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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242)화 (242/504)

242화. 기억

간미가 우마차에 앉아 감탄하며 말했다.

“숙모님께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신 듯해 믿기지 않을 정도네요.”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라오.”

고청운은 이 씨의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오히려 아까 잠깐 만났던 고청평이 생각났다. 고청안과 더불어 아직 수재에 합격하지 못한 두 사람은 자신의 눈을 피하는 것이 매우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모양새였다.

‘설마 그들이 나에게 무슨 미안해할 만한 짓이라도 한 걸까?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내 눈을 피할 수가 있다는 말이야?’ 

고청운은 뭐니 뭐니 해도 집에 가서 직접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고이하와 이 씨의 표정에서는 잘못된 그 무엇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고청운은 우선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집에서 더 가까워질수록 그의 감정은 더욱 격해졌고, 이제는 안절부절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품속에서 잠자고 있는 소어를 보며 간미에게 말했다.

“아까 현성에 있을 때 장인, 장모님을 만나 뵐 걸 그랬소. 당신은 나보다 몇 년이나 더 못 뵈었을 텐데, 내가…….”

고청운은 미안하기 짝이 없어 뒷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관습이었고, 어쨌든 간에 모두 본가를 먼저 방문해야 했다.

간미도 당연히 이 도리를 잘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늦더라도 부모님을 뵐 수 있으니 괜찮아요.”

가는 길 내내 말없이 한 시진 가까이 달리자, 그들은 마침내 임계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 * *

한 집안의 가족이 상봉하게 되면 당연히 더없이 막역해졌다. 격동의 끝을 보게 되는 것이었다. 특히 노진씨와 소진씨는 감정이 더 풍부한 편이라 고청운을 안고 숨이 막힐 정도로 울어 댔기에, 주변 사람들까지 다 감정이 이입되어 주위의 여인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 젠장맞을 교통편 같으니라고!’ 

고청운은 그의 할머니와 어머니를 위로하면서 조정의 배의 운항 속도가 빨라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후에 귀향할 때는 오가는 시간이 더 단축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두들 눈물을 닦고, 울적한 감정을 털어내고 비로소 얼굴을 씻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때 마을의 다른 사람들은 벌써 알아서 자리를 피해주었는데, 큰할아버지네 식구들마저 자리를 비켜주며 오늘 저녁에 다시 식사하러 오겠다고 하였다. 

한편, 한쪽에서는 소석과 소어가 일찍이 고대하의 손에 이끌려 정원에 가서 놀고 있었지만, 방금 집 안에 사람들이 한 무더기나 울어서 그들은 매우 놀라고 말았다. 특히 그 와중에 부모님들도 같이 울고 있지 않은가.

지금 노진씨는 눈물이 멈추자, 어린 증손자들이 떠올라 다 쉬어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둘 다 어디 갔느냐?”

간미가 손수건으로 눈을 지그시 닦았다.

“시아버님과 밖에서 놀고 있어요.”

말이 막 끝나자 밖에서 과연 소어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린아이의 웃음소리는 가장 천진난만하여 꼭 덩달아 같이 웃고 싶어지게 만들었기에, 이 소리를 들은 안채 안의 모든 사람들은 기분이 조금씩 안정되었다.

고청운은 남몰래 옹알거렸다. 아버지가 자신을 힐끗 쳐다보기만 하고는 금세 두 손자들에게 달려가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걸 보니, 손자가 생기면 아들의 입지는 좁아지는 모양이었다.

그제야 그들은 비로소 3년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동안 비록 자주 서신이 왕래했다고는 하지만, 편지로는 대략적인 이야기만 할 수 있을 뿐, 이렇게 지금처럼 대면하여 상세히 이야기하기는 어려웠다. 하물며 어떤 일들은 좋은 소식이 아니라 편지로 말하기 어려웠다.

“겸죽이 너보다 한 달 남짓 먼저 오지 않았겠니? 그가 네가 곧 돌아와 친지를 방문할 것이라고 일찍이 말해 줬기에, 우리는 집에서 계속 기다렸단다. 이전에는 매일 부두에 사람도 보내고, 너희 아버지가 현성에 매일 같이 나가 밤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오고는 하셨어. 그래도 한동안 계속해서 돌아오질 않으니 집안일도 너무 바쁘고 하여 더 나가서 기다리지 못했단다.”

소진씨는 원망 어린 말투로 말했지만, 말과 달리 고청운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을 아무리 보아도 모자랐다. 

고청운이 말투에 미안함을 담아 웃으며 말했다.

“3년에 딱 한 번만 치르는 회시 때문이 아니었겠습니까? 이에 오 대인이 제게 시일을 좀 미뤄서 귀향하라고 하셨어요. 한림원이 이 시험과 관련된 기관이라 저도 덩달아 바빴지요. 방 형만 해도 저보다 더 늦게 귀향해야 했을 겁니다.”

그는 자신의 ‘일침황량’이라는 신분 덕분에 방자명보다 먼저 휴가를 낼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가족들을 자세히 돌아보았다. 고계산과 노진씨는 3년 전에 비해 늙어 보일 뿐 정신은 멀쩡한 편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역시 아무래도 좀 더 노쇠한 감이 있었는데, 특히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아까운 듯 지긋하게 자신을 보고 있는 어머니의 머리에는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매우 많아져서 더 애처로워 보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역시 부모에 대한 애정이 가장 두텁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이때 고청운은 문득 자기에게 동생이 하나 더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적어도 자신이 멀리 있으니 집에 아들이 하나 더 있었더라면 부모님을 모실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고대에서는 남녀가 똑같은 대우를 받지 못해서, 여인 쪽은 언제든 마음대로 친정으로 갈 수 없었다. 옛날에는 딸이 시집가면 남의 집 사람이 되어 어디를 다녀오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 집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데, 그나마 매형들의 집안보다는 고씨 가문이 더 위세가 있었기에 큰누이와 작은누이는 다른 사람보다 더 자주 친정집을 방문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은 이렇게까지 자주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고청운은 자신이 이런 누이들에 비해 어릴 적에 너무 지나칠 정도로 이기적이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것은 정당한 일이 아니더냐, 결코 다른 생각을 끼워 넣을 수는 없지. 모든 공무는 황제 폐하를 위해서 일하고 있지 않더냐. 반드시 열심히 해야 한다.”

고계산은 고청운이 늦어진 이유를 듣더니 입을 열었다. 그 전까지 그는 말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분위기가 더욱 차분해지면서, 고청운은 고이하를 보았다가 다시 눈을 돌려서 정색하고 앉아 있던 고청평과 고청안을 쳐다보고 웃으며 말했다.

“지난해 둘째 동생이 며느리를 찾았다는 편지를 받았는데, 성혼은 언제 하는 건가요?"

고이하가 그 말을 듣더니 얼굴위로 웃음이 번져 이빨이 다 드러날 정도로 웃음을 지었다.

“네 둘째 동생이 참 욕심이 없질 않니. 원래는 시험을 보고 수재에 붙으면 혼사를 하려고 했는데, 저번 시험에서 낙방을 하지 않았더냐. 하지만 8월 중에 또 한 번 시험이 있으니, 이번에 합격 여부를 봐서 만약 합격하게 되면 그 후에 혼사를 좀 논하려고 생각중이란다. 이 아가씨는 정말 괜찮은 며느리 감이야. 네 둘째 동생의 동창의 여동생이란다. 너희 숙모가 가서 보고 오더니 너무 좋은 아가씨라면서 당장에 혼사를 진행하자고 하더구나. 

성혼 문제는 지금 우선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렸다가 8월에 시험 결과를 보고 다시 정할 예정이다. 네 둘째 동생이 시험 치르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니 말이다. 이 토끼 같은 녀석이 제 구실도 못하고! 집에 돈이 모자란 것도 아닌데, 뭐가 부족해서 이렇게 학업에 진보가 없는지. 나이는 벌써 19살씩이나 되어서 다른 재간도 없고, 책을 읽는 것 말고는 또 뭘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계속 공부를 해 나가는 수밖에 없지.”

고청운은 이 말을 듣자마자 고청평의 머리가 점점 숙여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옆에 있던 고청안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형님, 소석이와 놀아주러 갈게요.”

그는 반응을 기다렸으나 별말이 없자 쏜살같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

“이 못난 놈, 아직 네 녀석 일은 아직 입에 담지도 못했는데. 왜 그냥 가버리는 게야?”

고이하는 그 집 막내아들이 못난 것이 미워서 한마디 하였다.

이 씨는 마침내 자신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했다. 아까는 간미와 작은 소리로 한담을 나누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고이하가 자신의 아들을 욕하는 것을 보자 급히 끼어들며 말했다.

“평평이의 아내가 될 아가를 본 적이 있는데, 대범하니 잘 자란 아가씨란다. 현성의 방 거인의 여식인데, 방 거인이 예전에 우리 현의 교유셨지.”

이 씨는 미래의 맏며느리에 대해 만족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얼굴에 이렇게 큰 웃음이 걸려있지 않을 것이었다. 

‘방 교유?’ 

고청운은 그와 관련한 기억이 있었다. 예전에 고청운이 동생일 때 현으로 공부하러 갔었는데, 당시 고청운과 조문헌은 현령의 추천서를 들고 그를 찾아 입학하였다. 하지만 일 년 만에 새 황제가 즉위하게 되면서 은식(*恩式: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실시하던 과거)이 열렸고, 이때 시험 합격자 수를 대폭 확대하자 그는 어린 친구들과 이번 기회를 잡기 위해 사직서를 내고 곧바로 상경해 시험을 치르러 갔었다.

그의 사퇴로 인해 생긴 공석은 고청운의 장인인 간지원이 새로운 교유 자리를 수임하여 채워졌다. 

고청운은 방 거인을 벼슬에 눈이 어두운 자로 기억했다. 그가 한편으로는 승진을 생각하고 또 한편으로는 진사 시험도 노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현지의 사람이고, 방씨 가문 역시 현지에서 영향력이 어느 정도 있기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온 방씨 집안사람들이 떠받치고 있는 집안의 기대주였다. 

‘이렇게 기묘하게 세상일이 돌아갈 수가 있나. 그 집 아들이 둘째 동생과 동창이고, 또 이제는 두 집안이 사돈으로 맺어질 날이 오다니.’

이 일은 사실 고청운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편지로 말해줬기 때문이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서신의 왕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문화적 수준이 갈수록 높아졌는지, 이전에는 서신을 쓰는 것과 관련해 큰할아버지에게 부탁해 쓰기도 하였으나 재작년부터는 아버지가 직접 서신을 작성하였다. 비록 서예는 서툴렀으나 글자는 정확하게 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몇 글자 오탈자는 있었지만 말이다. 

습관이 무서운 것이, 고청운은 매번 습관처럼 소석에게 하듯 습자용 글씨본으로 글씨를 고쳐드리고 싶었으나,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상대는 자신의 아버지가 아닌가. 그는 혹시라도 아버지가 분통을 터뜨릴까 봐 너무 직접적으로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매번 아버지가 참고할 수 있게 정확한 필체를 서신에 녹여냈는데, 아버지가 보고 깨달았을지는 알지 못했다.

여기까지 생각하면서 고청운은 아버지의 빈자리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목소리 대신 소석과 소어의 비명소리가 들려오자, 고청운이 되레 시큰둥해졌다. 

‘아버지는 도대체 손자만 중요시하다니. 이렇게 오랫동안 이 아들도 못 보셨는데, 같이 이야기나 나누시지 않고.’

참, 손자만 있다하면 아들은 그저 머릿속에서 지워지는 모양이었다.

 “정말 잘되었네요. 숙모님께서는 복을 누리실 일만 남으셨어요.”

간미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고청운과 간미가 너무 피곤할까 봐, 대화는 여기서 마무리 되었다. 이 이야기는 더 오래 끌지 않고 다들 몇 가지 얘기만 나누고 끝을 냈다. 

한편, 노진씨는 주방으로 직접 자리하여 음식 하는 것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고청운 일행을 위한 따듯한 물도 이미 다 준비되었다. 그들은 목욕하는 것이 몹시 그리웠는데, 이미 6월의 무덥기도 무더운 저녁 언저리였는지라 온몸에 땀이 났던 것이다. 그들은 방금 사람들과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부터는 계속해서 씻으러 가고 싶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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