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257)화 (257/504)

257화. 추측

“왜 기분이 나쁘실까.”

고청운은 살짝 어리둥절해져서 미간을 찌푸려가며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고삼원이 머리를 긁적거리는 것을 보니 그도 이해가 잘 안 되었기에 그저 투박하게 되받아쳤다.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어쨌든 그래 보이세요.”

“언제부터 저러고 있기 시작했던 게야?”

고청운은 책상 위의 형형색색의 선물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속에 한 가지 상황을 추측해 볼 수 있었다. 

“바로 오후부터 저렇게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숙모님과 소석이가 마당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밖에서 많은 물건들이 정원으로 던져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제가 서둘러 문 밖으로 나가서 소식을 알아보고 나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고삼원은 고청운의 필명이 사람들에게 노출된 것이 사실 상당히 유감스러웠다. 나중에 그가 가서 원고를 제출하게 된다면 이전보다는 좀 더 대범하게 갈 수 있을 테지만, 일전에 원고를 넘기러 갈 때마다 슬쩍슬쩍 조심조심 다녔던 것이 꽤 짜릿했기에 아쉬웠던 것이다. 

고삼원의 말을 전해 들은 고청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무슨 상황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내 잘 알았다. 참, 명심하거라. 요 며칠간은 꼭 문 앞을 잘 단속해야 한다. 다른 식솔들에게도 전해 놓고. 그 누구든 간에 다른 사람이 주는 선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고청운은 정중히 당부했다.

고삼원은 혼인을 치른 후에도 이 저택의 앞마당에서 살고 있었는데, 고삼원의 아내는 요리 솜씨가 좋아서 주방 일손을 도와주고 있었다. 현재 이 젊은 부부는 한창 돈을 모으고 있었는데, 경성의 평민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 작은 마당이 딸린 집을 하나 사서 정식으로 경성에 정착할 계획이었다.

“음, 숙부, 안심하세요.”

고삼원은 진지하게 약조했다. 그는 자신에게 무슨 큰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고청운이 당부한 일은 반드시 그대로 해낸다는 한 가지 그만의 원칙이 있었다. 그리고 또 그 일을 잘해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어차피 고청운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하니, 절대 그 일이 그릇될 리는 없었다.

* * *

집의 중문에 들어선 후, 고청운은 정원 담벼락을 돌아 천천히 풍경을 즐기며 걷고 있다가 문득 간미가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상기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약간 허전해졌다. 비록 그가 주동적으로 벌인 일은 아니라고는 하나, 어찌되었건 자신이 벌인 화본이라는 일에 의해 발생된 사건이니 결국 자기 스스로 그 일을 짊어져야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마친 고청운은 더 이상 집을 향해 가지 않고 중도에 멈춰 복도를 서성였다. 

‘그렇다고 미아가 내게 화를 내지는 않겠지? 내 탓도 아니고 또 내가 잘못한 것도 없으니 겁낼 필요는 없을 거야.’

고청운은 가슴을 펴고 다시 생각을 해 보니, 만약 오늘 입장을 서로 바꿔 간미에게 한 무더기의 사내들이 찾아와 그녀에게 꽃을 바친다면, 자신은 분명 너무나도 불편했을 것 같았다.

고청운의 눈길이 무심결에 정원의 화단으로 옮겨갔다. 그는 국화꽃이 만발해있는 걸 보고는 눈이 번쩍 뜨였다.

‘흐흐, 다 방법이 있지!’

고청운은 모퉁이에서 정원으로 걸어 걸어가 화단에 생기 넘치게 피어 있는 국화를 살펴보았다. 

고청운은 색깔이 옅은 담황색과 흰색인 것에는 눈길을 주지 않고 꽃잎이 겹겹이 핀 국화꽃 위에 시선을 돌렸다. 

그는 계속 화단을 뒤적거리다가 마침내 다른 꽃들과는 확연히 다른 꽃 한 송이를 찾아냈는데, 흰 바탕에 초록색을 띠고 있어서 딱 보기에도 여타 다른 국화들과는 달라 보였다. 

그는 두말없이 바로 가장 큰 한 송이를 따서 코끝에 가까이 대고 냄새 맡아보았다. 

‘음, 좋은 냄새. 미아가 분명 좋아할 거야.’

고청운은 소매 속에 꽃을 숨겨 놓고, 그제야 드디어 떳떳하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 * *

고청운이 안방에 도착하자마자 온 가족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족들은 고청운이 무사히 집 안으로 들어오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자야,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우리 집에 왜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와있던 게야? 진짜 네가 쓴 그 화본이라는 것 때문에 그런 것이냐? 경성 사람은 왜 그리 허무맹랑하더냐?”

고대하는 아들을 보자 연속으로 질문을 퍼부었다. 

오늘 오후에 닥친 이 형국 때문에 좀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한 그는 꼭 자기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로만 알았다.

소진씨는 낮은 의자에 앉아 돗자리 위에 앉아 놀고 있는 소어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어는 전심전력으로 집을 짓는 일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고청운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잠시 그를 돌아보며 작은 입을 벌리고 한 번 웃더니 이어서 계속 집을 지었다. 

소석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시간을 살펴보니 아직 아이의 공부 시간이 끝나지 않았을 때라, 아마도 서재에 있을 것이었다. 연 씨가 자리에 없는 것으로 보아 소석과 함께 서재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 소석이 학습하고 있는 부분은 비교적 쉬운 내용들이라 연 씨가 일반적으로 그의 수업을 미리 한 번 검사해 주고는 하였다.

고청운은 재빨리 사람들을 힐끗 휘둘러보더니, 자신의 꽃을 감추기 위해 소맷부리를 틀어막고는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안심하세요. 괜찮아요, 지금 다들 집 앞에서 자리를 떠났어요.”

그의 눈은 간미를 향하고 있었다.

간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삼원이가 나가서 사정을 파악해서 온 후, 제가 이미 아버님, 어머님께 사전에 상황을 다 설명 드려 놓았습니다.”

“모두들 잠시 흥분한 것이지, 며칠 지나지 않아 다들 진정될 겁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내일이면 당장 오늘보다도 열기가 식어 있을 겁니다.”

고청운은 조금 전에도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앞으로 오늘처럼 생활에 방해를 초래할 정도로 크게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이 세상은 한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한가해서 매일 다른 사람을 살피러 찾아온다는 말인가?

그는 이제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기로 하였고, 그러기를 간절히 바랐다. 

‘지금 상황을 보니 우선 당분간은 화첩을 더 쓰지 않고, 열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그때 다시 계획을 세우는 게 좋겠구나.’ 

“그렇담 됐다, 전자가 무슨 일을 잘못한 것만 아니라면 상관없지.”

소진씨가 명치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들은 경성으로 온 요 며칠 동안, 틈만 나면 고삼원과 함께 거리 구경을 하였다. 한 번은 시장도 구경 나가 보았는데, 그날 정오에 마침 어떤 관리가 잘못된 일을 저질러 참수당하는 것을 보고는 매우 놀랐다.

그들은 그제야 관리가 되는 것이 아주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으며, 자칫 잘못하면 머리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지금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들은 아들이 과거에 합격해서 진사도 되고 또 큰 벼슬을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싹 사라졌다. 그저 아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평온하고 안락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했다. 

“전자!”

소어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작은 손에 나무토막을 들고 고청운을 바라보며 벙글벙글 웃고 있었다.

몇 사람이 놀라서 엉겁결에 크게 웃자, 긴장된 분위기가 싹 사라졌다.

고청운은 잠시 말이 없다가 꼬맹이를 노려보며, 그의 앞에 다가서서 짐짓 화난 체 말했다.

“꼬맹아, 너는 누구를 전자라고 부르는지 알고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냐?”

소어는 갑자기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고, 크게 벌린 입에서는 침이 방울져 떨어졌다.

고대하는 어린 손자를 보자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앞으로 집에서 청운이의 아명을 불러서는 아니 되겠소. 좋지 않구려.”

그들은 이미 아명을 부르는 습관이 오래 되어서 갑자기 이 습관을 바꾸기가 매우 어려웠다. 심지어 가끔 밖에서 다급할 때는 이 아명이 먼저 튀어나오기도 하였다.

아이의 재롱과 고청운의 무사 귀가가 더해져 가족들은 다시 마음의 심지가 굳어졌는지 이제 더 이상 아까의 일을 마음에 두지 않고, 우스갯소리도 하기 시작했다.

* * *

얼마 후, 방인소도 이웃한 방택으로부터 걸어 들어왔다.

고청운이 그에게 바로 물었다.

“스승님, 아까 오실 때 입구를 사람들이 막고 있지는 않았죠?”

방인소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노부는 이런 나이든 노인이거늘, 사람들이 찾는 것은 젊고 잘생긴 한림관이겠지. 이 영감이 아니다.”

고청운은 어리둥절해 있다 말고 스승님마저 자신을 놀리는 것을 알아챘다.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에 앉은 후 모두들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스승님, 저는 오늘 오전의 상황이 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청운은 아주 고민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무 빨리 소문이 퍼지는 게, 어딘가 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요 며칠 발생한 일은 그의 눈을 어지럽게 흐릿하게 만들었고, 자신이 예견한대로 상황이 통제되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뒤떨어져 닥쳐오는 상황을 수동적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전개는 너무 심하기는 하였다. 자신이 정말 그렇게 인기가 많았던 것일까? 그저 한 편의 화본일 뿐인데, 사람들은 왜 이토록 열광했던 것일까? 비록 재물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하지만, 화본 속의 재물은 아주 먼 곳에 있는 것이라 사람들이 실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라기에는 그다지 현실감이 없었다. 

게다가 황제가 자신에게 호감을 표하다니, 이는 정말이지 놀라움을 금치 못할 만한 일이었다.

방인소는 여전이 편안한 표정을 고수한 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노부는 네가 아주 흥분해 있을 줄만 알았는데, 아직 이성을 잃지는 않았구나.”

그는 마음속으로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고청운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스승님과 함께 조정의 일을 분석할 때마다 스승님은 의도하신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가끔씩 자신을 비하하고 또 공격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아마도 자신의 지능지수를 무시해서 그런 듯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정치적 감수성 역시 결코 강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는 정말로 매우 슬프지만 또 부인할 수도 없는 사실이었다.

“안심하거라. 이 노부가 보기에는 이 일이 청운이 네게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 같구나.”

방인소는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을 힐끗 보더니 얼굴에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말했다. 

“너는 단지 뜻밖의 횡액에 연루된 것일 뿐이다. 사람들이 특별히 너를 겨냥해서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게야.”

방인소가 이렇게 말하자 가족들은 더욱 마음이 놓였다.

그들은 아무래도 고청운보다는 당연히 방인소의 판단을 더 믿고 있었다. 

이후 고청운과 방인소, 두 사람은 공무적인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기 위해 서재로 자리를 옮겨갔다. 

* * *

“스승님, 요즘 조정에서 군을 파견하여 해상으로 진출하는 일에 대해 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병부의 일부 사람들이 바다로 나아가 새로운 땅을 점령하는 일에 대해 아주 고무되어 있던데, 제 생각에는 폐하의 의중도 동일한 듯싶습니다. 다만 조정의 대신들만이 동의하지 않고 있겠죠. 백성들만 혹사시키고 막대한 손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로 끝날 수도 있으니까요. 또 해외의 영토를 점유할 수 있다고 한들, 관리도 어렵고 별 쓸모가 없을 수도 있을 겁니다.”

고청운은 곧바로 조정에서 한창 열렬히 논의 중인 논제를 가지고 추측을 섞어 의견을 냈다. 

“은광 사건이 사실이라 치더라도, 그 일은 방금 막 알려지기 시작한 사건인데 어떻게 이렇게 꼭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순조롭게 저의 존재까지 이 사건에 연루시켜서, 저를 이 파란을 더 부추기는 기폭제로 사용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런 모종의 술수가 없었더라면 제가 일침황량이라는 소문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빨리 퍼져나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스승님께서 보시기에도 그렇지 않으신가요?”

그가 쓴 <출해모험기>의 내용은 모두 바다 밖으로 나가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한 것이었다. 책 내용 중에는 막대한 보물을 차지하는 내용도 꽤 많이 있어서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하기 쉬웠는데, 마치 서양의 마르코 폴로가 쓴 여행기 같았다. 그가 집필한 저서도 동양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었다.

물론 그의 책은 그런 책과 비교될 수 없었다. 그렇게까지 큰 영향력이 없었던 것이다. 

방인소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수염을 쓰다듬고는 한참을 있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또 아닐 수도 있단다. 노부가 들은 소식은 매우 적으나, 가능성이 매우 큰 것도 있더구나.”

그는 내일 옛 지인을 찾아가 만나 각자의 의견을 교환할 생각이었다.

“위험한 일에 연루된 것만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만.”

고청운은 코를 문질렀다. 

“독자들도 너무 열정적입니다.”

그를 정말이지 깜짝 놀라게 한 것은 화본이 무슨 대단한 거라고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분에 넘치는 사랑을 보내주고 대우를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는 기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였지만, 복은 재앙의 근원이라 했기에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느껴서 더욱 겸허해져야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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