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망설이다 (2)
“그럼 자네가 아들이 급한 건가?”
고청운이 급히 물었다.
사장정은 한숨을 내쉬며 잠시 침묵했다.
“원래는 조금도 급하지 않았지. 아이가 사내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가 왜 중요하겠나? 자네도 보았겠지만 우리 집안의 여식들은 나만큼 예쁘지 않고 오히려 다소 늠름한 편이나, 나는 이 아이들을 매우 좋아한다네. 그렇지만 나는 이미 27살이고 곧 서른을 바라보는데 아직 아들이 없지. 남들은 내 나이에 곧 할아버지가 될 정도인데…….
더구나 우리 집에 있는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이미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해하고 있다네. 그런 사람들이 꽤 많아서, 지금은 나도 좀 급해지긴 한 것 같네.”
그는 비록 본가에서 나와 따로 살고 있지만, 춘절 등의 명절을 맞을 때면 다시 본가로 돌아가 집안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했는데, 그 사람들은 모두들 보통내기들이 아닌지라 매번 그가 공주와 떨어진 틈을 타서 그에게 괴상하게 굴었다.
그는 다른 방면에서 잡을 수 있는 트집이 없었다. 오직 후사를 보는 일 말고는 뭐라 흠잡을 것이 없었으니, 하나둘씩 그 일을 언급해대며 조금씩 그에게 중압감을 가중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을 상대할 필요 없네. 어차피 자네와 공주는 젊지 않은가. 기회는 또 있을 걸세.”
고청운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몰랐는데, 아이 낳는 일에 그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딱히 묘수 같은 것도 없었다.
“알았네.”
사장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나보다 기분이 더 나빴을 것이야. 신지, 자네는 평소에 어떻게 부인을 달래주는가?”
고청운은 공공연하게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을 묻는 것에 충격을 받았지만, 그래도 잠시 생각한 끝에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물건을 사주네. 그녀에게 선물을 하는 거지.”
“하지만 공주는 아무것도 부족한 게 없지 않은가?”
“그녀가 가진 것과 자네가 준 것이 같을 수 있겠는가?”
고청운은 사장정이 바로 알아듣지 못하자 갑갑해서 자신의 예를 들어 자랑스레 말했다.
“난 부인을 화나게 하거나 혹은 달래 줄 만한 일이 생겼을 때는 선물을 사 주는데, 내가 평소에 모아둔 비상금으로 사 주게 되면 그녀의 기분이 훨씬 더 좋아진다네.”
여기까지 이야기할 때 고청운은 갑자기 문득 매우 이상한 점을 느꼈다. 마치 자신이 매월 사용할 수 있는 돈을 탈탈 털어 무엇인가를 사 오면, 간미가 기뻐하는 것 같았던 것이다. 그녀는 왜 그랬던 것일까?
특히 그는 때로는 가끔씩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물건을 사고는 했는데, 간미는 이에 대해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오히려 칭찬만 하였다.
사장정은 열심히 들으며 눈살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고청운은 그가 이렇게 열심히 듣는 것을 보고는 더 힘주어 말했다.
“공주마마께서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으시나, 그녀가 자네보다 돈이 더 많은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네가 평소에 유심히 봐 놨다가 그 물건을 사서 준다면, 비록 그 물건이 귀중하지 않은 물건이라 할지라도 그녀는 분명 기뻐할 걸세! 그녀가 좋아하면 배 속의 아기도 기뻐할 것이야. 이것은 하나로 두 사람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일이라네!”
고청운은 이 대목에서 갑자기 뒤에 한 말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사장정은 고청운의 말을 듣고 양손을 서로 힘껏 마주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알겠네!”
그는 말을 마치기가 끝나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 고청운의 산술 서적의 초고를 조심스레 놓더니 한마디를 더 했다.
“방법이 생각났네, 신지! 도움을 주어 대단히 고맙네! 나는 이만 가보겠어!”
고청운은 깔끔하게 말을 끊고 가버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
‘어휴, 이제 겨우 이야기꽃이 피었는데, 왜 이렇게 빨리 떠나버리는 거지?’
고청운은 마음속 한가득 담아뒀던 말들을 사장정에게 더 해 줄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장정이 아니라면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 * *
고청운은 서재에 가져다 놓은 얼음이 다 녹아버린 것을 보고 후원으로 갔다. 아까는 사장정과 급히 조우하느라 딸 고경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화답을 해 주지 못했다.
고경은 5월에 태어났다. 지금 막 만 2세 하고도 또 한 달이 지나자, 꽤 말을 잘하게 되었는데, 성격이 너무 차분해서 장난감 하나를 주면 혼자 조용히 오래 놀기도 했고, 중간에 다투거나 너무 떠들지도 않아 어디고 잘 데리고 다닐 수 있는 보배 같은 아이였다.
소석나 소어 때와 비교해 보면, 귀엽고 깜찍한 모습이 유난히 사랑스럽기도 했다.
유일한 결점은 아가가 침상에 오줌을 싸는 게 여러 번 개선이 안 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소아야, 네 어머니의 말을 들으니 네가 어젯밤에 또 오줌을 쌌다고? 정말 그랬니?”
고청운은 아이를 안고 매끈매끈한 작은 볼에 입을 맞추었다.
고경은 손에 집 짓는 나무토막을 들고 있다가 아버지의 방해로 집을 마저 짓지 못하는 것이 몹시 불만스러웠지만, 아버지의 뽀뽀를 받은 이상 건성이나마 뽀뽀를 되돌려주며 말했다.
“아빠, 소아는 마저 놀고 싶어요, 내려주세요.”
고청운은 딸아이의 불만스러운 얼굴에 상처를 받았다. 옛날의 소석과 소어는 자신이 안아만 주면 손을 놓지 않으려 난리를 피며 좋아했었는데, 이 착하고 순한 딸은 그와 반대로 자신을 귀찮아하니 정말 상처가 되었던 것이다.
“소아야, 왜 어젯밤에 또 오줌을 쌌니? 아빠가 볼일이 보고 싶으면 소리를 쳐서 사람을 부르라고 하지 않았느냐.”
고청운은 소아를 내려주지 않고 다시 한번 아이에게 말해 주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그 일에 대해 쑥스러워하길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다시 한번 실망을 해야 했다. 고경이 고개를 저으며 아주 담담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제가 그랬어요.”
아이는 ‘꼭 오늘 뭐 먹었어요.’ 라는 무미건조한 말투로 싱겁게 말했다.
고청운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고경은 워낙 잘 자는 편이라 한 번 잠들면 스스로 깨어날 때까지 긴 밤 동안 깨지를 않았다. 설령 요의가 있다고 해도 침상을 적시는 한이 있더라도 눈을 뜨거나 소리를 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밤중에 춘분이 자다가 일어나 아이에게 소변을 보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는 이 방법을 맘에 들지 않아 했다. 사실 고경은 매우 원칙을 지키는 아이였기에, 자신을 잠에서 깨게 하는 사람과 상황에 대해서 모두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했다.
설령 이런 방법을 쓰더라도 고경에게는 종종 ‘돌발 상황’이 일어났다.
‘너무 어려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건가?’
고청운은 아이가 귀찮아하지는 않지만 자꾸 바닥 쪽을 내려다보는 것을 확인하고는, 아이를 내려주어 아이가 마저 장난감을 가지고 놀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이때, 소어가 옆방에서 건너왔다. 그는 오자마자 눈에 불을 켜고 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청운의 몸에 들러붙어 잠시 멍하게 있다가, 열심히 놀고 있는 여동생을 보고 말했다.
“아버지, 저도 배두렁이랑 내의만 입을래요.”
고청운은 아이의 등을 만져보고 손에 묻어나는 땀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서 있던 춘분이 얼른 옷을 가져왔다.
이때, 간미가 주방에서 사람들과 함께 우물에서 녹두고물(*绿豆沙: 여름에 더위를 식히기 위해서 먹는 녹두가 들어간 탕의 일종)를 들고 왔다. 이것은 모두가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 * *
고청운과 간미는 녹두탕을 다 먹고 나서 아이들끼리 놀게 하고 <백사전(白蛇传)>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의 의견이 나은 법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공통 화제도 만들 겸, 또 작품 구상에 대한 정력을 좀 아껴 볼 겸, 고청운은 다시 한번 간미와 화본에 대한 구상을 함께 하기로 하였다.
“부군, 여인의 시각으로 이렇게 글을 쓰셔도 문제가 되진 않을까요?”
책을 읽는 속도가 매우 빠른 간미가 고청운이 쓴 새 화본의 서두를 단번에 읽더니 물었다.
“이번 이야기는 백 낭자의 각도에서 풀어나가 보려고 하오.”
고청운은 이런 글을 남성 독자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이 이야기가 쓰고 싶었고, 또 백 낭자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고청운은 전생에 백 낭자와 허선에 관한 책은 본 적이 없었지만, 텔레비전으로는 몇 번 보았었다. 그것은 그들 세대에서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의 어린 시절의 공통된 추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전생의 십여 년과 현생의 근 삼십 년을 합하여 살아오는 동안, 많은 줄거리들을 모두 잊어버리게 되었다. 줄거리의 대강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인데, 사실 이 이야기는 민간 전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소재는 다 갖추어져 있어 이야기의 앞뒤를 더 정교하게 맞추고 이야기를 각색하여 더욱 가독성을 갖추어 글로 써 내리기만 하면 되었다.
고청운은 이 이야기에 스스로가 생각한 다른 구상을 함께 곁들였는데, 전생에 어린 목동이 어린 흰 뱀을 구해내는 것과 흰 뱀이 신선이 되려고 하기 전에 은혜를 갚으려고 할 때 등의 내용에, 남녀 두 주인공의 만남과 연애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 사고를 함께 더 버무리기로 하였다. 물론 최후에 불교의 힘으로 뱀 요괴를 제압하는 장면 등 승려인 법해(法海)를 나쁘게 해석하는 장면은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필경 지금 불교의 파급력은 매우 컸기 때문이었다. 고위 관료부터 일반 백성들까지 불교 신자들이 도처에 깔려 있는 불교계의 세력에, 굳이 그의 작은 몸 하나로 맞서며 불필요한 폐를 끼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고청운은 승려들에게 매우 호감을 갖고 있었다. 하 왕조는 승려에게 납세의 의무를 면제해 주지 않았을 뿐더러, 그들이 나라에 큰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어린 시절 도산사(桃山寺) 스님에게 한 번 목숨을 구원받기도 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백사전>에서도 불교가 나쁜 역할을 담당하지 않도록 설정했고, 설령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여자 주인공을 뇌봉탑(雷峰塔)에 가둬야 하기는 하나 조금 다른 각도로 이야기를 재구성해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 누구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집필할 생각이었다. 특히 이야기의 종국에는 법해가 여자 주인공을 놓아주게 되어 그들 일가족이 단란하게 다시 모일 수 있게 하였다.
이번에는 논쟁의 소지가 없으려나? 하지만, 그런 것은 그가 제어할 수 있는 부류가 아니었다.
“이렇게 쓰면 여성 독자들은 매우 좋아할 거예요.”
간미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지금도 가끔씩 받는 독자들의 편지를 생각해 보면, 부군에게 어서 이야기책을 쓰라고 재촉하는 여성들의 필체로 쓰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설령 남성 독자가 보낸 서신이 있다고 해도 대부분이 나이가 많지 않은 소년들이었다.
그리고 부군은 그동안 화본을 쓰는 것에 대한 흥미를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 막 상가를 구입해서 집안의 현금이 좀 빠듯해진 지금에야 정신적으로 백배 더 무장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간미는 이런 부군의 면모가 외부에 알려진다면 어쩔 생각인지 모르겠다며 은근히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군, 저는 허선의 행동이 너무 나약해서 정말 화가 나 죽을 지경입니다. 어떻게 모든 것을 백 낭자에게 의존할 수 있는 걸까요?”
고청운이 써 내린 대강의 이야기 구상을 본 간미는 조금 불만스러워했다.
“심지어 백 낭자의 정체를 보자 놀라 기절하지 않았습니까? 또 다른 사람은 왜 그리 쉽게 믿는 거죠? 안 됩니다, 이런 전개는 싫어요.”
그녀는 완전히 백 낭자의 역할에 몰입한 것 같았다.
고청운은 잠시 생각에 잠겨 손으로 턱에 난 수염을 매만지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럼 내가 다시 고쳐보지요. 만약에 내가 ‘일침황량’이라는 필명으로 발표를 하게 된다면, 남자 주인공의 묘사가 사람들에게 호응이 좋지 않을 경우에 남성 독자들이 또다시 울분을 터트리게 될 텐데…….”
그는 지금도 여전히 ‘일침황량’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할지 말지 고민 중이었다. 여성의 시각에서 집필한 화본에 대해 또다시 남성 독자들의 불만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만약 그가 새로운 필명으로 발표한다면! 설령 누군가 그의 문풍임을 알아본다고 하더라도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화본을 보는 사람도 일반적으로 그의 앞에까지 나서서 이 책이 당신이 쓴 것이냐고 묻지는 않을 것이었다.
만약에 누군가가 정말 그 일을 물었을 때는 침묵하면 그만이었다. 그가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비밀만 잘 지킨다면, 어느 누가 감히 단정을 할 수 있겠는가 싶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고청운은 이 <백사전>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잘 서지 않았다. 만일 냉대를 당하게 된다면, 그간 자신을 시기했던 사람들이 그 틈을 노려 자신에 대해 더욱 냉소적으로 비판을 가할 수도 있었다.
화본의 실패가 끼치는 것이 단지 이 정도의 여파뿐이라면 그는 참을 수 있었지만, 그들이 자신의 가족, 특히 소석나 서당을 다니고 있는 소어한테까지 불필요한 충돌을 일으킬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일침황량’이라는 이름으로 새 작품을 발표하면 세간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고, 그의 ‘돈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망설였다.
‘내가 돈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니!’
고청운은 자조했다. 새로 화본을 쓰면 돈을 비교적 쉽게 벌 수 있는 셈인데, 마침 자신은 이 방면의 경험과 명성을 이룩해 두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