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격랑 (2)
다음 날, 경화소보 기사가 나간 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침황량의 화본을 찾아보았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허나 안타깝게도 이 책은 이미 오래전에 완결되어서 이 책들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송죽서재의 남은 몇 권은 일찌감치 동이 났지만, 사람들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미 그 책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책을 소장하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들 아주 의기양양해져서, 마치 큰 대인이라도 된 듯 사람들이 입에 발린 말을 하면 선심이라도 쓰듯 한 번 보라고 내어주기도 하였다.
더 많은 사람들은 숨어서 책에 머리를 쳐 박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책 속에 실제로 은광이 있는 지점에 대한 묘사가 있는지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논란의 초점은 해외에 주인 없는 은광, 금광 등이 얼마나 많을 것인지에 맞춰져 있었다.
다들 바다로 나가면 분명히 좋은 기회들이 자신에게 벌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마치 입만 벌리면 먹을 수 있도록 하늘에서 떡이 떨어지듯 좋은 기회가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번에 경성의 몇몇 소보들은 더 이상 짧게 지나가고 마는 헛소문을 싣지 않았다. 그들은 화력을 총동원하여 요 몇 년 동안 누가 바다로 나서서 가장 많은 이익을 얻었으며, 또 누구누구가 해상무역을 하여 얼마나 많은 은자를 벌어 들었는지 등 그 진위를 모른다고 말하지 않고 취재한 결과를 적었다. 이런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비록 소보의 내용이라는 것이 반은 가짜일지 모르지만, 이렇게 바다와 관련된 소식들이 계속 발표되자, 일명 구경만 하던 사람들조차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알고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큰돈을 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바다로 나갔다가 태풍과 풍랑을 만나는 불운아들은 자동적으로 무시되었다.
그들 눈에는 정말 이익을 얻을 것만이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부(富)라는 것은 인류의 영원한 화두였고, 이 화두는 계속해서 가열되기만 하였다. 제아무리 청렴하고 고결한 한림관이라고 할지라도 늘 이에 대해 고통을 받았다.
‘그 외국인들과 장사를 하면 그렇게나 돈을 벌 수 있다던데.’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도 문중의 사람들을 동원해서라도 뛰어 들어야 하는 분야인가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 봐야 했다.
그러나 이 이윤들은 확실히 그들이 고생해서 받는 약간의 윤필비보다 훨씬 많은 이윤이었다. 친지들 중에 포목, 찻잎, 도자기와 관련이 있는 집들은 특히나 더 준동하기 시작했다.
원래 이러한 화제 거리는 큰 이변이 없는 한, 보통은 사람들 사이에서 며칠 정도 회자되다가 그 자취를 감추기 마련이었다. 어쨌든 이 세상에는 더 새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소문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멀리 남쪽에 있어서, 아무도 이 일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해 줄 수 없었으니 기껏해야 뜬소문으로 막을 내렸어야 하였다.
그러나 이 일이 점차 수그러질 때 즈음, 실제로 조정에서 이 이야기가 언급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일단 은광을 발견한 사건은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고 하였다. 한 집안의 형제 몇몇이 어느 섬에서 발견했다고 하는데, 그들은 본래는 이 사실을 감추려 하였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일개 상인 신분이었고, 심지어 그 섬에는 토착 원주민들이 있어서 그 은광을 어찌 할 방도가 없어 귀국하여 도움을 얻고자 문중에 이 사실을 알렸는데, 실수로 정보가 누설되어 온 경성에 일파만파 일대 파란을 불러일으킨 모양이었다.
그 상인 집안 문중의 수장은 조정의 대리사(*大理寺: 사법장관) 우소경(右少卿)인 정(郑)씨 성을 가진 정4품직 관원이었는데, 벼슬이 크지 않은 터라 혹여 이 사실이 누군가에 의해 참언(*谗言: 중상 모략하는 말)으로 쓰일까봐 문제의 소지가 있어서 하는 수 없이 황제 앞에서 먼저 나서서 이 실상을 고한 것이었다.
황제는 이 사실을 알게 되자 매우 기뻐하며, 바로 은광을 발견한 곳으로 수군을 파견하여 일대를 살펴보게 하였다.
조정에서는 한 번 벌어진 일에 대해선 다른 이들을 좀처럼 속일 수 없었다. 통제력이 막강한 황제가 특별히 입단속을 당부한 일이 아니면 관료들 사이에는 소문들이 바로 쫙 퍼져나가곤 하였다.
더욱이 경화소보 같은 지면 매체의 존재로 인하여 소문은 더욱 빨리 퍼져나갔고, 다시 한번 이 소보의 배후에 아주 막강한 인물이 뒤를 봐주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여기에 이 소문에 날개까지 달아준 건 사실 황제의 선포였다. 만약 조정에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은광을 발견한다면, 찾아낸 자에게 작위에 봉해주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신분을 막론하고 말이다.
작위에 봉해질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큰 유혹이란 말인가! 개국 이래로 다시는 더 작위에 봉해진 인물이 없다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작위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다니!
물론 황제는 어떤 위치의 작위를 내린다거나 세습가능 여부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갈 곳이 없는 망명자나 혹은 바다로 자주 나갈 일이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은광이나 금광이 하나라도 발견되면 자기 스스로 몰래 빼돌려 이익을 취하거나 아니면 조정에 알려 상을 받는 것, 모두 다 큰 이득일 것이었다.
황궁에서 전해진 이 소식은 한걸음 또 한걸음 확산되어 나가더니, 다음 날에는 소보에 기사로 보도되면서 일파만파 더 번져나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소수의 뭇 사람들 사이에서 토론 주제로나 쓰이던 사건이었는데, 전에는 마치 작은 파도와 같았었다면 지금은 격랑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신하부터 백성까지, 권세가 있는 자부터 일반 백성들까지, 요즘 사람들의 화제는 모두다 바다 밖과 관련된 해외의 일이었다.
해외에 정말 황금이 그렇게 많은가, 내 집에서 만드는 수공예품이 정말 그렇게 외국에서 잘 팔릴 수 있을까, 오랑캐들이 정말 그렇게 야만적이고 무지한 자들인가…….
이런 과정에서 해외의 문물을 다룬 책들은 인기를 끌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서적을 통하여 해외와 관련된 정보를 찾고자 하였는데, 가능한 한 금광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정보들을 수집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은광을 발견한 정씨 집안의 사내는 <모험기>의 광팬이었는데, 일반적인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골수 열혈 광팬이었다. 그가 사람들에게 맹세하길, 자신이 <모험기>에서 그 지역에 대한 묘사를 보고 그냥 한번 둘러보기나 하자는 마음으로 해당 지역을 가보려고 했는데 실제로 은광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 일로 인해 이번에는 실제로 경성에 돌아다니던 모든 <모험기>가 단번에 매진되었다. 사장정이 출판한 것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기회를 노리고 바로 해적판을 제작하였는데, 이런 일에 가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사장정이 다 관리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어쨌든 돈은 벌 수 있으니 그냥 다 같이 벌자는 분위기로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고청운의 ‘일침황량’이라는 필명도 단번에 유명해져서 사람들은 모두 그 필명을 사용하는 진짜 인물이 누군지를 찾아내려 하였고, 진짜 작가 본인에게 혹시 무슨 믿을 만한 소식이 더 없는지 확인하고자 하였다. 송죽서재에서 아무리 우연의 일치라고 말해도 이미 광분한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을 본 고청운은 그저 집에 틀어박혀서 밖을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날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진짜 누가 찾아와서 어서 은광이나 금광 같은 곳을 한두 군데 더 말하라고 협박이라도 하면 어쩌나 싶었다.
한편으로 고청운은 사장정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대중들의 열화는 사그라질 기미가 없어 보였기에, 그의 비호가 없었다면 자신의 정체가 이번에는 정말로 세상에 드러났을 지도 몰랐던 것이다. 물론 아무리 그의 비호가 있었다고 한들, 그들 중 어떤 이는 제 아무리 사장정이라고 해도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신분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었다.
슬슬 그의 정체가 노출되기 시작했던지라, 소식통이 있는 자들, 알 만한 자들은 다 이미 작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고청운은 고의든 아니든 간에 해외의 일에 대해 묻는 관료들에게는 단칼에 절대적으로 우연의 일치라고 딱 잘라 말했다. 이것은 모두가 다 순전히 허구라며 말이다.
고청운은 모두 꽤 이성적인 사람들이라 자신에게 무슨 일을 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들 신중하여 관직을 맡고 있는 것일 것이었다. 일반적인 민간 백성들보다 한 단계 높은 신분이었던 그들은 그저 궁금했을 뿐이라, 우연히 그와 마주칠 일이 생기면 궁금증에 물어보는 정도로만 그쳤다.
방자명 같이 화본을 즐겨보는 관료도 드물었으니 말이다.
다만 고청운이 절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뜻밖에도 황제가 불현듯 내방한 것이었다.
* * *
이날, 황제의 가마가 한림원에 들이닥쳤다. 신임 서길사를 뽑는 시험장에서 나온 영안제(永安帝)가 돌연 고청운을 찾아가 물었다.
“신지, 요즘 난리가 난 그 <모험기>는 자네가 쓴 것인가?”
고청운은 예를 올린 후 영안제 앞에 서서, 감히 황제의 용안을 직시하지 못하고 영안제의 용포만을 바라보면서 고했다.
“폐하께 아뢰옵니다. 예, 그렇습니다. 이것은 몇 년 전 소신이 그저 유희삼아 만든 작품일 뿐입니다. 수록된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소신이 외국인들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을 가공하여 실은 내용들로, 그것들은 다 허구라 사실과는 거리가 먼 것들입니다.”
‘마음이 꽤 조마조마한데 폐하께서는 지금 어떤 태도를 취하고 계실까? 나를 탓하시고 죄를 물으시려나?’
그는 지금 한림원 동료들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등 위로는 가랑잎이 떠다니는 듯 식은땀이 나고 있었다.
안 그래도 그는 며칠 동안 공포에 질려 있었는데, 지금 황제가 하문까지 하니,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앞으로 자신에게 찾아 올 번거로움이 적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하하!”
영안제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황제는 손가락을 내밀어 고청운을 가리키더니 웃으며 말했다.
“신지야, 신지! 자네가 쓴 화본이 꽤 괜찮더구나. 짐이 앞서 몇 장을 넘겨 읽어 보았는데, 읽어 줄만 하였다.”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 나자 머릿속에서 무엇인가 쿵 하고 울리는 것을 느꼈다. 모든 소리가 자기에게서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졌고, 눈앞에 보이던 모든 것이 흐물거리는 것 같았다.
‘폐하께서 내가 쓴 화본을 읽어 보셨다고? ‘괜찮았다’라니? 세상에나, 어찌 이리 실감이 안 날 수가 있지?’
삽시간에 그의 머릿속에 광고로 쓸 수 있을 만한 어구들이 한가득 쏟아져 나왔다.
[황제가 보는 화본, 당신도 소장할 수 있다.]
[황제를 매료시킨 화본.]
[황제조차 칭찬한 화본.]
[나는 황제와 같은 화본을 본다.]
[황제도 보셨는데, 당신은 아직도 보지 못했습니까?]
…….
저도 모르게 엉뚱한 광고가 그의 머릿속을 떠돌고 있었다. 정말이지 그는 너무나도 놀라서 고장 난 듯했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부끄러웠다.
이 상황을 믿지 못하는 것은 고청운 뿐만이 아니었다. 대청에 서 있던 다른 관리들도 매우 놀랐는지, 대부분 멍하니 있는 꿩모양 나뭇조각처럼 서 있었다. 대청 안은 온통 황제의 해맑은 웃음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황제는 제대로 권력을 장악한 후로 조정에서도 매우 독단적이었는데, 황제의 거동은 정말이지 가끔씩 자기 마음대로였다.
이어진 물음들에 고청운은 모두 솔직하게 대답하였다. 다행히 황제는 더 이상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황제는 산술 서적과 관련하여, 고청운에게 이 뒤로도 관련된 책을 잘 써보라고 한두 마디 격려하고는 다시 자리를 옮겨 다른 사람에게 하문하기 시작하였다.
고청운은 멍한 상태로 원래 자신이 있던 위치로 물러갔고, 황제가 떠날 때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내가 이렇게 폐하의 눈에 들게 된 걸까? 나도 이제 조정대신의 반열에 올라볼 수 있게 되는 걸까? 이렇게 인생의 절정에 오를 준비를 하게 되는 건가?’
자기도 모르게 고청운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번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