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화. 일상 (1)
간미가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고청운은 매우 놀랐지만, 좋은 일인 데다가 예상치 못했던 좋은 결과였기에 매우 기뻤다.
“원 씨네 집 손녀가 이제 만 15세가 되어 축하하는 자리에 참석했다가, 연회에서 어떤 사람이 <백사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어요.”
간미는 얼굴을 약간 붉힌 채 마치 물빛을 머금은 듯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말을 이었는데, 말투는 자못 자랑스럽기까지 하였다.
고청운이 알기로 오늘은 호부낭중 완 대인의 손녀의 계례(*筓禮: 여자의 성년식으로 만 15세(시집갈 나이)가 되면 비녀 같은 장식품을 머리에 꽂는 것을 기념하는 행사)일이었다. 완 대인은 큰 행사는 열지 않되, 각 명문 집안의 여성들만 초청하여 한자리에 모셨다.
“부군, 모두 아주 잘 쓴 작품이라고 하던데요?”
간미는 그의 손을 잡고 마치 소녀처럼 그의 팔을 저으면서,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부군이 쓴 글이라고 의심해서 제게 묻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의심을 한 이유는 느낌이 아주 비슷했다고 하더군요. 단어 선택이나 문장 구조가 비슷하다고 했어요. 제가 당신은 바빠서 글을 쓸 시간도 없고, 하루 종일 산술 서적을 집필하거나 번인(*番人: 한족(漢族) 이외의 중국 변방에 살고 있던 소수 민족에 대한 호칭)과 외국어를 배우느라 바빠서 거의 다른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둘러댔어요. 다행히도 제가 그녀들에게 당신은 너무 바빠서 글을 쓸 시간도, 글을 쓸 필요도 없다고 하자 다들 추측을 중단하는 분위기였지요.”
간미의 말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백사전>에서는 시사가 아주 적게 인용되었는데도 다들 제가 쓴 것이 아니냐고 묻기도 했어요. 하지만 증거도 없었지요.”
이 말을 할 때의 그녀의 말투에서는 일종의 은밀한 쾌감이 전해졌다.
이 <백사전>의 남자 주인공은 하층민 출신으로 <매화 반지>의 남녀 주인공이 향신 집안의 자녀인 것과는 다른 설정이라, 그들처럼 글을 읽고 시를 짓는 장면이 나오지 않은 것은 매우 정상적인 전개였다. <백사전>의 여자 주인공은 뱀 요괴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수련을 할 뿐, 그녀 역시 시를 짓고 노래를 할 일은 없었다.
고청운이 전에 살던 세상에서 보았던 드라마에서는 남녀 주인공이 서로 번갈아 시를 지어 부르고 답가를 하는 장면이 나왔으나, 그가 화본으로 묘사를 할 땐 그런 장면은 버리기로 하고, 방자명이 그에게 찾아준 현지 민요 몇 곡만을 적당한 단락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독자들은 전편 <매화 반지>에서 여자 주인공이 부르는 시사가 모두 간미가 직접 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지금 간미를 만나서도 미심쩍은 생각을 가지고 자연히 묻고는 한 모양이었다.
“우리가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이지요. 다른 이들도 증거가 없는데 어찌 함부로 말할 수 있겠소. 사람들은 대부분 계란이 맛있는지 여부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 계란을 낳은 어미 닭이 어찌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오.”
고청운은 그녀를 안심시켰다.
“산곡거사가 끊임없이 화본을 쓰거나 가면 갈수록 작품을 잘 써야만 사람들이 겨우 주목하게 될 것이오.”
가령 일침황량의 경우에도 <매화 반지>를 쓰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이 그를 주목했었고, 이미 쌓여있던 인기에 궁금증이 더해서 그런 여론이 인 것이었다. 물론 소보의 영향도 있었다.
“부군, 자신의 작품에 그렇게 자신이 없으신 건가요? 지금 많은 사람들이 부군의 책을 사러 서점에 가고 있어요.”
간미는 도리어 웃기 시작했는데, 이마에 퍼진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화기애애하게 웃는 모습이 유난히 부드럽고 온화해 보였다.
고청운은 일순 멍해 있다가 입을 뗐다.
“미아, 나는 당신이 점점 더 아리따워지는 것 같소.”
현재 서른을 바라보는 간미의 피부는 여전히 희고 고왔다. 눈은 매우 맑았고, 책을 가까이하는 학자의 기운과 점잖은 기질도 물씬 풍겼으며, 심지어 소녀 시절보다도 몸매가 더 좋아졌다. 그와 함께 더욱 성숙한 느낌을 주었는데, 그녀의 용모는 여전히 청수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끄는 매력도 있었다.
어쨌든 고청운 생각에는 간미가 더 아리따워졌고, 무르익은 세월이 그녀의 기질을 더욱 성숙하게 만든 것 같았다.
“부군!”
간미는 간드러지게 한마디를 외쳤는데, 마치 창피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 듯했다. 그러나 얼굴에서 절로 나오는 웃음이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고청운은 하하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고 갑자기 말했다.
“눈 깜짝할 새 서른을 넘겼고, 아이들은 점점 크고 있소. 요 며칠 고민해 보았는데, 이번 화본으로 생긴 수익금으로 왕씨 가문과 합작하여 외국과 해상 무역을 시도해 보려고 하오.”
고청운은 지금이 제일 적기라고 생각했다. 선원과 선장들은 경험이 풍부해져 있었고 무역권도 형성돼 있으니, 더 이상 이 시장에 발을 담그지 않으면 앞으로는 이들의 몫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런 결정에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방자명이 써서 보내 준 서신의 내용이었다. 고청운은 방자명이 항주에서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해 준 것 중에서 그곳의 상업 무역이 매우 발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기에 편승하여 한 몫 챙겨볼 요량이었다.
두 사람은 상의한 결과, 그래도 왕 씨네 상단이 비교적 믿음직하다고 느꼈다. 방자명의 외숙부인데다 고청운이 지난번에 귀향하면서 겪어본 바에 의하면 왕박(王铂)의 사람됨이 좋다고 생각되었다.
이유는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왕박의 아들 왕가준 때문이었다.
그를 수재에 합격시키기 위해 최근 왕박은 고청운에게 기별을 넣었고, 왕가준을 그의 집에 보내 공부를 시켰다.
고청운은 매일 출근하는 것 말고도 다른 일들이 있어 성당에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오후 반 시진 동안만 그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왕씨 집안에서는 후한 선물들을 보내왔다.
고청운은 원래 가르치는 일을 고사하려 했었다. 자신의 일이 너무 밀려있어 하마터면 바빠서 죽을 뻔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 세상은 아직 인정이 넘치는 사회이지 않은가. 고청운은 지난번에 자신의 귀향길에 왕씨 가문의 선박을 이용한 것 외에도, 부모님이 작년에 고향으로 내려갈 때 신세를 좀 졌고, 또 다른 사람들이 하도 사정도 했기에, 할 수 없이 왕가준을 가르치는 일을 승낙하고야 말았다. 물론 학생이 기꺼이 배우겠다는 자세가 있다는 전제 조건이 붙었다.
왕가준을 가르쳐 본 결과, 그는 몸가짐이 다소 자유분방했지만 열심히 공부하며 학문에 바른 자세를 보였다. 그는 매일 문중의 족학에서 수업을 마친 후, 다시 고청운의 집에 가서 공부를 했는데, 여태껏 힘들다는 표시 한 번 내지 않고 매우 열심히 노력했다.
그가 이런 사람인 것이 보이자 고청운도 그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왕가준이 시를 잘 모르며, 심지어 싫어한다는 것을 시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또한 그는 수학을 매우 좋아했지만, 경의 방면에서는 그간 별로 배운 것이 없어 답안이 항상 실수투성이였다.
처음 막 공부를 시작했을 때의 자신과 얼마나 닮았는가! 고청운은 마침내 왜 왕씨 가문의 문중에서 경영하는 족학에서 그 큰돈을 들여 거인들을 초빙하여 공부를 시키면서도, 그를 자신의 집으로 다시 보내서 공부를 시키는지 알게 되었다.
사실 왕가준이 자신을 찾아오면 보충수업을 하는 것과 매한가지였다. 고청운은 그의 취약한 부분을 파악하여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 보강을 해나갔다.
왕씨 집안의 요구는 그가 수재에 합격하는 것이지, 그를 무슨 학자로 만드는 것까지는 아니었다. 그래서 고청운은 후대에 흔히 볼 수 있는 일명 문제 은행 전술을 구사해 다량의 문제를 맹목적으로 풀게 하는 방식을 채택했고, 매일 그에게 문제를 낸 후 문제에 대한 해석을 해 주며 그의 답안을 고쳐주었다.
여러 가지 유형의 문제를 몇 번 시험해 본 고청운은 그가 이미 기본적으로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고 느꼈다. 뒤이어 그는 시를 짓는 문제에 대한 방안으로 자신이 사용하던 방법을 왕가준에게 전수했고, 이는 예상대로 효과가 있었다.
이 때문에 고청운은 그를 진짜 제자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자기와 비슷한 사고와 사상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이던가!
다만 자신이 아직 어리고 학식도 부족하여, 인재를 그르칠까 두려워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그는 지금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어서 제자를 가르치는 것에만 정력을 쏟아부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왕가준을 정식으로 제자로 받아들이는 일은 포기하기로 하였다.
공부를 시작한 지 두 달밖에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왕가준의 수준은 매우 향상되어 있었다. 이에 왕씨 측은 감격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지방의 부호가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은 바로 선물 그리고 또 선물이었다! 고청운은 이 사례들을 다 고사했는데, 왕박도 그리 강요하지 않았기에 사례를 받지 않는 대신 합작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고청운은 며칠을 혼자 생각하다가 결국 결정을 내려 이 준비된 시장에 끼어 들어보기로 하였다. 만약 불운이 닥쳐 최악의 경우 이 상선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죄다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후회하지 않기로 하였다. 어차피 이 정도 손실은 그의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았다.
고청운의 말을 들은 간미는 당연히 동의했다. 그녀는 얼굴에 홍조를 띤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부군, 당신 말에 따르겠습니다. 우리 집에는 아직 운용할 은전이 있으니 조급해하지 마세요.”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내 말은 다 따르겠다고 하면서 왜 나랑 같이 영어 공부는 안 하는 것이오?”
요즘 고청운의 모든 여가 시간은 영어 공부를 하는데 사용하고 있었다. 언어를 공부하는 방법은 말을 많이 하는 것뿐만 아니라, 적당한 상대를 찾아 배움을 청해야 하고 또 자신의 노력도 많이 들여야 했다.
그는 비록 3일에 한 번 톰 신부를 만나 공부를 했지만, 그래도 약간의 기초가 있어서 각종 학습 방법을 알고 있었기에 수업이 없는 다른 날에는 빌려온 영어책으로 단어를 공부하고 책을 낭송하며 또 암송해 보기도 하였다.
가족들은 처음에는 고청운이 영어로 말하는 것에 대해 궁금해했으나, 그가 아주 엄숙한 얼굴로 이상한 음표 같은 말들을 입에서 쏟아내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고청운이 말했다.
“언어 공부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큰 소리로 말해야 하지요. 부끄러워하면 안 됩니다. 내가 하는 방식이 맞는데 왜 다들 웃는 거죠?”
이제 그는 톰과 만나면 표준어와 영어를 한데 섞어 대화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