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화. 영어
“아 참, 너희 집은 구매를 마친 것이냐?”
고청운은 갑자기 이 문제가 생각나 급히 물었다.
요 몇 년 동안 고삼원은 그를 위해 정말 부지런하게 일해 주었고, 그에게 충성을 다했으며, 자신의 잇속을 따로 챙기지도 않았다. 고삼원이 매일 자신과 출근길에 동행을 하면서도 다른 사내종이나 하인들을 통해 은연중에 항간의 소문을 소상히 파악하는 일을 잊지 않고 행해준 덕분에, 고청운은 사람을 대하고 상황을 접함에 있어 몸을 사릴 수 있었고 또 다른 사람의 비위를 거스르는 행위를 피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고삼원은 어쨌든 고청운의 고향 친지였고, 집안의 바깥일을 담당하는 관리인으로서 다른 하인과 비교했을 때 월급을 가장 많이 받고 있었다. 또한 그의 부인의 도움까지 합세해 그는 이미 금전적인 준비를 다 마치고 실제로 얼마 전에 성곽 남쪽 일대의 중정이 딸린 작은 사합원을 매입했다. 비록 면적은 매우 작지만 단독주택이었다.
“샀어요.”
고삼원의 얼굴에서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경성에 작은 집을 하나 장만할 수 있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그라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이었다. 오늘날에 이르러 이렇게 주택을 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젠 그에게 경성에서 발붙이고 설 땅이 생긴 셈이었다.
“흥정을 오래 끌고 나서야 전 집주인이 손을 들었지요. 저는 이미 관아에 가서 집문서도 다 작성해놨습니다. 숙부의 명첩(*명함)을 들고 갔더니, 관아 사람들이 제게 돈을 많이 요구하지 않았고, 심지어 일 처리도 금방 끝났어요.”
말을 마친 고삼원이 갑자기 고청운에게 다가오더니 부들부채를 들고 부채질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헤헤, 숙부, 절 쫓아내시면 안 됩니다. 제가 곁에서 더 잘할게요. 저희 집은 제가 잘 정돈해서 세를 놓으려고 합니다. 이후에도 저는 이곳에서 숙부와 함께 살고 싶거든요.”
의자에 기대어 있던 고청운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자 온몸이 상쾌해지는 걸 느꼈다. 그는 “그래.” 하는 소리와 함께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네가 잘못하지 않는 한, 내가 너에게 나가라는 일은 절대 없을 게다.”
고삼원은 하하 웃으면서 더 열심히 고청운에게 부채질했다.
고청운은 비록 고삼원을 신임하고 있었지만, 응당 해야 할 깨우침과 경계가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잊지 않고 있었다.
고청운은 가끔 사람을 시켜 일정 경로를 통해 고삼원이 해 준 일들에 대해 알아보고는 하였는데, 신중함이 지나쳐서 벌인 자신의 이런 행동이 매우 고생스럽거나 귀찮을 때가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성격을 고치기 싫어했다. 그 성격이란 것이 바꾸기 참 어려웠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그런 면을 당사자에게 알리는 것도 꺼리지 않았는데, 이런 규칙이 있었기 때문인지 그의 집안 하인들이 분수를 잘 지키며 요 몇 년 동안 윗사람을 속이는 일을 별로 벌이지 않은 걸지도 몰랐다.
고청운이 이전에 읽었던 소설 혹은 경성에서 보고 들어온 것들에 따르면, 어떤 경우는 어느 집의 하인이 잘못을 저질러 그 집의 주인까지 함께 죄를 묻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것은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전례를 볼 때, 그는 자신이 이렇게 엄격하게 가정을 꾸리는 것이 그래도 장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집안이 줄곧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집안사람들이 모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줬기에 고청운은 자신의 집에서 하인을 많이 내보내지 않아도 되었다.
이쪽 방면에서 간미와 그의 생각은 같았다.
“2년만 더 기다렸다가 네 집 아들도 나이가 되면, 소어와 함께 서당에 보내자꾸나. 학비는 내가 내겠다. 내가 보기에 아이가 제법 씩씩하고 늠름하고 영민하기도 하던데, 아마 나중에 이름을 날리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고청운은 고삼원의 3살짜리 큰아들이 생각나 말을 꺼냈다.
“네가 틈날 때마다 그에게 먼저 글을 가르쳐 두거라.”
만약 문중의 친지들의 자녀 가운데 천부적 자질이 있는 아이가 나온다면, 그는 기꺼이 도울 의사가 있었다.
요 몇 년 동안, 임계촌의 고씨 가문에서는 과거 공부를 시킬 만한 인재가 몇 명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일전에 가지고 온 산술 서적과 개인적으로 집필한 회계 장부 교본이 고청명을 통해 크게 보급은 되었으나, 현재 문중의 몇몇 아이들은 학교에 다시 입학하지 않고 현성이나 임양부의 상점에 바로 취직을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중에 두각을 나타낸 몇몇은 직접 회계 업무를 맡고 있었다.
이런 점은 고청운을 조금 갑갑하게 만들었다.
‘설마 이들은 앞으로 전문적인 회계사가 되려고 이러는 걸까?’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도리는 관직 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되었다. 모두들 형제자매를 더 중시했기 때문에 자기 집안에서 더 걸출한 인재가 나오기를 바랐지만, 이는 급하다고 해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고 운이 따라야 했다.
고청운이 이렇게 약조하자 고삼원은 더욱 흥분하여 즉시 가슴을 힘껏 두드리더니 말했다.
“안심하세요. 집에 돌아가자마자 집에 있는 그 똥강아지에게 글을 가르쳐 두겠습니다. 나중에 서당에 가서 망신을 당하지 않도록 말이죠.”
두 사람은 한참을 더 이야기를 나눴고, 고청운은 비로소 경성 내 성당의 외국인에 대한 것을 물었다. 이때는 이미 동양과 서양이 대규모 교류를 시작한 때였다. 하 왕조로 유입되는 외국인도 날로 늘어나 경성에 성당을 세우고 선교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지만, 그가 알고 있던 역사처럼 이 땅의 사람들은 외국의 종교에 대해 크게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선교사들은 온갖 방법을 강구해 본 결과, 나라의 관리들을 만나 이 난관을 돌파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 최근 반년 동안 날이 갈수록 잦아지고 있었다.
이때의 백성들은 아직 무턱대고 거만하게 굴지 않았고,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외국에도 매우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종교를 믿는 데는 관심이 없었지만, 서양의 문화에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때의 교류는 대부분 문화 중심으로 교류가 이어졌다.
고청운은 그 속에서 조금도 두드러지게 굴지 않고 있었다.
“제가 자세히 알아봤는데, 몇 명의 사람들의 평판이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우리 왕조의 표준어도 구사할 줄 한다고 하며, 또 일부 관리들과 이미 교제하고 있는 외국인도 있었습니다.”
고삼원은 자신이 알아 온 상황을 한 번 쭉 설명하면서 결론적으로 한 영국인에 대해 중점적으로 소개했는데, 그가 표준어를 가장 잘해서 관리 한 명과도 알고 지내고 있는 상태라고 하였다. 그 관리는 바로 한림원에서 만난 정9품 시서직에 있는 양유(梁唯)였다.
양유는 매일 전문적으로 이들의 근퇴 관리를 기록하는 하급 관리로, 고청운이 한림원에 있을 때 매일같이 그를 대면했기에 친분이 있는 편이었다.
“그렇구나, 잘 알았다.”
고청운은 슬며시 계획을 세웠는데, 양유에게 그 선교사를 소개시켜 달라고 하여 영어를 배울 작정이었다. 고대의 영어와 현대 영어가 많이 다르더라도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에, 다른 서양 언어에 비해 영어를 가장 쉽게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었다.
사실 오늘날 서방 세계에서 많이 사용되는 언어는 라틴어였고, 영어는 아직 주류로 올라온 상태가 아니었다. 영국이 아직 굴기하지 못하고 있는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고청운은 라틴어를 배우고 다시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를 배우면, 비교적 빨리 그들 언어도 습득할 수 있다고 들었었다. 정말로 그러한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는 영어를 배운 후에 다시 라틴어를 배울 계획이라, 지금은 아직 급할 것이 없었다.
* * *
8월 10일, 경성의 거리 곳곳에 중추절(*中秋节: 중국의 추석) 분위기가 감돌고 있을 때 즈음, 고청운은 양유의 주도 하에 50세가 넘은 영국인 신부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톰’이라는 아주 대중적인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고청운의 신분을 알게 된 톰 신부는 아주 열의를 보였다.
그가 구사하는 표준어는 발음이 다소 이상하긴 해도 쌍방이 즐겁게 대화할 수 있을 정도였다.
대화를 통해 그가 수학책을 챙겨서 이곳으로 왔다는 것을 확인한 고청운은 자신이 가진 수학적 재능과 견실한 학식을 알리고 난 후, 다시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고청운이 그와 수학이라는 학문적 교류를 해보자고 하고, 거기에 더해 영어까지 배울 예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 톰 신부는 너무 기뻐서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톰 신부와 3일에 한 번씩 성당에서 만나 한 시진씩 머물기로 약속을 한 뒤, 고청운은 양유와 함께 작별을 고했다.
“대인, 대인께서 이런 서양의 학문에도 관심을 가지고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돌아가는 길, 양유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물었다.
‘고 대인께서는 앞날이 창창하신데, 어찌 이런 곳에 쓸 시간이 있으셨을까? 그가 나처럼 몇십 년간 9품 관리직에 머무르며 위로 올라갈 기회가 없는 사람도 아니고 말이야.’
양유는 몇 번이고 기회를 잡아 어떻게든 더 위로 승진하고 싶었지만, 그 기회는 늘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다.
이렇게 몇 차례 낙담하면서 50살이 넘자, 그는 자신이 더 이상 올라갈 가망이 없다고 느끼고서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고청운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저는 확실히 이쪽에 흥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산술 쪽이요. 그러니 젊을 때 많이 알아두면 좋지 않겠습니까.”
양유는 문득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으나 속으로만 생각했다.
확실히 고 대인은 산술 쪽으로 조예가 깊어서 그 실력을 조정 사람들이 다 알고 있을 정도인데, 지금은 서양의 학문에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재미야 있을 수는 있으나, 고 대인 자신을 생각한다면 이 젊은 나이에 호부의 정6품 주사에 올랐으니 조금 더 관직 생활에 시간을 쏟아 더 빨리 승진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듣자 하니 이 고 대인이라는 사람은 남들과 교제하는 데도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초청하여 특별한 찻집에 모셔 간다고 해도 도통 가지 않으려고 할 정도였다.
양유는 고청운의 옆모습을 보았는데, 아무리 보아도 전혀 30대의 나이로 보이지가 않았다. 그는 고청운의 진사 동기들을 떠올려 보고는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모를 정도로 하늘이 참으로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진사 동기들은 젊을 뿐만 아니라 인재들도 많이 배출되니, 이 늙은 수재의 마음에 한 가닥 시름을 느끼게 할 뿐이었다.
‘나이가 많으니 다행인 것인가, 이제는 더 이상 부질없는 생각을 안 해도 되니 말이야.’
양유는 잡념은 여기까지 끊고 자신이 윗사람들과 줄을 댔다는 생각에 오늘 하루 종일 뛰어다닌 보람이 있었음을 느꼈다.
* * *
드디어 영어 공부를 시작한 고청운은 점점 점입가경에 들어가게 되면서 새 화본의 반응에 쏠렸던 관심이 점점 사라졌다.
그러는 동안 <백사전>은 더욱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특히 여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점점 많아지며 그 명성도 날로 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