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교육
오후에 간미의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고청운 일가는 바로 하겸죽의 집으로 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성에서 함께 지내서인지 어른들끼리는 크게 서로 격동하지는 않았으나, 오히려 아이들끼리는 매우 잘 어울려 놀면서 더 깊은 감정을 싹틔우게 되었다.
하겸죽은 지금 1남 2녀를 두고 있었는데, 아들을 하나 더 갖고 싶어 노력 중이었다.
“아들은 아무래도 많은 것이 좋지 않겠나.”
하겸죽이 고심하며 말했다.
“내 남동생이 연거푸 딸 둘을 낳았는데, 우리 어머니께서 그 일로 내 아내와 제수씨만 쳐다보고 계신 탓에 모두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네. 나와 남동생이 더 많은 아들을 둔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지 않겠나. 그리고 내가 이미 30살이 넘었네. 아내 나이 역시 나와 비슷하니, 아이를 더 갖기에는 위험할 수도 있지.”
그 말을 듣고 놀란 고청운은 급히 셈을 해 보니, 자기도 모르는 새에 하겸죽의 나이가 이미 31살이 되어 있었다.
그는 적절하게 몸 관리를 잘했는데, 바람이나 햇볕에 노출되는 것을 삼갔고, 매일 독서와 지인들과의 교제의 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보통은 현학에서 강의를 하였다. 또 이따금씩 답청을 나가 지인들을 방문하기도 하며 부성과 군성에 자주 다니는 편이었다.
그는 겉보기에 20대 청년과 비슷해 보였기에, 고청운은 그가 이미 서른이 넘었다는 사실을 한동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청운은 아직도 그들이 아직 20살 언저리의 나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자네는 나이도 적지도 않은데, 딸을 보고 싶지는 않은가?”
고청운이 말없이 있는 것을 보고 하겸죽이 웃으며 말했다.
“몇 년이 지나면 자네와 난 십대인 학생들 앞에서 스스로를 ‘노부’ 라고 불러야 할 것이네.”
그의 말투가 서글펐다.
고청운은 그를 곁눈질하며 냉소했다.
“사내 둘이서 무슨 출산 얘깁니까. 그리고 제가 몇 살이나 더 어린데, 제게 나이도 적지 않다니, 그게 무슨 말이랍니까? 저는 아직 젊다고 해 주셔야지요.”
그래도 고청운은 생각해보니 그의 할머니와 그의 어머니를 포함하여 장모님까지 나이가 적지 않으니, 이번에 귀경하면 빨리 아이를 하나 더 낳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아이가 생기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마침 사내아이는 집안에 이미 둘이나 있으니, 이렇게 되면 더 이상 남의 집도 부럽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지금의 자신이 한창 젊고 재기발랄하다고 느껴졌다.
‘난 지금이 가장 좋을 때인데 왜 모두들 이렇게 하나둘씩 중년이 됐다고 느끼고 있는 걸까? 우울해지게.’
* * *
그 다음 날, 고청운은 그를 가르쳤던 하 수재네 집에 방문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임계촌에만 머물며 더 이상 외부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반면, 그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고청운은 조옥당 같은 합격 동기들과 친척들 모두가 물론 반가웠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을 선택해서 만나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현지의 현령이라면 반드시 만나보아야 하였다. 그와 현령은 품계가 같았으나 따지고 보면 경성의 관리가 지방 관리보다 반개의 품계 등급이 높았다. 이치대로라면 7품관 현령직보다 고청운의 직급이 더 높은 게 맞지만 현령은 어쨌든 현지의 제일 높은 직위의 관리자였기에, 고청운은 그래도 그와 관계를 잘 다져놓아야만 하였다. 관계까지야 잘 못 다지더라도 최소한 미운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
특히 이 현령은 그래도 그와 같은 해에 진사 시험을 치르고 동진사로 합격한 자였다. 다만 두 사람은 경성에서 개인적인 교분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같은 해 합격한 동기의 관계가 아닌가. 적대적인 관계만 아니라면, 그나마 겉으로라도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정도는 될 것이었다.
그 후 고청운은 현에서 열리는 몇 차례 연회에도 참석하였다. 연회에서는 기본적으로 그에게 초대장을 보내왔는데, 그를 앞다투어 모셔가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는 몇 번만 참석한 후에는 일절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는 나가서 사람들과의 교제의 장을 만드는 것보다 둘째, 셋째 사촌 동생의 학업에 시간을 들이는 것이 더 좋았다. 게다가 누이네 집 아이들까지 있어서 시간이 많이 할애되었다. 그 외에 그는 주로 시간이 날 때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다녔다.
또한, 그는 간미의 마음을 알고, 그녀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서 며칠간 묵고 올 수 있도록 하였다. 그동안 자신은 집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기로 하였다.
그들이 해 주는 이야기라면 옛날의 일이든, 마을의 뜬소문들이든, 고청운은 모두 다 재미있게 들렸다.
고청운은 자신이 다시 임계촌의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이면, 이 소식을 접한 누이들이 남편과 아이를 이끌고 돌아올 것이라 짐작했다. 지난번의 작별 이후의 근황을 묻고 나면 분명히 그 다음부터는 각 집의 아이들을 고청운네 집에 남게 하여 공부를 봐달라고 할 것이었다.
고청운은 주로 그들에게 공부를 하는 방법을 가르쳤는데, 격려를 충분히 해 주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그들이 잘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해 주는 방식을 썼다.
요 몇 년 동안 큰누이의 매형 하상춘의 인삼 재배는 몇 차례 실패를 겪고 난 뒤 규모를 대폭 키워 지난해부터 수입이 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누이인 고연은 그저 금은 장신구가 조금 늘었을 뿐, 예전과 같은 행동거지로 조용히 지내며 겉으로는 나아진 살림살이를 잘 드러나지 않았다.
둘째 누이인 고하는 아들을 낳은 후로 가정형편이 더욱 살기 좋아졌는데, 임요조가 과수 재배기술과 접목을 도맡아 하더니, 이쪽 방면으로 임산현에서 더욱 유명해졌던 것이다. 그가 재배한 과일들은 수로로 운송되기 때문에, 그의 과일은 잘 팔리기도 했고 또 어느 정도 규모를 이루고 있었다.
사촌 여동생인 고용도 아주 든든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 역시 먹고 살 걱정이 없었다.
그리고 고청운은 중점을 고청평, 고청안의 사상교육에 두기로 하였다. 그가 조금 알아본 결과, 현학과 서당에서 괜히 잘 있는 사람들을 가지고 고청운과 비교하며 비아냥거린 모양이었다.
고청운은 11살에 동생이 되었고 12살에 원시에 합격하여 수재가 되었으며, 17살에 거인에 급제하고 23살에 금방에 이름을 올려 진사가 되었다. 이에 비해 고청평과 고청안은 현재 똑같이 어린 학생의 나이였으나 고청운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 형제는 반드시 중압감을 받게 될 텐데, 고이하와 이 씨는 아들들이 대성하기만 바랄 뿐이었다.
이렇게 열등감과 학업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을 때, 결국 형제는 이 씨의 흔한 잔소리에 폭발하였다!
이는 당시 이 씨가 했던 말이다.
“너희 형은 너희랑 같은 나이에 벌써 수재가 되었는데! 애당초 집이 지금보다 더 곤궁했을 때조차 알아서 수재가 되었거늘! 너희들은 왜 이렇게 힘을 못 쓰는 거니? 모두 한 조상에서 나온 아이들이 아니더냐. 어찌 이리 아둔해! 네 어미도 언젠가 고명부인이 되어봐야 할 것이 아니야. 너희 백모님처럼 조정의 녹봉도 받아보고 싶단 말이다. 그런데 너희들 하는 꼴을 보아하니 그건 이제 어려워 보이는구나!”
제 어미조차도 그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데다가 일부 동창들의 빈정거림이 더해지자, 두 사람은 참지 못했다. 그날 밤 고이하와 이 씨가 말다툼을 벌이는 틈을 타, 두 사람은 고청량이 이전에 가출했던 모습을 모방하여 곧장 임양부의 고청량의 집으로 떠났던 것이다.
다행히 그들과 공감대가 있었던 고청량은 그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하여 집으로 돌려보냈는데, 그렇지 않았더라면 가족들이 다 까무러칠 뻔했다.
이것은 형제가 고청운에게 털어놓은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이야기에 고청운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난처하기만 하였다.
두 형제를 양껏 위로하고 달래준 고청운은 속으로 결심을 하고 두 형제에게 진심어린 말을 전했다.
“이 형님은 미숙아로 태어났단다. 어려서 몇 년간은 건강을 되찾는데 모두 다 쏟아 부었지. 조금 더 크자 난 고민했단다. 나는 더 자라서 농사꾼이 되고 싶지 않았어. 그렇다고 장사를 할 줄 아는 것도 아니니, 나 스스로가 잘 되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공부하는 방법밖에는 없었지.
너희들이 태어난 후에야 가세와 형편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었기 때문에, 너희들은 어렸을 때의 나에 대해 전혀 모를 거야.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는 집에 먹을 음식이라고는 기름기가 있는 음식이 거의 없었단다. 그때 먹은 음식에 동물성 단백질은 전혀 없었지. 계란이 유일한 동물성 단백질이자 기름기 섞인 맛있는 음식이었는데, 그때는 내가 어렸고 또 몸이 허약했던지라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내게 그런 음식들을 따로 주셨지. 내 누이들은 그런 것 하나 맛보지 못하고 자랐단다.
또한, 내가 글공부를 할 수 있었던 건 온 집안의 열몇 식구들이 먹을 것을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 매서 겨우 얻어진 것이었다. 가족들이 실망하지 않게, 또 돈을 헛 쓴 것이 되지 않도록 난 계속 공부할 수밖에 없었단다.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죽을힘을 다하여 독서에 매진하는 수밖에는 없었어.
공부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고, 근면함이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야. 모두가 다 아는 이치가 아니더냐. 그러나 독기 없이는 버티기 힘들지. 중간에 아주 여러 번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어.
너희는 내가 천성적으로 고생을 감내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 났다고 생각하니? 사치와 향락을 일삼을 수 있는 환경에서라면 사서 고생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니? 이제 와서 난 내가 독서를 하고 공부를 하는 것이 내 가족들을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것임을 너무나도 잘 깨닫게 되었단다!”
고청운은 옛 시절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정말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나중에는 천천히 참고 견디다 보니 그도 익숙해졌다.
“너희들은 부모님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야. 이 모든 노력은 다 너희 자신을 위한 거지. 생각해 보면, 우리 세대는 그래도 생활하기 괜찮지 않았니. 나와 너희 형제간의 우애가 깊으니, 무슨 일이든 우리는 서로 도울 수 있을 거야.
그럼 우리의 다음 세대는 어떠할 것 같니? 그때가 되면 다들 서로의 성장 환경이 다르고, 자주 조우할 수 없을 테니 감정도 점점 멀어져 결국 남인 것처럼 살아가게 될 거야. 지금 내가 너희를 도울 수 있는 처지이고, 또 너희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졌으니, 손윗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 기회를 잡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니? 누가 계속해서 아랫사람으로 살고 싶겠어.”
고청운은 그간의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솔직하게 조금의 거리낌 없이 내비쳤다.
고청평과 고청안은 고청운의 속사정을 알게 되자 심히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이런 것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형님이 늘 잘 대해 주었기에, 친척 방문엔 으레 미리 준비해 놓은 것 마냥 그들의 학업을 점검해 주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두 형제는 그렇게 멀리까지 자신들의 후대에 대해서는 생각도 해 보지 못했다.
“어제 북산현의 황언성이라는 수재가 나를 찾아온 걸 너희도 보았을 테지. 일전에 나는 그와 함께 부학에서 공부했었다. 심지어 2년 동안이나 같은 정원에 방을 두고 함께 생활하기도 했었지. 그러나 그는 아직도 수재의 신분이고, 나는 이미 7품 관리가 되었다. 그가 내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행동했는지 눈여겨봤다면, 너희들도 결코 느긋하게 있을 수는 없을 거야.
북산현의 황가(黃家)가 그 지역에서 어떤 위치인지는 너희도 알 게다. 황씨 가문의 직계손이 현재 상성(湘省)에서 관리로 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황언성은 아무 도움도 못 받고 있지. 남은 남일 뿐이니, 황언성은 앞으로 잘 되고 싶다면 오직 스스로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을 거야.”
고청운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부모님들께서는 누구에게 나쁘게 대할 수 있을지언정 자식인 너희들에게는 정말 잘해 주신단다. 그러니 너희들은 그 사랑에 대해 깊은 책임을 느껴야 할 거야.”
고청운이 그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너희들이 소석이를 보면 알겠지만, 나는 그 아이에게 조금도 긴장을 풀게 하지 않는단다. 며칠 전에도 한바탕 혼이 났지.”
“형님 말씀 잘 알겠습니다.”
고청평이 주먹을 불끈 쥐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고청안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고청운은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인생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헤쳐 나가는 것이었다.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도 결국 스스로의 책임이었다.
전생의 그에게는 그렇게 살았던 부모님이 계셨었기에, 그는 일찍이 이 이치를 알고 있었다. 현세에도 달라지는 것 없이 자신의 노력이 가장 중요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가진 최고의 저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