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275)화 (275/504)

275화. 백사전(白蛇传) (1)

3년 전 은광 사건으로 단숨에 고청운의 이름이 경성에 날린 뒤 황제는 선단을 파견했는데, 이 선단을 통해 다시 한번 은광을 발견한 사람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에 바다로 나가는 사람이 해마다 늘고 있었다. 각자 돈을 모아 배를 사고 바다로 나가 외국인과 장사를 해서 부를 축적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물론 해상에서 풍랑을 만나거나 원주민들과 관계를 잘 다지지 못하거나 혹은 배에서 병에 걸리는 사람도 있었고, 피 같은 자본을 다 까먹게 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출항했던 배가 순조롭게 귀항하기만 하면, 그들이 가지고 온 화물들은 절대 못 팔 염려가 없었다!

진귀한 목재, 자당(蔗糖), 철, 구리, 은괴, 향료, 염료, 코코아 등등 모두 엄청난 이윤이 붙여 거래가 되었기에, 살 사람이 없을까 봐 걱정할 일은 없었다. 

고청운도 출항해서 돌아오면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문제는 적당한 합작 대상을 찾지 못한 데다 그에게 밑천이 부족했다. 위험이 큰 만큼 돌아오는 이익도 컸으나, 고청운 같은 사람이 손을 댔다가는 자칫 본전마저 잃을 수 있었다. 고청운은 자신의 집안이 아직 재물적인 근간이 부실했기 때문에 감히 결심을 내릴 수 없었다. 

하여튼 이런 저런 연유로 그는 이제 ‘일침황량’이라는 필명을 쓰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다.

특히 그의 필명이 밝혀져 자신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졌기에, 고청운은 자신이 쓴 화본 속 내용이 자칫 잘못해서 다른 사람에 의해 왜곡, 편집되어 자신을 공격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많은 문인들이 필명을 사용해온 까닭은 바로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간미는 고청운이 진지하게 생각에 잠긴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의 지금 이런 모습이 매우 매력적이라고 생각이 들어 자기도 모르게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자, 이렇게 하지. 나는 이미 결정을 내렸소!”

고청운은 마침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에게 있어서는 역시 안전이란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그는 화본으로 인해 자신의 일상생활, 특히 가족의 생활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고, 자신이 쓴 글에 근거하여 남들이 자신의 내면의 사상이나 심정 혹은 세상에 대한 견해를 추측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고청운은 수입이 줄어드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래도 수용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여론이 나쁘더라도 그래도 수입은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몇 년 전보다 화본 시장이 더욱 성장했기도 하였다. 

국가의 정치가 안정된 영향으로 시국이 투명하게 운영이 되고 있었고, 백성들의 생활 수준도 갈수록 높아져서 그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는 문인의 지위가 매우 높아졌다. 그래서인지 약간의 여유자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일반적으로 모두 자신의 아이를 학당에 보내서 공부를 시켰고, 이 때문에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을 줄 알게 되었다.

이 역시 화본의 독자 수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어떻게요?”

호기심이 든 간미가 그를 바라보았다.

“필명을 바꾸려 하오, ‘일침황량’이라는 필명은 더 쓰고 싶지 않소.”

고청운은 수많은 이유는 밝히지 않고 우선 먹물을 갈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대강 좀 바꿔 봐야지.’ 

고청운은 자신이 필명을 바꾸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3년 동안 작품을 내지 않은 그는 문풍이 이전과 비슷할 것이나, 또 변화도 반드시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그가 유명해진 후에 많은 작가들이 그의 문풍을 모방하여 화본을 냈기 때문에, 그의 이런 행동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설령 다른 사람이 알아볼지라도, 증거가 있지 않은 이상 잡아떼면 그만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간미 역시 그런 방법도 좋겠다며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자신의 결정에 동의하는 것을 본 고청운은 더욱 자신감에 차올랐다. 그는 여전히 안전제일 위주의 성격이라 대중들에게 더 이상 노출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다시 간미와 상의를 거친 후에야 줄거리를 고쳐 썼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사람을 잡아먹지 않고 영기만 빨아들여 수련하는 뱀 요괴가 오랫동안 열심히 수련을 거쳐서 신선이 되고자 했는데, 꼭 병목에 부딪힌 것처럼 더 이상 수련에 차도가 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그 구간을 돌파할 수 없어 마지막 신선이 되는 걸음에 이르지 못한 것이었다. 

이때 관음보살에게 도움을 얻어, 자신이 갚지 못한 은혜 때문임을 알게 된 뱀 요괴는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 은인의 환생을 찾아 보답을 하기로 하였다.

열심히 은인의 환생을 찾아다닌 끝에 은인의 환생자를 확인한 여자 주인공은 어렸을 적부터 벗인 소청(小青)과 머리를 짜내, 각종 우연의 일치와 복선을 만들어 가며 남자 주인공과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만난 이들은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고 결국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두 주인공은 사이좋게 의술을 갈고 닦아 의관을 운영하며 부를 쌓았고, 여자 주인공의 계속되는 은밀한 도움으로 남자 주인공의 생활 수준 역시 수직 상승하며 함께 좋은 일을 많이 하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일은 순탄하기만 하지는 않은 법. 중간에 여자 주인공의 숭배자이자 적인 다른 인물의 꼬임에 빠져 여자 주인공의 정체가 여러 번 노출될 뻔하기도 했던 것이다. 

결국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천 번의 생각 중에 한 번쯤은 반드시 실수가 있는 법이라, 그녀는 그녀를 해하기 위해 특별 조제된 웅황주를 잘못 먹고 요괴의 원형을 드러내는 바람에 남자 주인공을 놀라 기절하게 만들었다.

정신을 차린 남자 주인공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했는데, 그 와중에 다른 사람에게 현혹되어 뱀 요괴가 자신의 낭자를 잡아먹었다는 착각에 빠져 그것을 기정사실로 믿게 되고, 그로 인해 각종 상처와 갈등이 등장하면서 일련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상처를 이미 주고 나서야 남자 주인공은 비로소 뱀 요괴가 자신이 사랑했던 낭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남자 주인공은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며 아파했다.

그 후 전당강(钱塘江)에 큰 홍수가 닥치고, 여자 주인공이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원래의 모습을 드러냈는데, 본의 아니게 적의 눈에 띄어 물난리를 뱀 요괴가 일으킨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나가게 되었다. 

백성들은 이를 곧이곧대로 믿었다. 이 일은 또다시 승려 법해의 귀에 들어가면서 결국 여자 주인공을 재앙의 근원으로 착각한 법해는 수해를 다스리고 나서, 여자 주인공이 회임으로 법력이 약해져 있는 틈을 타 뇌봉탑 아래 그녀를 가두는데 성공하였다. 

결국 오해는 풀렸지만 요괴와 사람은 이어질 수 없는 법, 여자 주인공은 결국 큰 실수를 저지르고 뇌봉탑 밑에 계속 갇혀 버리게 되었다. 

이후 남녀주인공의 아이가 커서 글공부를 하고 과거에 합격해 관료가 되어 백성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공덕을 쌓았는데, 그 효심에 감동한 하늘이 여자 주인공을 세상에 다시 꺼내 주면서 세 식구가 모두 모일 수 있게 되었다.

“이게 결말인 거죠? 이런 결말인 거예요?”

이번에는 간미가 마침내 만족스러운 듯 급히 물었다.

고청운은 자신의 글씨를 노려보며 말했다.

“물론 마지막 결말은 아니오. 마지막 결말은 여자 주인공이 이 일로 인해 심마를 이겨내고 신선이 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 하오. 일반 사람으로 사는 것과 신선이 되는 것 중에 선택을 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녀가 평생 추구해 온 것인 신선을 택해야 하지 않겠소? 이렇게 요괴의 몸을 벗어 던지고 신선이 되고 나면 남겨진 남자 주인공은 괴로워하며 출가를 선택하여 승려가 될 것이오.”

고청운은 자신이 정리한 대강의 이야기 흐름을 보고 나니, 이야기를 집필할 기력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건 자신에게 익숙했던 <백사전>에서 이야기가 많이 바뀐 것이었지만, 여기에는 원작이 존재하지 않으니 원작에 충실할 필요는 없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써야지, 다른 것은 많이 생각할 필요가 없기도 했다.

“부군! 왜 이런 결말을 내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백 낭자라고 생각해 보시오. 당신이라면 장생불노(長生不老)를 택하겠소, 아니면 그냥 펑범한 사람으로 남겠소?”

고청운은 바로 일어서서 기지개를 켰다. 반나절이나 앉아 있었으니, 일어나서 잠시 걸어야 했다. 나중에 스승님과 마찬가지로 목 디스크 같은 병이 생기면 득보다 실이 더 많았다. 

간미는 부군이 무의식중에 내놓은 튼튼하고 근육 잡힌 허리를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져서 급히 머리를 숙이고 속으로 은근히 자신을 타박했다. 

‘왜 난 부군을 떳떳하게 보지 못하는 거지?’

간미는 한참 동안 소리 없이, 머리를 복잡하게 차지하던 생각들을 거두지 못하고 계속 상상 속에 빠져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고청운을 한 번 쳐다보고 낮게 물었다.

“요괴가 되어 본 적이 없어 요괴에게 신선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부군과 함께 하는 것이 즐겁기에 부군과 함께 평범한 삶을 사는 편이 더욱 좋을 것 같아요. ……부군, 곧 식사 시간이니 부엌에 가서 식사 준비가 다 되었는지 보고 올게요.”

간미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치맛자락을 잡으며 부리나케 서재에서 나갔다.

그녀의 갑작스런 말에 어리둥절해진 고청운은 도망치듯 사라지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눈을 끔뻑였다. 

그는 목석같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간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녀와 동등한 감정으로 보답할 수가 없어 가책을 느꼈다.

고청운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드러난 살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마치 머리통을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지만, 결국 더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인생에는 사랑뿐만 아니라 가족애와 우정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었다. 

단 하나, 간미에게는 미안함이 있었는데, 감정적인 것은 아무리 강요를 해도 되지 않는 것으로, 자신이 노력해서 그녀에게 더 잘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고청운은 이런 골치 아픈 일은 뒤로하고 고삼원을 불러들여 맑은 물을 받아 붓을 다시 씻어내고 글쓰기에 다시 열중했다.

고청운은 자신이 쓰고 싶었던 화본을 위해 미리 모아놓은 자료를 잘 갖추어 두었기에 마음먹은 대로 손으로 글을 써 내려갔는데, 영감이 샘솟듯 흘러내려 와 글이 거침없이 써졌다.

한편, 고삼원은 이를 보고 반색을 하였다. 이제 아는 글자가 많아져 화본을 읽는데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던 그는 옆에서 고청운이 글을 쓰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그가 잠시 손을 멈췄을 때 기억해두었던 오탈자, 혹은 잘못 쓴 부분을 이야기해 주고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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