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중쇄 (1)
고청운은 생각을 중단하고 깔끔한 동작으로 서신을 뜯어보았고, 곧이어 흐르는 구름 같고 흘러가는 물 같은 막힘없이 자연스러운 열 글자짜리 문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 녀석, 뽐내는 것을 좋아하는 기질은 여전하군. 예전보다 글을 더 잘 쓰게 된 것 같은데?”
고청운은 눈을 희미하게 떠서 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방희림이 행서(*行书: 한자 서체의 하나, 해서와 초서의 중간 형태로 해서의 획을 약간 흘려 쓰는 한자 서체)로 쓰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과거 시험 혹은 관직에서는 모두 해서(*楷书: 한자 서체의 하나, 예서(隸書)에서 변한 것으로서 자형이 가장 방정(方正)함)로 쓰는 것을 요구했기에, 그는 사사로이 쓰는 글에서는 행서로 글씨를 쓰는 것을 특히 좋아했다.
이윽고 열심히 서신을 읽어보던 고청운은 깊게 심호흡을 하며 놀란 마음을 추슬렀다.
방희림이 현령으로 부임하여 막 업무를 시작했을 때는 확실히 일의 진척이 순조롭지 않았다. 현지의 퇴직 관료들이나 유지들, 향신들 모두 그에게 점잖게 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내린 지시가 관아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권력이 태반 이상은 제대로 떠받들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그들 사이에서 배척당하여 실권을 잃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방희림은 제대로 된 판결을 내리는 모습을 과시하여 실권을 되찾는 방법을 돌파구로 삼기로 하였다.
요 몇 년간 과거 시험의 내용은 매우 실전 위주의 내용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말을 안 하고 넘어가려야 넘어갈 수 없는 건, 전 왕조 같이 책만 파고들은 책벌레들이 이번 왕조의 과거 시험을 치렀더라면 시험에 제대로 합격할 수 있는 진사가 하나도 없었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적어도 요즘 진사들은 자신의 생활 정도도 스스로 책임질 수 없거나 기본적인 말단의 상식이 부족한 사람이 매우 적었기에, 방희림이 돌파구로 선택한 방법은 매우 교묘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율법을 제대로 숙지한 그는 독립적으로 안건들을 판결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관아의 하급 관리들에게 속지 않았다. 거기에 그간 오래 묵혀져 있었던 몇 가지 사건을 제대로 해결해내자, 백성들 사이에서 그의 지명도가 빠르게 올라가면서 자연히 그에 대한 신망도 어느 정도 두터워졌다.
이 내용들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고청운은 그저 방희림이 정말 대단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뒤에 나온 내용들이 그를 탄복시켰다.
바로 방희림이 사람을 죽인 것이었다. 하급 관리인 서기 하나가 윗사람을 기만하고 아랫사람들도 속이고 다녀, 방희림은 그를 먼저 감옥에 투옥한 후 천천히 심리(審理)를 진행하여 그 진상을 캐내려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서기가 믿는 곳이 있어 두려움을 몰랐던 것인지, 생각지도 못하게 방희림의 면전에 대고 감히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을 거라며 겁 없이 떠벌렸던 것이다.
이 사단의 결과는 고청운의 예상을 벗어나 진행되었다. 방희림이 곁에 있던 포졸의 칼을 가로채서 단칼에 서기를 베어 버린 것이었다.
‘베다니! 베어버리다니!’
생각지도 못하게 방희림은 서기의 목을 베어버렸다.
고청운은 오한에 몸을 떨었다. 막 진사에 합격하고 저잣거리를 말을 타고 돌며 장원유가를 하던 그날, 그는 머리에 작약 꽃을 꽂고 허허 웃고 있었다. 그랬던 그의 모습을 다시 서신 속의 살기등등한 모습과 대비해 보자, 고청운은 저도 모르게 탄복하는 마음이 솟아올랐다.
방희림은 참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정말이지 결단력이 있었다.
자고로 관리끼리 서로 화목하지 못하면, 이것은 집안에서 정실과 후첩이 서로 싸우고 있는 형국과 같다고 하였다. 동풍이 서풍을 압도하거나 압도되는 상황만 만들어질 뿐, 두 세력이 영원히 동시에 존재할 수 없음을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계층은 본디 함께 조화를 이루며 지내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방희림이 관리를 벤 것을 특별히 서신으로까지 적어 보낸 건 필히…….’
고청운이 생각을 해 보니, 아마도 방희림은 경성에서 이 일로 인해 자신에게 불리한 여론이 조성되는 것을 염려되어 사전에 미리 이런 일이 발생했음을 알려준 것 같았다.
‘나도 관직에 있는 몸이니, 만약 일이 정말 방희림이 우려한 대로 진행된다면 난 반드시 그를 강하게 지지할 것이다.’
고청운은 속으로 이 일을 한번 돌이켜 되짚어 보고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이 일은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죽임을 당한 서기에게 확실한 죄목만 있다면, 방희림의 신상에는 결국 그 어떤 해도 가지 않게 될 것이었다. 결국 권력을 쥔 쪽은 관리였다.
“숙부, 말을 벌써 준비해 두었습니다.”
고삼원은 고청운이 좀처럼 나오지 않자 얼른 들어와 상황을 다시 알려 주었다.
고청운은 물시계로 시간을 확인해 보고는 사장정과의 약속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았다. 방금 문을 나서기 전에 후원에서 두 아이와 한바탕 치근거렸는데, 지금은 또 서신을 읽느라 시간을 다시 지체해 버렸으니 확실히 더 빨리 서둘러야 했다.
고청운은 다른 사람들을 대동하지 않고 혼자 말을 타고 곧장 대문을 나섰다.
* * *
“신지! 드디어 왔군.”
사장정은 고청운이 나타나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내 늦어서 정말 미안하네.”
고청운은 허리춤에서 자신의 쥘부채를 꺼내어 냅다 부채질을 하였다.
‘이런 궂은 날씨 같으니라고, 정말이지 너무나 더운 날씨로구나.’
“오는 길에 길거리에 행인들이 너무 많아서 말에서 내려 걸어오는 수밖에 없었네.”
고청운은 말을 하면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오늘은 휴일이잖은가. 더구나 영화길 쪽에서 오늘 하루 종일 축국 경기가 있다네. 다들 경기를 보러 나왔을 테니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지.”
사장정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 뒤, 고청운을 자세히 뜯어보면서 아주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며칠 전 무심코 길에서 소석이랑 아버님을 뵈었지. 소석이는 너무 시커멓게 타서 흰 치아만 남았던데, 어째 자네는 하나도 검게 타질 않은 겐가?”
고청운은 기분 나쁜 듯 그를 곁눈질했다.
“그건 알아서 어디다 쓸 텐가?”
고청운이 돌아온 후 며칠 간 아무도 아이의 용모에 대해 별다른 의견을 언급한 이가 없었는데, 사장정만 유일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고청운의 말에 사장정은 입만 삐죽거리다가 더는 묻지 않았다.
고청운은 혼자 속으로 웃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장정은 전통극 연기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 것인지, 혹은 자신의 외모가 원체 여성스럽게 생겨서인지, 자신의 외모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서로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한번은 자신의 이마에 생긴 콩알만 한 여드름 때문에 사장정의 기분이 좋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그는 좀 이상한 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남색을 가까이하는 취미는 없었고, 심지어 사내들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매우 혐오했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여인이 맞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스스로의 외모를 아끼고 가꾸는 걸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성혼한 지금은 부인인 공주와 함께 연지 등의 피부에 바르는 제품에 공통 관심사를 둘 정도였다. 매번 명절을 보낼 때 그가 보내오는 선물에는 그들 부부가 직접 만든 피부에 바르는 제품이 들어 있었는데, 이것은 심히 일반 가정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좋아, 그 얘기는 말고, 난 자네가 쓴 산술 서적 이야기를 좀 해야겠네.”
산술 서적 이야기를 꺼내는 사장정의 어투가 꽤 흥분되어 있었다.
“이 며칠 동안 자네를 만날 겨를이 없었네. 인쇄 공방에서 인부들을 감독하며 책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인쇄해서 출판부수를 늘리느라 그랬지.”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비록 서로 얼굴은 직접 보지 못했으나, 고청운의 고향집에서 준비해 온 특산물이 공주부에 도착하자 사장정은 곧바로 서신 한 통을 보내왔었다.
서신의 내용으로는 고청운이 선물한 기석(奇石)에 대한 애정표현 말고 거의 대부분이 산술 서적에 대한 요즘 지난 정황들에 대한 것이었다.
확실히 산술 서적이 출간되고 3개월간은 잘 팔리지 않았다. 단 몇십 권 정도만 지지부진하게 팔려 나갔을 뿐이었는데, 8월경에 그 나이든 수재의 합격 사건이 터지고 나자마자 송죽서재에 남아 있던 재고 400권이 삽시간에 앞다투어 매진되어 버렸다.
그래서 어제까지 급히 인쇄 작업을 진행하고 나서야 그는 새로 추가 발행한 산술 서적을 진열대에 겨우 올려놓을 수 있었다.
이 산술 서적이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응시생들에게 매우 유용하다는 것이 증명되자, 예상했던 대로 이 책은 경성에 거주하는 고시생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지금 경성에 얼마나 많은 문인들이 살고 있을까? 그중 제일 기본 학문부터 공부해야 하는 문인은 또 몇 명이나 될까?
그 누구도 정확한 숫자를 산출해 낼 수는 없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쪽의 출판 시장이라는 것이 굉장한 수요가 잠재되어 있는 거대한 시장이라는 것이었다.
사장정은 비록 다른 방면으로도 사업을 일구고 있었지만, 그의 주요 관심사는 늘 송죽서재와 관련된 쪽으로 치중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다른 사업들보다 이쪽 계열의 사업으로 명성을 얻는 것이 조금 더 대외적으로 가치 있게 평가받기도 하였고, 또 다른 이유로는 그가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가 이 서재를 인계받았을 당시엔 수입보다 지출이 더 커서 송죽서재는 부도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지금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통해 단박에 지금의 위치로 밀어 올릴 수 있었다. 심지어 송죽서재는 지금 경성 내 제일 큰 서점 중 하나로 추대되고 있었고, 이러한 성취감은 다른 사업에서 느끼는 감정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고청운도 이런 점을 잘 헤아리고 있었기에, 사장정과의 합작은 늘 매우 유쾌하게 진행되었다.
“자네, 수고가 많았군, 그래!”
고청운은 부지런히 그에게 뜨거운 차 한 잔을 따라 주며 말했다.
“하하, 힘들진 않았네.”
사장정은 거들먹거리며 차 한 모금을 마시고는 이어 쥘부채를 펴서 입과 코언저리를 가렸으나, 요염한 눈매에 서린 웃음기까지는 어떻게 해도 가려지지 못했다.
“나는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참 좋은 것 같네. 내 가게에 놓인 책들이 문인들로 하여금 큰 호응을 받는 것을 보고 있는 게 참 좋아. 여기서 오는 성취감이 매우 크다는 말일세! 아, 그렇지 참, 이번에 내가 2,000부를 더 찍었네. 1부당 가격이 400문인데, 계산을 해 보니 이번 인쇄 물량까지 다 팔리고 나면 그동안 들인 원금 회수가 되겠더군.”
사장정의 말투에는 감탄이 어려 있었다.
“신지, 실은 이번 책을 간행하기로 했을 때만 해도 분명히 손해를 볼 줄 알았는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나중에 좀 더 큰 이윤까지도 남길 수가 있을 것 같네. 이런 경우는 정말 흔치 않아!”
사장정은 눈을 반짝이며 고청운을 바라보았다.
그가 공주와 함께 이 산술 서적을 연구해 본 결과, 산수하기를 싫어하는 두 사람조차도 이 책은 읽을 수 있었다. 그 말인즉슨 내용마저 이해할 수 있었다는 말이었다. 심지어 읽는 도중 잠도 오지 않았다.
이 사실은 정말이지 사장정을 몹시 흥분시켰다.
‘여기 나오는 내용만 잘 이해해도, 이후로 외숙부가 더 이상 날 꽃자수 베개(*绣花枕头: 겉모습만 번지르르하고 실제로는 재능과 학식이 없는 사람)라고 부르는 일은 없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