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입학 (2)
고청운은 앉아서 조용히 생각하다가, 자기가 너무 봉건적인 가장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을 하였다. 소석의 의향도 묻지 않고 아이를 대신하여 선택을 하였으니 말이다. 지금 입학이라는 선택지는 전혀 소석이 선택한 길이 아니라는 모순이 있었다.
소석은 익숙한 것을 좋아했다. 그곳에서 2년간 서당을 다니며 잘 아는 친구들과 매일 집에 가서 노는 걸 좋아했던 것이다.
한쪽에서는 소석이 계속해서 울며불며 눈물을 훔치며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고청운은 아이의 꼬질꼬질해진 옷과 더러워진 온몸, 붉어진 눈꺼풀과 아직도 뚝뚝 떨어지고 있는 눈물을 보고는 마음이 아픈 것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이제 개학을 사흘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은 지금은 잠시 제쳐두고 저녁에 다시 아이와 소통해 볼 생각에, 소석을 곁눈질해서 보고는 곧장 왼쪽의 사랑방으로 들어갔고 아이를 상대하지 않으려 했다.
그가 몇 걸음 못 가서, 뒤에서 ‘가슴이 아프다.’는 등의 애처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고청운이 침실에 들어서자마자 옷을 입고 있는 간미가 보였다.
“소석이가 가기 싫대요?”
간미가 바삐 상황을 물었다.
고청운은 곡우를 보고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다시 간미에게 대답해 주었다.
“서두르지 말고 잘 타일러 봅시다.”
간미는 그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다시 부드럽게 말했다.
“부군, 너무 조급해 마시고, 천천히 말해 보세요. 분명 이해해 줄 거예요. 소석이는 똑똑한 아이니까요.”
“아이 키우는 것이 참 쉽지가 않소.”
고청운이 갑자기 한마디 했다. 그는 소석이 잘못 배울까 봐,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가장 좋은 것을 그의 앞에 내밀어 주고 있다고만 생각하였다. 그저 아이의 앞길을 닦아주는 것만을 생각했다…….
간미는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 * *
그 다음 이틀간 소석과 몇 차례 대화를 더 나누다가 고청운은 그곳으로 가서 그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육훤도 똑같은 서원을 다닌다는 것까지 상세히 알리고서야 겨우 입학 동의를 얻어냈다. 다만 소석은 겨우 서원행을 허락하기는 했으나, 한 달을 다녀본 뒤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도로 돌아올 수 있게 약속을 해 달라는 조건을 붙였다.
고청운은 허락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소석이 이렇게 큰 저항을 할 줄 몰랐다.
‘소석이가 서원의 입구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들어가는 것만 겨우 성공했구나.’
3일 후, 소석은 바로 황립 서원에서 새로운 학습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서원은 아이들을 나이별로 갑을병정으로 나누어 각각 다른 정원으로 구분하였다. 정원반은 보통 8세 이하의 아이로, 첫 글공부를 시작하거나 삼자경을 처음 배우는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병원반은 8살에서 10살 사이의 학생들로, 사서와 율법, 병서(兵書)를 배우게 하였으며, 을원반은 10살에서 13살 사이의 학생들로 오경, 병서 지리와 잡문 등을 공부하게 하였다.
갑원반은 13~15세의 학생들로 구성하였는데, 여러 가지 도리(道理)와 사리에 통달해 있는 학생들을 상대로 과거 시험에서 부족한 것이 있으면 또 보충 수업을 해 주었다.
이밖에도 산술, 금기서화, 기마술 등 모든 과정을 수련하는데 공통 필수 과목을 제외한 이런 과목들은 한 과목만이라도 이수하면 되었다.
15살 후에도 남는 학생들은 바로 무예를 배우기로 한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은 문무를 겸해야 해서 보통 아이들보다 훨씬 고생스럽게 공부해야겠지만, 결국은 이것도 교직원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공부하는 양이 다른 만큼 그들은 아마 더 우수한 인재로 길러지게 될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의 학습 진도가 빠르면 언제든 한 단계 월반하는 것도 가능했다.
학생들의 쉬는 날은 매월 5의 배수인 날짜로, 이들은 관료보다 배나 많은 한 달에 6일을 쉬는 셈이었다.
그러면 소석은 4일에 한 번 정도 집에 가는 것이니, 이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었다.
고청운은 소석을 보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우선은 정원반에 입학을 시켰다가 너무 지루해한다면 다시 병원반으로 올려줄 계획이었다.
이곳 6살짜리 아이들이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것을 눈치챈 고청운은 많은 아이들이 소석처럼 4살 때부터 겨우 쉬운 글자만 익히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편, 육훤은 을원반에 있었다. 학교에서 기숙하기로 한 그는 마음이 편치 않아 병원반으로 옮기겠다고 고집했었는데, 고청운과 육택의 권유로 을원반에서 당분간 더 학습을 해 나가기로 하였다.
고청운은 병원반의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교과서는 그 자신이 쓴 산술 서적과 <구장산술>을 사용하면 되었다. 수업 내용은 거의 준비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에게 익숙한 것들이었다. 사실 그는 산술을 처음 가르쳐본 것도 아니었다. 현에서도 가르쳐 보았는데, 그때는 동생과 수재 신분의 학생들을 가르쳐 보았었다.
그는 이틀에 한 번 수업을 하였다. 처음에는 소석이 적응하지 못할까 봐, 보름 동안 매일 서원에 가서 먹고, 자고, 살았는데, 보름 후에 소석을 다시 살펴보니 서서히 적응을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고택으로 돌아왔다.
서원 근처의 집에는 고대하와 소진씨까지 있으니, 고청운은 수업이 있는 날 밤은 서원 근처 주택에서 유숙을 하며 다 같이 흐뭇하게 지낼 수 있었다.
* * *
“자, 얘들아,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자. 오늘 내가 말한 내용 중 모르는 것이 있다면 손을 들어보겠니?”
고청운이 앞에 서서 그 밑에 있는 30명의 어린이들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아이들은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옷감은 매우 좋았고, 재단도 정교했으며, 색깔은 흰색과 파란색의 결합이어서 깔끔했다. 아이들 하나하나가 영양상태가 좋아서인지 대부분 야들야들한 하얀 피부와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 몇몇만 까맣게 그을려 있는 모습이었다. 이렇듯 피부가 검게 그을리고 좀 거칠어 보이는 아이들은 바로 무장의 자제들이었다.
아이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고,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다 알고 있다고 하니, 안심이로구나. 자, 이제 수업을 끝내자.”
고청운은 계척(*戒尺: 자처럼 생긴 목판)을 내려놓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들의 기초는 훌륭했지만, 고청운은 처음부터 어려운 내용들을 가르치지는 않았다. 그는 이들이 배우는 내용들이 어렵지 않을 테니, 이후의 것을 확실히 익혔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 앞으로 두 달에 한 번 시험을 쳐 보기로 하였다. 그래야만 아이들이 더 빨리 이 지식들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너무 많은 탓에 병원반은 두 개의 반으로 나뉘었고, 이름은 간단하게 1반과 2반이라고 불렀다. 그는 오후 내내 1반의 수업을 반 시진 동안 강의하였는데, 오전에 한 시진 남짓한 쉬는 시간이 있었기에 업무량만은 매우 가벼운 편이었다.
받는 월급은 수업 횟수에 따라 계산되었는데, 그는 매월 15회나 16회 진행되는 수업이라 한 회차에 은자 1냥을 받기로 하였다. 다른 선생님들이 얼마나 받는지까진 알 수 없었다. 모두들 아직까지는 서로 교류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의 월급은 소석의 생활비까지 책임질 수 있을 만큼 넉넉했기에, 고청운은 그나마 남길 수 있는 은자가 생겨서 매우 흡족해했다. 이때만 해도 은자의 화폐로써의 가치는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
수업이 끝났다고 발표하자, 아이들은 일어서서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라고 외쳤다. 말을 마치자마자 우르르 밖으로 달려 나가는데, 이것이 마지막 수업이라 다들 바삐 식사를 하러 사라졌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 수업이 제일 좋아요. 시간을 끌지 않고 간단명료하게 설명을 해 주시니까요.”
어떤 통통한 친구가 그의 연단을 지나며 큰소리로 한마디 하더니, 말을 마친 후 히죽히죽 웃으며 서 있었다. 곧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에 의해 이끌려 나갔다.
고청운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고청운도 학교를 다닐 때 선생님이 수업을 늦게 끝내 주는 것을 싫어했었는데, 이 시대에 와서 또 이런 이야기를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이들이 다 가버리자 고청운은 책과 계자를 들어 올리고 교실을 나섰는데, 문 앞의 그늘 아래 육훤이 기다리고 있었다.
“식당에 왜 안 간 게냐?”
그를 본 고청운은 매우 기뻐했다.
육훤은 꼿꼿이 서서 손을 뻗어 고청운을 도와 책과 계자를 들어주더니 말했다.
“스승님, 저는 이틀이나 소석이를 못 봤더니 보고 싶어졌습니다.”
고청운은 거절하지 않으며 말했다.
“서원에서 밖으로 못 나가게 하는 것은 좀 아쉽구나.”
육훤도 아쉬웠지만, 그래도 스승님과 길을 걸으며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막 개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두들 아직 낯설어서인지, 조심스럽게 서로를 시험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청운은 아이들이 환경에 익숙해지면 곧바로 곰 같은 무법자 녀석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가르치는 반처럼 아이들은 수업할 때도 눈을 도르르 굴리고, 엉덩이에 용수철이 장전된 듯 끊임없이 움직여 댔는데, 고청운이 굳은 얼굴을 하고 있지 않으면 더욱 그러했다. 그의 엄숙한 모습이 아니었다면 더욱 난리가 났을 것이었다.
그 유명한 태자는 병원반이어야 했는데, 이리저리 둘러본 고청운은 어느 학생이 태자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태자의 입학은 그저 소문뿐이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 무렵, 고청운은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소석이 작은 책 상자를 메고 나무 아래에서 조용히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고청운과 육훤이 나란히 걸어오는 것을 보고, 소석은 눈을 번쩍 뜨고는 바삐 두 손으로 책 상자의 손잡이를 잡고 성큼성큼 걸어오며 외쳤다.
“아버지, 소보 형아!”
고청운은 그 모습을 보고 바삐 몇 걸음 더 다가서며 같이 소리쳤다.
“천천히 오거라, 뛰지 않아도 돼.”
소석이 헤벌쭉 웃으며 멈춰 섰다.
소석의 앞에 다다른 고청운은 바로 소석 등 뒤의 책 상자를 들여다보았고, 그 안에 벼루와 붓이 모두 잘 놓여 있는 것을 보고는 마음을 놓았다.
고청운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다음에 우리를 보아도 뛰어다니지 않아도 된단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돼. 그리고 짐은 이리 주거라.”
지금 그들이 만난 곳에서부터 서원의 대문까지는 거리가 꽤 멀었다.
서원의 규정상 하인은 따라 들어올 수 없었기에, 서원 안으로 들어오면 아이들은 모두 스스로 책가방을 짊어져야 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자마자 밖으로 미친 듯이 뛰쳐나왔던 아이들은 종종 자기 집 대문까지 다 와서야 자신이 서원에 소지품을 두고 왔다는 것을 기억해내곤 하였다. 그럴 때면 잔뜩 죽상을 쓰고 하는 수 없이 다시 서원으로 돌아가 붓이며, 벼루며, 문방사우를 챙겨들고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것을 개의치 않고 두고 오는 아이들이 있기도 하였다. 보통 물건은 그 다음 날 와서 봐도 아무도 가지고 가지 않아 제자리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석의 경우, 어릴 때부터 좋은 습관을 길러두었기 때문에 매번 사람들이 따로 당부하지 않아도 스스로 물건을 잘 챙겨서 짊어지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