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285)화 (285/504)

285화. 당직

“자네는 그럼 지금 무슨 외국어를 배우고 있는 겐가? 나중에 홍려사(*鸿胪寺: 외교 등 행사를 담당하는 관청)로 갈 생각이 있는가?”

사장정이 이어서 질문했다. 술을 한 모금 더 마셨더니 하얀 얼굴에 옅은 홍조가 피어올라 있었다.

‘이 녀석은 나이를 이리 많이 먹었는데도 늙지를 않는구나. 관리를 너무 잘하고 사는 것이 아닌가?’ 

비록 자신의 관리 역시 나쁘지 않은 편이라 자부하고 있었음에도, 고청운은 그가 좀 부러워졌다.

홍려사는 현대의 외교부에 해당하는 관청이었다. 고청운은 잠시 생각을 해 보고 대답했다.  

“생각해 본 적이 없네, 이런 일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잖은가? 위에서 어찌 결정하는지를 봐야겠지.”

자신이 아무리 진로 계획을 잘 세웠다고 한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사의 결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홍려사로 가게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그곳은 아주 한적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외빈이 없을 때는 예부보다 더 한가할 정도였다. 고청운은 노령으로 곧 퇴직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그곳에서 노후를 보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방인소가 만약 이족의 언어를 할 줄 알았더라면, 그는 벌써 그곳으로 전근을 신청했을 것이었다.

고청운은 사장정을 한 번 보았는데, 그는 아직도 술을 계속해서 마시고 있었다. 고청운은 그의 주량이 좋다는 것을 알기에 술을 그만 마시라고 권유하지는 않았다.

“일리 있는 말이네. 그런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 내 외숙부만 해도 그래. 지금은 나이가 꽤 드셨는데, 예전에 젊으셨을 때는 얼마나 많은 처녀들이 우리 외숙부를 좋아했었는지 모른다네. 지금이야 더는 그렇지 않지만 말이야. 당시에 내 외숙모께서 돌아가신 후에 또 몇 소녀들이 외숙부께 시집가고 싶어 했지만, 외숙부께서는 성혼하지 않으셨지. 젊은 부부가 늙을 때까지 함께 하지 못한 데다가 외숙부는 다시 성혼을 하시지도 않아 슬하에 아이가 없으시니, 이후로 얼마나 적막하실까.”

사장정은 그에 대한 감회가 깊어 보였다. 

“일전에 외숙부가 병이 나셨을 때, 노복 하나만이 외숙부를 곁에서 돌보고 있더라고. 내가 마침 찾아뵈러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그 일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네.”

“구 선생님께서 병이 나셨는가?”

고청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급히 되물었다.

“지금은 좀 어떠신가?”

“진즉에 다 나으셨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자네에게 말하지 못했을 걸세. 그분은 자신이 몸이 안 좋을 때 병문안 오는 것을 제일 싫어하신다네. 만약 자네들이 갔다면 매우 짜증을 내셨을 것이야.”

사장정이 찬찬히 설명해 주었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이 일을 알게 된 이상 집으로 돌아가면 좋은 약재를 챙겨 소석과 고삼원, 이 둘에게 구 선생님 댁을 직접 방문하게 시켜야겠다고 결심했다. 최근 소석의 말에 의하면 선생님이 그에게 매우 잘해 준다고 하였다. 칠현금을 타거나 퉁소를 부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도 매우 책임감 있게 가르쳐 준다는데, 두 사람이 아주 잘 지내고 있다는 것 같았다.

고청운은 굳이 자신까지 가서 그의 환심을 사고자 노력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구 선생님은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자신과 그렇게 자주 접촉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은 다시 화본에 관한 이야기로 주제를 옮겨 갔다. 사장정은 진즉에 그가 작성한 줄거리를 대강 본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본의 결말에 대해 또다시 다른 방향으로 가자며 권유했다. 

“자네가 쓰는 화본들은 정말 안 되겠네. <매화 반지> 때의 일은 잊은 게야? 그때의 상황은…….”

그는 연극에서나 나올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고청운은 그를 한 번 흘겨보았다. 사장정이 하필 감춰놓고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말만 끄집어내서 남의 결점을 건드린 것이었다. 

“괜찮네, 아무도 모를 것이야.”

이 말을 하는 고청운의 표정은 매우 가벼워 보였다.

“자네만 드러내지 않는다면 말이지.” 

이번 화본은 고청운이 경제적인 위기를 겪게 되면서 쓰게 된 것이었지만, 자신에게 글을 쓰는 기쁨을 주고자 시작한 행위였다. 때문에 고청운은 자신이 구상한 결말을 고수하고 싶었고, 이렇게 하는 것만이 가장 합리적인 결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장정은 그를 다시 한번 힐끗 쳐다보고는 더는 권유하지 않았다. 

이날 고청운은 100냥짜리 은표 한 장과 은자 스물 몇 냥의 잔돈을 정산받았는데, 엊그제 관아에서 받은 이달의 녹봉과 명절 대비 가봉으로 받은 은자들을 떠올리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화본을 쓰는 것은 정말이지 자신이 받는 녹봉보다 더 큰 이득이었던 것이었다. 

아직 화본을 발행한 지 4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화본 연재가 시작된 최초의 한 달 동안에는 판매량이 얼마 되지 않았고, 제일 최근에서야 화본의 판매량이 올라갔는데 이 정도로 정산을 받다니. 첫 달부터 판매량이 높았다면 정산받는 은자가 더 많았을 것이었다.

산술 서적은? 이는 인쇄 비용만 밑지지 않아도 잘한 것이었기에 말할 것도 없었다.

마침 지금이 곧 춘절이라, 예물이나 선물을 주고받을 대목이었다. 춘절이란 얼마나 큰 명절인가. 평소에 눈을 치켜뜨고 관리들을 감시하는 어사들도 뭐라고 더 말을 할 수 없는 시기였다. 모두가 다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고청운 자신도 여기저기 선물을 돌려야 했다. 승진 차원에서가 아니라 번거로운 일들을 만들지 않기 위함이었다. 상관, 동료의 경우, 자신이 선물을 보내기도 하지만, 그들로부터 또 선물을 받기도 했는데, 그에게 선물을 보내는 사람은 지방관으로 재직 중인 진사 동기, 동향의 벗들, 동년, 향우, 자신 아래의 하급 관리들 등이 있었다. 어찌 되었건,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지방관은 경성관에게, 동료와 동향 및 진사 동기들은 서로 선물을 주고받았다. 

선물을 선별하고 주고받는 일들 때문에 바빠서 그와 간미 모두 정신이 없었는데,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럴 바에야 춘절을 쇠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지만, 그럴 방법은 없었다. 

이것은 이 시대의 예절과 세시풍속으로, 한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풍조를 바꿔볼 수 없는 노릇이라, 그저 이 사회에 녹아들어 그들과 한통속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 * *

시간은 물 흐르듯 빨리 지나 섣달그믐이 다가왔다. 춘절의 바로 전날인 오늘 방희림에 대한 처분이 내려왔다. 그는 운남(云南)의 작은 현성의 현령으로 좌천되었다. 작은 현이어서 인구가 많지 않은 곳이기에 그의 품계 역시 종7품으로 바뀌었다. 

고청운은 이 결과에 많은 사람들의 노력의 결실이 담겨 있음을 알고 있었다. 좌천당해 발령 가는 장소를 해남(海南)에서 운남으로, 또한 주부(*主薄: 관서의 문서와 부적을 주관하던 문서를 다루는 관직)에서 현령으로 바꾸기 위해 특히나 백엽과 방희림의 사형들이 큰 힘을 기울였을 것이었다. 

고청운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그에게 은자 30냥의 송별금을 전해 주는 것뿐이었다.

* * *

섣달 26일 황제의 봉보의식(*封宝仪式: 황제가 옥쇄를 봉인하고 하늘에 제를 올리는 등 춘절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을 시작으로, 각 관서 및 관아들도 관례대로 춘절을 쇠기 시작했다.

춘절 연휴는 모두 7일이 주어졌다. 그러니까 정월 초하루 전후로 각각 3일씩인 것이었다. 하지만 섣달 26일부터 정월 보름까지는 출근하지 않아도 되기는 하였다. 

춘절을 보내는 동안, 경성에서는 줄곧 크고 작은 경축 행사가 열렸는데, 그 기간 동안에는 황궁에서도 계속해서 연회가 열렸다. 고청운은 아직 품계가 낮아 정월 초하루에 대군을 따라 태화전 광장에서 황제에게 세배를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황궁의 다른 경축 행사에는 참석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청운은 밤이 되어서야 겨우 한가해질 수 있었다. 

바쁜 연휴 기간에 세배가 오가고 나서야 겨우 집안의 은자가 수지타산이 맞게 되었다. 

정월 초사일이 되면 관아에서는 다시 문서 작업을 실시했는데, 고청운은 이때 호부로 출근하여 당직을 서야 했다. 이때에는 별다른 사무적인 일이 없더라도 사람이 직접 당직을 서야 했다. 그는 올해 막 호부에 입사한 신인이었기에, 완 낭중은 그와 매 주사를 당직으로 선발하였다. 하지만 매 주사는 대선배여서 그 후 남은 11일 중에서 겨우 3일만 왔고, 나머지는 모두 고청운이 나와야 했다. 

다른 것보다 품계가 높은 다른 관리들, 예를 들면 호부의 원외랑만 해도 원소절까지 휴가를 보낼 수 있어, 고청운은 자신이 한 단계 더 승진하기는 해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래야 이 춘절에까지 관청에 홀로 나와 당직을 설 필요가 없게 될 테니 말이다. 

이 때문에 그는 한림원이 그리워졌다. 비록 그곳에는 선물 등이 많지 않았지만, 사람이 많았던 것이었다. 서길사 시절에는 모두 10명이나 되었기에 당직 역시 하루씩 돌아가며 맡을 수 있었고, 그 뒤로 한림편수로 승진해서도 그에게 좀처럼 당직 차례가 오지 않아 행복했었다.

그래도 매 주사가 있어 괜찮은 편이었다. 적어도 그는 3일은 당직을 서기 위해 나오지 않았는가. 그 덕에 자신에게도 3일이라는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다른 부서의 신입이었다면 10여 일 동안 계속 혼자서 당직을 섰을 것이었다. 

선물을 보내서 상사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는 한, 고청운은 춘절 당직을 벗어날 수 없었을 터였다. 물론 고청운도 그저 들은 얘기였기에, 이 말이 사실인지는 아직 확실히 확인해 본 바가 없었다. 어쨌든 그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기는 하였다.

* * *

춘절이 지나자 모두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3월 초가 되자 꽃망울들이 터지는 봄을 맞이하여 고청운의 가족들은 관례대로 교외로 나가 봄나들이를 하려고 했는데, 고삼원이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반대의 의견을 냈다.

“숙부, 저희는 안 가는 게 좋겠어요. 요즘 <백사전>이 너무 잘 팔려 나가는데, 숙부께서 쓰신 내용이 너무 매몰차기도 하고 감정적이라, 어느 누가 숙부께서 집필하신 것으로 짐작해서 폐를 끼칠까 걱정입니다. 경화소보에서 이미 부채질하며 떠들어 대고 있다고요.”

고삼원이 이렇게 말하자, 고청운은 며칠 전에 본 경화소보가 떠올랐다. 경화소보에 확실히 <백사전>과 관련된 내용이 실리기는 했었다. 

현재 화본의 진도는 이미 여자 주인공의 원형인 뱀 요괴의 모습으로 남자 주인공을 놀라게 해, 남자 주인공을 기절하게 만드는 대목까지 와 있었다. 남자 주인공은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뱀 요괴가 자신의 아내를 잡아먹어 버린 것이라고 믿으며 매몰차게 변모했다. 

너무 독하게 마음을 먹은 그는 하필이면 여자 주인공이 자신을 향해 품고 있던 미안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 상황을 믿지 않았다.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두려워, 그렇게 그 시간을 그냥 참아내고 있었다.

고청운은 이즈음의 내용을 열심히 써 내려가기는 했으나, 이 대목을 집필하는 구간에서 때마침 하필이면 방희림의 사건이 터졌다. 주변에서 그를 향해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그러한 비판적인 시각을 접하게 된 고청운은 덩달아 마음이 불편해졌기에 그 당시에 집필한 내용도 그 영향을 받아 좀 더 격하게 상황이 전개가 되었다. 

고청운 스스로도 그러한 느낌이 있었다. 간미도 그 구간을 읽어보더니 깊이 동감했다. 지금 바로 그 문제의 구간이 간행되어 나오게 되면서 또다시 독자들의 토론과 의논을 불러일으킨 모양이었다. 

그도 이미 예상한 바였으나, 그 규모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 그 책을 쓰는 데는 ‘산곡거사’라는 필명을 사용했지, ‘일침황량’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경화소보는 독자층이 날이 갈수록 두터워지며, 잘되고 있었다. 같은 기간에 함께 생겨난 소보들과 비교해 보면 마치 물 만난 물고기와 같았다. 바람만 불어도 소문은 생겨나는 법. 경화소보는 이미 경성 밖에서도 잘 알려져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사람들이 아주 반기는 소보로 성장해 있었다. 

하겸죽조차 한 번은 서신을 통해 고청운이 다 읽고 난 소보를 한 번 부쳐달라며 봐 보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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