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271)화 (271/504)

271화. 전출

이번에 정식 이름으로 고경(顾景)을 받고, 아명을 소아(*小丫: 계집아이라는 뜻)라고 쓰는 딸아이가 쿨쿨 깊게 잠이 들어있는 것 외에는 일가족 모두가 다 모였다. 오늘은 휴일이라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모두 한자리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고청운은 점심으로 먹게 된 닭국수가 입맛에 아주 잘 들어맞았는지 참지 못하고 평소보다 몇 입 더 먹게 되었다. 그 탓에 식후 소화 시간도 평소보다 좀 더 길어졌다. 

식사를 마친 뒤, 가족들은 정자에서 한담을 나눴다.

“스승님, 목 상태는 지금 어떠십니까? 의원이 어떻다고 말하던가요?”

고청운이 관심 있게 물었다. 지난해부터 그는 방인소의 목과 어깨가 불편한 듯한 모습을 주목하고 있었는데, 방인소가 늘 목을 돌리거나 어깨를 다독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방인소에게 안마를 해 준 고청운은 그의 목이 너무 뻣뻣하다고 느꼈다. 그러다가 방인소가 늘 책상에 엎드려 일해 온 것이 생각나, 고청운은 즉시 의원 몇 명에게 왕진을 청해 진찰을 받게 하였다.

방인소는 처음에는 진찰을 받으려 하지 않았는데, 자신에게 별 탈이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자가 중요한 문제를 예사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끈질기게 설득을 해대자, 결국 진찰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경추 쪽에 문제가 있다고 의심을 하고 있던 참이기는 하였지만, 계속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 의원을 찾지 못했었다. 또한, 이것이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도 있었다.

진찰을 한 의원은 한 차례의 전문 의학용어를 쏟아냈다. 고청운이 이해한 바로는 현대의 목 디스크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런 병은 완치가 어려워 평소 자세 등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경추부를 단련하는 것으로 회복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에, 방인소는 침구요법, 찜질, 부항, 안마 등의 수단을 번갈아 쓰며 치료를 받게 되었다. 얼마 후, 마침내 병세가 호전된 방인소는 목이 더 아프지 않게 되자, 몸이 훨씬 더 가뿐해진 것을 느꼈다.

그와 비교를 하자면, 고대하와 소진씨는 건강 관리를 잘한 편이었다. 의원이 건강상의 어떤 큰 결함을 찾아낼 수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점이 고청운을 매우 기쁘게 하였는지, 그는 돈을 썼다고 해도 자신의 기쁨을 숨길 수 없었다.

이때 고청운의 질문에 다른 사람들도 돌아서서 방인소를 쳐다보았다.

방인소는 사람들의 관심에 매우 기분이 좋아져 허허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보다 조금 나아진 것 같구나.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은 것이, 그 의원의 의술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 않더냐. 그러니 다들 안심하거라. 청운이가 미리 값을 치러둔 것만 아니면, 노부도 더 이상 가지 않았을 것이야.”

사람들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방인소는 휴일마다 의관(*医馆: 개인병원)에 가서 안마와 침구 요법을 한 번씩 받고 오고는 했는데, 고청운이 이미 반 년 치 비용을 미리 지불해 놓았던 이유가 컸다. 그는 이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시간에 맞춰 자주 갈 수밖에 없었다.

* * *

5월 21일 오후, 고청운은 또다시 황립 서원에서 수업을 하였다. 지금 소석 병원반으로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고청운은 안타깝게도 올해는 병원이 아니라 정원(丁院) 반으로 내려가 6살에서 8살 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지난 학기에 비해, 지금 그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거의 다 막 6살이 된 학생들이었다.

정원 반의 아이들은 말썽꾸러기가 유독 많아 병원반의 아이들보다 더 다루기 힘들었는데, 비록 말썽꾸러기들이라고는 해도 특색이 있는 말썽꾸러기들이자 적당하게 사고 칠 줄 아는 사고뭉치들이라 할 수 있었다. 이들은 집 안에서 형제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황립 서원에 올 수 있는 기회가 소중하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었다. 

고청운은 단지 강사 정도에 해당하는 직무를 맡고 있을 뿐이라, 전문적으로 아이들의 각종 문제와 잡일에 시달리는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별도로 아이들과 접촉할 일이 매우 적었다. 그 선생님들은 너무나 시달린 나머지 30살이 조금 넘은 사람들이라도 일한 지 몇 년 만에 벌써 흰머리가 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설 속의 태자는 몇 년간 서원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아마도 하나밖에 없는 황제의 적자인 만큼 잘 보호를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만 올해 초 고청운은 황립 서원이 아닌 황궁에서 태자를 한 번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 고청운은 당직을 설 차례였는데, 마침 황제가 물어보려고 하던 것이 산술에 관한 질문이었기에 운 좋게 태자를 한 번 덩달아 알현할 기회가 있었다. 

태자는 10대 초반의 어린 소년으로, 황제와 5~6할 정도 닮은 얼굴에 엄숙하고 위엄이 있는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 두 부자는 매우 사이가 좋았는데, 고청운도 누군가의 아버지였기에 그들 부자 사이에 끈끈한 감정의 교류를 느낄 수 있었다. 

태자를 만난 고청운은 항간에 떠도는, 태자가 황립 서원에서 공부중이라는 소문이 사실무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고청운을 기쁘게 한 것은 또 하나 있었는데, 태자 지위가 확고해 보였다는 것이었다. 이는 나라의 정세가 요동치지 않고, 이 나라의 백성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의미했다. 

어쨌든 그는 관직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였고, 현재 품계는 낮으나 인기가 많은 부서에 있었기 때문에 서자의 적자 상속 등의 문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미래에 황권의 교체가 순조롭게 이루질 수 있다면, 이는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이날 수업에서, 고청운은 학생들에게 지난 시간에 내준 숙제에 대한 현황을 물었다. 

학생들은 흥분한 나머지 두 손을 번쩍 들며 자리에서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고청운은 빙긋 웃으며 이름을 호명했다.

“담자무(谭子茂), 네가 대답해 보거라.”

이 아이는 담자례의 작은 사촌 동생으로 매우 활발한 성격의 아이였다. 고청운은 담자무를 호명하여 질문에 대답하게 하면서 문득 한림원에 있는 담자례를 떠올렸다. 

이번에 숙제로 내준 문제는, ‘어떻게 100문의 비용으로 음식을 구입해, 20명의 사람들을 이틀 동안 살게 할 것인가’였다. 그들이 산술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는 내지 않았다.

대답할 기회를 얻은 담자무는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주위를 한 번 둘러 본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맑은 목소리와 정확한 입모양을 구사하며 질문에 답했다.

“선생님, 어제 저는 장에 가서 100문을 지불하여 음식을 구매해 보았습니다. 60문으로 20개의 고기 찐빵을, 남은 40문으로는 소 없는 찐빵을 구입하였는데, 상점 주인과 가격을 합의한 끝에 찐빵 2개에 3문으로 값을 흥정하여 총 26개의 찐빵을 사고도 마지막엔 1문이나 남겼습니다. 찐빵과 고기 찐빵의 맛이 좋았으니, 20명의 사람들이 모두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고 나서 그 아이는 품에서 어제 남긴 1문을 꺼내 좌우로 보여주며 득의양양해했다.

“고기 찐빵 20개와 소 없는 찐빵 26개로 20명의 사람들이 이틀씩이나 지낼 수 있을까?”

고청운이 다시 물었다. 이것은 간단한 수학 문제이기는 하나 학생들의 수학적 능력과 감각을 살펴보기 위한 문제로, 아이들이 수학적 사고를 실천해 보게 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충분합니다!”

아래쪽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음을 길게 끄며 대답했다. 

고청운은 또 다른 아이를 불러 대답하게 하였는데, 그 아이는 무슨 도화촌인지 하는 곳의 간식을 샀다고 하였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그 아이의 답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100문으로는 겨우 과자 5개만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나누어 먹게 되면 분명 배가 부르지 않을 것이었다. 

그 아이는 아이들의 의견을 듣자마자 작은 입을 삐쭉 내밀고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저는 평소에 과자 한 조각만 먹어도 배가 부르단 말이에요!”

고청운은 현실성이 결여된 답변에 웃고 말았다. 

이후로도 그는 아이들의 토론을 귀담아듣거나 찬성을 해 주거나 혹은 부정을 하기도 하며 정신없이 수업을 진행했고, 분위기는 매우 뜨거워졌다.

* * *

고청운은 한림원에 인수인계를 마치는 대로 본격적으로 호부로 전출되었다.

호부에서 주관하는 업무 범위는 전국의 토지, 과세, 호적, 군수, 녹봉, 군량 및 급료, 재정 수지와 관련된 업무였다.

호부의 최고 책임자는 호부상서(戶部尙書)로, 정2품직의 성이 봉(封)씨인 그는 체구가 왜소한 편이었고, 이제 막 60세가 지난 사람이었다. 

방인소의 말에 따르면, 고청운은 바로 이 호부상서가 직접 지명하여 호부로 들어오게 된 듯했다. 물론 중간에서 방인소도 틀림없이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고, 방자명의 장인인 하상과 마찬가지로 이런 저런 관계들을 거쳤을 것이었다.

고청운은 매번 이런 일들을 생각할 때마다 스승님의 자신에 대한 애정에 매우 감사하게 되었다. 그가 자신을 위해 베푸는 것에 비해, 자신은 그에게 보답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적은가!

호부에는 상서 외에도 부관으로 정3품의 좌우 시랑(侍郎)을 각각 1명씩 두고 있었다. 그 아래로는 절강(浙江), 호광(湖广), 강서(江西), 섬시(陕西), 광동(广东), 산동(山东), 복건(福建), 하남(河南), 산서(山西), 사천(四川), 월성(越省), 귀주(贵州), 운남(云南) 이렇게 지역별 13사(十三司)가 속해 있었는데, 각 사(司)마다 정5품의 낭중(郎中) 1인, 종5품의 원외랑(员外郎) 1인, 정6품의 주사(主事) 2인이 각각 배치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호부는 또 조마소(*照磨所: 감사기관), 광적고(廣積庫), 내수송고(內守出庫), 외수송고(外守出庫), 군수창(軍储倉) 등의 직접 관리하는 시설을 두고 있었는데, 이는 민(民), 도(道), 금(金), 창(倉) 단위의 4개 과로 분류되어 있었다.

고청운은 운남사에 배정이 되었다. 정5품 호부낭중을 맡고 있는 상사의 성은 완(阮)씨였으며, 50대의 나이에 몸에서는 매우 부티가 났다. 그는 배가 동글동글하게 나와 있었지만 얼굴은 상냥한 편이었고, 대화를 하는데 너무 급하거나 말이 느리지도 않아 뭔가 하늘이 무너져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운남사의 원외랑을 맡고 있는 사람은 성이 첨(詹)씨인 사람이었는데, 고청운보다 대여섯 살 많았으며, 진사 시험 한 기수 위의 선배였다. 그는 장수원과 같은 해에 진사에 합격한 동기이자 절성(浙省) 현지의 유명한 학자 집안 출신이었기에, 지역의 부호나 귀족들과 혼인 관계로 매우 돈독하게 엮여 있었다. 

고청운 외에 또 다른 주사 한 명은 성이 매(梅)씨로, 40대 초반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기력이 왕성해 보였으며 경솔하게 지껄이거나 함부로 웃지 않아 엄숙한 기색을 띠는 사람이었다. 

고청운은 현재 정6품의 주사로, 녹봉에는 변화가 없었다. 한림원에서 종6품으로 있었을 때 그는 녹봉으로 매년 은자 49냥을 받았고 연말에 가봉 은자 120냥을 받았는데, 정6품이 된 지금도 역시 같았다. 다만 방인소가 넌지시 알려준 것에 의하면 호부에서는 가봉 외 수입을 추가적으로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예를 들면 호부의 1년 예산이 매년 남아도는 편이라, 이것을 여러 관리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일종의 부서별로 행해지는 은밀한 복지인 셈이었는데, 물론 보편적으로 행하고 있는 것으로 위법하게 저지르는 범죄는 아니었다.

모두들 막 들어온 고청운을 표면적으로는 비교적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고청운이 현재 아직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가 소속된 사의 완 낭중은 그에게 일상적인 공문서 처리 및 상위부서로의 문서 전달 혹은 하달 업무를 주로 맡겼다.

한림관을 지낸 그에게 있어 이 업무는 매우 간단한 편이었고, 호부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데도 유리한 점이 있었다. 또한, 다른 사와 함께 교류해야 하는 업무였기에 다른 관원들과 더 빨리 인사를 트는 데도 좋은 점으로 작용하였다. 

방금 이곳의 호광(湖广)사에서 전출되어 나간 방인소는 아직 이곳에 어느 정도의 관계가 남아 있었다. 특히 방인소가 주변 주요 인물들에 대한 분석이나 그의 배경이 되어 줄 관계망 등으로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고청운은 호부로 옮겨 와서도 여전히 잘 지내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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