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흐뭇한 마음
고청운과 간미는 응접실에서 나와, 사랑채가 있는 정원으로 들어갔다. 마당에는 소어가 홀랑 벗은 채 목욕을 하는 것이 보였는데, 지금 그는 커다란 나무 대야에 앉아 나무토막으로 파도타기 놀이를 하고 있다가 막 깔깔대며 웃고 있는 참이었다.
그 아이를 목욕시킨 것은 바로 고대하였고, 그 옆에는 면포 수건과 옷을 든 소만이 서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끊임없이 손자를 달래는 모습을 본 고청운은 슬슬 눈에 거슬렸는데, 아버지가 소어에게 너무 오냐오냐 해 주고 계셨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막 소어에게 말이 되어 말을 태워줄 참이었다.
소어는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고청운과 간미가 보이자, 얼굴에 웃음이 더 커졌다. 벙글벙글 웃던 소어는 이내 비명을 지르면서 뽀얀 몸뚱이를 일으켰다.
“아빠, 엄마!”
고청운은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들면서 낮게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목욕시켜 주고 계시니 얌전하게 굴어야지.”
소어는 의심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청운을 보았는데, 고청운의 기분이 좀 안 좋은 것을 직감하고는, 다시 대야에 앉아서 갑자기 고개를 끄덕이며 아기처럼 말했다.
“소어 착해요.”
“전자야, 소어는 말을 잘 들으니 너무 뭐라고 하지 말거라.”
고대하는 고청운을 돌아보고 어린 손자를 바라보니 가슴이 뿌듯해졌다.
이것은 그가 늘 상상해오던 꿈에서나 그려봤던 손자의 모습이었다. 어릴 적의 아들을 이렇게 닮았는데도 이런 얌전한 모습이라니. 정말 아무리 보고 있어도 성에 차지 않았다!
아들의 귀여운 모습을 보니 고청운의 마음도 눈 녹듯 녹아내렸고, 방금 전의 불편한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고청운은 간미에게 목욕하러 가라고 한 뒤 몸을 숙여가며 여기저기 소석을 찾아다녔다.
“아버지, 소석이는요?”
소석은 아까 우마차에서 졸고 있었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금방 활기가 돌았는지 당장 어디까지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너희들이 모여서 울고 있는 동안, 아이들이 너무 놀라지 않았겠니? 다행히 나를 따라 나섰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이들까지 뒤섞여 계속 울고 있었을 게다.”
고대하는 고청운을 자세히 보고 말했다.
“너희 부자 셋은 정말 너무 똑같이 생겨서 대충 봐도 부자지간인지 알겠구나. 소석이는 안안이가 데리고 목욕탕에 갔다.”
고청운은 문득 3년 전 여름을 떠올렸다. 그때 소석은 오후에 항상 강으로 수영을 하러 다녔었다.
“지금 막 돌아와서 아직 낯설 것이에요. 며칠만 지나보세요, 야생마처럼 뛰어다니고 있을 터이니. 그때는 씻으러 가자고 애원해도 집으로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
임계촌의 여름은 날씨가 유난히 습하고 더웠다. 저녁에는 강에서 목욕을 하기가 정말 좋았는데, 수온이 너무 낮지 않고 적당히 따뜻했으며,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처럼 강물에 몸을 담글 수 있었다.
그가 하는 말을 듣자 고대하도 예년의 일이 생각났다. 그해의 일을 생각하면 얼굴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기가 배어 나오고, 주름살이 눈에 띄게 깊어졌다. 이를 본 고청운은 마음이 또 찡해졌다.
그의 아버지는 올해 48살이 되었다.
‘세월이 참 빠른 것 같다.’
세월은 사람을 늙게 만들었다.
“그런데 소석이의 기억력이 대단하더구나. 이 집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안 그래도 벌써 내일 당장 강에 가자고 하더구나.”
“스승님께서 경성 근교에 장원을 하나 갖고 계신데, 매년 여름 저희는 경성이 너무 더울 때 그 장원에 가서 며칠씩 묵고 옵니다. 그래서인지 소석이가 강에서 수영을 하는 게 거의 중독이 되었어요.”
…….
소어가 둘러보니 부자가 한담을 하고 있었다. 소어는 곁에 아버지가 있어서 안심이 되었는데, 익숙하다고 한들 소만보다는 당연히 아버지가 가까이 있는 것이 가장 안심되었던 것이다. 특히 목욕을 제일 좋아하는 소어는 더욱 신나게 놀며, 입으로 옹알이를 하면서 아기 오리와 입씨름을 하였다.
고청운은 아까 자신이 느낀 의구심이 생각나, 낮은 소리로 고청평과 고청안에 관한 일을 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마음이 켕겼다고?”
고대하는 신기해하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애들은 모두 매우 착한 아이들이 아니더냐. 그 애들이 현성에서 무슨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야기는 들은 것이 없는데.”
그는 자주 현성에 가고 있었다. 달걀절임 판매와 방세를 걷는 일 때문이 아니어도 시간이 나는 대로 가는 편이었는데, 현성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보기 위해 혹은 좋은 밭이 어디 있고 또 어떤 매물이 나왔는지 알기 위해 직접 다니는 편이었다. 이렇게 미리 다녀 두어야 가령 적당하게 나와 있는 매물을 파악하여 사들이기에도 용이했다.
현재 그들 집은 이미 250묘에 달하는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일부는 중간 등급에 속하는 혹은 거의 황무지에 가까운 밭이었지만, 이전에 그들의 전 왕조에서 가문이 제일 번성했을 때 보유하고 있던 200묘의 땅보다 지금이 더 가업이 빛나고 있었기에 죽은 후 조상님들을 뵐 면목이 있었다.
사실 고대하는 고청운이라는 이 든든한 아들이 있어서 이미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하면서 살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은 다른 집 아들 7, 8명을 데리고 와도 다 그들 위에 군림할 수 있을 정도로 어디 하나 빠지는 곳이 없었다. 양이 아닌 질적으로 다른 이 얼마나 귀중한 아들인가. 마을에서는 예전에 고청운을 두고 사람이 허약하고 부실하다며 조소해댔었으나, 지금 누구 하나 자기를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
유일하게 안 좋은 점 하나라면 아들과 멀리 떨어져 산다는 것이었다. 집끼리 거리가 너무 멀었다.
* * *
저녁에는 가족끼리 식사를 하였다. 고청운 일행의 휴식에 누가 될까 봐 고백산은 바로 집으로 돌아가 다음 날 한가한 시간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였다.
저녁에 아들들을 재운 뒤 방에서 나온 고청운은 부모님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부모님이 자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후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같이 있었기에, 고청운은 그들을 챙기느라 아버지와 말을 많이 할 수가 없었다.
오늘 고청운을 기쁘게 한 것은 모두가 소진씨의 봉호를 부러워하며 기뻐해줬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씨는 그저 시큰둥하게 몇 마디를 하고는 고청평과 고청안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통에 그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아마 그녀는 동생들에게 책을 더 열심히 보라고 했을 것이었다.
그가 자세히 관찰한 결과, 노진씨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소진씨와는 아무런 간극도 없었다. 그의 어머니도 할머니에게 여전히 똑같이 참고 양보하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그가 어렸을 때보다 더욱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고청운이 가장 고무적이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가 할머니 앞에서 드디어 허리를 곧게 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예전 같이 늘 할머니를 모시고 할머니 의견을 따라야 하는 것은 그대로라서 여전히 참고 양보하는 일이 많았지만, 느낌이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고청운이 부모님 방에 들어가 대화를 나눌 때, 문득 고대하가 물었다.
“너는 아직도 이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경성으로 가서 살고 싶어 하는 게냐?”
고청운은 고대하의 이 질문을 듣고는 기쁨에 젖었다.
“아버지, 어머니, 물론이죠! 제발 그리 되기를 간청드립니다!”
고대하와 소진씨는 아들이 이렇게 태도를 표명해주니 마음이 흐뭇했다. 어쨌든 아들이 자기 부부를 모시고 산다는 것을 환영한다는 뜻이 아닌가.
“그래, 오늘 네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경성과 이곳을 오가는 상선 등을 이용하면 뱃삯이 얼마 들지 않는다지? 그렇담, 나와 네 어머니는 그런 방법으로 너희들과 함께 경성으로 가서 1년 반 정도를 묵고, 그때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가 있으면 얻어 타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면 어떨까하고 생각해 보고 있었단다.”
소진씨가 고청운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고 있다가 상황을 보고 이어 말하였다.
“이 두 해 동안 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도 늘 말씀하셨지. 자신들은 아직 정정하다면서, 고향 집에는 네 숙부도 있고 지금은 또 손자가 둘씩이나 있으니 걱정 말라 하시더구나.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인 우리가 가서 소석이와 소어를 돌보아야지, 자꾸 스승님 내외에게 폐만 끼쳐서는 안 된다고 하셨단다.”
비록 부리는 아랫사람이 있다고 하지만, 아랫사람들이 어디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만큼 자상하게 보살펴줄 수 있겠는가?
특히 소진씨는 속으로 아들을 너무나 그리워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미치도록 그리웠다. 지금 집안에서 그녀는 직접 밭에 나가서 일할 필요가 없었고, 또 옛날처럼 직접 베를 짜고 밥을 지을 필요도 없었다. 집안의 모든 일에 손을 댈 필요가 없으니, 그녀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바로 옷을 짓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매번 아들과 손주들의 옷을 지었다.
멍하니 있던 고청운은 알고 보니 부모님께서는 그간 경성을 오가는데 드는 경비 문제로 심려하고 계셨던 것 같았다. 그는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이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 노잣돈이니 경비 같은 것은 걱정하지 마세요. 경성에 집과 밭을 샀는데, 그 덕에 매달 수입이 있고, 녹봉과 화본을 쓰는 수입까지 합치면 가족들의 생활비는 다 충당할 수 있습니다.”
고대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꼭 비용 문제만은 아니었단다. 너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집에 계시니 우리가 안심할 수 없었을 뿐이란다. 지금 너희 할아버지는 올해 69세이신데, 작년에 한 번 병이 나신 이후부터 계속해서 경성으로 건너가 너를 돌보라고 말씀하신단다. 그리고 네 할머니도 그러시는구나.
3년 전에 네가 귀경한 후, 네 할머니께서 너를 배웅하러 나갔다 돌아오신 직후 병이 나셔서 하마터면 큰일을 치를 뻔 했단다. 그때 우리는 모두 네가 다시 돌아와서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켜드릴 수 있게 하자고 서신을 쓰려고 했지. 그런데 너희 할머니께서 병상에서 누구의 말을 들으셨는지는 모르겠다만 자기가 죽게 되면 네가 장자로서 가족상으로 3년 상을 치러야 해 더 이상 관직 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이상한 일이지, 네 할머니께서 병이 빨리 나으셨단다.”
고청운은 고향에 다시 돌아와서야 비로소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일은 그로 하여금 몹시 죄책감을 느끼게 했는데, 자기 가족의 병이 위중하여도 곁에 있어 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이 안심하고 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지금껏 계속 숨겨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번에 자기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게다가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 봐 비로소 병이 나으시다니, 그는 잠시 멍해졌다.
고청운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급히 미간을 누르고, 낮은 소리로 설명했다.
“부모님이 이제 세상에 안계시기에, 그 자식이 관리의 신분인 경우 3년 상을 치러야 하는데, 말이 3년이지 실은 스물일곱 달을 채우는 겁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등 다른 직계 가족 분들은 물론 효를 다 해야겠지만, 전 관직에서 물러나지 않고 1년 상을 치르면 됩니다. 1년간 옷을 화려하게 차려입지 못하고, 술을 마시며 즐기는 것, 육식을 하는 것, 아이를 낳는 것, 연회에 가는 것 등을 안 하는 정도면 됩니다.”
옛날에는 친척이 많아서 할아버지, 할머니, 숙부, 백부, 장모 등 가족들이 돌아가면 가족상을 치렀는데, 관리들은 이 중 한 분이 돌아가면 1년 반 동안 상을 치러 효를 지켰고, 부모님의 경우엔 두 분을 더하면 6년이라 일하지 않고 집에서만 효를 지켰다.
그래서 본 왕조에서는 부모가 돌아가셔야만 벼슬을 그만두게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효도하고 효를 지키는 것이 중요했지만, 관리들은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것도 필요했다.
한 사람의 진사가 힘들게 시험을 겪어내고 벼슬자리에 올랐고, 조정에서는 이제 이 인재를 기용해야 하는데, 막상 이 인재가 자주 집에 돌아가서 효도를 다 해야 하니, 이래서야 나랏일을 누가 할 수 있었겠는가? 이는 너무 인재 낭비가 아니겠는가?
아들의 설명을 듣고 고대하는 문득 깨달았다.
“우리는 조정의 일은 잘 알지 못했지. 현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이 벼슬을 하고 있는 일은 드물어 다른 사람과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구나.”
고대하가 울먹였다.
“관료가 아닌 이상 어찌 알 수 있었겠어요.”
고청운은 이해할 수 있었다. 보통 백성들은 효를 지키는 것 따위는 거의 중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평소에 밥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매일 채식만을 하는데 무슨 고기 요리가 있어 기간을 두고 금한다는 말인가? 음주가무 같은 건 더더욱 그들과 무관했다.
그나마 가장 보편적으로 지키고 있는 관습으로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3년간은 혼례를 치르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외지 지역의 관습도 있었다. 게다가 혼례를 올리고 혼인을 맺는 것이 가장 큰 효도라 여기는 마당인지라, 조정에서도 이런 것들을 잘 따지지 않거나 이런 것을 엄하게 다스리지 않는 곳도 더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