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출경(出京) (1)
5월 20일이 마침 그들의 휴무일이기도 해서, 이른 아침부터 모두들 방자명을 배웅하기 위해 부두로 달려 나갔다.
방인소와 연 씨는 손윗사람이라 배웅하는 자리에 함께 하지 않았고, 고청운과 간미가 가족 대표로 나갔다. 그곳에는 그들뿐만 아니라 방자명의 친우들 중 일부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방자명과 작별인사를 고하기를 기다리자, 드디어 고청운의 차례가 왔다.
고청운은 곧 먼 길을 떠나는 친우와 3년 혹은 그보다도 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까웠다.
“방 형, 안심하세요. 형님이 살던 저택은 저희가 잘 관리하겠습니다. 그리고 항주에서 서신 좀 자주 보내 줘요.”
“음, 네가 있어서 나는 안심이네.”
피풍을 걸치고 있는 모습의 방자명은 여전히 준수했고, 패기만만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고청운은 간미와 함께 말을 나누고 있는 방자명의 아이들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사실 제가 제일 아쉬워하는 건 주아(姝儿)와 원아(媛儿)입니다. 이렇게 떠나고 나면 아이들은 그간 또 금방 자라겠지요. 다음번에 만났을 때 이 아이들이 저를 알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말을 듣더니 방자명의 얼굴에 금방 웃음이 돌았고, 두 사람의 시선이 곧 자매에게로 쏠렸다.
고청운의 말은 진담이었다. 두 자매는 부모의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아 어릴 적부터 정말이지 귀엽고 어여쁘게도 생겼다.
5살이 된 여자아이의 미모를 형용한다는 것이 조금 과장되었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어른으로 자라났을 때의 용모를 의심해 마지않을 것이었다.
이 때문에 방자명은 몹시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두 자매를 공공장소에 데리고 놀러 가는 일이 극히 드물었는데, 만약 나갈 일이 있더라도 한 무더기의 하인들을 대동하여 앞에서 호위하고 뒤에서 에워싸게 하고는 했고, 어디로 다닐 때마다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꼭 해야 할 이야기들은 사실 얼마 전에 사석에서 만나 진작 다 해결했었기에, 고청운은 출항까지 남은 시간은 장수원 일가에게 배려해 주었다. 그쪽에 속해 있는 방자명의 누이는 멀리 떨어지게 된 서운함을 못 이기고 계속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장수원은 그런 그녀를 위로하고 있었다.
고청운은 자리를 피해 간미 쪽으로 다가가 그녀와 함께 두 자매 곁에 쪼그려 앉아 아이들을 돌보았다.
“아저씨.”
주아가 고청운의 손을 끌어당겼다.
“우리를 보러 오신 거예요?”
원아도 또 다른 쪽에 있던 그의 커다란 손을 잡았다.
이어서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귀엽게 옹알거리며 말했다.
“보고 싶을 거예요.”
자리에 있던 모두가 하하 하고 웃었다. 이렇듯 두 자매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말을 잘 맞춰 하고는 했다.
두 사람은 얼굴도 거의 똑같이 생겼는데, 다만 동생의 왼쪽 눈썹 중앙에는 작은 사마귀 하나가 있었고, 성격은 언니 쪽이 얌전하고 여동생이 활발한 것이 서로 다른 편이었다.
자매들은 고청운에게도 눈썹 중앙에 작은 점이 하나가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자주 방자명의 집을 들락거린 고청운이 자신들을 만날 때마다 아주 친숙하게 대했기 때문인지 고청운에게 매우 친절했다.
이때 방자명의 아들은 유모의 품속에서 한창 달콤하게 자고 있었는데, 지금이 벌건 대낮인데도 아직 쌕쌕대며 잘만 자고 있었다. 왕 씨는 옆에서 그런 그 아이를 지켜보다가 간미와 간간히 대화를 나누었다.
그랬다. 왕 씨도 작년에 상경해 있었다. 그때 방인례도 함께 상경하여 회시를 치렀는데, 이번에도 낙방한 것을 확인하고는 얼마 전에 하겸죽과 함께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왕 씨만 손자를 돌보겠다는 핑계로 임산현으로 돌아가지 않고 경성에 남았던 것이었다.
이번에 노부부는 각자 서로 다른 지역에서 지내게 된 것인데, 이렇게 된 상황에 대해서는 방자명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고청운은 이렇게 된 상황이 그에게 달갑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그도 다른 방도가 없었을 것이었다. 항주에 부임하러 가야 하는 자신을 결코 따라가지 않겠다고 하는 아버지에게 그가 지나치게 강요를 할 수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하겸죽의 경우, 이번에 또 한 번 경성으로 올라와 시험을 쳤음에도 또다시 낙방하였고, 고청운은 그저 속으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하겸죽은 좋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기에 비록 며칠간은 낙담해 있었으나, 며칠 만에 다시 회복하였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고청운은 그가 이번에 고향으로 돌아갈 때 정말 마음을 놓지 못했을 것이다.
확실히 마음가짐이 좋지 않았을 때 혹은 심적으로 우울할 때 장거리 여행을 하게 되면 몸에 굉장히 안 좋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두 사람 사이엔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돌아갈 곳이 되어 주었고, 또 그렇게 서로를 잘 보살펴 주었다.
“그래, 시간 나면 내 꼭 너희들을 보러 가마. 그동안 잘 크고 있거라.”
“네, 잘 자라고 키도 많이 클게요.”
자매가 또 한 목소리를 냈다.
얼마 후, 승선 시간이 다 되었다. 아무리 아쉬워한들, 이제는 정말 헤어져야 할 때인 것이었다.
방자명이 이별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은 후, 모두 함께 시사를 노래하며 길을 떠나는 이들 가족을 배웅해 주었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방자명 가족은 배에 올랐고, 모두 또다시 눈물을 훔치며 작별을 고했다.
남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고청운은 간미와 함께 마차에 올라 집으로 돌아갔다.
* * *
가는 길에 별다른 할 일이 없었던 둘은 곧 한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주아와 원아는 정말 예쁘게 생겼소.”
고청운은 예상했던 대로 두 자매에 대한 예찬을 시작하다가 장수원의 아들도 생각이 났다. 그 아이는 소어보다 한 살이 더 많은 6살이었다. 방금 전에 만나 보았을 때, 그 아이는 한쪽에서 조용히 어른들을 기다리며 매우 예의 바른 행동거지를 보였다.
이때 간미는 눈가가 약간 붉어져 있었다. 그녀는 하 씨와 헤어지게 된 것이 가장 아쉬웠는데, 두 사람은 다년간 절친한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네, 하지만 외종숙부는 그 일 때문에 고민이 많을 것 같던데요.”
“너무 이른 우려가 아니오, 나중에 그가 더 출세하기만 하면 걱정될 게 무어란 말이오? 게다가 우리는 그저 일반 백성일 뿐이니, 누구한테 강탈당하거나 할 일도 없지 않소.”
고청운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 아이들은 아직 어리니, 조금 더 크면 어떻게 생길지 아직은 확실치 않소.”
이런 일은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어릴 때 아주 어여쁘게 생겼지만 커서는 별다른 특출 난 점 없이 그저 보통 사람 정도의 수준으로 생기거나 아예 그와 반대인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물론 두 자매와 방자명이 서로 닮은 정도를 생각하면, 고청운은 그렇게 반대로 발전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내다보았다. 그 아이들이 지금도 여전히 작고 귀여워서 방자명이 늘 긴장한 모습을 하고 있으니, 고청운은 이게 또 눈꼴사납기도 하였다.
고청운은 어린아이란 모름지기 어렸을 때부터 자주 나들이를 하고, 밖에서 사람들도 접촉하면서 자라나야 명랑하고 더 자신감 있는 성격이 형성된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이렇게 더 많은 정보를 접해야, 오히려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속지 않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방자명은 하필이면 너무 과민해서 늘 인신매매범이 자신의 보배 같은 아이들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간미는 고청운의 발언이 못마땅한 듯 아주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
“부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 주아랑 원아가 나중에 커서 못생겨 지기라도 한다는 말씀이세요?”
고청운은 억울해하며 말했다.
“나는 그리 말하지 않았소. 그저 지금 결론을 내리기엔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을 뿐이오. 나는 아직 어린 우리 집 딸도 커서는 반드시 아주 어여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오.”
“어떻게 그런 건 또 미리 알 수 있으신 건가요? 아이는 아직 2살이 조금 넘었을 뿐이에요. 아직 제대로 피지도 않았다고요.”
간미는 그를 곁눈질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딸은 저를 닮았어요.”
그녀도 딸아이의 생김새에 대해서 자각하는 바가 있었다.
“내가 감히 단언하건대, 그것만은 확실하오. 어머니가 이리 아리따운데 그 딸이 못생긴 경우는 없소! 이건 세상 이치라오!”
간미는 그 말을 듣고는 그만 피식하고 웃더니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잔소리할 거예요!”
어차피 부군의 허리에는 근육이 잡혀 있어서 꼬집으려고 해도 여간해서는 잘 꼬집히지가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는 고청운의 허리에 얹어 놓은 손을 떼지 않았다.
“그렇지 참, 미아도 봤겠지만, 우리의 다음 세대 아이들이 이제 저마다 자라나기 시작했소. 이미 몇몇은 글공부를 시작했고, 또 이제 몇 년이 더 지나게 되면 과거 시험을 보게 될 거요. 그때가 되면 우리는 이제 아이들의 과거 성적을 서로 비교하게 되겠지.”
고청운은 자기 집의 아들들을 생각하면 큰 걱정이 없었다. 그는 아들들이 이후로 하릴없는 부잣집 도련님들처럼 자라나지만 않는다면, 그 외에 다른 것은 모두 수용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소석이는 지금 황립 서원을 다니고 있었고, 진학한 이래 매년 연말에 치르는 시험에서도 성적이 늘 선두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성정 역시 삐뚤어진 구석이 없었기에 밝은 미래를 기대해 볼 만했다. 그러나 소어는……. 고청운은 둘째 아들의 짓궂은 성격을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이마를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의 인생은 정말이지 큰 사고는 벌어지지 않았으나 시시콜콜한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음.”
두 아들이 그래도 아주 말을 잘 듣는 편이라고 생각한 간미는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다 곁에서 부군의 뚜렷한 옆 얼굴선이 보이자,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의 손을 다잡았다.
고청운도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간미는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귀 가까이에 나 있는 머리카락을 쓸면서 부드럽게 물었다.
“부군, 화본은 언제 쓰실 예정이신가요? 제가 모임에 나가면 다들 이것에 대해 물어봅니다.”
고청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은 시간이 없소. 요즘은 산술 서적을 집필하는데 주력하고 있다오. 며칠 전 겨우 내용을 완성했는데, 산술의 대가들을 찾아 준비된 원고를 보여드리며 의견을 물으러 다닐 참이오.”
연초에 이미 유명인의 도움을 받아 얻어 둔 서문이 있긴 했지만, 만약 필요하다면 그를 도와 서문을 써줄 사람을 더 찾을 수 있을 터였다.
서문을 써준다는 것은 확실히 일종의 윤필비와 맥락을 같이 하는 개념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윤필비를 받고 서문을 작성해 주기도 하였고, 어떤 사람은 서문을 작성해 주고 고료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서문을 작성해 주는 사람은 작가와의 평소 친분 정도나 서적의 수준에 따라 자신의 명예라고 생각해서 기꺼이 써 주기도 하였다.
일전에 고청운은 원래 2년 정도면 산술 서적이 다 완성될 줄 알았었는데, 결국에는 1년을 더 질질 끌고 나서 지금에야 탈고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럼 그녀들에게 그리 대답할게요.”
회임으로 인해 사교계에서 벗어난 간미는 딸을 출산하고 다시 참석한 연회에서 아직도 다른 여인들이 자기 남편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심경이 꽤 복잡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녀의 고민이 꽤나 달콤한 고민이었지만 말이다.
부군은 곧 서른이 다 되어 갔지만, 겉보기에는 이제 막 20대 초반인 것처럼 아주 젊어 보였다. 게다가 부군이 근래에 풍기는 기질은 날이 갈수록 성숙해지면서 내면이 단단한 느낌을 주었는데, 이게 또 유난히 사람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