지 않으셨잖습니까. 저 냄새 나는 사내들이 뭐 볼 게 있다고요? 늙고 못생겼습니다! 볼썽사납기 짝이 없습니다!”

그 말에 안락공주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목구비는 황제를 닮았지만 그래도 기질이 달라서인지, 그녀는 매우 단정하고 우아해 보였다.

“그 친한 벗인 고신지에게도 늙고 못생겼다고 하실 겝니까?”

말문이 막힌 사장정은 아까 봤던 장면이 떠올라 두 눈 뜨고 허튼소리를 할 수도 없어, 그저 심드렁하게 입을 삐죽 내밀며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예외이지요.”

“고신지는 체격도 좋고 생긴 것도 멋지지 않습니까. 진즉에 그가 이런 사내인 줄 알았더라면, 본궁이 그를 먼저 만나보았을 텐데 말입니다.”

안락공주는 주위를 둘러봤는데, 자신의 가장 가까이서 시중을 드는 시녀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까 그 귀부인들을 보셨지요? 한 번 맞춰보세요. 과연 그들은 축국 경기를 보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사람을 보고 있었을까요? 경기장에는 고신지 말고도 몇몇 괜찮게 생긴 사람들이 있었지요?”

사장정은 책상에 엎드려 재미없다는 듯이 말했다.

“부인, 다른 사내들을 더 찬미하실 겁니까? 여기서 몇 마디 더 하신다면, 저를 잃게 되실 겁니다. 아이, 재미없습니다! 냄새나는 한 무더기의 사내들이 공 하나를 쫓아다니는 꼬락서니가 뭐가 보기 좋다고…….”

그의 이런 모습을 본 안락공주는 정교한 둥글부채를 들고 입을 가린 채 웃더니, 오른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또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십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저 아래쪽에서 소리 지르며 관람하시던 분은 어디 가신 거죠? 본궁이 올라오라고 했는데도 못 들은 척 하시더군요.”

사장정은 대답도 없이 그저 멍하게 손을 뻗어 그녀의 손가락에 껴진 홍옥석 반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더니, 잠시 뒤 몸을 일으켜 허리를 곧게 펴고 가슴을 쭉 핀 채 주먹을 불끈 쥐며 결심한 듯 말했다.

“지금부터 저도 매일매일 운동을 해서 몸을 가꾸겠습니다! 부인, 잘 보세요. 3개월 후면 저도 근육이 붙어있을 테니!”

안락공주는 더 환하게 웃으며 부채를 몇 번 크게 흔들며 그의 손을 꼭 잡고 격려해 주었다. 

“좋습니다. 본궁이 지켜보겠어요, 제가 매 순간 감시할 겁니다.”

잠시 놀라 멍해진 사장정은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다시 말했다. 

“전하, 진지하게 받아들이신 겝니까?”

“제가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십니까?”

안락공주의 눈이 웃느라 반달모양이 되었다.

“본궁은 매일 새벽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정권도 연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내대장부인 당신은 아이들보다도 기침 시간이 늦으시지요. 그런 당신께서 모처럼의 진보를 보이시려는 것 같아 그렇습니다. 부마이신 분이 설마 본궁을 놀리지는 않으시겠지요? 말씀하신 것을 지키지 않으신다면, 아이들도 이 일을 알고 비웃을 겁니다.”

딸들이 뻐끔뻐끔 입을 놀릴 것을 생각하던 사장정은 공주의 위협 섞인 눈을 바라보고는 자신의 말을 번복하려다가 다시 꿀꺽 삼켰다.

“전하, 부마, 태자 전하와 대황자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경기의 여운이 지나자 엄숙한 표정의 유모가 정자로 올라와 낮은 소리로 아뢰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사장정과 안락공주는 잠시 말싸움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알겠다.”

* * *

과연 고청운의 예감은 적중했다.

이날 축국 경기가 끝난 뒤부터 경성의 각 관아 및 각 부서 사람들이 공을 차는 데 열중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휴일마다 축국 경기가 계속되면서 축국의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졌고, 특히 호부는 기존의 사람들에게 받던 인상을 뒤엎고 문무에 능한 인재들이 모인 곳이라는 인상까지 남기게 되었다. 

게다가 이 시대에 갑자기 ‘더 좋은 몸을 갖춰야만, 비로소 폐하를 위해 더 충성할 수 있다.’ 는 개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고청운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번 경기는 그에게 휴유증을 남겼다. 바로 경기 후에 그의 명성이 더욱 드높아지게 된 것이었다. 경화소보에서 이번 경기의 전반적인 과정을 자세히 기사로 실었는데, 칭찬을 중점적으로 다룬 몇 인물 중에는 고청운의 이름도 있었다. 

소보에서 자신에 대해 아낌없이 칭찬하는 것을 보고, 고청운은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너무 과장한 것이 아닌가?’

경기가 끝난 후, 그가 이전에 올렸던 운남 지역 문제를 다룬 책론에 대한 답변이 내려왔다. 결과가 아주 좋았는데, 그는 이 일로 인해 처음으로 상서에 호명되어 칭찬을 받기까지 하였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자신이 기울인 심혈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후 고청운은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를 받았다. 아마 축국 경기로 인한 것인지, 그는 예전보다 호부 동료들과 더 융화가 잘 되었는데, 누구도 그에게 신랄한 말이나 이상한 말을 하지 않는 등 이전보다 관계가 원만하게 굴러갔다.

* * *

하 왕조가 처음 세워졌을 때, 운남 토사는 자립을 외치며 암암리에 가해지는 위협에 직면하여, 전 왕조의 후기 지식인들이 제시한 ‘개토귀류(*改土归流: 명, 청 시대에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고 변방 지역을 통일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소수 민족 지역에서 토사(土司)를 폐지하고 중앙에서 임명한 벼슬아치인 유관(*流官: 임기제 관리)이 다스리게 하는 정책)’의 방법을 참고했다. 

조정에서는 몇십 년간의 노력을 거쳐 많은 일을 행하며, 결국 토사 제도를 유관 제도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현재 운남의 관원들은 대부분 조정에서부터 파견된 관리들이었고, 관청에서 근무하고 있는 현지인 관리는 소수였다. 이들은 조정에 대한 적의가 거의 없는 토사들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운남은 몇십 년 전처럼 위험 요소도 없어, 성적을 쉽게 낼 수가 있었다.

전란과 피란으로 인해 중원 지역의 한족 백성들이 운남으로 거주하기 위해 이주해 오면서 선진 농경기술도 함께 보급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운남은 여전히 다른 성의 세수(稅收) 수입 성적과 비교하면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매년 내는 세금이 꼴찌 아니면 뒤에서 두 번째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고청운은 자료를 보고 관련 통계도 내 본 적이 있으니, 당연히 이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남의 일에 그다지 상관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달리 황실 장서루에서 많은 자료를 빌려 본 후, 후대에서 배웠던 지식과 결합하여 전문적으로 운남 발전의 문제에 대한 전략에 관한 문장을 하나 썼다. 

이 일은 공적인 일이었기에 공문서식으로 작성을 하여 제목과 인장까지 갖추었다. 

관원은 본래 황제에게 상주문(*上奏文: 임금에게 아뢰는 글)을 올릴 수 있는 권리가 있었지만, 모든 상주문이 다 황제 앞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황제에게 보이기 전에 내각 대학사가 이미 먼저 읽고 부전(*票签: 서류에 간단한 의견을 써서 덧붙이는 쪽지) 처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황제가 봐야 할 상주문이 너무 많았던 탓에, 상주문을 올렸다고 해서 황제가 무조건 다 보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고청운은 자신이 쓴 문장이 그래도 어느 정도 실현 가능성 있는 책론이라고 생각이 되어 문장을 다 쓴 후에 먼저 완 낭중에게 보였다. 완 낭중은 또다시 이 글을 호부 좌시랑에게 가져갔고, 마침내 호부상서의 손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 글이 좋다고 생각되면, 봉 상서는 황제에게 이 상주문을 올릴 것이었다. 이렇게 상서의 손을 통해 황제에게 전해지는 것은 오히려 황제의 관심을 더 이끌 수 있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고청운은 호부 소속의 관리였기 때문에, 이러한 공적인 사항은 항상 자기 부서 내에서 동의를 얻어야 비로소 상정이 잘 되는 법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책론이 실행될 경우, 호부의 손발이 더 잘 맞게 되는 효과도 있었다. 다만 이 책론이 시행되어 결과가 좋았을 때 얻게 되는 공로가 옅어지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와 반대로 만약에 고소나 고발 같은 상주문을 올려야 할 일이 있다면, 그때 고청운은 반드시 공적인 방식이 아닌 통정사(*通政司  중국 명대(明代) 내외의 장주(章奏)를 관장하던 관서 이름)에 직접 전달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이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물론 고청운이 지금 이런 방법을 통하는 것도 어느 정도 위험은 있었다. 만일 상관이 이 글을 가로채려고 하거나 혹은 글의 내용을 하찮게 여길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상관의 미움을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고청운은 명성이 있는 사람이라, 상관들도 그런 일을 함부로 벌이지는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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