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화. 축국 (2)
고청운은 이따금 뒤를 돌아보며 장수원을 따라갔다. 저 멀리 그들은 붐비는 인파를 지나 계속 강의 상류 쪽으로 갔다.
상류에 이르자 사병들이 버티고 있었다. 질서정연하게 장식된 오색의 천들이 나부끼고 있었으며, 각양각색의 여러 막사들이 둘러쳐져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 큰 공터에 축국장으로 보이는 장소가 있었고, 그 주변은 온통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여 있는 사람들의 옷차림만 봐도 대부분이 관료의 집안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하층민들만 있을 때처럼 시끌벅적하지는 않았다.
이쪽 소식을 들은 것인지 몰라도 사복 차림의 다른 관리들이 가족들을 데리고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호부의 무리들은 고청운을 만나자마자 마치 사면이라도 받은 듯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고 대인, 드디어 오셨군요. 정말 잘되었습니다!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장소를 여기저기 전전하며 경기를 하는 것도 모자라 상서 어르신들이 소풍을 오신 곳에서 경기를 치르게 되었군요. 우리 조금 이따가 경기에서 꼭 좀 힘을 써 봅시다.”
모인 사람들이 잇달아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고청운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여기 사람들과 어울려 훈련을 해 보지도 않았으니, 오직 귀신만이 자신이 어떻게 축국공을 찰 수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는 혹시라도 같은 조의 발목을 잡게 될까 봐 걱정스러웠다.
그가 이 말을 꺼내자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 역시 오늘이 다 같이 뛰어보는 첫날이라고 밝혀 주었고, 고청운은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고청운은 장수원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가 자신보다 조금 더 통통한 몸매여서 옷이 컸지만, 허리띠를 졸라매면 되기에 착복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뒤이어 고청운은 호부에 다른 동료의 가죽신을 빌려 신었고, 숱이 많은 머리를 한데 단단히 묶어 뛰는데 지장이 없도록 하였다.
‘좋아, 구색은 갖췄다!’
장수원은 주위를 둘러보고,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고청운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상서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다른 어르신들도 많이 오시니 잘 보이도록 하게.”
고청운은 깜짝 놀랐지만, 그뿐이었다.
그러다 그는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장 형은 상대 팀인데, 어떻게 나에게 잘하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장 형은 예부, 저는 호부인데, 형님 팀이 잘하겠다고 말하시는 것인가요? 아니면 저희에게 잘하라고 말하고 싶으신 건가요?”
고청운이 그에게 주의를 주자, 장수원은 잠시 멍해 있다가 바로 반응했다.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잊고 있었네!”
고청운은 하하 웃었다. 뒤이어 그는 머리를 문지르며 머리카락이 단단히 꽉 잘 묶인 것을 확인하고는 가죽신을 다시 정비했다. 비록 자신의 것은 아니었지만, 발에 잘 맞고, 느낌이 새로웠다.
장수원이 곁에서 그를 뚫어져라 보더니, 잠시 후 갑자기 손을 내밀어 그의 배를 쓰다듬었다.
장수원의 동작이 너무 빨랐기에 고청운은 이를 미처 막아내질 못했다.
“뭐하시는 겁니까?”
고청운은 너무 노여운 나머지 허둥대며 그의 손을 멈추게 하였다.
‘장 형이 장원루나 특별한 찻집 같은 곳 등 풍월을 읊는 장소를 많이 접하면서 집에 처를 빼고도 첩을 둘이나 들여놓기에 겉으로는 여인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다만, 사내까지 좋아하셨을 줄이야.’
“그냥 한번 만져보았네.”
머쓱해 하며 힘주어 자신의 손을 빼낸 장수원은 고청운이 꼭 자신을 적으로 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고, 머릿속으로 잠시 생각해 보더니 짐작 가는 바가 있어 입을 샐쭉거렸다.
“자네, 왜 이렇게 나쁜 생각을 하는 겐가? 도대체 내가 뭘 하려고 했다고 생각하는 게야?”
‘내가 나쁜 생각을 한 것이라고? 형님이 오해하기 쉬운 행동을 한 거라고 하면 어디 덧나나!’
고청운이 냉정하게 “흥!” 하는 소리를 내며 그를 힐끔 보다가, 옷깃을 여미고 몇 번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본 후, 옷이 자신의 움직임에 별다른 방해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만뒀다.
장수원이 고청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네 너무 긴장했군! 나는 그저 자네의 괜찮은 몸매가 갑자기 눈에 보였을 뿐이라네. 자네, 근육이 아주 다부진데,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몸을 단련시킨 것인가?”
그는 부러운 표정으로 손바닥 아래 자신의 아랫배를 만지작거렸고, 자신의 배에서 보들보들한 덩어리만 만져지자 하염없이 고개를 숙였다.
‘10년 전만 해도 이런 살덩어리가 잡혀 있지 않았거늘, 언제부터 이렇게 변하기 시작한 것일까?’
장수원은 턱을 쓰다듬으며 이 문제에 대해 엄숙히 생각했다.
고청운도 사실은 자신의 반응이 지나쳤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어 그의 질문에 얼른 답해 주었다.
“매일 운동량만 충분하면 저 정도는 될 수 있을 겁니다.”
이 시대 남성들의 미남에 대한 기준은 후대와 조금 달랐는데, 신체는 건강해야 하고, 피부는 하얗고 몸매는 튼튼해야 했다. 특히 중요하게 보는 것은 몸매가 늘씬해야 하며, 품위 있는 태도를 항상 몸에 지녀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중 남성이 머리에 꽃을 꽂는 것을 좋아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고청운의 생각에, 사내가 머리에 꽃을 꽂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여성스러워 보였다.
물론 이 시대 남성들의 입장에서는 이것은 그저 품격 있는 행위 중 하나로, 매우 정상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 시대에서 생활한 지 이렇게 오래되어서인지 그는 문회 등에 참석했을 때 남성들이 머리에 꽃을 꽂는 행위에 큰 거부감이 없게 되었는데, 그의 심미관이 조금은 바뀐 것 같았다.
사장정을 그 예로 들면, 그는 머리에 꽃을 꽂으면 정말 어여쁘기는 하였다.
* * *
몸가짐을 정돈한 후, 고청운과 장수원은 천을 둘러 만든 탈의실에서 나와, 서로 한마디씩 격려해 주고는 각자 자신들의 대오를 향해 걸어갔다.
“고 대인, 이것은 당신의 것이오.”
왕 주사가 붉고 아리따운 비단을 건네주었다. 고청운은 손을 뻗어 받아 들고는 다른 사람들을 한 번 보았다. 모두들 옷의 양식이야 서로 비슷했지만 옷의 색깔이 같지 않아서, 호부에서는 예부의 무리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허리춤에 붉은 비단을 매기로 하였다. 예부는 검은색을 선택하여 눈에 잘 띄었다.
경기에 참여하는 인원은 13명이었는데, 그들 호부의 정원은 주사만 해도 서른 몇 명이었다. 게다가 호부에는 원외랑, 호부낭중도 있고 거기에 기타 부서의 9품 관원들을 합치면, 크고 작게 100명에 가까운 수가 채워졌다. 여기서 나이가 많은 사람, 축국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을 제외하면 대략 3~40명 정도가 경기를 뛸 수 있을 만한 인원으로 적당했다. 지금 이 눈앞의 12인은 모두 정6품 주사 이상이었고, 나이는 45세 이하였으며, 하나하나 좌우로 여러모로 살펴보아도 위풍당당했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고청운은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쪽을 보고 있다고 느껴져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고, 관중들이 여전히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귀엣말을 주고받으며 때때로 한바탕 교묘한 웃음소리를 내는 것을 발견하였다.
정신을 가다듬고 입고 있던 옷을 잡아당긴 고청운은 하등 이상한 것을 발견하지 못해 이를 잠시 뒷전으로 미뤄두고, 먼저 같은 조 선수들과 친숙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은 사무적으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라, 고청운에게도 다들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최소한 인사 정도는 나눠본 사람들이었다.
“고 대인, 이번엔 우리가 공을 한번 잘 차봅시다. 조금 이따가 경기가 시작하면 내가 첫 번째로 공을 다른 주자에게 차겠소. 노(鲁) 대인께서 수문장을 맡으셨으니, 모두들 겁먹지 말고 평소처럼 차면 될 것이오! 예부네 사람들은 평소 시나 읊고 글로 장난하는 것이나 일품이지, 몸을 쓰는 것에는……. 하하, 당연히 우리 호부가 대단하지!”
조 내에서 직급상으로 가장 높은 사람은 호광청리사(湖廣淸理司)의 호부낭중 직의 영(寧) 대인이었다. 그는 영국공부의 영국공의 막내 적자로, 은음 제도를 통해 진사가 되었다. 올해 35살의 젊은 나이의 그는 의젓하고 사무를 처리함에도 아주 신속하고 엄격했지만, 평소에는 굉장히 활달한 사람이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바로 노(鲁) 낭중으로, 그는 사십이 넘었지만 평소 축국을 즐겼다. 이 사람은 여기 모인 13명의 팀원 중 가장 나이가 많아 스스로 수문장을 자처했는데, 성격이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이라 영 낭중과 지휘권을 다투지 않을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정6품 주사이니, 순순히 말을 듣기만 하면 되었다.
“대인의 말씀이 옳습니다.”
모두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고청운은 다들 비슷비슷한 생각인 것 같아 은근히 웃었다. 그들 호부 사람들은 예부 사람들보다 훨씬 바빠서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일을 하였다. 업무 효율이 느린 사람들의 경우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는 했는데, 이런 점은 예부의 사람들이 이곳저곳 어슬렁거리며 다닐 수 있는 조건에 비해 못한 것이었다.
물론 고청운은 바보같이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기세를 굳이 꺾어놓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은 사람들의 자리를 배치할 때 기본적으로 각자의 직위에 따라 혹은 누가 영 낭중과 친분이 있는가에 따라 좋은 자리가 배정된 것임을 발견했다.
좋은 자리라 함은 단연 첫 번째 공을 배분해 줄 수 있는 자리로 현대의 축구로 따지면 포워드, 스트라이커에 해당하는 포지션으로서 골을 상대방의 골대에 넣을 수 있는 일을 담당하는 자리였다. 무엇보다 공격수가 가장 주목받는 법이라, 수비수로 배정된 사람들은 그저 무덤덤한 분위기였다.
고청운도 수비수로 배치되었다.
“오늘 경기는 대항 경기이니만큼, 최대한 점수를 따내야 하오.”
마지막으로 영 낭중은 정중히 강조하며 말을 마치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다시 말했다.
“오늘은 이렇게 많은 처자와 아녀자분들이 곁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소. 그러니 우리가 반드시 더 힘을 내야 하지 않겠소? 이길 것이면 보기 좋게 이기고, 지더라도 깔끔하고 멋있게 집시다. 우리 구질구질하게는 공을 차지 맙시다.”
“네.”
모두들 큰소리로 답했다. 다들 가슴을 곧게 펴고 하하 웃다가 잠시 말없이 있었다.
“저쪽에 있는 허약한 닭들은 우리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니, 다들 겁낼 것 없소.”
영 낭중이 마지막 격려의 말을 건넸다.
이어서 다들 몸을 움직여 풀기 시작했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축국 때마다 이렇게 몸을 미리 풀어놓아야 부상을 줄일 수 있다는 걸 알았던 것이었다. 고청운이 몸을 푸는 방법은 남들과는 달랐으나 이런 환경에서는 그의 행동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역사 자료를 통해 축국이라는 운동이 한나라 때부터 성행했는데, 당시 병사를 훈련하는 한 방법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점차 민간으로 전해져 1,0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하게 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송, 화 왕조에서 그 인기는 제일 정점을 찍게 되었는데, 전쟁만 아니었다면 축국 문화가 더욱 융성했을 것이었다. 특히 송나라에서는 당시 축국에 뛰어난 사람이 승진을 거듭하고 큰 부를 거머쥐게 되면서 더욱더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화나라에서도 타입슬립한 황제가 축국을 즐겨 보았는데, 그는 직접 현대 축구에 가깝게 경기 규칙을 바꾸기까지 하며 더욱 생동감 넘치는 축국 경기를 만들어 냈다.
고청운은 전생에 축구 경기를 한두 번 봤을 뿐 할 줄은 몰랐고, 경기 규칙도 대략적인 것만 알고 있었다. 임양부 부학에서 공부하기 시작한 뒤로 축국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당시 다른 수재 동기들과 시합을 한 적은 있었지만, 정식 시합을 한 적이 너무 오래되었기에, 혹여 자신이 사람들의 발목을 잡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이 시대의 축국은 3가지의 방법이 있었다. 두 골대를 놓고 직접 대결하는 것, 한 골대를 두고 간접 대결하는 것, 골대를 쓰지 않는 백타(白打)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골대를 사용하게 되면, 누가 가장 많이 넣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 났기에 몸싸움이 있을 수밖에 없어 부상 위험도 따랐다. 하지만 제일 많은 남성들이 즐기는 방식이 바로 이 골대를 두고 하는 경기였다. 예를 들어 그들이 이따가 하려고 하는 이 경기 역시 골대를 두고 하는 경기였다.
간접 대결이란, 한 개의 골대를 두고 두 팀이 각각 서로 골을 넣는 것으로, 골문은 풍류안(風流眼)이라 불렀다. 이 대결은 서로 몸이 맞닿을 일이 없는 대신 공을 차는 동작 및 기술을 요구했다. 이것은 남녀가 무관하게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백타는 기교와 예술 점수를 필요로 했는데, 마치 현대의 피겨처럼 한 팀이 한 세트의 일렬의 동작들을 구성해서 머리와 어깨, 등, 가슴, 무릎, 다리, 발 등을 이용해 공을 차는 것으로, 이 동작이 이어지는 도중에 공이 몸 밖으로 떨어져서는 안 되었다.
백타는 여인들에게 더 잘 어울렸다. 현재 황후의 지도 아래 본 왕조에서는 점차 옛날 풍토를 회복하여 갈수록 많은 여성들이 백타를 연습하기 시작하였고, 간미 역시 집에서 연습하고는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