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화. 연루
고청운은 어렵사리 야근을 해가며 연말 예산 편성 때문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제 막 한숨을 돌리고 관아에서 춘절을 지내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 때 즈음 갑자기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방희림의 친족이 강제로 민간 소유의 농지를 빼앗은 사실이 발각되어, 방희림이 어사의 탄핵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민간 소유의 농지를 강탈하다니!’
고청운은 너무 놀라서 옷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책상에서 뒤돌아 빠져나온 후, 몇 보를 빨리 걸으며 연이어 되물었다.
“삼원아, 정확한 소식이더냐? 소식은 어디서 들었느냐?”
고삼원은 잠시 숨을 돌리고, 가슴을 어루만지며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숙부, 조정 회의가 막 끝나자마자 순식간에 전 호부에 다 퍼진 이야기입니다. 저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나서 몇 사람에게 더 물어봤는데, 확실히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고청운은 그 말을 듣자마자 잠시 서 있다가 미간을 찌푸리고 뒷짐을 진 채 자신의 사무실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방희림은 탐화인 데다 한 번 보면 잊지 않는 큰 재주가 있어 진사 시험에 합격해 금방에 이름을 올릴 때부터 일약 유명세를 탔다. 또한, 사람됨이 총명하고도 강건한 그는 하부 조직에서도 매우 일을 잘해 지금은 이미 종5품 지주가 되었는데, 한 개 주(州)의 최고 책임자로서 관직 생활에 있어 떠오르는 새로운 정치 신성인 인물이었다.
또한, 그는 뒷배경조차 든든했다. 그의 장인은 정3품의 대리사경이었으며, 그의 스승님은 유명한 대학자 대유였다. 게다가 황제는 조정 대신들의 신분 구성을 권문세가 출신, 귀족 무장 출신, 한미한 일반 가문의 자제 출신 등으로 고루 분포시켜 그들 간의 관계와 균형을 맞추려고 하고 있었기에 일반 가문 출신의 인재를 발탁하기를 좋아했다. 이 모든 것에 속하는 방희림의 현재 형세를 알고도 탄핵을 제기했다는 것은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무고로 밝혀지면 탄핵을 발의한 어사가 되레 처벌받을 터였다.
고청운은 마음을 진정시킨 후, 이 일의 결과를 예상해 보기 시작했다. 사실 무슨 심사숙고를 해 보는 것도 필요치 않았다. 그는 율법을 익히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 일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지금 방희림의 상승세는 꺾일 수밖에 없었고, 그 영향은 뭐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자신이 읽은 역사서에는 송나라 때 이와 같이 비슷한 불미스러운 일로 벼슬길이 20년 가까이 막혀 있던 관원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사람도 방희림과 마찬가지로 원래 장래가 촉망되는 신성이었다.
고청운의 진사 동기들 중에서는 장원 공번충과 방안 초유보다 진사 시험 석차가 좋지 못했던 방희림이 상승세를 가장 빨리 타고 있었다.
그가 지금 제일 난처하게 생각되는 것은 친한 벗이 곤경에 빠져 있는데, 자신은 방법이 없어서 사무실 안이나 왔다 갔다 하며 남몰래 조급해하기만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증거가 확실하면 자신도 도울 방도가 없었다. 결국 민간인의 농토를 강제로 빼앗은 것이니, 이 또한 민중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될 것이었다. 한나라 때 소하(萧何)가 유방(刘邦)에 대한 오명을 벗기기 위해 민간 농토를 강점했던 사건만 봐도 그 위력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정치 생명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칠 것이었다.
무엇보다 개인이나 관직 상의 명성에 모두 누가 될 것이었다. 유교에서 강조한 것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齐家治国平天下: 심신을 닦고 집안을 정제한 다음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함)’임을 알아야 했다. 자신의 집안 하나 관리하고 건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나랏일을 도와 민중을 다스릴 수 있을까?
오후 퇴근 시간이 되자, 사람들은 이 일을 마주하고 의견을 말하기 바빴다. 고청운은 마구간에서 초유 등을 만났는데, 한림원에서 같이 일했던 진사 동기인 초유, 담자례, 종민, 공봉명 등이 자리에 함께 있었다.
장원 공번충은 여전히 자취를 감췄지만, 고청운은 그가 또 퇴근을 미룬 채 장서루에서 책을 읽고 있겠거니 하였다. 그는 아주 호평을 받는 책을 내고 나서도 여전히 책에 푹 빠져 사는 책벌레였다.
이들 몇 사람은 함께 자주 가던 주점으로 말을 타고 달려갔다.
* * *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그간 일어난 풍문들을 서로 꺼내 놓은 이들은 잠시 말을 멈추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고청운은 아무도 말을 안 하는 걸 보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보다 먼저 초유가 말을 시작했다.
“희림 형의 일, 다들 들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이 사실입니까? 실제로 누가 민간인의 농토를 강점한 것인지 아는 사람 있습니까? 어느 친족인지 확실히 아시오?”
고청운이 급히 물었다. 그는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 자신보다 소식이 더 빠른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리 물어본 것이었다.
“사실은 사실인 듯하더군요. 아까 오는 길에 심부름꾼을 시켜서 경화소보를 사 오게 시켰는데, 소보에 다 기사가 실려 있었어요. 그 소보가 비록 허풍을 많이 떤다고는 하지만 이런 오명을 잘못 실었다가는 아주 경을 칠 테니 확실한 내용이 아니면 기사를 싣지 못했을 거요. 그리고 일을 저지른 사람은 희림 형의 아버지라 하더군요.”
초유는 말을 마치고, 소보를 꺼내 사람들이 돌려 볼 수 있도록 건네주었다.
“방안은 역시 빠르네.”
모두가 잇달아 칭찬을 했다.
고개를 가로젓던 초유는 주루의 점원이 뜨거운 국물을 들고 오는 것을 보고 급히 사람들에게 국물을 마셔 속을 데우라 하였다. 오늘은 날씨가 추웠는데, 방금까지 또 거리에서 말을 채찍질해가며 급히 달려오느라 온몸이 얼음장 같을 것이었다. 이럴 때는 진한 양고기 국물 한 그릇은 마셔줘야 몸이 편안해졌다.
이쪽에서 먼저 소보를 흩어본 사람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정말 못됐구려.”
“희림 형에게 이렇게 누를 끼쳐서야 원!”
“증거가 확실하니 이제 판결이 어찌 날지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게 되었네. 좌사 대인이 아무리 대리사경 직에 있다고 한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으니,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고 판결을 내리셔야 할 게야.”
“오히려 규정에 따르고, 판결에 있어 개인이 더 손을 대지 말아야 할 것 같네. 폐하께서는 악한 자들의 불법과 일탈을 가장 싫어하시지 않은가.”
…….
여러 사람의 의론이 분분했다.
방희림은 사람이 매우 건실했고, 성격도 시원시원했으며, 재능도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과 사이좋게 잘 어울렸다. 그가 잘 어울리는 사람들 중에는 담자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 그가 당한 사고로 인해 모두 이렇게 한자리에 쉽게 모이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다들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그저 탄식이 줄을 이을 뿐이었다. 그들에겐 그를 도와줄 힘이 없었다.
고청운은 3년 전 봄나들이를 갔다가 방희림을 만났었다. 그가 한담을 나누다 말고 지방으로 내려가겠다는 말을 하자, 고청운은 뭔가 예감이 들어서 그에게 그의 가족은 신경을 쓸 일이 많은 사람들이니 주의하라고 했었다. 결국 남의 집안일이라 길게 얘기하지 못하고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정말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다니!
‘내가 정말로 까마귀 주둥이를 가지고 있는 걸까!’
고청운이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한탄에 잠겨있자, 오른쪽에 앉아 있던 공봉명이 그를 보고 국 한 그릇을 떠주었는데, 적당한 양을 잘 따라 주었다.
그의 동작에 놀라 생각에서 벗어난 고청운은 급히 고맙다고 말했다.
공봉명은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을 뿐 뭐라 말이 없었다. 이들은 함께 식사할 때 하인들을 곁에 두고 식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먹는 것 차리는 것 등은 자신들이 친히 하고는 했다.
“민간인 농지를 강점한 것이 아니고, 강제로 사들인 것이라 들었습니다.”
담자례는 방금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더니 드디어 귀한 입을 열었다.
“그렇긴 하네.”
초유는 담자례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강점이 아닌 강매라 한들 죄를 지은 이상 지주 자리에 머물 수 없을 것이네.”
공봉명이 사건을 정리해 주었고, 가슴을 치며 말했다.
“다행인 것은 우리 집안에는 그런 근시안적인 사람이 없다는 것이네. 정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다니…….”
“이런 일은 예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거늘.”
종민은 장원 공번충과 마찬가지로 산둥성 출신이자, 학자 출신의 집안이었다. 그는 이 말을 꺼내면서 고청운을 한 번 쳐다보고 빙긋 웃어 보였지만, 그렇다고 웃음에 조소를 담고 있지는 않았다.
고청운도 미소로 답했는데, 마음속으로 그가 자신의 집안도 걱정해 준 것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방희림과 마찬가지로 한미한 집안 출신이라, 가난한 사람들은 갑자기 부자가 되면 일렬의 비슷한 문제를 일으키기 쉬웠다.
공봉명의 가정환경은 이런 면에서 훌륭했는데, 경성의 저명한 집안 출신으로, 경성의 평민이 외지의 백성들보다는 정치적으로 민감해서 이런 경우에 더 잘 대비할 수 있었다.
초유, 담자례, 종민 등은 말할 것도 없이 다 큰 가문 출신인데,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더라도 금방 자체적으로 사건을 덮고 수습할 수 있을 정도로 일 처리가 뛰어났다. 방희림의 아버지처럼 평민에게 고소를 당해 도읍지마다 떠들썩하게 사건을 알리지는 않을 것이었다.
“희림 형, 아쉽구려!”
결국 식사가 끝난 후엔 그저 또다시 한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은 확실히 방희림의 아버지가 잘못한 것이니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방희림이 승승장구했던 기세를 유지할 수 있었더라면 몇 년이 지나 한 지역의 지부로까지 승진했을 것이고, 그 지위에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경성으로 전출되었을 것이었다. 어느 한 지역을 다스렸던 경험이 있는 지방관은 지방의 대부호나 폐하의 총애를 독차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관직 상으로도 10년도 채 안 되어 조정에 다시 입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심지어 입각에 성공한 방희림은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을 만큼 한창 나이로 승진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강매한 사람이 방희림 본인은 아니었지만, 그 가족이 일을 저질렀으니 그 또한 같은 죄목으로 똑같이 연루될 터였다.
이것은 전형적으로 후원에 불을 놓았다고 말하는 사건, 사고였다. 당사자가 아무리 총명하고 유능하더라도 뒤에 있는 가족들이 이를 받쳐주지 못하고 훼방을 놓아,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소리만 지르다가 한낱 꿈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를 생각하면 고청운은 자신의 가족들이 보이는 저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친지 구성원 수가 적어서 그랬을 테지만, 그 외에도 큰할아버지 고백산과 할아버지 고계산이 늘 친지들을 곁눈질하고 있는 덕이 컸다. 몇 년 전에도 문중의 친지들이 그의 이름을 팔아 현성에서 사고를 벌였다가 호되게 처벌받은 뒤 자취를 감춘 적이 있었던지라, 아무도 감히 비슷한 사건 사고를 일으키지 못했다.
고청운은 서신과 50냥의 은자에 해당하는 은표를 마련하여, 고향으로 가는 사람에게 부탁해 임계촌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무엇보다 방희림에게 일어난 일을 큰할아버지에게 알려드리고 이 같은 일을 사전에 경계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