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토론
황립 서원 선생을 겸직함으로써 고청운이 한림원에서 또 한 번의 존재감을 뽐내며, 또 며칠이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여태 잠잠하던 공번충이 갑자기 시집도 산술도 아닌 사상학에 속하는 저서 <공씨잡설(孔氏杂说)>을 출간했다. 이 책은 발표되자마자 문인 사회 전체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산술 서적처럼 적은 사람들이나 다루는 학문보다야 이런 사상학 저서야말로 진정한 주류 학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사상학 저서는 당시의 사대부의 기풍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대학자인 대유들조차 즉시 ‘맹가’와 견줄 만한 인재가 나왔다며 굉장한 평론들을 남겼다.
송나라 때 왕안석(*王安石: 중국 북송 때의 문필가이자 정치인, 신법을 제창하고 수많은 제자백가의 견정을 새로이 해석함)이 쓴 <회남잡설(淮南杂说)>에 대한 일반의 평가와 마찬가지로 그는 고청운 외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왕안석은 진사 시험에서 4등으로 합격을 하였는데, 지방으로 파견 보내져 3년간 고생길을 걸었다고 전해졌다. 그는 바로 그때 <회남잡설>을 집필하였는데, 당시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서 이 책을 정식 출간하지는 못하고, 필사본으로만 남겼다고 하였다.
하지만 여기에 전란이 겹치는 바람에 그 책조차 제대로 보존할 수가 없었고, 결국 책 중의 어떤 내용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지 못하고 일부 유실되었다. 그런데 이 책이 쓰인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마광(司马光)은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만큼 <회남잡설>은 확실히 잘 써졌고, 또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조용하고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장원 공번충이 갑자기 이렇게 폭발하듯 두각을 나타낼 줄이야. 역시 장원 급제할 수 있었던 사람의 역량은 여간 보통이 아니었다.
현재 대유들까지 나서서 공번충의 신작을 크게 칭찬하자 이 책의 가치는 바로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다.
한때는 <공씨잡설>이 세간의 최고로 많이 판매되는 서적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초판 인쇄 부수가 1,000부밖에 되지 않아, 그 명성을 사모해 온 많은 사람들이 서적을 사지 못하게 되면서 더욱더 최고의 가치를 지닌 책으로 굳어져 갔다.
고청운은 공번충과 동료이자 진사 시험의 동기였기 때문에 다행히 저자 본인으로부터 한 권을 받아 볼 수 있었다.
고청운은 이 책을 이틀에 걸쳐 열심히 다 읽어 보았는데, 어쩔 수 없이 공번충이 쓴 주옥같은 글에 담긴 사상이 깊다는 것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방자명은 고청운보다 빨리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자동적으로 고청운의 집을 찾아와 함께 토론했다.
“방 형, 어떻게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시간이 날 수가 있었습니까?”
고청운은 아연실색하였다. 두 사람의 아내는 또 거의 비슷한 시기에 회임을 하였는데, 하 씨는 고청운네보다 석 달 먼저 회임한 상태로, 방자명은 태아에 매우 신경을 쓰고 있었다. 만약 고청운의 계산이 틀리지 않았다면, 현재 하 씨는 회임 4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것이고, 방자명의 평소 성격으로 미루어 보건데 늘 집에 틀어박혀 좀처럼 외출하지 않고 태아를 지키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늘 고청운이 혼자 그를 찾아가고는 하였다.
방자명이 태아를 지키고 있었던 이유는 그의 집에는 어른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늘 그들 모녀 셋을 집에 두고 나가는 것을 염려했고, 아무리 아랫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없고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본래 방자명은 휴가를 내어 귀향할 수 있는 차례를 맞았는데, 때마침 귀향하기 좋은 여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 씨의 회임으로 인해 귀향 생각을 접게 되었다. 결국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하고, 자신의 어머니를 경성으로 모셔올 궁리를 하다가 지금은 의견을 타진하기 위해 서신을 막 부친 상태였다.
“아직 이 책 때문에 시끄러운 일은 없었는가?”
방자명은 매우 불쾌한 듯 옷깃을 여미고, 힘껏 부채를 흔들면서 씩씩거리며 말했다.
“네가 지금 막 좋은 기류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원래는 다들 앞다투어 자네의 산술 서적과 화본에 대해 분분히 떠들었고, 너도 막 황립 서원에까지 들어가서 교편을 잡게 되어 지금 막 물이 오르고 있었는데, 결국에는 공번충의 책이 나오면서 명성을 앗아갔으니, 나는 지금 그들의 출판시기가 너무 고의적은 아닌가 싶네! 또 ‘맹가와 같은 수준’ 이라는 말을 어찌 그리 쉽게 하는 걸까. 허풍이 너무 심하면 혀를 잃을 수도 있는데 말이야.”
고청운은 멍하니 경청을 하다 말고 방자명에게 물었다.
“그런데 정말 잘 쓰기는 했던데, 방 형은 열심히 읽어 본 것이 맞습니까?”
방자명은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삼원이 찻물을 올리는 것을 본 그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는데, 이렇게 말이 한번 끊기니 외려 노기도 좀 가라앉아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말하였다.
“보았지, 아주 열심히 읽었어. 새 병에 묵은 술을 담았더군. 형식은 새롭지만 내용은 구태의연했어. 아직도 유교적인 관점이었지만 말이야. 전 왕조와 본 왕조에서 모두 천자에게 심하게 배척을 당해서 그렇지, 유교라는 학문은 어쨌든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고 있다네. 전 왕조에서의 그런 썩은 기운을 다 털어냈으니, 조금 참신해 보이기도 했지.”
고청운은 묵인했다. 방자명은 실용주의자로 비록 어려서부터 사서오경을 읽으며 자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유교의 풍습을 얼마나 좋아하고 인정하고 있는지 고청운은 정말 잘 알고 있었다. 방자명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인생관이나 가치관이 비슷한데다 학문적인 세뇌를 당하지 않았기에, 금방 그 둘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이렇게 지금까지 격 없는 사이로 지내 올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공 형이 정말 글을 잘 썼어요. 경전의 인용이 적절하고, 혁신적이었으며, 내용 자체도 폐하의 통치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들은 지금 산술, 율법 등의 과목을 과거 시험에 포함시키는 것을 반대하지 않지 않습니까. 또 황제 폐하를 위해 이론적 근거를 다 찾아 놓고 의견을 서술하는 방식이 참 좋았어요.”
고청운은 원래 이 책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모두 다 이 책을 보고 있다 보니 사교성이 없는 자신이 시대에 뒤쳐질까 봐 얼른 시간을 내어 읽었다.
그러나 책을 다 보고 난 후, 상대방의 책에 아첨이 녹아들어 있다는 것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황제는 이 나라가 개국한 후 더 이상의 봉작 및 후손에 대한 봉작을 내려주지 않았다. 이에 당황한 일부 사람들은 황제에 대항하지 못하고 즉시 방향을 바꿔서 자신들이 그간 황제와 대치하며 뱉었던 언사를 주워 담고 있었다.
고청운은 이런 행위를 지지했다. 그간의 문벌세력에 맞서 장인들의 사회적 지위가 좀 더 높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항상 문과 방면으로만 발전해서는 안 되었다. 드디어 과학 기술의 진보가 제1의 생산력이 되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한 모양이었다.
방자명은 냉소를 한 채 생각에 잠겨 있느라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침묵한 채 차나 더 마시기 시작했다.
고청운도 서랍에서 화차를 꺼내 찻물을 우려내기 위해 물을 끓이면서 책 생각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학술상의 논쟁은 그들의 일과 무관했으며, 그들은 흥미도 없었다. 또한 원래 현명한 사람은 자신에게 위험을 가져 올 수 있는 일에 참여치 않는 주의가 아닌가. 두 사람의 스승님인 방인소 역시 평소처럼 이런 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을 것이었다.
“이 차는 어디서 난 겐가?”
방자명은 마음을 다스리다 말고 고청운이 평소와 같이 맹물을 마시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호기심이 동해 고개를 내밀고 물었다.
“이 국화차는 은화 50냥짜리입니다.”
고청운은 찻잔을 들고 자신의 부채를 꺼내 부채질하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자, 이제 이 국화는 제 기능을 다한 셈이니, 배 속에 넣지 않으면 자신만 큰 손해를 보는 것이었다.
방자명은 흘겨보면서 고청운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청운은 입을 실쭉거렸지만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
‘믿지 않으면 그만이지.’
“에이, 참 좋은 기회였는데! 요즘은 갈수록 이름 있는 사람만 더 출세하기 쉬운 세상인 것 같네.”
방자명이 한탄을 섞어 말했다.
“방 형, 저는 얼마 전에 형님이 제게 말해 준 것을 기억하고 있어요. 앞으로 주어진 시간 동안 풍파에 시달릴 수도 있지만, 냉정함을 잘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었지요? 이 말이 마침 딱 맞아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어차피 100일 이상 피어있는 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남들이 계속 저를 향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기는 힘들어요. 그저 공 형 아니면 다른 사람으로 옮겨 갈 때가 된 것이지요.”
고청운이 방자명을 위로하였다. 고청운은 그때 그 말을 듣고 꽤 감동을 많이 받았었다. 그 당시란 그의 산술 서적이 칭찬을 꽤 많이 받고 있었고, 또한 화본 때문에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면서 지명도가 높아졌었을 때인데, 오직 방자명만이 그에게 침착하게 훈계해 주었었다.
진정으로 자신을 위해주는 사람만이 자신이 우쭐해 있을 때, 자신에게 찬물을 끼얹고 스스로를 경계하도록 마음을 다잡아 줄 수 있는 법이었다.
방자명도 그렇고, 방인소도 그런 사람이었다.
고청운의 말을 듣고 방자명도 덩달아 침착해졌다.
“청운이 너 스스로도 화를 내지 않는데, 나도 이제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겠군. 참, 네 두 번째 산술 서적의 진행 상황은 어떠한가?”
고청운이 답했다.
“아직 4분의 1도 다 안 썼습니다. 이걸 쓰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중간에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고청운은 찻물이 좀 식은 것을 보고 국화차를 조금 마셔보았다.
‘응, 우울하군. 맛이 좋은지는 전혀 모르겠다. 괜히 50냥이나 먹어 없앤 기분이구나.’
그는 비록 이런 차를 마시는 것 정도는 의원도 괜찮다고 말해 주리라 생각했지만, 자신의 몸을 생각해서 더 마시지 않기로 하였다.
“어디 뒀는가? 내가 한 번 보지.”
고청운은 턱을 들어 탁자의 상판을 가리켰다.
방자명은 일어서서 원고를 일일이 살펴보았으나, 수정할 곳을 찾지 못한 채 초고를 내려놓고 말했다.
“좋은데, 앞 권과 같은 맥락에서 계속 노력하면 되겠네.”
당부하는 방자명은 잠 시강의 말투를 흉내 내고 있었다.
* * *
두 사람은 한바탕 크게 웃고 나서 또 한담을 나누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날은 어두워졌다. 고청운은 저녁밥을 먹고 가라고 하였지만, 방자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방인소를 한 번 보고 나서 시간도 돈도 없다며 바빠서 돌아가 봐야겠다고 하며 휑하니 말을 타고 떠났다.
고청운은 입구에 서서 그를 배웅하면서 무심코 그의 집 앞을 지나는 가마를 훑어보았는데, 마치 최근 또다시 자신의 집 앞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두들 이곳에 가게를 열고 싶어 하는 것 같이 보였다.
또 하나 좋은 소식은 그들이 선물은 받지 않았으나, 정원으로 넘어온 정체 모를 물건들을 팔아서 얻은 은전을 모두 경성 서쪽의 양제원(*养济院: 자선단체)에 기부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집 안으로 투척되어 들어오는 선물도 줄어들게 되었고, 가족들은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정말 멀쩡하게 집 안에서 잘 걷다가도 잠시라도 방심하면 날아오는 물건에 머리를 맞고는 했기에, 길을 걸을 때 모두 마당의 안쪽으로 벽에 바짝 붙어서 가야 했다. 이런 나날은 정말 지내기가 쉽지 않았던 참이었다.
양제원은 고대 아동 복지원과 양로원을 결합한 개념으로, 관청에서 돈을 내어 설립됐으며 주로 노숙자들 혹은 노약자를 수용하고 있었다. 고청운 같이 돈이 있는 사람들은 돈이 있으면 향불을 놓고 돈을 사원에 기부하는 것 말고도 매월 이렇게 양제원에 기부를 하기도 하였다.
그는 매월 돈을 정액으로 양제원에 보내고 있었는데, 특별히 방충과 고삼원 두 사람을 두 조로 나누어 방문하게 하였다. 그곳의 관리원들이 돈을 중간에 가로채지 않고 기부 받은 돈을 잘 처리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