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격랑 (1)
“나는 이해할 수가 없네!”
사장정이 그의 면전을 맴돌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긴장한 것 같기도 흥분한 것 같기도 한 표정이 역력했고, 심지어 목소리마저 조금 떨리고 있었다.
“신지, 만약에 진짜라면, 자네는 대박이 난 걸세! 아니, 우리가 대박이 난 것이지! 하하. 당장 <모험기>의 추가 인쇄 작업에 돌입해야겠군! 지금 당장!”
여기까지 말은 마친 사장정은 요염한 눈을 빛냈고, 표정만은 매우 엄숙하게 말을 이었다.
“신지, 내게는 솔직히 말해주게. <모험기>에 나오는 내용이 사실인가? 책에 나오는 그 지명들을 다 포함해서 말일세.”
고청운은 일찌감치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생각해 두었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본 그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도 알고 있을 걸세. 난 처음 경성으로 시험을 치르러 오는 길에, 여러 지방에 정박해서 배에서 내려 유람을 즐겼었지. 그때 여러 외국인들과 교류해 볼 기회가 있었고, 바다 밖에 있는 세상에 그런 곳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네.
내 책에 나와 있는 어떤 지명은 진짜고 어떤 곳은 가짜일세. 예를 들면, 신독이라는 곳은 일 년에 벼가 세 번 익는데, 그곳에는 빵이 열리는 나무도 자라고 있다네. 현지 사람들은 매우 게으르다고 하지, 하긴 매일 일정 시간만 일하면 수확이 있을 뿐만 아니라 밥도 배불리 먹을 수 있으니 말일세. 이런 이야기들은 그때 만난 외국인들이 알려줬는데 재미가 있기에 화본에 넣었지.
또 어떤 지역의 원주민들은 모두 목에 금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데, 이는 그 지역에 노천 금광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네. 그곳에서 금은 아주 손쉽게 구할 수가 있단 말이니 말일세. 하지만 그 지역의 원주민들이 너무 매서운데다 그 당시 외국인들의 세력은 너무 미약해서 그들로는 어찌 해 볼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사실이었는지까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네.”
고청운이 두 손을 펴 보이며 어쩔 수 없다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사장정의 흥분된 표정도 점차 거두어들여졌다.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 보던 사장정은 고청운이 이치에 맞는 말을 했다고 생각되었다. 결국 그도 아직은 해외에 나가 본 적이 없었다.
‘화본 역시 얻어 들은 풍문들을 가공해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설령 진짜 금광이니 은광이니 하는 것들을 발견했다고 해도 우연의 일치일 거야.’
이런 생각이 들자, 사장정은 괜한 흥분을 한 것 같아 진정을 하며 느럭느럭 말을 이었다.
“우선 <모험기>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이야기하세. 이제 자네 산술 서적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볼까? 아까 자네도 보았지, 아주 잘 팔리고 있다네.”
고청운은 감격스러웠지만 얼굴에는 크게 드러내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괜찮은 것 같더군.”
게다가 얼마 전에는 산술 연구를 하는 선배에게 칭찬까지 들었고, 또 다른 부서의 선배가 한림원을 특별히 내방하여 그와 산술을 논하기도 하였다.
중점은 산술의 일부 명사적 정의, 그리고 수식의 계산 과정에 두고 있었는데, 고청운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좌중에 다른 의견이 있는 사람이 나서서 다 같이 차분하게 변론하기도 하였다.
아마 산술을 좋아하는 학자들이 그간 너무 적어서인지, 모두들 고청운이라는 후배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다만 지금껏 풀리지 못했던 난제들을 고청운이 모두 다 일일이 풀어내는 것을 보고는 소위 선배 수학자(數學者)란 사람들의 표정은 조금씩 복잡해졌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시에 정말 체면을 구기는 일이 있었더라도 서로 그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고청운은 요 며칠간의 산술적 ‘사투’ 끝에 수학자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셈이었다. 예전에는 동년배들 사이에서만 산술적 인지도가 있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이쪽 바닥의 모든 선배들도 다 그를 알게 되었다.
유일하게 고청운이 아쉬웠던 것은 산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들 그와 같이 품계가 비교적 낮은 편이었다는 것이다. 그들 중 품계가 제일 높은 사람은 4품이었다. 만약 황제의 지지가 없었더라면, 지금 과거 시험에 산술 문항은 들어가 있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산술을 하는 사람은 아직 많지가 않았지만, 고청운은 산술이 다른 이과 학문의 기초가 되는 학문이기도 하고, 또 과거 시험에서 다루는 산술이 어려워지면 앞으로 산술을 연구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고 믿었다.
고청운은 자신의 기초가 좀 더 견고해지기를 기다리거나 혹은 자신의 명성이 좀 더 높아졌을 때, 고대시대 도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백성들을 우롱하는 데 사용했던 수작을 과학적인 접근법으로 명확하게 설명하려고 하였다. 예를 들면, 연금술 같은 것 말이다.
그는 고대에 이렇게 오랜 시간을 살아가면서 이런 사람들을 속이는 행위에 대해 진작부터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만 지금의 자신은 사회적 지위가 경미하여 도사 같은 사람들과 맞서기 좋지 않은 형편이었다.
물론 그런 사람들과 맞서기 전에 집에서 몇 번이고 시험을 해 봐야 할 것이었다. 다행히 그는 이과를 전공했던 사람이라 아직 이쪽 학문으로는 기억이 꽤 남아 있으니, 천천히 잘 연구하고 계획을 짜서 세상 사람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진행해 볼 생각이었다.
“그러게 말이야. 자네가 누구인가? 장수원과 담자례랑 비교도 할 수 없지. 무슨 병에 걸린 것도 아니면서 오늘, 내일 하는 인생인 것처럼 써 갈긴 시들보다 자네가 쓴 산술책이 훨씬 대단한 것이 아닌가?”
사장정은 득의양양하며 한마디를 했고, 그 덕에 고청운의 생각의 고리도 함께 끊겼다.
고청운은 힘이 빠져서 그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병에 걸린 것도 아니면서 오늘, 내일 하다니, 무슨 그런 말이 있는가? 그들은 시를 잘 지었네. 자네가 시를 감상할 줄 모르는 게야.”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문학적 명성이 이렇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들이 지은 시가 떨어진다면,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추켜세울 수 있었을까?
“어떻게 우리 공주마마와 똑같은 말을 하는가? 우리는 같은 편이 아니었던 겐가?”
사장정은 불만스러웠다. 공주도 자신에게 이런 말을 했었던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 칭찬을 받는 것이라고는 이 희멀건 얼굴뿐이라는 것이 참 싫었다.
사장정은 자신의 편은 오직 신지라는 이 친구 하나뿐이라 여겼는데 그도 같은 생각일 줄은 몰랐다.
고청운은 그의 불만을 눈치채지 못한 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청운은 공주가 간미처럼 재능 있는 시인들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전에 공주부에서 연회를 베푼 적이 있었는데, 이때 경성에서 재능으로 유명세를 얻고 있는 청년 인재들을 초대하여 대접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 일가도 이때 초청을 받아서 공주를 한 번 만나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보아하니 공주는 이미 사장정을 제대로 휘어잡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연회 이후 안락공주는 좀처럼 집에만 틀어박혀 외출하지 않았고, 연회도 거의 개최하지 않았다.
“내 어디 두 눈 시퍼렇게 뜨고도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던가.”
고청운은 점원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이제 나가려고 하였다.
사장정은 그의 뒤를 쫓아다니며 쫑알거렸다.
* * *
그러나 세상의 일이란 것이 어디 그들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던가. 그 둘이 막 서점 안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또 다른 사람이 <모험기>에 대한 일을 문의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고청운과 사장정은 눈을 마주쳤고, 이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은광을 찾았다는 소식도 사실일까?
즉시 결단을 내린 사장정은 2층으로 사 사장을 불러내 인쇄 공방에 연락하여 <모험기> 5,000부를 더 찍어내라고 시켰다.
고청운과 사 사장 둘 다 그의 행동이 너무 대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정이, 그 수량은 너무 모험적이지 않은가? 아까 그 사람이 경화소보에서 소식을 접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경화소보의 성격으로 보시게, 그들은 그저 세상에 혼란거리만 찾아 퍼트리는 자들이네. 내일 소보에 내용이 실릴 것 같으니, 우선 내일 이 소식이 확정되는 것을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네. 그때 인쇄 작업에 들어가도 늦지 않을 게야.”
어차피 사장정의 작업장에는 옛날에 인쇄하면서 사용했던 인쇄판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에 지금 와서 다시 인쇄 작업에 돌입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고청운은 <모험기>의 저력이 이미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한 번에 너무 많이 인쇄를 했다가 은광을 찾았다느니 하는 소문이 거짓으로 판명이 나면 너무 큰 손실이 있을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장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진짜일 것 같은 예감이 드네. 게다가 설령 가짜 소문이라는 것이 판명된다고 해도, 팔리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야. 어차피 일침황량의 책은 조금씩 계속 팔리고 있으니, 어쨌든 사람들이 다 사 갈 것이네. 기껏해야 다 팔리는 데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릴 뿐이지.”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은자를 내는 사람은 그라는 것이었다.
고청운은 이에 더 이상 그를 만류하지 않았고 그 자신도 사실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다만 고청운은 당부의 말은 잊지 않았다.
“인쇄량을 더 늘리는 것은 상관없으나, 표지에 몇 글자를 더해주게. ‘본 이야기는 만약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순전히 우연의 일치일 뿐입니다.’ 라고 쓰면 되네.”
사장정은 그 말을 듣고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의 뜻이 잘 이해됐기 때문이었다.
글씨를 더 추가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귀찮은 일에 휘말리느니 그럴 여지를 줄이는 것이 더 나았다.
사장정은 이 일이 발생했으니 진상 조사를 하러 떠나길 원했고, 고청운은 돌아가 잠시 조용히 있고 싶었기에, 둘은 함께하는 식사를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였다.
만약 이 일이 사실이라면, 그의 화본이 대대적으로 팔리기 시작하는 것은 아주 작은 영향을 받은 부속적인 결과가 될 뿐이었다. 그는 이로 인해 그 자신이 아주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돌아가서 냉정하게 후속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고려해 두어야 하였다.
* * *
고청운은 집에 돌아와 타고 온 말을 하인에게 내팽개치듯 맡기고는, 서재로 들어가 자신이 쓴 <모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빠르게 훑어보았다.
‘휴우, 다행이다.’
자신이 은광에 대해 묘사한 부분은 하나도 구체적이지 않고 대략적인 범위만 적어 두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줄거리의 진행 문제 때문에 지형이나 지명 따위를 아주 세세하게 설정해 놓은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감히 단언컨대 이것은 그가 지어낸 것들이었다.
그래서 만일 누군가가 정말 자신의 책으로 은광을 찾았다면, 그것은 정말 운 때문이지 절대 고청운이 성찬을 차려준 것이 아니었다.
고청운은 책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뒤이어 고삼원을 찾은 고청운은 그가 이상하게 쳐다보는 눈길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이 많은 곳을 찾아 은광에 관한 구설수를 확인해 보라고 분부했다.
고삼원이 나가고 난 후, 고청운은 마음을 굳혔다.
‘난 그저 화본을 지은 것뿐이며, 이런 일에는 결코 연루될 것이 없어. 모두들 기껏해야 그 사람의 행운을 부러워할 뿐이야.’
그러나 일의 발전 방향은 그의 예상을 벗어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