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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244)화 (244/504)

244화. 감격

고청운은 그의 부모가 따라 귀경하려는 것을 알고 나자 마음이 극도로 들떠서 방에 돌아가 간미와 이 일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녀도 찬성을 표했다.

“그것도 좋습니다. 시부모님이 계시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요.”

그 말에 조금 놀란 간미는 이제 자신의 평온한 일상에 파란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가 아는 여인들은 대부분 시부모가 곁에 없는 것을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부군의 부모였다. 심지어 외아들이니 나중에라도 그들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며 그들을 부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였다.

현재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대부분 후원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시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주의를 돌릴 것이니 늘 자기에게 관심을 두시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일전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자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었다. 

간미가 반대하지 않는 것을 본 고청운은 그녀의 말이 진심인지 거짓인지 알아차리고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간미와 그의 어머니는 모두 좋은 사람이지만, 좋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서로 잘 지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둘은 고부지간이 아니던가. 

이야기를 마친 고청운은 밤새도록 깊은 잠을 한 번 자보려 했는데, 한밤중에 소어가 깨어나서 울고 보채며 집에 가자고 난리를 쳤다. 결국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 한참 동안 달래고서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고대하는 소어가 분명 오후 내내 자신과 잘 놀아 놓고 왜 별안간 밤에 집에 가겠다고 난리를 치는지 궁금했다. 

‘손자가 경성의 집을 자기 집으로 여기고 있는 모양이구나.’

이에 그는 아들을 따라 상경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그들은 아들을 따라 1년 반만 떠나 있을 예정이었다. 아들이 이미 약속을 했으니, 그들이 돌아가기를 원한다면 도중에라도 돌아갈 수 있게 해 줄 것이었다. 

* * *

다음 날, 고청운은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하는 김에 고백산 집 근처까지 성큼성큼 걸어갔다.

고백산도 아침 일찍 일어나 노각으로 정원 밖을 거닐고 있었는데, 고청운과 마주치자 지체 없이 문중의 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요즘 족학의 꼬마들이 아주 열심히 책을 읽고 있단다. 아주 열심히 하고 있어. 다들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나중에 수재 시험을 치르겠다고 한단다. 다만 내가 잘 둘러본 결과 자질이 뛰어난 녀석은 거의 없더구나.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면 하늘이 보답해 준다는 생각에 잘 가르치고 있지.”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천재가 그렇게 쉽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 대다수가 보통의 사람이었지만, 적절한 학습 방법을 운용하고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약간의 운까지 더해졌을 때 과거 시험 방면으로 발전하고 또 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있어야 했다.

“문중에서 관리하는 밭은 모두 네 명의로 되어 있으니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어 생활이 점점 윤택해지고 있구나. 특히 근래 현성에 사람이 많아져 마을에서 제작한 삼베와 산짐승들의 가죽이 잘 팔리고 있단다.”

고백산은 감탄해 마지않았다.

“문인으로서 천부적 재능이 있는 아이가 없는 것 같아서 주점이나 책방 혹은 공방에 글공부를 마친 아이들을 보내어 일을 시켰는데, 네 체면을 봐서라도 채용은 되는 것을 보니 우리 고씨 일족은 그나마 현에서 할 말은 하고 살 수 있겠다.”

고청운이 말했다.

“아직 큰형님도 계시잖아요. 형님은 내년에 향시를 치르시는 게 아니었습니까?”

고청명을 언급하자니, 고백산은 이미 나이가 들어서인지 몇 년 전만 해도 손주가 철이 없고 큰 인물로 태어나지 못해 거인 시험에조차 합격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는데, 지금은 마음이 좀 무덤덤해져서 앞으로 이 족장과 촌장 자리를 아들에게 남겨 두고 나중에 다시 손자에게 물려주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손자들은 머리가 똑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리를 분명히 하고 후손을 잘 지켜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문중의 친족끼리 서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고청운의 광명에 누가 되지 않게 해야 했다. 

“몇 년간 문중에서 몇몇이 네 이름과 명성을 이용하여 사고를 쳤지. 그래서 내가 엄히 문책하였다. 우리 고씨 일가가 이제 막 좋은 시절을 보내기 시작했는데, 문중의 어떤 이들은 이를 놓치지 않고 바로 틈새를 노리더구나. 그런 녀석들은 내가 가만히 놔 둘 수는 없었지.”

고백산은 그중 말썽을 일으킨 몇 가지 사례를 알려 주었다.

고청운은 이를 듣고 놀랐다. 

‘어쩐지 어제 마을에 왔을 때 몇몇 문중의 친족들이 날 잘 쳐다보지 못하더라니, 알고 보니 말썽을 부린 사람들이 있었구나.’

“큰할아버지, 이런 일을 일벌백계하셔야 함이 마땅합니다. 우리 문중의 규율을 세웠으니, 그들도 그 규정에 따라야지요.”

고청운은 고백산의 처분에 동의한다는 짤막한 한마디를 건넸다.

그러자 고백산은 늙은 얼굴을 활짝 피며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평평이와 안안이가 그나마 자질이 좀 있는 것 같더구나. 또 노력을 하고 있고. 다만 내가 지나가는 말을 들었는데, 그 애들이 항상 너와 대조되고 비교당하더구나. 네가 나중에 그들을 한 번 챙겨봐 주겠니?”

고백산은 나중에 형제간에 불화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 같았다. 혹여 만에 하나라도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겨 고청운이 연루되면 정말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었다. 

고청운은 문득 크게 깨닫는 바가 있어, 나중에 가서 그들과 이야기해 보기로 다짐했다.

이어 고청운은 자신이 출판한 산술 서적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이번에 가져온 몇 권의 서적을 고청명에게 전해주어 아이들을 가르치게 할 생각이었다.

그중 한 권은 다른 서적과 더해 현학에 기부할 예정이었다.

“조상님께서 보우하셨구나, 청운아. 너는 정말 우리 집에 내린 문곡성이야. 조만간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향을 피워서 조상님께 고하도록 하마.”

고백산은 흥분한 모습이었다. 산술 서적 한 권이라고는 하지만, 돈만 있으면 인쇄를 더 할 수도 있었다. 

고청운에게는 산술 서적을 출판한다는 것이 그리 큰일이 아닐지 모르겠지만, 고백산의 눈에는 대서특필할 만한 큰 사건이었기에 엄숙히 조상님들 앞에 이 사실을 아뢸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고청운의 거듭된 요구에 따라 고백산은 연말에 조상님께 연례제사를 올릴 때나 이 일을 아뢰기로 하였고, 제사를 지내는 김에 소어의 본명인 고영진(顾永辰)이란 이름 세 글자도 족보에 함께 올리기로 하였다. 그때면 소어도 거의 3살이 되어 있을 테니, 문중에서 연령순으로 이름을 올리는 족보에 그의 차례도 올 것이었다.  

고백산과의 대화를 통해 고청운은 고씨 집안이 마을에서 처한 상황을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고청운은 그들 고씨 집안이 아직까지는 한 떨기 어린 새싹 수준임을 잘 알고 있었다. 문중에서 그나마 제일 뛰어난 것은 고청명이지만, 아직 수재의 신분이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밑천이 얇으니 그저 천천히 발전을 도모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급해서는 뜨거운 두부를 먹지 못하게 되는 법이었다.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극상의 편안함을 선사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임계촌의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여 마시면서, 고청운은 드디어 공문서가 주는 피로, 동료 간의 암투 그리고 끝없는 접대로부터 벗어나 심신을 이완시킬 수 있었다. 

고청운은 요즘 들어 원래 먹던 밥조차 매우 달게 느껴졌는데, 개선된 수면의 질 또한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 * *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그들은 먼저 간미의 집을 방문하였다. 간미는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부모님을 마주하고는 한바탕 울음을 쏟아냈다.

고청운은 자신이 쓴 책을 두 권을 간미 집의 처남들에게 주었다. 큰처남인 간경은 고청평과 같은 나이였는데 이미 성혼을 하였다. 그는 꽤 고지식한 사람으로 어쩔 때는 조금 듣기 거북할 정도로 비교적 진부한 면모가 있기도 하였다. 지금 동생의 신분인 그는 고청평보다 한 해 빨리 동생의 신분을 취득하였는데, 두 사람 다 원시 시험이라는 관문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간경은 고청운의 산술 서적을 받아들고 나서 엄숙하기만 했던 얼굴에 미소를 띠었는데, 그의 산술과 잡학 분야의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편, 작은처남 간유는 지난번 귀향길에서도 만나서 소석과 함께 화원의 화초를 한바탕 해치며 온 동네를 활보했었기에 고청운은 그가 아주 발랄하고 귀여웠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런데 이번에 와서 다시 보니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지경으로 변모해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아이는 성격에도 변화가 온 듯 9살 어린이인데도 꼭 애늙은이 같이 굴었다. 방 씨의 말에 따르면 간유는 공부를 각별히 열심히 했다고 하였다.

* * *

그들은 현성에서 하룻밤을 묵는 김에 자신들이 예전에 살던 저택도 둘러보고 왔다. 앞쪽 두 개의 정원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으나, 제일 뒤쪽 후원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 

안쪽에 간미가 시집오면서 가져온 가구들은 고대하와 소진씨가 자주 와서 닦고 관리해서 광이 나고 있었다. 그들이 가끔 현성에 와서 연회에 참가하기도 했던 터라, 세간살이가 상해있지는 않았다. 

정원에 있던 계수나무는 정말 잘 자라 아주 울창해져 있었다. 고대하는 아들이 계수나무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임계촌의 옛 집에도 한 그루 더 심어두었다. 

* * *

집으로 돌아온 지 사흘째 되는 날, 오전에는 고청운 일가가 방자명이 챙겨준 집으로 보내는 서신과 선물들을 가지고 방씨 집안을 방문했다. 

소석과 소어의 발랄하고 귀여운 아이 특유의 모습을 보아서인지, 아니면 이번 귀경길에는 부모님이 함께 경성을 같이 가신다는 것까지 알아서인지 왕 씨도 못내 경성으로 가고 싶어서 근질근질한 모습이었다. 대화 도중에 은근히 그 뜻을 내비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고청운은 방자명이 부모님을 경성으로 모시고자 하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아버지인 방인례가 원하지 않아 해서 경성으로 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잘 모르는 외부사람들이 보기에는 부자간의 관계가 그다지 화목하지 않아 보였을 수도 있었다. 아마 방인례의 심중에는 서자여도 장자와 함께 사는 것이 관직에 나아간 적자 아들과 함께 사는 것보다는 더 편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물론 왕 씨의 생각은 틀림없이 그와 반대일 테지만 말이다.

고청운은 이번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그동안 그의 어머니가 왕 씨와 장모 방 씨와도 두루 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크고 작은 현에서의 모임에서 마주치기도 했고, 또 고청운과 방자명의 돈독한 관계 때문에 세 사람은 모두 공통된 화제를 가지고 있었던 듯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자, 고청운은 정말 방 씨가 덩달아 상경을 했으면 싶었다. 그러면 그의 어머니가 경성에 오시더라도 익숙한 동향의 말벗이 한 분 더 있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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