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280)화 (280/504)

280화. 뇌물

고삼원은 사람을 내보낸 후, 돌아와서 궁금해하며 물었다. 

“이 사람은 문제가 있어 뵈던데요. 아무 연고도 없이 찾아와서는 그림을 사가겠다니 말입니다. 우리는 다 그를 모르지 않습니까.”

고청운은 거실에서 호두나무 책상에 놓인 꽃병을 감상하고 있었다. 꽃병에는 여러 색채가 뒤섞여 있었는데, 이미 가지에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의 붉은 꽃잎 위로 몇 방울의 물방울이 맺혀 있어 유난히 아리따워 보였다. 

꽃을 감상하던 고청운이 고삼원의 말을 듣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네가 그림을 팔지 않았다고 원망할 줄 알았다.”

여기 놓인 매화는 아마 간미가 오늘 아침 정원에서 가져온 매화나무 가지일 것이었다. 다른 하인들이 가져다 놓았다면 이렇게까지 보기 좋게 조형을 해 놓을 수 없었다. 

고삼원은 입을 실쭉거리며 턱을 약간 숙이고는 말했다.

“저를 너무 얕보셨어요. 숙부는 지위가 있으니, 제가 반드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죠. 족장 어르신과 숙부 아버님께서 일찌감치 늘 제게 말씀하셨는데, 제가 숙부님의 다리를 걸고넘어지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전 제 다리를 분질러 버릴 겁니다.”

고청운은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저는 그 사람이 무슨 연유로 온 것인지 알아볼 방도가 있는지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고삼원이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였다. 

비록 그들이 경성에 와서 지낸 지 벌써 10년이나 지났지만, 경성은 너무 크고 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어떤 때는 일이 발생했을 때 바로 대처를 할 수 없었다. 예컨대 이번 일의 경우, 상대의 의중조차 알 수가 없었다. 

고청운은 당연히 동의했는데, 오늘 사장정을 만날 예정이 있었으니 그 참에 사장정에게도 한 번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장정은 골동품에 심취한 적이 있었기에 필히 그 사내를 알 수도 있을 것이었다. 

* * *

역시 고청운이 그 사내의 이름과 함께 용모를 묘사해 주자, 사장정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기억에 있는 사람이라고 알려 주었다. 

“자네가 말한 그 사람은 내가 만난 적이 있는 자일세. 그의 가게는 부귀방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니야. 내가 그의 가게에서 물건을 산 적이 있었는데, 잠시 잊었었군.”

사장정은 한참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마침내 그를 기억해 냈다.

고청운은 사장정에게 오늘 벌어졌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 일은 확실히 좀 수상쩍은 바가 있었다. 그는 내심 상대방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상대방의 의중은 무엇일까? 도대체 그가 한 말은 진실일까? 아니면 구실을 찾아, 내게 돈을 건네려고 그랬던 걸까? 설마 그런 사람이 또 있을까? 아니면 누가 나를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서 작당을 한 걸까?’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사고는 미연에 방지해야 해.’

“하하, 자네 말을 들어보니 무슨 상황인지 짐작이 가는군.”

사장정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난로 옆을 서성였고, 몇 걸음 걷다 말고 갑자기 손뼉을 치며 하하 웃었다.

“누가 자네에게 뇌물을 바치려 한 것 같네.”

사장정은 줄곧 앉아 있는 고청운을 바라보며 웃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고청운은 깜짝 놀랐다.

‘뇌물이었단 말이야?’ 

오전의 일을 돌이켜 보고 크게 깨닫는 바가 있었던 고청운이 그의 귀에 대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편법뇌물이라는 것인가? 조정에서 단속이 엄중할 진데 정말 대담하구만!”

하 왕조의 건립 이래 조정에서는 탐관오리에 대해 줄곧 극도의 경계를 천명하며 법률로써 뇌물 수수의 처벌 기준을 규정하고 있었다. 일정 액수가 넘는 돈을 받으면 관직을 잃게 되었고, 또 관료의 가산 규모는 전부 감사원에 등록되어 있어야 했다. 만일 어느 날 불시 감사에서 숨겨둔 재산이 적발되면, 출처가 불분명한 거액의 재물에 대한 심도 있는 조사가 전개되었고, 범죄 사실이 소명될 경우 관직만 잃는 것이 아니라 목숨이 날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도 뇌물을 바치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았고, 수단은 점점 더 은밀해졌다.

지금 방금 일어났던 일이 바로 ‘아수(*雅贿: 편법 뇌물증여의 한 방법)’라고 부르는 방식이었다. 예컨대 누군가 그에게 뇌물을 주고 싶으면, 가게의 주인에게 부탁을 하여 거래하듯 뇌물을 전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는 골동품 가게의 주인이 관리의 집에 가서 그림이나 글 한 폭, 보통은 서화 따위를 샀다. 가게 사장이 치르는 값이 바로 뇌물을 주려는 사람이 전하고자 하는 뇌물 금액이었다.

이번에 상대방은 그에게 은자 100냥을 주려고 했던 것인데, 상대방이 언제고 찾아와 집으로 초청한다면 분명 그 집에는 자신이 판 서화가 걸려 있을 것이었다. 그러면 자연히 누가 뇌물을 준 것인지 알게 되었고, 나중에 상대가 일 처리를 요구할 때 그를 도와 일을 처리해 줘야 작업이 끝날 것이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남의 손을 빌려 손쉽게 일을 처리하고자 함이었다. 

이런 방법은 서로를 잘 모르는 관원들에게 적합했다.

그는 이전에 줄곧 한림원에 있었는데, 그곳은 정말 훌륭할 정도로 청렴한 관아였다.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품계조차 없었기에 수중에 직접적인 권력이 없었다. 그래서 뇌물이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갈 일이 없어 이번 일을 당하고도 바로 뇌물거래라는 것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제 알겠구려. 초유와 공봉명을 통해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이런 일이 내게도 벌어질 줄은 몰랐네…….”

그들이 간 주점의 주방장이 만든 오리구이 맛은 정말 좋았다. 껍질도 겉도 아주 바삭바삭하고, 속은 정말 연해서 순식간에 모든 신경이 음식으로 쏠리게 했다. 

고청운은 자신도 누군가에게 뇌물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다.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장정이 말했다.

“자네는 지금 화본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있어 남의 돈을 받을 필요가 없을 텐데, 이런 큰 모험을 하다니.”

그는 그저 말만 거들 뿐, 고청운이 감히 뇌물 수수에 가담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의 이 말은 고청운을 기쁘게 하였다. 

‘이건 칭찬이 아닌가?’

“그나저나 자네가 지정해 준 서가의 위치에 책을 배열하고 보니, 정말 그 자리가 딱인 것 같네. 자네의 책은 지금 서가에서 눈에 제일 잘 띄는 위치에 진열해 두었는데, 사 사장의 추천을 받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네 책을 보고 있다네. 책을 구매해 가는 사람도 적지는 않지. 특히 여성들이 많이들 구입하더군. 

글을 읽을 수 있는 여인들의 집은 돈이 궁하지 않기 마련이지. 손에 큰 혼수를 쥐고 있지 않은가. 장신구들을 구입하면서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을 텐데, 몇십 문짜리 화본 구입에는 더 말할 것도 없지 않겠나.”

사장정은 덩달아 화본의 판매 현황에 대해 알려 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연말쯤 되면 인편에 정산금을 보내겠네.”

고청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러세, 난 급하지 않네.”

두 사람은 이어서 몇 마디 더 농담을 주고받았는데, 이때 고삼원이 후원의 서재에서 그의 화본 원고를 가지고 들어왔다.

사장정은 새 원고를 받자마자 뒤척이며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고청운은 그가 흰색의 여우 가죽을 통으로 사용해 만든 갖옷을 입는 것을 바라보았다. 밖의 하늘빛을 살펴보니 오늘은 그래도 그나마 날이 좋은 편이이었는데, 눈은 안 오고 해가 좀 났지만 그래도 춥기는 하였다.

“날씨가 춥잖은가, 이틀 전에도 눈이 왔는데 다른 사람을 시켜서 원고를 가져가면 될 것을 왜 직접 오는 겐가?”

그 말을 들은 사장정은 갖옷을 덧입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는데, 희고 고운 아리따운 이목구비가 백색의 외투와 어우러져 더욱 아리땁게 빛나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했다. 

“난 아이들을 보러 오랜만에 온 걸세. 어차피 집에서 놀면서 풀떼기나 키우고 있는데, 매일 먹고 마시고, 밖은 나오지 않고 집에서만 어슬렁거리다 보니 살이 쪄서 보기 흉해졌어.”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자기의 허리를 꼬집어 보였지만, 그가 입은 옷이 매우 두꺼워 굵어진 허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허리를 애석한 듯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사장정이 방금 집에 오자마자 이미 만났는데, 서로가 아주 다정했다. 어쨌든 아이들이 잘 아는 어른이 아닌가. 그리고 사장정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얼마나 잘 헤아리는지 어릴 적부터 소석에게 선물을 사주고는 했으니 어찌 아이들과 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청운이 질투할 만큼 그들은 사이가 좋았다. 

방금 사장정의 말에는 고청운도 동의했다. 얼마 전에 그도 한가로이 먹기만 하고 운동은 별로 하지 않았는데, 급작스럽게 허리둘레가 굵어진 것을 발견한 후, 중년에 부티 나는 다른 아저씨들처럼 될까 봐 깜짝 놀라 운동을 강화한 뒤 두 달 만에 원상복구 해 놓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그는 살찌는 문제에 더욱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니까 말일세.”

사장정은 고청운의 어깨를 힘껏 두드리며 실실 웃었다. 

“우리는 그런 거친 사내들이 아니잖은가. 물론 사내의 체면도 중요하지. 예쁘게 치장하지 않고서 내 어찌 우리 마님의 환심을 살 수 있겠는가?”

고청운은 눈을 깜박이며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이 말에 함축된 정보의 양이…… 너무……. 흠흠, 너무 많았다. 무슨 은밀한 이야기를 들은 것만 같았다.

사장정은 마른기침을 하더니 검지로 인중을 쓸고는 모자를 쓰며 급히 말했다.

“나는 이만 가보겠네. 나중에 시간 있으면 불러주게. 술이나 한잔하러 가자고.”

정신을 차린 고청운은 더 이상 뭐라고 대꾸하기가 어려워 얼른 그를 집 밖으로 배웅했다.

* * *

이후 며칠간 고청운은 운남성 관리들을 만나게 되면서 대화를 해 본 결과, 상대방 말에 숨은 뜻을 간파하고는 자신에게 뇌물을 주려던 자들이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

현지 소수 민족의 장신구들이 대부분 은 장신구라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던 그는 운남에 크고 작은 은광 열 몇 곳이 위치해 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아직 경성의 말단 6품 주사일 뿐인, 아직 결정권이 없는 자신에게까지 상대방이 100냥의 은자를 뇌물로 주려고 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고청운은 상대방의 의중을 개의치 않고 자신이 불쾌했음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어차피 그가 뇌물을 받을 일은 없었다. 

“고 대인…….”

눈앞에 있는 중년 사내는 고청운의 말을 듣고는 다급해져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두 손을 꼭 쥐고 몇 번 비벼대며 중얼거렸다.

“하관이 오랫동안 경성에 올라오지 않아서 버릇없이 굴었습니다. 원래는…….”

고청운은 상대방이 다시 조심히 굴기 시작하자 그저 웃으며 목소리를 다시 누그러뜨렸다. 

그는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었기에 내버려 두고, 정식으로 화제를 꺼냈다. 

“동(董) 대인, 보시지요. 제가 간단한 통계표를 작성해 보았는데, 3년 동안 우리 운남의 농지세 증가 속도가 둔화하였습니다. 올해와 작년은 거의 비슷한 수준인 걸 보니, 여기 몇 군데의 재배 면적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만약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해서 그래프 양식으로 만들었더라면 훨씬 직관적이었을 것이었다.

고청운은 상대방이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을 보고, 손으로 도면을 짚어가며 계속해서 말했다. 

“운남은 산지가 많고 지형이 복잡한 성입니다. 옥수수와 감자는 다수확 작물에 속하는데, 내 고향 월성의 백성들은 대부분 이 두 종류의 작물을 심고 있지요. 이 작물들은 가뭄과 수해에 강하고 모래 같은 토질에서도 잘 자라서 산간 지역에서도 재배가 가능합니다. 이런 작물을 심을 것을 많이 선전하고 독려하세요. 어떤 백성들은 이를 아직 몰라서 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테니 말입니다.”

이 상황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이 시대의 교통 조건은 매우 열악하여 소식의 전달 및 정보의 공유가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북방의 어떤 선진 재배 기술이 남방까지 전해지기까지는 100년이 더 걸릴 것이었다.

“그리고 운남에 소금 광산이 많아 염업을 발전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고청운은 말을 잠시 주춤했다. 그는 자신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시의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이 문득 들어서 상부에 다시 의견을 내기로 하고, 이 화제를 마무리 짓기로 하였다. 

“조정에서 어떻게 안배하는지 봅시다.”

동씨 성을 가진 관리도 입을 다물었다. 그는 단지 업무차 자리에 따라온 작은 관리일 뿐인데, 구체적인 회계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런 큰일을 하시는 대인이 마음을 써 주다니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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