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화. 출경(出京) (2)
며칠 전 부군이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에 자신과 함께 귀가하기 위해 자신이 있던 모임 장소로 데리러 와준 적이 있었는데, 그날 심지어 어떤 여성은 과감하게도 마차의 창문 발을 걷어 올려가면서까지 자신의 부군을 바라보았다. 간미는 그런 눈빛들을 보게 되자, 짙은 위기감을 느꼈다.
‘난 반드시 몸 관리를 잘해야만 해. 어렵사리 만나게 된 내 부군을 절대 남에게 양보할 수는 없어!’
간미는 이런 생각까지 들자 고청운에게 다급히 당부했다.
“부군, 내일은 저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같이 운동할래요. 저 깨워주시는 것 잊지 마세요.”
고청운은 어리둥절했다. 평소에도 자주 간미를 일찍 깨워 함께 운동을 하러 가기를 청했었으나 그녀는 늘 사양했고, 보통 저녁때만 자신과 함께 산책을 할 뿐이었다.
그러나 고청운은 아무 불만도 없이 외려 기쁘게 대답했다.
“좋소. 내가 말했었지요, 운동은 많이 할수록 좋은 것이라오. 병이 쉬이 나지 않는 것은 물론, 건강에도 아주 좋으니 말이오.”
그의 얼굴을 보던 간미는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있다가, 부군이 다른 여인들 앞에서는 소박하니 말주변이 없어 어눌한 기질을 보인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서로 기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은 곧 집에 도착했는데, 곧바로 딸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청운과 간미는 서로 쳐다보며 순간 멍해졌다.
“우리 딸이 어째서 또 울고 있을까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 씨의 극도로 흥분한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소어야, 너 또 네 여동생을 울렸지!”
연 씨의 우렁찬 목소리를 들은 고청운과 간미는 크게 놀랐다.
‘외할머님을 이렇게 소리 높여 말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소어 말고는 누가 또 있을까?’
고청운이 미간을 찌푸린 채 손발을 바삐 놀려 복도를 지나 왼쪽 곁채의 작은 방으로 서둘러 들어섰다. 이 방은 어린 딸이 잠을 자는 방으로, 그들 침실의 바로 옆방이었다.
* * *
문어귀에 막 도착하자마자, 작은 그림자가 마치 원숭이처럼 달아나는 것이 보였다.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 고청운은 눈에 불을 켜고 재빨리 손을 놀려 그 아이의 옷깃을 붙잡고 소리쳤다.
“거기 서라!”
“아버지, 저예요!”
소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래, 내가 바로 네 녀석을 붙잡은 것이다!’
대답하지 않은 고청운은 아이의 거북이 같은 동작은 무시한 채 어금니를 드러내고 발톱을 휘두르는 듯 아이의 뒷덜미 쪽 옷깃을 끌어 올렸다. 그렇게 고청운은 몇 번 자세를 고치더니 아들을 겨드랑이 쪽에 끼고, 곧장 방 안으로 들어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외할머님, 딸아이가 깼습니까?”
그는 시선을 돌려 방 안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작은 방의 열린 창문 앞 탁자에는 녹음이 가득한 야생 난 화분이 놓여 있었고, 창문 왼쪽에는 꽃무늬가 조각된 큰 호두나무 침상이 놓여 있었는데, 지금 바로 그 침상 위에서 딸아이가 응애응애 큰 목소리로 울고 있었다.
그녀는 작은 이불 한 장을 덮은 채 아직 눈도 못 뜬 모습으로 울고 있었는데, 작은 얼굴은 우느라 잔뜩 구겨져 있었다.
그녀의 울음소리는 아주 크고 우렁차서, 고청운이 말하는 소리가 울음소리에 파묻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방 안에는 연 씨만 있었는데, 마침 춘분이 양푼 한가득 따뜻한 물을 담아 고청운의 뒤쪽에서 방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귀염둥이, 울지 마렴. 우리 아가, 울지 말자…….”
연 씨는 아이의 작은 몸을 쓸어주며 낮은 소리로 달래 주었다.
익숙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서인지 어린 딸의 울음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이때쯤 방에 도착한 간미가 합세해 천천히 달래며 부드러운 천으로 아이의 얼굴을 닦아주자, 아이는 또다시 쿨쿨 잠을 자기 시작했다.
아이는 이 난리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눈 한번 뜨지 않았다.
고청운이 자세히 살펴보니, 딸아이의 볼에 커다란 두 개의 붉은 자국이 나 있었다. 아이의 얼굴은 워낙 희어서 붉은색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는데, 사람을 깜짝 놀라게 만들 만큼 선명한 색 대비였다.
중간중간 소어는 고청운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었지만, 고청운은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뒤이어 딸아이의 방에 함께 모여 있던 사람들은 방에서 나와 정방의 응접실로 자리를 옮겼다.
* * *
고청운은 연 씨의 눈빛에 불만이 차 있는 것을 보고는 중간에 급히 소어를 끌어안으며 물었다.
“외할머님, 또 소어 녀석이 딸아이를 깨운 것입니까?”
연 씨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소어를 한 번 쳐다보고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소어가 늘 아이를 쫓아다니며 찔러댄단다. 아까도 아이가 낮잠을 잘 때, 이 노인이 잠시 한눈을 판 새에 방을 몰래 들어갔지 뭐니. 무슨 일을 한 것인지 보지는 못했지만 또 이 작은 아이를 울려놓고 있었지.”
소어가 고청운의 품속에 머리를 파묻는 것을 본 연 씨가 다급히 고청운에게 말했다.
“청운아, 소어가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닐 게다. 똑똑한 아이이니, 네가 도리를 잘 알려 주는 것만으로도 분명 잘 알아들을 게야.”
고청운은 “예.” 하고 답했다. 간미도 자신을 은근히 쳐다보고 있는 것으로 보아, 모두들 그가 소어에게 벌을 줄까 봐 걱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생각을 해보던 고청운은 긴 다리를 움직이면서 간미에게 한마디 던졌다.
“미아, 나는 오늘 점심으로 닭국수를 먹고 싶으니, 당신이 주방에 직접 일러 주지 않겠소?”
말을 마친 고청운은 그녀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소어를 데리고 서재로 들어갔다.
남겨진 연 씨와 간미는 서로 마주 보았는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얼굴 한가득 근심에 차 있었다.
“미아야, 네가 좀 가서 들여다보련? 청운이가 소어에게 매를 들지는 않을지 모르겠구나.”
연 씨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비록 아까까지만 해도 소어를 한 대 때리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기는 했으나, 방금 본 고청운의 얼굴을 떠올리니 불안했던 것이다.
소석이 황립 서원에 입학한 이후부터 소어는 할머니와 자주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그녀의 손에서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서로의 감정도 깊어졌다.
지금 연 씨는 후회를 하고 있었다.
‘진작에 이 둘이 돌아올 줄 알았다면 내가 그렇게 소리를 크게 내지는 않았을 텐데…….’
간미도 바삐 고개를 저었다.
“외할머니, 방금 부군이 닭국수를 먹고 싶다고 한 것은 저보고 끼어들 생각도 하지 말라는 표현이 아니었을까요?”
소어는 날이 갈수록 장난이 심해졌는데, 요즘 들어서는 딸아이를 내내 울리기까지 하였다. 도대체가 몇 번이고 타일러도 고쳐지지 않고 있었기에, 그녀는 부군이 그 아이에게 정말 매라도 들까 봐 두려워졌다.
물론 고청운은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가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그저 앞서 몇 차례나 소어를 혼내 주려고 했을 때마다 그들이 막아서는 바람에 혼을 내지 못했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로부터 멀어지기로 결심을 하였다.
* * *
서재에 도착한 고청운은 의자에 앉아 소어를 자신의 앞에 내려놓고는 뚱한 얼굴로 물었다.
“네 외증조할머니께서 말씀하신 게 맞느냐? 왜 자꾸 네 여동생을 울리는 게야? 여동생의 얼굴은 네가 꼬집은 것이냐?”
서재로 오는 길 내내 발버둥을 치던 소어는 고청운의 엄숙한 얼굴을 보고는 두 손을 꼭 모아 옷자락을 붙잡고, 커다란 두 눈에 불안함을 담은 채 그를 쓰윽 쳐다보았다.
“아니에요, 저하고는 상관없어요. 여동생이 자기 혼자 갑자기 운 거예요.”
소어는 다급히 변명을 늘어놓았는데, 모습이 꽤나 당당했다.
고청운은 오른손으로 책상 위의 계자(*戒尺: 자 또는 글방 선생이 학생을 벌할 때 쓰던 목판)를 집어 들고, 왼손 손바닥을 가볍게 두드렸다.
과연, 이를 본 소어의 작은 몸이 움츠러들었다.
고청운은 소어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을 해보았다. 소어는 선명한 색상의 소매가 좁은 비단 윗도리와 치마 같은 모습의 아랫도리를 입고 있었는데, 그 안에 분명 긴 바지를 입고 있을 것이었다. 아까 발버둥을 치는 통에 아이의 위아래 옷은 모두 어수선한 모양새였다.
소어의 머리 쪽을 둘러보니, 머리칼을 두 가닥으로 나눠 각각 한 쪽씩 땋아 왼쪽과 오른쪽에 고정해둬서 흡사 머리에 작은 뿔이 나 있는 듯 보였다.
고청운은 눈을 똑바로 뜨고 아이의 이목구비도 다시 잘 살펴보았다. 소어는 자신과 정말이지 매우 닮은 모습이었는데, 피부색이 소석보다 조금 더 흰 것을 제외하고는 흡사 몇 년 전의 소석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했다.
서재 안의 분위기가 매우 조용해져서 흡사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조차 다 울려 퍼질 듯한 기세였다.
소어는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는지 불안한 듯 고청운을 바라보았다. 그 아이는 아버지 쪽에서 몰려오는 압박감을 느끼자 두 눈을 저도 모르게 두리번거리다가 다른 어른들이 곁에 없다는 것을 알고는 낙담하고 있었다.
“네 여동생은 푹 자는 편이라, 잘 울지 않는다. 말해 보거라, 왜 네 여동생을 울리게 된 것이냐?”
드디어 한참 만에 고청운이 입을 열었다.
앞서 여러 번 남매가 함께 놀 때, 어린 딸은 넘어져서가 아니면 소어가 화단에서 잡아 온 귀뚜라미나 벌레 때문에 놀라서 울었는데, 고청운이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음에도 다른 사람들이 아이를 감싸는 통에 매번 혼을 낼 기회를 놓치고는 하였다. 또, 소어가 매번 아주 시원하게 잘못을 인정하니, 고청운은 그저 묵과하고 아이를 놓아주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 오늘 시간도 있겠다, 고청운은 소어의 행동들에 대해 심사를 해본 뒤 아이의 이런 장난의 원인을 좀 알아보고자 하였다.
고청운은 처음에야 매우 화가 났었지만 소어가 천천히 걸어와 자신의 품에 안기며 작은 몸으로 온기와 더불어 눈에 띄지 않는 떨림까지 전해 주자, 마음이 누그러졌다.
소어는 잘못을 조금이라도 감면 받고자 여러 가지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버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는 여동생을 아주 좋아해요. 저는 여동생이 너무 어여쁘게 생겨서 몰래 다가가 뽀뽀를 해 준 건데……. 여동생이 그만 혼자 울어버렸어요. 저랑은 상관없어요.”
고청운이 눈썹을 찌푸렸다.
“네가 뽀뽀만 한 것뿐인데, 아가가 울어버렸다고?”
소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뽀뽀한 것뿐이에요. 아주 가볍게 했어요. 저는 아가를 때리지 않았어요, 아가는 제 여동생인 걸요. 이렇게 작은데 제가 어찌 감히 그래요. 아버지, 저를 믿으세요. 거짓말이 아니에요.”
이 꼬맹이는 서당에서 아주 심하게 싸움을 하고 다녔기에, 만약 진짜로 여동생을 때리고 싶었다면 여동생은 더 크게 울어댔을 것이었다.
고청운은 소어를 향해 손짓했다.
소어는 눈이 반짝 빛나며 총총 바삐 뛰어와서는, 욕심이 끝도 없는지 고청운의 무릎까지 꼭 껴안고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
“아버지, 소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이제 잘 알았으니 화내지 마세요.”
고청운은 아이의 작은 얼굴을 보고 처음의 노여움이 저절로 반 이상 가라앉아버린 상태였다. 그는 어느덧 꼬맹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며칠 전에도 네게 말해 주지 않았더냐. 동생이 잠자고 있을 때는 가서 방해하지 말라 했었지?”
“하지만, 아무도 저와 놀아주지 않아서 여동생이라도 보러 가고 싶었어요.”
소어는 좀 언짢아하며 성토했다.
“형은 저를 상대해 주지 않아요.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놀러 나가면서도 저를 데려가려 하지 않았어요.”
소어가 입술을 삐쭉였다.
“네 형은 스승님 댁에 병문안을 간 거였으니, 당연히 너를 데리고 가기가 어려웠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