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화. 진행
호부에서 생활은 평온무사했다. 고청운은 아직 업무를 익히는 단계에 있는 데다가 원체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었기에, 아직까지는 그 누구와도 갈등이 불거진 적이 없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두 지능지수가 정상범위로, 아주 소수의 상식이 저급한 사람들이나 남의 트집을 잡았는데, 고청운이 속한 기관에서는 아직 이런 사람이 있다는 걸 발견하지는 못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행동거지가 제법 훌륭했으며 처세하는 것에 있어 타인을 배려해 주고는 하였다.
고청운이 근무하고 있는 운남사는 절대로 일이 쉬운 부서가 아니었다. 현재의 운남 대부분 지역은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아, 교통 조건이 매우 좋지 않았다. ‘부유해지고 싶으면 우선 길부터 닦아야 한다.’ 라는 옛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운남은 천연자원이 풍부하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도 개발이 잘 안 되어 있는 지역이었고, 특히 그곳에는 토사(*土司: 원, 명, 청시대의 소수 민족의 세습 족장제도)가 남아 있어서 현지 토사와 접촉해야 하는 일 또한 매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때문에 운남사의 과세 수입은 전국에서도 뒤에서 1~2위를 다툴 정도로 성적이 매우 낮았다. 매년의 정해진 조세를 제때에 납부하면 이미 임무를 완성한 셈으로 칠 정도였다.
고청운은 이런 부서에 배치된 것에 대해 마음속으로 원망의 여지가 없었다. 신입인 그는 자신의 경력이 그 누구보다 가장 적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자신에게 가장 ‘힘든’ 일이 돌아오지 않으면, 또 누가 이런 업무를 맡겠는가?
요즘 고청운은 아직 정식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훗날을 생각해 업무를 마친 후 이전에 작성된 기록물들을 펼쳐 놓고 운남에서 기록된 각종 지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기밀문서만 아니면 무엇이든 찾아보고 메모해 두었고, 이를 본 완 낭중은 반대는커녕 찬성도 하지 않았다.
고청운이 평소에 가장 많이 상대하는 사람들은 바로 완 낭중, 첨 원외랑, 매 주사였다. 그들 운남사에서 사용하는 건물은 작은 사합원으로, 이곳에는 아직 9품에 들지 못하는 낮은 관직의 사원, 잡역부 등이 더 있었지만, 사실 그의 직속상관은 겨우 두 사람뿐이라 그에게 관여할 만한 사람도 얼마 없는 편이었다.
후부의 일은 잠시 보류하고, 이제 고청운은 겸직하고 있던 황립 서원의 교사 일을 그만 두게 되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첫째는 호부의 규정상 관원이 외부에서 겸직하는 것을 불허하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앞으로 더욱 바빠질 것이라 더 이상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이 교사직을 관두고 나서 부수입이 적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앞으로 소석을 만나려면 서원이 방학해서 아이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예전처럼 하루걸러 한 번 볼 수도, 매번 아이에게 먹을 것을 좀 가져다 줄 수도 없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원에 아직 육훤이 있다는 것이었다. 육훤은 지금 14세의 젊은이가 되어 있었는데, 키가 크고 매우 말랐으며 온몸에는 근육이 아주 잘 잡혀 있어, 어릴 적 응석받이로 자란 소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 육택은 경성의 위지휘사사(*卫指挥使司: 현대의 군구(軍區) 중 하나)의 지휘사(指挥使)가 되어 있었다. 이는 정3품 고관직으로, 서른을 넘긴 육택이 지금 이처럼 권세가 막강한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황제의 심복임을 천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때문에 고청운은 감히 상대와 친밀하게 교류를 하지도 못했고, 큰일이 없으면 좀처럼 후부를 방문하는 일이 없었다.
육택 쪽도 같은 생각인 듯 그들 사이는 점점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그 전부터도 격차가 컸었는데, 여기서 자신이 더 육택에게 다가간다면 그에게 아첨하는 격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육택은 강직한 성향을 운운하며 남이 아첨하는 것을 아예 회피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현재 상황에서 육택은 고청운을 도울 수 있었지만 고청운이 그에게 보답하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고청운은 일방적으로 받는 쪽이었는데, 여기서 또다시 가까워진다면 앞으로 이 관계는 분명히 변질될 것이었다. 그것만은 고청운이 보고 싶지 않은 귀결이었다.
비록 자신이 몇 년 전에 상대방의 생명을 구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 그가 손을 쓰지 않았다고 해도 아마 육택은 스스로 혹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충분히 받을 수 있었을 것이었다. 또한, 고청운은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육택이 자신을 돌봐 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반면, 고청운은 워낙 마음이 잘 통하여 정도 들고 해서 육훤과는 연락을 계속 유지했다. 육훤과 소석의 애정마저 지극해진 요즘, 고청운은 이 둘을 보면 더 흐뭇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가 실질적인 이익을 쫓아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저 경성에 와서 살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일 뿐이었다.
고청운은 예전과의 생활을 비교해 보니 정말 많은 것이 변한 걸 알 수 있었고, 이제는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잘 구분할 수가 없게 되었다.
* * *
6월 15일, 이날은 날씨가 몹시 더운 날이었다. 특히 경성 지역은 큰 찜통 같았고,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에 땀이 났다. 심지어 지금 그의 관복은 하복이라는 것이 없어 긴팔이었는데, 관복은 모두 두 겹으로 이뤄져 있었다. 관리라는 사람들은 외모와 복장을 중시해야 하기 때문에, 실내에서도 겉옷을 벗지 못하고 최대한 활동량을 줄이고 차갑게 식을 찻물을 한잔 또 한잔 들이키는 수밖에 없었다.
설령 뒤쪽에 사용할 수 있는 얼음이 비치되어 있다고는 하나 그들의 상관인 완 낭중이 뚱뚱한 탓에 더위에 약했기에, 다들 다 같은 마음으로 배정받은 얼음의 대부분을 그가 사용하게 하였다.
그가 속한 호부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덥더라도 얼음은 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청운은 그런대로 참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한편, 그의 집은 올해는 날씨가 유독 더운 데다 폭염이 지속된 날이 길어 겨울에 장원에 저장해 둔 얼음을 이미 거의 다 써버려서, 지금은 시장에서 얼음을 사다가 쓰고 있었다. 얼음 덕에 열을 식힐 수는 있었으나, 그 가격은 무시할 정도가 되지 못했다.
집에서는 고청운이나 젊으니 건강하게 더위를 버틸 수 있는 것이지, 나이가 많으면 많은 대로, 또 나이가 적으면 적은 대로 다른 사람들은 조심하지 않으면 더위를 먹었기 때문에, 집에서의 얼음 사용량은 매우 많았다. 간미는 매일 장부를 쳐다보면서 한동안 마음이 아팠다.
오늘은 모처럼 조정에서 얼음이 내려왔다.
호부로 출근하게 된 이래 고삼원과 소만이 교대로 고청운을 따라 출근하면서 그가 무슨 일이 있을 때 대신 심부름을 해 주고는 했는데, 오늘은 마침 고삼원이 따라올 차례였다. 고삼원은 얼음이 풀린다는 소식을 듣고는 얼른 고청운을 대신해 얼음을 수령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런 조취에도 불구하고 날이 너무 더워서 모두들 일하는 효율이 떨어졌다. 연중에는 처리해야 할 일도 너무 많아, 매 주사 혼자서는 일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첨 원외랑은 주동적으로 고청운에게 임무를 할당하여 매 주사의 일을 분담하게 하였다.
그가 분담하게 된 주요 직무는 모두 극히 간단한 산수 문제였다. 다만 좀 복잡한 산수 문제들이었는데, 꼼꼼하게 수치를 계산해야 했다. 만일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이전의 공든 탑을 무너트리는 격이 되었기에 매우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고청운은 주판을 쓰지 않고도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방식으로 수치를 계산해 내고는 했는데, 비교적 간단한 것들은 바로 암산으로 처리해냈다.
수학을 자주 접해서 그런지 아니면 훈련을 제대로 된 것인지, 고청운은 자신의 암산 수준이 전생에 비해 너무 높아졌다고 생각했다. 네댓 자리 숫자의 계산의 경우,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답을 도출해 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것은 전생의 그에게는 없었던 능력이었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거침없이 그 능력을 발휘했고, 한 시진도 안 되어서 업무를 다 마치고 한 번 검토했지만 잘못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일을 마친 고청운은 결과물을 먼저 매 주사에게 가져다주지 않고, 화본을 쓰기 시작했다.
그랬다. 그는 또 화본을 쓰고 있었다. 최근 집에서 얼음 사용량이 대폭 늘어난 데다 아이도 많아져 해마다 생활비가 적잖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최근에는 지리적으로 좋은 점포를 알게 되어, 은자 400냥을 넘게 들여 매매를 완료하고 세를 놓으려던 참이었다. 그러다 보니 집안에 남아 있는 돈이 더 빠듯해졌다.
특히 딸이 태어나면서 고청운은 다른 집에서 딸을 시집보낼 때 혼수를 많이 챙기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자기 딸의 혼수를 대비하고자 모아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다.
이렇게 되니 집에 돈이 모자라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답답했다.
‘어떻게 된 것이 돈은 많이 벌수록 오히려 부족해지는 걸까?’
그리하여 할 수 없이 그는 예전에 하던 화본을 쓰는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 * *
퇴근 시간까지 기다린 고청운은 화본의 원고를 간미가 직접 만들어준 천 가방에 정리해 넣고, 자신이 마친 업무 결과물을 매 주사에게 넘겼다.
“고 대인, 아니 이렇게 많은 일을 벌써 계산을 다 마치신 것이오?”
시종일관 웃지 않았던 매 주사는 살짝 놀란 기색을 보이더니, 느리지 않은 손동작으로 고청운이 가져다준 결과물을 샅샅이 훑었다.
고청운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복잡한 일은 매 대인이 다 하지 않았소.”
매 주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판의 구슬을 옮겨가며 몇 개의 수치 값을 계산해 보았고, 고청운이 가져온 답이 모두 정확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단하오, 정말 계산이 빠르군. 과연 명불허전이오. 나였다면 제대로 계산해 내기 위해서 하루는 걸렸을 것을…….”
고청운은 일순 멍해졌다.
“내가 첨 대인에게 전하겠으니 이만 퇴근을 하시오. 이만 귀가하고 내일 다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겠소.”
자리에서 일어서 말하는 매 주사의 온 얼굴이 땀에 젖어 있었다. 그는 예전처럼 자발적으로 야근을 하지는 않았다.
고청운은 당연히 동의했다.
함께 호부의 대문을 나서는 길에, 고청운은 처음으로 매 주사의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이전보다 더 좋아졌단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이제 운남사의 몇 가지 풍문을 떠드는 사이 정도는 되었다.
* * *
고청운이 집으로 돌아오자, 사장정이 이미 그의 집에서 그의 퇴근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친한 사이이니 남처럼 대할 필요 없었기에, 고청운은 후원으로 건너가 면으로 만든 반바지와 조끼로 옷을 갈아입은 후 그를 만났다.
역시 사장정은 그의 차림을 보고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장정이, 어떻게 왔는가?”
고청운이 놀랐던 것은 요즘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사람들이 잘 움직이지 않는 탓에 연회마저 불참하는 경우가 많았고, 집안 형편이 여유가 있는 부호들의 경우 모두 시골에 내려가서 피서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고청운과 방인소는 출근을 해야 했기에, 집을 지켜줄 사내가 부족한 것만 아니었다면 간미도 분명 시골에 있는 장원에 내려가 있었을 것이었다.
“나는 방금 피서 중이던 산장 쪽에서 돌아오는 길이지. 자네가 산술 서적을 출판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이렇게 즉시 돌아오지 않았겠는가? 이것 보게, 내가 자네한테 참 잘해 주지?”
사장정은 득의만면했다.
“역시 자네밖에 없네.”
고청운이 급히 몇 마디로 그를 치켜세워주자 사장정이 하하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