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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238)화 (238/504)

238화. 귀향 (1)

이야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벌써 돌아갈 시간이 다 되었는지, 육훤의 수행원이 찾아와 이만 돌아가야 한다고 알렸다. 

고청운은 육훤이 집에 돌아가 저녁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밤에는 통금이 있기에 더 머무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차피 모두들 이제는 경성에 머물 것이니, 만날 날은 앞으로도 많을 것이었다.

육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일전의 아쉬움 가득한 헤어짐이 있던 만남 때 보다는 아주 밝게 이별을 고할 수 있었다. 육훤이 큰 소리로 말했다. 

“스승님, 이번에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 먼저 가 보겠습니다. 다음번에는 소석이와 좀 놀다 갈래요. 소석이에게 꼭 전해 주세요!”

고청운은 당연히 승낙했다.

육훤이 후부로 돌아간 후, 고청운과 간미는 육훤이 남기고 간 선물을 보며 쓴웃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매번 이렇게 귀한 선물을 많이 보내주니 송구스러울 따름이었다. 

* * *

그 다음 달, 고청운은 후부를 방문하여 육택을 만났다. 

육택은 예전과 같았다. 말 한마디를 금처럼 아끼는 그와 대화를 진행한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난이도가 높았다. 다만 다행히 좋은 화제 거리가 있었기에 썰렁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고청운은 육택의 수군과 관련된 질문들에 대해 자신이 추측한 견해들로 답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육택은 별말 없이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고청운은 이번 만남이 있고 다시 육택과 만날 수 없었는데, 그동안 육택이 지독히 바빴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은 지금 정도의 관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일개 7품 관리인 자신이나 육택은 다른 계열의 문인과 무인 관리이니, 관직 품계가 올라갈수록 둘 사이의 교집합도 자연히 더 줄어들 것이었다. 

확실히 문무 관직의 관리들 사이에는 왕래가 지나치게 긴밀하지 않는 게 좋았다. 물론 그들 같이 허튼 짓을 하는 것이 아닌 황제의 앞에서 관직을 영위하고 국가를 위해서 일을 도모하는 경우는 제외하고 말이다.

그동안 육훤은 공부 일정으로 인해 매우 바빴지만 그래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소석과 밖에 나가 놀아 주었다. 

고청운은 소석이 입을 열 때마다 외치는 ‘소보 형아’ 라는 소리를 들으며 두 사람의 관계가 또다시 더욱 돈독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산술 서적의 인쇄가 서서히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고청운은 그중 50부를 직접 챙겨서 고향에 가져갈 채비를 하였다. 

그랬다, 그는 귀향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학수고대하던 일정으로, 하루가 다르게 날이 갈수록 더욱 기다려졌다. 

집에 갈 생각만 하면, 고청운은 흥분을 금할 길이 없었는데, 집을 떠나 온지도 또다시 3년이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을 만나 볼 생각을 하니, 그는 매일같이 날짜를 헤아리며 경성을 벗어날 생각에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이번 귀향길은 그들 네 식구가 모두 함께 할 예정이었다. 혼란스러워 하는 소어를 제외하고, 간미도 자신의 부모님을 만날 뵐 수 있다는 생각에 덩달아 기쁨에 젖어 있었다. 

“부군, 안 돼요. 남은 며칠 간 회임이라도 하게 되면 어떻게 해요?”

이날 저녁, 고청운이 간미에게 손을 내밀 때, 간미는 난생 처음으로 엄한 말투로 그를 거절하였다.

고청운은 크게 놀란 나머지 풀이 죽어서 말했다. 

“안될 것이 뭐가 있소? 우리가 이렇게나 조심하고 있으니 계속해서 안 생기는 게 아니겠소. 이번에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오.”

간미는 다시 그를 멀리한 채 의연하게 말했다.

“저는 이미 회임을 이유로 시부모님을 모시지 않은 채 7년을 경성에 머무르지 않았습니까. 이번에 다시 회임하게 되면 여러모로 좋지 않습니다.”

그녀는 귀향 후, 고향집에서 회임 사실을 확인하게 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녀는 고향에서 출산을 해야 할 것이었다. 

간미는 일전에도 부군 혼자 출근을 시키고, 자기 혼자 참가했던 모임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부군은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방향만 맞다면, 으레 자신을 데리러 오고는 하였다. 그때 다른 부인들이 부러워하거나 질투하는 눈빛을 보냈는데, 특히 아직 출가를 하지 않은 아가씨들이 더 했다……. 가끔씩 그녀도 섬뜩할 정도였다.

고청운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은 그가 부인들의 마음에 굉장히 좋은 인상으로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틈을 내보였다가는 분명 자신에게 매우 비통한 일이 발생할 것이었다. 

이 세상에는 늘 사람이 바쁘고 정신이 없을 때를 노려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늘 주의해야 했다. 

간미의 거절을 마주한 고청운은 불쌍한 모습으로 침상에 누웠다. 그런데 여전히 자신과의 거리를 벌리고 있는 간미의 모습을 보자, 그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안심하시오. 내가 안하겠다고 했으니, 절대 결례를 범하지 않을 것이오.”

자신이 무슨 색마도 아니고, 아내가 달가워하지 않으니 당연히 강요할 리가 없었다. 몸에서 일어나는 소동이야 조금 있으면 차분하게 진정될 것이었다. 

그는 현재 젊고 힘이 세서 쉽게 충동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나이였는데, 나이가 좀 더 들면 계속 이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간미는 부끄러운 듯 한 번 웃고는 자신이 너무 과하게 반응을 한 것은 아니었나 싶어서 고청운에게 바삐 다가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바싹 붙어 앉아 한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고청운은 낮에 한림원으로 출근해야 했고 저녁때면 가끔 연회에 참석해야 하였다. 별 다른 일이 없으면 두 아이와 놀아주고, 남는 시간에는 글을 읽고 자신의 공부를 하였다. 방인소 부부까지 지척에 있어서 그가 간미와 정다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대부분 밤이었다.

“고향집에 갈 짐은 다 쌌소?”

고청운이 물었다. 이 시대에서는 귀향이란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서 많은 것을 준비하고, 또 여러 가지 문제를 고려해야만 했다. 

“이미 다 챙겼어요. 나중에 부족할 것 같은 부분만 조금씩 보강하면 되는 수준이에요.”

간미는 대답을 마치고 약간 우려스러운 듯 다시 반문했다.

“부군, 정말로 소어를 데리고 함께 귀향하실 건가요?”

간미의 뜻을 알아차린 고청운도 망설이긴 마찬가지였다. 간미는 지금 소어가 겨우 2살이 조금 넘었기에 이런 장거리 여행을 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지 않냐고 묻고 있었다. 그녀는 소어가 혹 여행 중에 병이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소어가 단지 다른 이유들로 울고 보채기만 해도 그들을 초조하게 만들기 충분할 것이었다. 꼬맹이들은 늘 온순하게 말을 잘 들어주는 존재가 아니어서 어떤 때는 어른들이 알 수 없는 일들로 울기도 하였다. 

게다가 배에는 의원이 없는데 소어가 병이라도 날까 봐 간미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냥 데리고 갑시다. 태어나서 아직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뵌 적도 없고, 모처럼 어렵게 갖게 된 귀향 기회가 아니오.”

고청운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약재는 우리가 반드시 잘 챙기면 될 것이오.”

“그렇게 할 테니 안심하세요.”

간미는 이 결정이 당연히 신경 쓰였지만, 문득 여행 경비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스치자 웃음이 났다. 

“이번에 마침 왕씨 집안에서 운행하는 배를 타고 집에 갈 생각에 좋았는데, 그들이 우리에게 뱃삯을 받지 않겠다고 하기에 제가 동의하지 않았어요. 아무리 친척이라고 하지만, 지킬 것은 지켜야지요.”

왕씨 집안은 월성 출신의 사람들로 매우 부유한 상인 집안이었다. 직계의 시어머니가 영원후부의 세자와 성혼하게 되면서 큰 후원자를 얻은 셈이 되자, 왕씨 집안의 방계 친척들이 월성에서 벌이는 사업 역시 거의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잘되어서 경성에 점포를 낼 정도까지 크게 성장하였다.

방자명의 외숙부도 왕씨 집안의 방계손인데, 단지 관계가 좀 멀 뿐이었다. 이전에 고청운은 수재였던 시절에 그의 집의 회계 일을 봐준 적도 있었다. 왕씨 집안의 외숙부가 오로지 과거 시험에만 전념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왕씨네 할머님 이야기를 더 하자면, 방자명과 그의 어머니의 용모만 보아도 왕씨 집안 여성들의 미모 수준을 잘 알 수 있었다. 왕씨 집안의 직계가 이미 관리로 지내고 있었다고 하나 영원후와 사돈관계를 맺게 되다니, 이는 정말 큰 운이 따랐다며 당시 모두들 매우 놀랐었다.

영원후에 대해서는, 고청운도 진사 시험에 합격한 후 거행된 은영연에 참가해서 한 번 본 적이 있을 뿐이었다. 은영연은 역시 영원후가 주관한 것으로, 후작들이 황제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일을 알선하는 행사와 같았다. 

경성에 와 보니 고청운은 이런 거대한 집안의 세력 관계가 정말 어지러울 정도로 얽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에 자식들이 많으니 그만큼 가문끼리 성혼으로 이어진 관계도 다양해졌는데, 그중 어떤 집안의 관계는 마치 하나의 큰 그물을 짠 듯 관계를 넓혀 놓아 모든 사람들을 모두 그 속에 넣어 둔 것만 같았다.

게다가 두 집안은 같은 성(省), 같은 부 출신의 집안들이니, 동향 관계를 중요시하는 보통 사람들은 그들이 왕씨 집안의 배에 탑승하여 순풍을 받으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상적인 도리라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이번 귀향 여정에는 왕씨네에서 먼저 찾아와 동행을 주선해 주었는데, 아마도 방자명이 자기에게 줄을 대 준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그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겠는가?

“뱃삯은 내는 것이 맞는 것 같소. 우리가 남의 덕을 거저 얻어서는 안 되지 않겠소.”

고청운은 손가락으로 그윽한 향이 나는 간미의 짙은 머릿결을 쓰다듬고 있었다. 

고청운은 확실히 자신의 고향이 멀긴 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귀향 한번 하는데 기둥뿌리가 다 흔들리니 말이다. 어쩐지 다른 관리들은 고향에 다녀올 때마다 동향의 부유한 상인들의 배를 이용했는데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중엔 마차 비용도 자비로 내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이후에 상인들이 무슨 일을 부탁할 때 거절하기가 어려울 것이었다.

고청운도 이번 자신의 뱃삯이 좀 저렴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번엔 집에 가는 여정이 좀 더 편할 것 같군. 여객선처럼 많은 사람이 모여 가지 않으니 병이 걸릴 확률도 낮아질 것이오.”

고청운은 소어를 데리고 귀향하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번 굳혔다.

맏아들의 학업에 생기는 공백에 관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아들 대신 학당에 가서 휴가를 얻어 잠시 쉬게 하고, 그 기간 동안은 자기가 배에서 직접 아들을 가르치면 될 것이었다.

* * *

그리하여 이틀 후, 방인소 부부 등과 작별 인사를 나눈 그들 네 식구는 이번에도 물길을 따라 귀향길에 올랐다. 이번 귀향길에는 고삼원도 신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 족보에 이름을 올리기로 하였다. 그 외에 하인과 여종도 대동하기로 하였는데, 아이가 둘이나 있다 보니 여러 사람을 대동하는 것이 비교적 좋았기 때문이었다.

간미가 소어를 데리고 왕씨 집안의 마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고청운은 소석에게 복습을 시키며 공부를 봐주고 있었다.

“구보인령(*矩步引領: 걸음을 바로 걷고 따라서 얼굴도 바르니 위의가 당당하다.) 

부앙랑묘(*俯仰廊廟: 항상 남묘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머리를 숙여 예의를 지키라.)

속대긍장(*束帶矜莊: 의복에 주의하여 단정히 함으로써 긍지를 갖는다.)

배회첨조(*徘徊瞻眺: 같은 장소를 배회하며 선후를 보는 모양이다.)

고루과문(*孤陋寡聞: 하등의 식견도 재능도 없다(천자문의 저자가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말한 것).

우몽등초(*愚蒙等誚: 적고 어리석어 몽매함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위어조자(*謂語助者: 어조라 함은 한문의 조사, 즉 다음 글자이다.)

언재호야(*焉哉乎也: 어조사)!”

소석의 낭랑한 목소리가 객실 안에서 울려 퍼졌다. 그는 두 손을 등 뒤로 젖히고, 머리를 한 차례 흔들었다. 마침내 <천자문>을 다 외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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