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283)화 (283/504)

283화. 포부

고청운은 이제 다음 서신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는 방자명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그는 방희림의 일에 대한 것 외에 경성에서 일어난 다른 일들도 함께 전했다. 

일반적으로는 관리들과 관련된 일들의 경우 항주의 관보를 통해 그 소식을 알 수 있었지만, 관보에 실리는 내용이 너무 간략했기에 관보에만 의지해 관직 생활을 하는 방자명이 도대체 어떠한 앞뒤 사정으로 인해 이런 변화들이나 이동 발령 등이 생기게 되었는지 유추하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고청운은 해당 사건의 과정을 적어 내려가 방자명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또 잠시 후에 그는 간미와 연례(*年礼: 세의(歲儀), 즉 연말연시에 하는 선물)에 관한 일을 의논해야 했다. 짐작하건대, 방자명은 스승님에게 연례를 보내주기 위해 항주에서 사람을 보냈을 것이었다. 그러니 이쪽에서도 미리 사전에 연례 준비를 해 두어야 했는데, 무엇보다 자신의 화본을 챙겨서 항주로 돌아가는 사람에게 함께 전해 주어야 했다. 

올 춘절에 방자명 일가 몇 명만이 항주에서 따로 명절을 보내게 될 것을 생각한 고청운은 이번 서신을 좀 길게 써서 보내주기로 결심했다. 이는 그를 위로해 주기 위함이었다.

드디어 서신을 다 쓰고 나자, 고청운은 발이 저렸다. 

서재 구석에 있는 몇 개의 화로 속에서는 숯들이 타고 있었는데, 거기에 더해 손난로까지 품에 안고 있으니, 고청운은 온몸이 따끈따끈했다. 

바닥에 깔려있는 양모 양탄자에서 아이들은 아직까지 놀고 있었고, 간미는 그 옆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숯을 아끼기 위해서, 저녁 식사 후에는 가족들이 한데 모여 한 장소에서 각자 자기가 할 일을 하였다.

이때 아이들의 말소리가 들려오자, 고청운은 서신들을 펼쳐놓고 먹이 마르기를 기다리다 말고 고개를 돌려 그들을 쳐다보았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었다. 

평소에 아이들은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아주 조용히 있었다. 심지어 2살 난 고경마저도 아주 조용히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그는 문득 이 소란이 궁금해졌다. 

‘이렇게 큰 소리가 오가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나는 더 자라서 키가 아주아주 커질 거야. 우리 아버지처럼 커질 거야.”

소어가 진중하게 주먹을 꼭 쥔 채 말했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고청운과 간미 모두 분명히 남녀 기준으로 작은 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어는 또래보다 작은 편이었다. 특히 아이와 함께 서당에서 공부하는 동기들은 대부분 소어보다 한 살 위였는데, 그들과 함께 있으면 소어의 키가 더욱 작아 보이고는 하였다. 

고청운이 보기에는 꼬맹이가 속으로 이런 게 아주 신경이 쓰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인지 꼬맹이는 요즘 식사 때도 편식을 거의 하지 않고 예전보다 많이 먹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키가 자랐는지 안 자랐는지 잘 티가 나지 않았지만, 겨울 들어서 아이가 더 뚱뚱해 보이는 것만은 분명했다.

“바보 같긴, 키 크는 게 네가 원한다고 되는 거냐?”

소석이 손에 들려있던 책을 내려놓고 소어를 곁눈질해서 보고는 말했다.

“네가 더 성장하면 키도 저절로 함께 커질 거야. 네가 지금 커지고 싶다고 해서 커질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다시 생각해 봐. 그나저나 소아야, 먼저 말하고 싶은 게 있는 모양이구나.”

마지막 한마디의 말투는 아주 부드러웠다.

고경은 열심히 그녀의 나무인형에 옷을 입히고 있다가, 묻는 말에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옹알거리며 말했다.

“아빠한테 시집갈 거예요.”

피식!

간미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고청운은 일순 멍해졌다. 

소석과 소어 두 형제는 먼저 어머니 아버지 쪽을 쳐다보았다가 다시 여동생을 쳐다보고는 깔깔 웃기 시작했다.

“소아야, 너는 아버지에게 시집갈 수가 없어. 바보로구나.”

소어가 곧바로 큰소리로 말했다.

 소석은 몸을 기울여 고경에게 다가가 그녀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니?”

여동생 머리카락은 부드러웠다. 소석은 아이의 얼굴도 보들보들해 보여 한번 조물조물 만져보고 싶었으나, 아이가 울까 봐 무서워서 꾹 참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쪽에 있던 소어는 되레 충동을 참지 못하고 기어 와서 고경의 볼을 가볍게 쥐어 보았는데, 그녀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서 자기도 모르게 헤헤 하고 웃어 보였다. 

눈앞의 사람들이 웃는 소리에 고경은 상당히 침착하게 그저 고개를 들어 한 번 바라보기만 할 뿐, 울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그랬어요. 아빠한테 시집가는 게 좋다고요.”

간미는 웃음을 참아가며 고청운에게 상황을 해석해 주었다.

“며칠 전 매씨 집안의 안인(*安人: 황제로부터 봉호를 받은 부인의 칭호의 한 종류)께서 약선 요리의 요리법을 물으러 오신 적이 있었어요. 그때 댁의 따님이 곧 15세가 되어 계례를 할 때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혼사 이야기도 나와, 그와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러다가 당시에 매 안인께서 첩을 들이지 않는 사위를 만나야 한다고, 당신 같은 분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소아가 듣고 있었는지 몰랐네요. 며칠이나 지난 이야기를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다니.”

고청운은 바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다가가 딸아이를 안아 들더니, 볼에 진하게 뽀뽀를 하고 말했다. 

“그래, 앞으로 우리 소아는 반드시 아버지 같은 사내를 만나서 시집가자꾸나.”

자신이 아이들의 이상(理想)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기뻐할 만한 일이었다.

“아빠.” 

고경은 그의 얼굴도 뽀뽀를 한 번 해 주며 침 자국을 남기고는 작은 손가락으로 양탄자를 가리키더니 애교스럽게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놀고 싶어요.”

고청운은 딸아이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더 안고 있을 수가 없어, 아이를 내려놓아 주었다. 

고경은 집중력이 뛰어났는지, 곧장 놀이에 심취했다.

고청운은 딸아이가 나중에 공부를 하게 되어서도 이런 집중력을 발휘할 수만 있다면, 대단한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시대에서 여성들이 처한 사회적 위치가 생각나자, 감흥이 절로 식어버렸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뛰어난들 어쩌겠는가, 여인은 이 시대에서 출세할 수도, 떳떳하게 일하러 나갈 수도 없었다. 

이미 황실에서는 여성 서원을 열었고, 이곳에 앞다투어 입학하려 하는 여성 학도들도 많았다. 

육훤의 서신에도 이미 서원 근처에서 어린 아가씨들을 우연히 몇 번이나 마주친 적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많은 학부모들은 이 여성 서원을 잘 탐색해 본 후 여성 서원이라는 제도를 매우 반기게 되었는데, 특히 중하층의 관리 집안들의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과거를 준비하거나 광명정대한 세상의 이치를 밝히는 것에 공부의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여식들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를 향상 시켜 더 좋은 곳으로 시집을 가게 하려는 것에 더 큰 목적을 두었다. 

그 생각에 미치자, 고청운은 씁쓸한 웃음이 났다. 이는 자신이 처음 공부를 하기로 했던 목적과 같기는 했던 것이었다. 애초 자기 자신도 사회적 지위를 올려보고자 열심히 책을 읽지 않았던가. 

그러다가 진사에까지 합격하게 되고 관직에 올라 관리가 된 후, 그는 그제야 드디어 서서히 독서의 즐거움을 찾게 되었다. 지금 그가 독서를 계속해 나가는 것은 자기 스스로에게 충실하기 위함이었는데, 자신의 자질을 더욱 향상시키고 자신이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 알고자 함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어떤 포부를 갖고 계신가요?”

고청운은 한쪽에서 들려온 소석의 맑은 목소리를 듣고 생각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소석이 눈을 반짝이며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말했다. 

“아버지, 저의 포부는 이후 과거 시험에서 장원으로 합격하여 관리가 되는 것인데, 좋은 관리가 되고자 해요. 아버지, 아버지는요?”

고청운은 눈꺼풀을 아래로 드리운 채, 잠시 유심히 고민에 잠겼다. 아이들과 간미 모두 궁금하다는 듯 그의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너희들이 모두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고, 우리 가족 모두가 앞으로 더 잘 살 수 있었으면 하는구나. 그리고 또 더 큰 영향력을 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한단다.”

간미와 소석의 멍한 얼굴을 본 고청운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의견은 다만 그가 생각하고 있던 것들 중 아주 일부분일 뿐이었다. 사실 기본적인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하고 난 현재, 그의 가장 큰 목표는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고청운은 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었는데, 이쪽 세계에 얼마간의 유용한 것들을 남겨주고 싶었다. 그는 앞으로 이 나라가 왕성하게 발전을 거듭하여 후세에 100년의 굴욕(*百年屈辱 : 중국이 청나라 말, 아편 전쟁에서 패한 이래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산업화에 먼저 성공한 패권국에 줄줄이 무릎을 꿇고 국토 일부와 이권을 내주는 등 온갖 굴욕과 수모 겪게 된 100여 년간을 지칭함)을 겪지 않고 세계의 정상에 우뚝 솟을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일개 개인으로서 그가 가진 힘은 너무나도 미미했기에,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런 것들은 아직은 그저 이상에 불과했다. 

미래는 공업이 국력을 결정하게 될 테지만, 오늘날의 하 왕조는 아직 봉건제를 잇고 있는 국가로서 생산력이 크게 발달하지 못했고, 백성들의 지식수준도 높지 못했으며, 우선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여전히 너무 적은 데다 기술 수준도 선진적이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외부의 압력도 없이 능동적으로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황제가 가장 추구하는 것은 역시 안정이자, 신하들의 순종이었다. 대신들이 가장 원하는 것 역시 국가의 안정이자,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하 왕조는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날이 갈수록 승승장구하고 있는 형세였는데, 이런 상황에서 극렬한 변화란 생겨날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 고청운에게는 개혁을 제창할 담력도, 능력도 없었다.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더욱 힘써 해내는 것뿐이었다. 끓는 물 속의 개구리가 되는 것도 위험했지만, 나 자신을 더 아끼고 몸조심해야 했다. 

매년 출항하여 외국과 교역하는 무역량이 늘고 있는 요즘, 조정에서는 복건천주(*福建泉州: 복건성 천주시, 절강명주(*浙江明州: 절강성 명주시), 항주, 월성광주(*粤省廣州: 월성粤省은 광동성의 별칭, 광동성 광주) 등지에 시박사(*市舶司: 송, 원, 명 시대에 세관과 비슷한 역할을 한 관아)를 설치했는데, 시박사란 고대의 세관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것만 봐도 앞으로의 세상이 달라질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만약 오래도록 살 수만 있다면 앞으로 하 왕조가 발전해 나가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때는 분명히 지금과는 많이 다르겠지?’ 

외국과의 교류가 많아질 테니, 반드시 변화가 찾아 올 것이라는 것은 자명했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머릿속이 확 트인 고청운은 드디어 다음 화본의 구상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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