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폭로 (2)
세 사람은 서로 갈라져 가야만 하는 길목에 도착했다. 여기서 장수원과 그 둘은 먼저 헤어졌다.
방자명과 고청운의 집은 고작 두 골목 차이였다. 그곳이 나타날 때까지 두 사람은 다시 같은 방향으로 말을 채찍질하여 질주하기 시작했다.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그들은 집 어귀에 도착하였다. 각자의 집이 있는 길목에서 헤어질 때, 방자명이 말을 멈추고 고청운을 바라보았다.
고청운도 따라 말을 멈추고는 이상하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청운아, 오늘 폐하께서 하신 말씀 때문에 앞으로 주어진 시간동안 풍파에 시달릴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냉정함을 잘 유지하고 있어야 해.”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어리둥절해졌지만, 이내 햇볕을 내리쬐며 7품 관원의 관복을 입고 있어도 여전히 아리따운 모습의 벗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방 형, 안심하세요. 그리 하겠습니다.”
고청운은 가슴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아나는 듯 온몸이 훈훈해지는 걸 느꼈다.
* * *
이후 두 사람은 작별인사를 하였고, 고청운은 말의 배를 가볍게 차며 고삐를 당겨 재빨리 집으로 달려갔다. 그는 어서 빨리 스승님과 함께 오늘 벌어졌던 일에 대해 상의해서 앞으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 지 의논해보길 원했다.
하지만 집 대문 앞에 다다른 그는 생각했던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에! 내 집 앞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 있다니!’
자신의 집 앞 거리를 바라보니 긴 줄로 늘어선 마차, 우마차에 북적이는 군중, 그리고 그런 그들을 한 겹 에워쌓은 관중들이 서 있었다. 또 누군가는 이들을 손가락질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광경 전체는 마치 무슨 시장통 같았다.
굳게 닫혀 있는 대문을 본 고청운은 어리둥절해하다가, ‘집에 무슨 일이 생겼나?’ 라는 생각에 서둘러 급히 말에서 내렸다.
“고 대인이십니까?”
그때 갑자기 사람들 속에서 머슴 복장을 한 사내가 무심코 뒤를 돌아봤다가 고청운을 보고는 눈이 번쩍 뜨며 슬쩍 떠보려 불렀다.
고청운은 자신의 집을 바라보며 미간을 찡그린 채 답했다.
“음,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우리 집을 이렇게 막고 서 있다니, 왜 그러고 계시오?”
자신이 급작스럽게 승진하고 녹봉이 인상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여기에 모인 것이 이상했기에 그는 뭔가 좋지 않은 예감마저 들었다.
“고 대인께서 드디어 귀가하셨군요!”
그 머슴은 얼굴에 순간 매우 기뻐하는 표정을 띠며 외쳤다.
“대인, 이것은 저희 집 주인 나리께서 선물하시는 것이니 꼭 좀 받아 주십시오.”
그는 등 뒤에 서 있는 건장한 사내 한 명을 손짓하여 부르더니 나무 상자하나를 받아 건네주고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청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고청운은 또다시 멍하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자네 집 나리가 도대체 어느 분이시오? 저를 아시오? 왜 이런 물건을 보내시는 것이오?”
고청운이 지금 무슨 승상 자리에라도 올라 있는 사람이라면 눈앞의 이런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 머슴은 순간적으로 곤란한 기색을 비쳤다.
“고 대인, 그건 관여치 마십시오, 어차피 그리 귀하지도 않은 선물입니다. 그저 마음을 좀 전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받을 수 없습니다.”
고청운의 반응을 본 머슴은 곧 울 것 같은 얼굴이 된 채 다급히 말을 이었다.
“고 대인, 대인께서 쓰신 화본이 정말 뛰어나지 않겠습니까? 대인께서는 저희 집 주인 나리가 아주 각별히 좋아하시는 작품을 쓰셨습니다. 저희 집 나리께서 대인의 화본을 너무 좋아하셔서 그저 약간의 마음을 표시하고자 하시는 겁니다. 또 주인 나리께서 말씀하시길, 계속해서 화본을 써 주십사 하셨습니다. 저희 집 나리께서는 영원히 고 대인을 지지할 것이라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이 광경이 다 환상은 아니겠지?’
머슴의 대답을 들은 고청운은 자신의 반응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느꼈다.
‘이것이 내…… 독자가 보내온 선물이라 이거지? 이런 제길. 분명 아직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폐하께서 한림원에서 하문하신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소문이 이렇게 빨리 퍼진 거지? 이미 다들 알고 있는 것 같군.’
고청운은 답답하기만 하였다. 사실 며칠 전에 신분이 고귀하고 대단한 사람 하나가 사장정을 통해서 일침황량의 정체가 고청운이라는 것을 전해 들었다고 하였다. 심지어 그 사람은 굉장히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마음 놓고 지낸 지 며칠 되지 않아 황제가 바로 말을 꺼내며 자신의 정체를 온 천하에 다 알릴 줄은 몰랐다.
고청운은 정체가 탄로 난 이후의 생활을 머릿속에 그려보았으나, 그다지 크게 변할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그저 화본을 쓰는 사람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생각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다. ‘지금이 무슨 현대 세계도 아니고, 무슨 스타를 따르듯이 사람들이 나를 따를 리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고 대인, 여기 좀 봐 주세요!”
고청운이 순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곧바로 어떤 하인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고청운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두 이쪽을 바라보았고, 고청운의 몸에 걸친 관복을 보자 바로 두 눈을 빛내더니 서로서로 큰 소리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고 대인, 이건 저희 집 어른의 성의입니다, 제발 좀 받아 주십시오!”
“대인, 이건 저희 집 도련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작은 성의일 뿐이니 꼭 좀 받아 주십시오.”
“황량 선생님, 이건 저희 집 마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조그마한 성의로 그저 먹거리일 뿐이니, 선생님께서 꼭 받아 주십시오! 그러면 감격스럽기 그지없을 것입니다!”
“고 대인, 제발 부탁드립니다. 꼭 받아 주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쇤네는 돌아가서 경을 칩니다요!”
“황량 선생님, 제발요. 이 선물은 절대 귀중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값이 나가지 않는 작은 노리개일 뿐이니 제발 좀 받아 주십시오.”
아주 잠깐 사이에, 사람들은 모두 고청운의 면전으로 모여들었다. 각종 난잡하고 대동소이한 말들이 모두 자신의 귀로 들어오자, 고청운은 마치 한 떼의 오리가 꽥꽥거리는 소리 같아서 매우 당황했다.
고청운은 뭇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조용히 하시오! 본관 옆에 말이 서 있지 않소! 위험하오!”
사람들은 그제야 비로소 눈앞의 잘생긴 청년이 그저 화본이나 쓰는 문인이 아니라 품위 있는 조정의 관료이고, 이 현장에 나와 있는 자신들은 대부분이 노복의 신분이라는 것을 상기하고는 분분히 조용해졌다.
고청운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당신들이 어디서 소식을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소. 나를 많이 좋아해줘서 감사하지만, 선물을 받지 못하는 사정도 좀 이해해 주시오. 만약 나를 그렇게 지지해 주고 싶다면, 다음에 내가 책을 낼 때 내 서적을 구입해 주면 그것으로 족하오.”
말의 뒷부분에 이르러서는 그의 말투도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만약 그들이 자신의 글을 좋아해 주지 않았더라면 과연 자신이 누군지나 알았겠는가. 이는 모두 그들의 호감에서 시작된 소란이었기에 고청운도 태도를 그리 나쁘게 하지는 않았다.
대중들은 일순 고청운의 노한 모습을 보고는 어리둥절해하면서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고, 이 흥분된 상황은 점차 진정이 되기 시작했다.
고청운이 마른기침을 한 번 하면서 계속 말했다.
“여러분, 지금 석양이 지고 있소. 선물은 정말 받을 수 없으니, 저는 단지 여러분의 마음만을 받겠소. 저를 대신해서 당신 집의 어른들께 감사의 말을 전해 주지 않겠소?”
말을 마친 고청운이 공수한 손을 내밀며 부탁했다.
“그럼, 대인…… 선물들을 받지 않으시겠다면, <장군전기>의 섭문과 완아가 죽는 장면만이라도 고쳐주실 의향은 없으십니까?”
갑자기 어디선가 주눅이 든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을 들은 군중들은 또다시 동요하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매화 반지>는 행복한 결말로 끝나지 않았소. 다들 그렇게 집착할 필요가 있소?”
그는 남장을 한 채 여인이 아닌 척하고 있는 그 처녀를 보았지만, 그녀가 어느 집 여식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고청운은 그저 좀 부드럽게 다시 한마디 했다.
“이 화본은 이미 완결이 났기 때문에 더 이상 고칠 수 없음을 알려드리는 바이오.”
고청운은 그들이 대답할 때까지 더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때마침 집의 대문이 열리고 고삼원과 방충의 머리가 안에서 삐져나왔던 것이다. 그들은 고청운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
고청운과 그의 애마는 고삼원과 방충의 도움으로 군중 속에서 떨어져 나와 무사히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이 상황이 내키지 않는 사람도 있었을 테지만, 아무리 그들이 정색을 하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고 한들 관복을 입고 있는 고청운에게 감히 방자하게 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건방지기 짝이 없는 행동일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 댁의 고 대인에게 미움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서 어찌 주인어른의 얼굴을 볼 수 있단 말인가.
모두가 적을 상대하러 온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이전에 주인에게 지시받아서 온 경성을 빙빙 돌면서 일침황량을 찾아 헤매던 때를 떠올렸다. 지금은 그의 주소까지 다 알고 있는 마당에, 중은 절을 피해 도망갈 수 없다고 나중에 그를 찾지 못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다들 자물쇠가 굳게 닫힌 고청운네 대문 앞을 모두 떠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청운이 일률적으로 그 누구의 선물도 받지 않았기에, 그나마 돌아가서 댈 핑계는 있었다.
* * *
겨우 집 안에 들어간 고청운은 군중에게 떠밀려 한참을 이동한 탓에 관모마저 비뚤어지고 옷매무새도 엉망이었다.
“이 사람들이 숙부의 필명을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숙부가 귀가하시지 전부터 저희 집 앞에 속속 도착해서 문 앞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요. 누가 말려도 듣지 않고, 선물을 받지 않겠다고 아무리 거절을 해도, 계속해서 기다리고 심지어 담 밖에서 물건을 집어던지고 넘어와서 숙모님과 소석이를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고청운은 고삼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았는데, 그 책상 위에는 수놓인 손수건부터 향낭까지 대충 보아도 여인들이 보낸 티가 나는 물건들이 한 가득 쌓여 있었다.
“살펴보았으나, 누가 보낸 것인지 눈에 띄는 표식이 없어 도대체 누가 던지고 간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고삼원은 한마디 더 보태고 다시 고청운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어쩌다가 정체가 탄로 나셨습니까? 참, 숙모님의 기분이 안 좋으시니 조심하세요.”
마지막 한마디의 목소리가 꽤 낮은 것이, 간미가 자신의 말을 듣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