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화. 망설이다 (1)
두 사람은 먼저 여러 풍문으로 잠시 한담을 나누다가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럼 자네는 이제 황립 서원에 교편을 잡으러 가지 않는 겐가?”
사장정은 고청운의 말에 자못 불만인 듯 다시 물었다.
“그럼 자네 뒤를 이을 사람은 누구지? 서원에서의 자네의 명성이 꽤 좋았지 않은가. 아이들의 학부모들은 자네가 잘 가르친다고 여겼을 텐데, 이렇게 되면 자네 후임이 꽤 애를 먹겠군. 아주 괜찮은 실력이 아니면 안 될 게야.”
그의 말투는 꼭 남의 불행을 고소하게 여기고 있는 듯 보였다.
고청운은 헛웃음을 지으며 얼음이 담긴 대야를 몸으로 더 가까이 붙이며 말했다.
“너무 많이 나간 것 같네. 황립 서원에서 명성은 무슨 명성인가. 그리고 잘 맞는 후임을 찾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산술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네. 참, 내 후임은 담자례라고 하더군.”
담자례는 지금도 한림원에 남아 있었는데, 종6품 사관편수직에 머물러 있었다.
고청운은 그가 가진 집안 배경을 놓고 봤을 때, 그의 입이 너무 독하지 않고 인복이 없지만 않았어도 자신보다 더 빨리 높은 곳으로 올라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장정은 이젠 더 말이 없었다. 담자례는 진사 출신이니, 아이들에게 산술을 가르치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일 것이었다.
두 사람은 이제 화본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방 형이 항주에서 현지의 백사(白沙)에 대한 전설을 수집해 주겠다고 했다네. 난 그가 수집한 소재를 근거로 화본을 쓸 예정이네. 그가 지금 나보다 더 조급하게 자료를 수집 중에 있으니, 안심하게.”
방자명은 지방관으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현지의 체계에 완전히 융합되지 못했는데, 다행히 지금은 시간이 있기에 이런 정보를 수집해 주면서까지 화본 쓰는 일을 재촉해대고 있었다.
“그럼 나도 안심이지.”
사장정은 그가 집필에 착수했다는 것을 알고는 더는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 이번 산술 서적도 저번과 같이 많이 인쇄해 볼까?”
“그렇게 많이 인쇄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 밑질 수는 없잖은가. 이번 책은 앞서 간행한 책처럼 기본적인 산술 내용을 다룬 서적이 아닐세. 이번은 내용이 더 심화된 문제를 다루고 있으나, 이전처럼 많은 사람들이 사지는 않을 게야.”
고청운은 고개를 저었다.
이어서 두 사람은 표지와 글씨체, 산술 학계의 유명한 인물을 초청해 작성할 서문, 용지 등 인쇄에 관한 더 많은 의견을 나누었다.
이번 산술 서적은 지난번에 간행한 산술 서적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니 가르침을 청하면, 사람들은 모두 그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라도 진지하게 자신의 의견이나 평가들을 보내 줄 것이었다. 그는 그중 가장 유명한 사람에게 자신의 책 서문 작성을 부탁할 예정이었다.
고청운과 사장정은 우선 2,000부를 인쇄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며칠 뒤 삼원이 편에 돈을 보내겠네.”
고청운은 자기 집에 남은 자산을 고민해 보았다. 인쇄를 할 땐 한 번에 은자 100여 냥이 들었는데, 인쇄비를 제하고 나면 이제 집안에는 7~80냥의 은자만 남게 되었다. 경성에서 생활을 하면서 대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정말이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고작 이 돈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겠지만, 그나마 다행히 끊임없이 들어오는 임대료가 있었기에 일부 비용을 메울 수는 있을 것이었다.
사장정은 당연히 이견이 없었다. 그는 산술 서적의 초고를 들고 일일이 살펴봤다.
마음이 매우 울적해진 고청운은 쥘부채를 펴 부채질하며 바람을 일으켰다. 이렇게 또 하루아침에 궁핍한 생활이 도래해 버렸다. 만약 그 400냥짜리 상점을 사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현재 생활은 여전히 매우 넉넉해서 뭐든 시시콜콜 따져보지 않아도 됐을 것이었다.
다만 가겟세를 놓고 나면 매달 은자 10냥은 들어올 것이니, 고청운은 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지금은 고삼원이 어떻게 세를 낼지 한 번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경성에 살게 된 지 10년이 된 고청운은 고향에 보유한 것은 제외하고, 지금 20묘의 밭, 정원이 딸린 집 2채, 가게 한 채와 지금 살고 있는 주택 한 채를 보유하고 있게 되었다.
간미가 사들인 상점 한 채를 더한다고 해도, 이만한 자산은 귀족들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산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고청운이 한미한 집안의 출신이었다는 것은 감안하면 이 또한 아주 큰 가업을 일군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전력을 다하고 심혈을 기울여 완성해 낸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 가산들을 모으기 위해 집안의 가족들은 줄곧 검소하게 생활을 했어야 했다. 반드시 들여야 하는 피복비에 들어가는 겉치장비 즉, 옷과 장신구값 외에 고청운과 간미의 주요 소비처는 여전히 서적 구입비 정도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들은 불필요한 곳에 돈을 쓰는 일이 매우 드물었고, 고청운이 이전에 매우 좋아하던 저잣거리에서 조그마한 물건들을 사던 취미 역시 지금은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아이 키우는 데 지출도 꽤 컸다. 하지만, 그중 일부 정도는 스승님이 내주고 있었고, 두 노인들이 아이들에게 옷이며 장난감 등을 사 주고는 하였다.
아이가 셋밖에 없어서 다행이었다. 고청운은 아이들의 결혼 비용을 생각하면 머리가 저려왔다.
맞다, 그래도 아이라고는 고작 셋뿐이었다. 이는 그와 간미가 합의한 것으로, 양보다는 질을 귀히 여겨야 하였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적장자를 중시해 줄기는 강하게, 곁가지는 약화시키는 방식을 취했다. 적장자가 가산의 큰 몫을 차지하게 하는 것은 한 가문의 힘을 더 강성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는데, 이러한 방식을 통해 다른 분가를 비호할 수 있었다. 만약 모든 자식들이 균등하게 가산을 나누어 갖는다면 세대를 거듭할수록 가산이 줄어들어 2, 3대를 줄곧 내려가면서 벼슬을 하는 사람 등의 인재가 나오지 않는다면 일반 서민으로 전락해 버리게 될 것이었다.
소석이 5~6할이 넘는 가산을 가지고 나머지를 다른 아이들이 나눠 갖는다고 생각하면, 고청운은 아무리 아들이라고 할지라도 아이들을 너무 많이 낳아도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이 되었다. 특히 간미도 이제는 29살이 되었기에, 그는 더더욱 아이를 더는 갖지 않기로 결심했다.
집안의 수입원으로는 바로 책(화본이든 산술 서적이서든), 임대료, 밭, 녹봉 등이 있었는데, 간혹 그에게 현판을 써 달라고 부탁하는 집도 있었다. 이 일로 한 번에 2~ 5냥씩 은자를 수고비로 받았으나, 이런 기회는 비교적 적은 편이라 한 달에 많아야 한두 번 정도였다. 이것도 그의 서예 실력과 그의 명성을 보고 부탁을 받은 것으로, 일침황량으로 이름이 나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3년 동안 장편 화본은 쓰지 않고 단편의 문장, 우화나 단편 화본, 혹은 민간에 화제가 되는 사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글로 써서 이 원고들을 경성에서 가장 규모가 큰 6개의 소보 제작사에 투고하고 있었다. 물론 그는 자신의 실명도, 일침황량(一枕黃粱)이라는 필명도 쓰지 않고, 몽선각(梦先觉)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이는 잠 시강을 보고 깨우친 바가 있어서 해 본 것이었다.
이렇듯 고청운은 그동안 기고를 통해 적지 않은 고료를 받았으나, 올해로 관두기로 하면서 소보에서 그의 존재감을 거두어들이기로 하였다.
얼마 전 어떤 의관에서 의술은 뛰어나지만 비용을 비싸게 받는 의원 하나가 있었다. 그가 자신의 의관 문 앞에서 쓰러진 환자를 치료해 주지 않았다는 사건이 폭로된 뒤, 잠 시강은 그를 쫓아다니면서 미친 듯이 비평을 퍼부어댔다. 문인으로서는 욕설에 시달리지 않는 명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결국 그 인기 있던 의원은 실제로 의관 경영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 같은 잠 시강의 신랄한 필체는 고청운이 모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청운은 그만의 방식을 따라 기고를 하기로 하였다. 처음에 그는 투고할 곳을 새로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소보마다 모두 고정적인 투고 작가가 있기야 했기에, 결국은 그가 글솜씨를 뽐내며 몇백만 자의 글을 투고하자 그의 원고를 기용하게 되었다.
이후 고청운은 소보에서 해 주는 대우와 명성을 따져서 경화소보에 고정적으로 글을 투고하게 되었고, 처음 100자에 50문을 받던 것을 두 달이라는 시간 만에 100자에 100문을 받는 투고가가 되었다.
즉 1,000자의 글을 기고하면 은자 1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인데, 얼핏 보면 많이 받는 것 같아 보이겠지만 소보의 지면이 제한되어 있어서 매번 1,000자라도 쓸 수 있다면 다행이었다. 단편 소설 같은 경우엔 좀 긴 편이어도 2, 3천 자에 달했기에, 이마저도 내용을 중간에 끊어서 연재해야 했다.
고청운은 월평균 은자 3냥 정도를 고료로 받고 이를 용돈으로 삼았는데, 이 돈을 가지고는 책을 사거나 조그만 선물을 사기만 해도 금방 돈이 바닥났다.
“뒤에 나오는 내용은 이해를 못하겠군.”
이때 사장정이 어쩔 수 없는 목소리로 말을 하며 고청운의 회상을 끊어냈다. 그는 고뇌하는 얼굴로 초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의 이전 책은 이해가 갔는데, 이번 책은 4분의 1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하겠네. 내가 배움이 너무 얕은 탓일까?”
고청운은 짐짓 놀란 채 답하였다.
“드디어 배운 게 없다는 걸 깨달은 겐가? 그러면 이제 다시 공부를 시작할 준비가 된 것인가?”
“쓸데없는 소리!”
사장정이 그를 노려보며 불만에 차서 말했다.
“난 그저 아무 말이나 한 것뿐이네. 만약 자네가 나한테 골동품이나 금은보화에 대한 지식을 물어봤다면, 내가 자네보다는 훨씬 더 잘 알고 있었을 걸세.”
이 점은 고청운도 인정하는 바였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기술에는 전공자가 따로 있는 법이지. 그런 면에서 내가 자네보다 못한 게 사실이네.”
사장정은 잠시 언쟁을 벌이다 말고 말했다.
“우리 집사람이 요즘 성미가 급하고 매우 거칠어졌다네. 신지, 자네는 안사람과 친하게 잘만 지내는 것 같은데 무슨 전수해 줄 수 있는 방법이라도 없는가? 계속 이렇게 나를 괴롭혀 대면 내 머리카락은 다 빠져버리고 말걸세.”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뒤로 늘어진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가슴 아픈 표정을 지었다.
“공주마마께서 왜 화를 내시는가?”
고청운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곧 출산이 임박하셔서 그러신가?”
고청운이 말을 마치자 사장정은 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우리 집에는 지금 딸만 둘이 있지. 지금 부인이 셋째를 회임하고 이미 8개월이 됐으니 곧 만삭일세. 우리 집 부인이 태의를 불러 아이가 사내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맥을 잡아보라고 명했는데, 태의가 우물우물 대답을 제대로 안 하지 뭔가. 그래, 그는 단지 확답을 주려 하지 않았던 게야. 아니, 근데 이게 뭐 대수로운 문제라고 이러는 걸까?
우리 집 부인과 둘째 공주마마께서는 줄곧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어느 날 그녀를 만나서 좋지 않은 소리를 듣고 오더니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더군. 심지어 황후마마께서는 날 불러 하문까지 하셨다네. 아주 의미심장하게 몇 마디 하셨지. 물론 말씀하시는 태도나 이런 것은 나쁘지 않았지만, 우리 집 부인은 불만이 가득하다네……. 그래서…….”
사장정은 뒤에 따라올 말을 ‘자네도 알지?’ 하는 표정으로 대신했다.
고청운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가 이해한 안락공주라는 사람은 무슨 남존여비사상 같은 것을 중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두 딸을 애지중지하며 자주 데리고 입궁하기도 했었다. 원래 공주의 딸은 보통 봉호를 내리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안락공주가 워낙 황제의 총애를 받는지라 그녀의 두 딸마저도 이미 군주라는 봉호를 받은 상태였다.
태의가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 이번에도 역시 딸이어서 그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