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묻다
형제가 서재를 나서자, 소석이 문밖에서 머리를 내밀고 들어와 문설주에 걸터앉아 까만 눈을 반짝이며 쭈뼛거리며 물었다.
“아버지, 그럼 저를 때리시는 것도 사랑해서 그러시는 건가요?”
요사이 소석과 소어는 동네에서 정신없이 노느라 아주 바빴다. 매일 글공부가 끝나면 바로 밖으로 뛰쳐나가서 놀고는 했는데, 한 번은 소석이 소어를 데리고 수심이 깊은 곳까지 헤엄쳐 간 일이 있었다. 소석은 자신은 수영도 잘하고 사고가 날 일이 없다며, 소만의 만류도 듣지 않았다.
고청운은 그 일을 알고 나서 저녁에 곧장 소석을 혼냈다. 소석은 볼기짝을 등나무 매로 맞았지만, 가족 누구도 고청운을 말릴 수 없었다. 만약 고청운이 이번 귀향길에 등나무 매를 챙겨 오지 않았더라면 소석의 작은 엉덩이는 더욱 심하게 아팠을 것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꼬맹이는 아직 화가 덜 풀렸던 듯 그의 앞을 걸을 때마다 숨었다. 소석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엉덩이를 때려서 자신의 체면을 잃었다고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청운은 그런 아이를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기강을 바로 잡아야 했던 것이다.
소석은 귀향해서 동네로 돌아오자마자 동네 아이들에게 추앙을 받고 있었는데, 만약 그 아이에게 꼬리라도 달려 있었다면 그 꼬리마저 하늘로 치솟았을 것이었다.
아이에게 매를 든 날 저녁, 고청운은 일기를 쓰면서 스스로 아이에게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아이를 감화시키고자 했던 다짐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도 스스로가 이렇게 충동적으로 매를 들 줄은 몰랐다.
소석의 물음을 들은 고청운은 자신도 모르게 어안이 벙벙해졌다.
‘방금 내 말을 다 듣고 있던 건가?’
“들어오너라. 문설주에서 뭐하고 있는 거니? 아니, 어른들이 말씀하시는데 허락도 안 받고 어떻게 몰래 말을 듣고 있던 게야?”
고청운은 일부러 굳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하여 이날 오후, 고청운은 소석에게 이 일로 또 한마디를 해야 했다.
* * *
이렇게 조용한 날들이 지나 어느덧 한 달이 가고 고청운 일행이 귀경해야 하는 날이 되었다.
이번 이별에 앞서 고청운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부두까지 배웅을 나오려는 것을 극구 말렸다. 아무래도 그들이 자신들을 떠나보내는 것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는 게 편치 않을 것 같았던 것이다.
헤어짐이 아쉬운 것은 당연한 이치라, 가족들은 배에 오르며 북받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고청운은 아버지가 승선하기도 전에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봐 놀라서 재빨리 마음을 추스르며 그를 위로하였다.
“아버지, 지금 숙부의 사업이 정말 번창하셨더군요. 같이 합작하시는 분도 계시고, 직접 오가며 물건을 떼시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물건을 바로 받기만 하면 되니,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시는 건 문제가 되지 않겠어요.”
고청운은 그를 위로했다. 확실히 고이하네 일가족이 여기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을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었다. 게다가 요 몇 년 동안 장사가 정말 잘되었다니! 부두의 유동인구가 더 늘어난 덕분에 물건이 잘 팔린 모양이었다.
게다가 고이하는 이런 조건에 더해 인맥이라는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다. 더 깊은 산촌 마을에까지 물건을 댈 테니, 중간에서 받는 이윤도 좋을 것이었다.
그는 요 몇 년 동안 역시 돈을 좀 벌었을 것이었다.
“돌아가실 생각이걸랑 혼자 돌아가셔요, 저는 아들을 따라 상경할 겁니다.”
아들만을 바라며 경성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던 소진씨 역시 안절부절못해 보였지만, 그래도 아들이 있는 한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시부모님을 모시는 일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진작부터 상경했을 것이었다.
부인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고대하는 그저 너무 지내기 힘들면 1년 반 만에 모든 것을 떨쳐내고 바로 귀향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그는 아들, 손자와 함께 지내고 싶기는 하였다.
손자를 생각하니, 그의 결심이 더욱 확고해졌다.
마침내 중도 귀가가 무마되는 상황을 보고, 고청운은 간미와 눈을 맞추며 슬며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군성에 도착했을 때 고청운은 이미 어느 정도 인맥을 대서 상경하는 길에 타고 갈 상선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일반 여객선을 타지 않고 남의 상선의 배를 따라 귀경하면 더욱 편리하고 안전하며 위생적으로 지낼 수 있었다.
한 달 동안 바다에서 파도와 함께 출렁이던 고청운은 부모님을 모시고 이번에도 숯처럼 검게 변한 아들들과 함께 무사히 상경할 수 있었다.
방인소와 연 씨는 막 도착한 고대하와 소진씨를 매우 환영해 주었다. 그들은 이미 고청운의 부모님이 함께 상경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였다. 고청운이 귀향하기 전에 이미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다.
연 씨는 특히나 더 기뻐했다. 홀로 후원에서 심심하게 지내던 차에 소진씨라는 이야기 상대가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소어도 함께 돌볼 수가 있었다. 그녀의 생각은 간미와도 동일했다.
기왕 부군이 그의 부모와 함께 지내기로 했으니, 그녀의 양친과 함께 지내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저 서로가 더 잘 지낼 수 있도록 적합한 교제 방식을 갖추면 될 일이었다.
방인소를 매우 존경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던 고대하와 소진씨는 더욱더 방인소 부부를 향해 감격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고청운은 그들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안심되었다.
어차피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것만 아니면, 식사도 서로 번갈아서 하게 될 것이니 갈등도 적을 것이었다. 특히 서로 양보할 의사만 있다면, 더욱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의 부모님은 귀경하자마자 소석을 돌보아 주었다. 첫날 소석을 서당에서 데리고 와주는 임무는 고대하에게 인계되었다. 소석이 다니는 서당은 집에서 걸어서 2분 정도의 거리였는데, 이전에는 매일 고삼원이나 방충이 함께 다녀주었지만 다른 하인들에게 맡기기에는 안심이 되지 않았었다.
<홍루몽(红楼梦)> 중의 한 여성 주인공이 겪은 비극이 생각났던 고청운은 아랫사람도 반드시 믿을 만한 것이 못 되니, 아이를 직접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는 사람만은 반드시 조심해서 기용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고대하는 이 임무를 매우 기쁘게 받아들였다. 특히 저녁 무렵에 고대하는 소석을 데리러 나갔다가 소석과 함께 저잣거리에 물건을 사러 다니기도 하였다. 중간에 간식거리나 취두부, 콩꽃 등을 자주 사먹게 되니, 조손끼리 서로 화기애애하게 지내게 되었다.
소어도 간간히 그 길을 따라나서고는 하였다.
* * *
고청운은 귀경한 후 바로 한림원에 가서 도착 보고를 하였다. 그런데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한림원의 최고 책임자인 오 학사가 자신이 저술한 산술 서적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아닌가.
“산술 서적 말이십니까? 대인,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고청운은 이해가 잘 안 돼서 반문해 보았으나, 그의 표정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고청운은 경성으로 돌아와서 아직 사장정도 만나지 못했기에, 자신의 서적이 잘 팔리고 있는지 아직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산술 서적은 비록 그의 이름을 직접 드러내서 출간하기는 하였지만, 출간이라고 해 봤자 작은 일이었다. 짐작하건데 이 일로 인해 오 학사를 불쾌하게 하거나 놀라게 할 일은 아마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었다.
무슨 문제가 연루되어 있지 않은 한 말이다.
고청운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는 머릿속으로 자기가 저술한 산술 서적의 내용이 떠올려 보았다.
‘문제 될 것은 없다!’
만약에 무슨 경전을 해석한 주석집 종류였으면 어떤 사람들이 당장에 찢어 갈겼을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같은 유교라고 해도 내부적으로 여러 갈래의 파로 나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쓴 서적은 산술 서적이 아닌가! 게다가 그는 서적을 다 집필한 후에 스승님에게 보이기도 했는데 스승님은 딱히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은 없었다.
말로써 무슨 유죄가 내려지겠는가. 본 왕조의 학풍은 매우 개방적이어서 거리에서 황실을 비방하거나, 글로써 무엇을 비평하거나, 책을 출판하는 등의 방면에서는 일반적으로 큰 문제를 삼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서적은 출간 전에 전문적으로 심사도 한 번 거친 것이었다.
만약 그가 생활하는 배경이 청나라였다면, 반드시 온몸을 사리느라 무슨 화본이니 산술 서적 같은 것도 집필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신지, 이 <산학초해(算学初解)>라는 서적은 자네 혼자 단독으로 집필 한 것인가? 자네 혼자 생각해내서 완성한 책이 맞는가?”
오 학사는 진중한 얼굴로 고청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눈빛이 매우 날카로웠다.
고청운은 눈을 끔뻑거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대인. 이 책은 하관이 단독으로 집필한 것이 맞습니다. 3년의 시간을 들여서 저술하였지요. 마지막에는 저의 스승님께도 한 번 보인 적이 있습니다만, 크게 고쳐주신 내용은 없었습니다.”
“자네 스승님이라 함은 호부의 방 낭중이겠군?”
오 학사는 분명 알고 있음에도 한 번 더 되물었다.
고청운은 오 학사가 분명히 스승님을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 오 학사는 유명인사이고 교우 관계도 매우 드넓었다. 많은 인재들이 한림원을 거쳐 4부 곳곳의 벼슬자리로 나가지 않는가. 분명히 어딜 가나 그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자들이 있을 것이었다. 그가 소식통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면, 그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을 터였다.
또한, 한림원은 조정의 인재양성소와도 같았다. 이곳의 학문적 소양의 수준이 낮아서야 어찌 황제가 중책을 맡길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오 학사는 이 말을 다 듣고는 손가락을 구부려 광택이 나는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 입을 굳게 닫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청운이 그런 그의 앞에 계속해서 서 있자니 조금 자리하고 있기가 어려웠지만, 조급해하지 않았다. 만약 문제가 있었다면, 그가 경성으로 돌아오자마자 방인소와 방자명이 그간의 사건을 미리 알려주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해 줬을 테니 말이다. 그들은 평상시 이런 일들을 자주 주시하고 있는 편이었다.
그는 잠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몰래 오 학사의 집무실을 관찰해 보았다.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장식들은 간결한 편이었는데, 오 학사가 직접 그린 서화 한 폭이 대범하게 벽에 걸려 있는 것 외에는 다른 물건들이 모두 다른 집무실의 풍경과 비슷하였다.
벽의 서화는 오 학사가 의기양양하게 그린 작품으로 그가 이쪽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게 해준 첫 출세작이라고 하였다.
“신지,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는가? 산술 서적이라니?”
오 학사가 갑자기 입을 열어 고청운의 생각을 중단시켰다.
놀란 고청운은 잠시 뜸을 들여 생각해 보았다.
‘아니, 산술 서적 집필이 뭐 문제가 될 것이 있어서 이리 하문하시는 걸까?’
그가 저술한 산술 서적은 전생에 배웠던 수학 교과서와 약간 유사한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주로 산술적 정의와 예제 정리가 되어 있는 서적이라고 보면 되었다. 이 책은 문제 풀이에 대한 추론 과정을 쓰고 예제를 하나 더 풀면 앞서 기술된 몇 가지 예제보다 조금 심화 및 응용된 연습 문제까지 풀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그에게 익숙한 <구장산술(*九章算术: 중국 고대 수학서)>의 경우엔 수학적 지식을 분류에 따라 9장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었지만, 풀이의 과정이나 이론 설명 없이 실제 응용에만 중점을 두고 서술되어 있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현실에서의 실제 수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쓰인 책이었다.
그가 봐온 기타 산술 서적까지 모두 합해 보아도 문제 풀이와 공식을 유도하는 과정을 기술한 경우는 매우 적었다. 그저 수학 문제에 대한 설명서 정도에 근접한 수준이었다. 즉, 수학적 문제가 생겼을 때, 책들을 찾아 적합한 예제를 골라내어 필요한 숫자를 대입해서 그 값을 산출해내는 수준의 책들일 뿐이었다.
산수에 있어서 예나 지금이나 관련된 이론을 모두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떤 수학적으로 큰 재능을 지닌 인재가 태어나서 일부 수학적 연구에 있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할 수도 있었지만, 이러한 성과들은 그저 그들에게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간 영감과도 같아서 서양처럼 그 기록과 과정을 하나하나 축적해 놓지 않았다.
그러나 고청운은 많은 책을 본 후에 스스로 산술 서적의 구상을 다듬어 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이 책을 어떻게 볼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산술 서적을 쓰는 것은 자신이었기에 자신이 그간 공부를 해 오면서 이해하고 필요를 느낀 바에 맞추어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초보자가 원시 시험까지 치를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이 갖추어질 수 있도록 내용을 구상하여 집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