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286)화 (286/504)

286화. 축국 (1)

경화소보에서는 지난번 방희림의 탄핵 사건에 대해서도 다뤘었는데, 그때 고청운의 또 다른 필명인 몽선각(夢先覺)에게 원고를 요청했었다. 당시 이 의뢰를 사 사장이 전해 주었을 때, 고청운은 여러모로 궁리하다가 그 요청을 거절하기로 하였다.

앞서 고청운은 친한 벗인 방희림에게 송별금을 전달하면서 그의 회신을 함께 전달받았는데, 서신에서 풍겨 나오는 그의 말투는 예전과 다름없었다. 세상의 불합리함에 분개하거나 증오하지도 않았고, 냉소적이지도 않았으며 그저 덤덤하게 고마움만 표했다. 

방희림은 서신에서 아버지의 상황을 언급했는데, 그가 현지 지주로 부임했을 때 그의 아버지가 대놓고 일을 벌인 것이라고 하였다. 그가 이 일로 좌천이 되자, 아버지는 겁에 질려 간이 콩알만 해져서 심리적인 가책을 크게 느끼고 있다고 하였다. 

방희림은 이를 불행 중 다행이라고 보았는데, 큰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패가망신하거나 집과 가족을 잃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벗의 이러한 긍정적인 면모에 고청운은 탄복했지만, 그래도 피하지 못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대가가 너무나도 크다고 생각했다.

고청운은 지금도 고삼원이 경화소보가 여론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그 소보라는 것의 영향력이 너무나도 크다고 여겨졌다. 그 영향력이 안 미치는 곳이 없었기에 경성에는 이미 경화소보라면 이를 악물고 벼르고 있는 관리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화소보는 여전히 건재함을 뽐냈다. 

도대체 배후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막강한 사람이기에 이런 것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걱정할 필요 없다. 누가 그렇게 한가해서 남들만 쳐다보면서 다니겠느냐. 나를 너무 과대평가했구나!”

고청운은 아무래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는 일을 하면서 일반적으로 가장 나쁜 결과를 예상해 보고는 하였다. 지금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안 좋은 결말이란 그의 정체가 또다시 탄로가 나는 것이었는데, 탄로가 나면 또 어떻겠는가? 그들은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을 텐데 말이다. 기껏해야 그를 뒤에서 욕하는 소인배적인 면모나 드러내 보일 뿐일 터였다. 다만 한동안은 밖으로 나설 때 조심히 다녀야 할 테고, 가족들의 일상생활에 약간의 지장을 받을 수 있긴 할 것이었다. 

“숙부께서 두려워하지 않으신다면, 저도 당연히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고삼원은 고청운의 마음속에 이미 답이 나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바로 안정을 찾았고,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가 방충에게 눈짓을 하였다. 

곧이어 두 사람은 나들이 갈 때 사용하는 마차 문제에 대해 상의해 나가기 시작했다.

* * *

대지가 태동하기 시작하고 꽃피는 춘삼월의 봄의 경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아리따웠다. 어렵사리 버텨낸 춥고 추웠던 긴 겨울을 보내고 나니, 사람들은 더 기다리지 못하고 얇은 홑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오늘의 교외는 경성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밖으로 나와 있는 듯 대단히 북적거렸다. 

몸으로 내리쬐는 햇볕이 따스하니 매우 편안하게 느껴진 상태에서 고청운은 고향에서 온 서신을 보았는데, 고계산과 노진씨가 평안하게 이 추운 겨울을 잘 보냈다고 알려 오자 마음이 놓였다. 

마침 아이들도 뛰어다니다가 지쳤는지 잠시 앉아서 휴식하고 있었다.

그가 서신을 접어 넣고 나서 다시 주변을 둘러보자, 멀지 않은 곳에서 소석이 소어를 데리고 연을 날리고 있었고, 방인소는 강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으며, 간미와 연 씨는 포르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는 고경을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딸아이의 큰 눈은 풀밭 위의 알록달록한 들꽃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작은 입은 벌써 헤벌쭉 벌어져 웃기 시작하더니 그 작은 두 손으로 매섭게 꽃을 꺾어 댔다. 

고청운은 시선을 돌려 소석을 쳐다보았다. 그 아이가 소어에게 인내심을 갖고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는 모습을 본 고청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짙어졌다. 눈앞에 보이는 이 장면이 한없이 아리땁다고 생각되었다.

소석은 어릴 때까지만 해도 천방지축이었다. 당초 황립 서원에 보내려 할 때만 해도 그 아이는 문지방에 앉아서 눈물을 훔치고 억지를 부리면서 바닥을 뒹굴었지만, 뜻밖에도 3년이 지난 지금은 서원에서 글공부를 연마하면서 큰형다운 면모를 지니게 되었고, 동생에게는 인내심을 갖고 대했으며, 무슨 맛있는 것이 생기면 서로 양보할 줄도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이런 결과는 황립 서원에서 배운 것이 끼친 영향일 것이었다. 황립 서원에서 공부한 학생이라면 이는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소석은 어린 나이에 황립 서원에 공부하러 들어갔는데, 애당초 그들 반 아이들 30명이 아직도 대부분 동창으로 남아, 함께 교우 관계와 감정을 형성하고 있었다. 

설령 고청운의 관직 품계가 같은 반 내 학부모 중에서는 최하위라 할지라도, 그는 이전에 황립 서원에서 교사로 있었던 데다가 명성이 있었고, 또 소석이 스스로의 학업적 능력이 뛰어났던 덕분에 지금까지 소석이 괴롭힘을 당하거나 하는 일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소석은 성격적인 측면에서도 삐뚤어지거나 하지 않았다.

“신지! 축국 경기를 뛰러 가세! 지금 딱 한 자리, 자네 자리가 부족하다네!”

멀찌감치 장수원의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순 멍해진 고청운이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장수원이 짙은 청색의 목 쪽의 깃 형태가 둥근 피풍을 걸치고 앞자락을 여민 채, 아래에는 바지를 입고 머리에는 천을 둘러 감싸 꽁꽁 묶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넓은 소매의 피풍을 즐겨 입는 평소보다 더욱 날렵해 보여 몰라볼 정도였다.

그의 곁에 있는 사람은 절강사(浙江司)의 왕 주사(王主事)였다. 그는 용모가 평범했으나 체격이 장대하여, 고청운보다도 머리가 반 개만큼이나 더 컸다. 품계는 그와 같았으나, 장수원의 진사 동기로 장수원과는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았다. 

“축국을 하러 오신 겝니까?”

이들이 다가오자 고청운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다급히 일어나 몸에 붙은 풀들을 떼어냈다.

“황립 서원에서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찌 이리로 와 계신 겁니까?”

고청운이 물었다. 

어제 당직 근무를 마치고, 그는 예부와 호부 간의 축국 시합이 열린다고 들었다. 한 팀당 13명씩 정원을 만들어야 했기에 다들 앞다투어 참여를 원했는데, 호부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인지, 아니면 고청운이 축국을 잘하게 생기지 않아서인지, 혹은 그도 아니면 그들 운남사의 완 낭중이 별 관심이 없어서인지, 운남사에는 이 축국 경기가 큰 화제가 되지는 않았다. 

게다가 고청운은 이미 아이들과 약속을 해서 오늘 봄나들이를 가기로 했기에 더욱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 

고청운이 이런 활동에 대해 암암리에 추측을 해보건데, 그들의 직속상관인 완 낭중은 뚱뚱한 체격에 배를 불룩 나온 것이 관료로서 아주 위엄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축국에는 관심이 없던 것 같았다.

그나저나 왜 호부와 예부의 사람들이 서로 대항전을 벌이게 되었을까? 그들이 이렇게 갑자기 축국에 열광하게 된 이유는 황제가 갑자기 축국 관람을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춘절을 맞아 축국 경기를 하게 된 세자의 모습을 보고 황제가 크게 기뻐한 뒤, 축국은 더욱 유행하게 되었다.

가뜩이나 민간에서 축국이 유행하는 중이라 아이들이 모두 축국을 좋아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황제와 어른들도 기뻐하고 좋아하니, 이번 기회에 축국이 대국민적인 여가 활동으로 변모하면서 축국 기예가 뛰어난 사람들은 큰 인기몰이를 하게 되었다. 

이른바 ‘위에서 좋은 것은 반드시 아래에도 효과적이다.’라는 것이 이번에도 작용하게 된 것인데, 황제가 축국 경기를 좋아했기에 신하들도 축국 연습을 서둘렀던 것이었다. 지금의 황제의 성격으로 볼 때 축국을 잘하다고 승진을 시켜주지는 않겠지만 호감도를 높일 수는 있을 터였다.

누구나 한 번쯤은 고구(*高俅: 수호지에 나오는 간신배)처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테니 말이다. 

호부상서와 예부상서는 서로 좋은 관계였다. 어느 날 이 둘이 한담을 나누다, 항상 남들이 축국을 하는 것을 보는 것이 도대체 무슨 재미가 있느냐는 말이 나왔다. 그러다가 아직 자기 부하들이 뛰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것에 생각이 미쳐, 이번 축국 시합이 생겨나게 된 것이었다. 

이번 시합은 친선 경기와 비슷한 것으로, 정식 경기의 전 단계 정도로 볼 수 있었다.

고청운의 질문을 들은 장수원이 웃으며 답했다.

“우리는 진즉에 다녀왔다네. 하지만 그곳은 아이들이 이미 다 차지하고 있더군. 우리는 어른이 아닌가, 아이들이 노는 장소를 뺏을 수도 없고 해서 차라리 이곳에 오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지. 이곳은 평소에도 축국 경기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 아닌가. 바닥이 평평해 그나마 잘된 것 같네.”

여기까지 말하고 그는 고청운에게 다가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무엇보다 여기는 사람이 많지. 자네도 알다시피 축국 경기를 아무도 관람을 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고청운도 문득 깨닫고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호부에서 주사 하나가 실수로 발을 삐었고, 또 한 명은 오늘 아파서 참석하지 못했다네. 그래서 지금 한 사람의 정원이 모자라지. 자네가 축국공을 찰 줄 아는 것 같기에, 내가 용기를 내어 자네를 초대한 것이라네.”

장수원이 마저 상황을 해석해 주었다. 

옆에 있던 왕 주사는 미소를 띤 채 짐짓 원망하는 말투로 말했다.

“고 대인, 어찌 축국을 할 줄 안다고 말하지 않았소? 고향 친우 분이 말해 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태 몰랐을 것이오.”

고청운은 공수하며 웃었다.

“저희 호부에는 축국의 명수들이 많이 계십니다. 저는 부학을 다닐 때 배운 돌팔이 같은 실력밖에 없어서, 집에서 아이들이랑 한가하게 놀 때나 축국을 해 보았지 제대로 연습한 적도 없기에, 많은 분들 앞에서 추태를 부릴 엄두가 안 나서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축국 경기에 선발된다는 것은 꽤 영예로운 일이었지만, 그가 호부에 들어가 보니 대부분 배경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자들이 꽤 있기에 더 나서지 않은 것이었다. 

특히 최근에 그는 운남성의 발전 대책을 수립하고, 또 번역을 하는데 집중하고 있어서 다른 데는 더 신경을 쓸 겨를도 없었다.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게나. 지금 사람 하나가 부족해진 마당에, 자네 없이는 어차피 이 경기를 진행할 수가 없네. 자, 아까 상서 어르신께서 자네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자네의 참가를 이미 동의해 주셨다네.”

왕 주사는 그의 말을 듣고 비록 약간 실망스럽기는 했는데, 고청운의 축국 수준이 그다지 좋지 않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이 필요한 때였다. 도대체 이제 와서, 또 어디에 가서 또 다른 호부 관원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젊은 관원으로 말이다.

어차피 숫자만 채우면 되는 일이었기에, 팀원들 모두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고청운이 이곳에 오는 것을 본 하인이 있어 용병을 구하지 않아도 되었다. 만약 외부 인사를 초빙해서 경기를 마쳤다가는 오늘 경기의 흥이 깨졌을 것이었다.

이래서는 예부에게 이기더라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수가 있었다. 

고청운은 이런 말까지 듣자, 두말없이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축국 복장을 하나 더 가지고 다닌다네. 우리는 체격이 비슷하니 자네는 여기 내 여분의 옷을 입으면 될 걸세.”

고청운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던 장수원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고청운은 서둘러 간미에게 가서 축국 경기 이야기를 해 준 후, 성급한 왕 주사에 의해 급히 끌려갔다.

“자, 아버지께서 축국 경기에 참여하신다는구나. 빨리 보러 가자.”

간미는 고청운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랐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도 모르게 눈을 반짝이게 되었다.

그나저나 그녀는 아직 부군이 정식으로 축국을 차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집에서 평소에 아들들과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노는 것만 보았다.

방인소 부부 또한 아이들과 함께 신이 나서 주변을 정리했다. 연은 더 이상 날리지 않았고, 물고기도 더 낚지 않았으며, 꽃도 이제 더 이상 따지 않은 채, 몇 사람은 먼저 고청운이 떠난 방향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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