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의견
고청운은 자신의 책상을 정리해 놓고, 관리에게 자신의 문방사보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품계에 따라 그들이 사용하는 문방사보의 규격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는데, 품계가 높을수록 사용하는 붓과 벼루가 더욱 크고 좋았다.
그의 녹봉은 매년 36냥이 지급되었고, 연말에는 90냥이나 되는 가봉을 추가로 더 받았다. 매달 지급되는 차, 비단, 종이나 붓 등을 더하면 그런대로 지낼 수 있을 만한 비용이 지급되었다.
고청운은 다른 7품관들과 담소를 나누다가 알게 된 것이 있었는데, 경성에 거주하는 집이 없으면 조정에서 지은 관사를 셋방으로 매우 싼값에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곳의 관사는 송나라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본 왕조에 이르러 몇 군데에 더 이런 관사를 지었는데, 값이 싸야 하니 황궁에서 좀 떨어져서 매일 말을 타고 한 시진이 이상 걸리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어떤 때는 일이 늦으면 집에 돌아올 시각도 많이 늦어지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집에 돌아오게 되는 것도 그렇지만, 너무 늦으면 통금 시간에 걸려 관아에서 밤을 지내야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 때문에 이런 셋방은 하급 관리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고청운의 7품 관리 녹봉은 기본적으로 여섯 식구가 살 수 있을 만한 비용이었다. 다만 경성에서 향응이나 접대 혹은 모임 유지에 드는 비용이 너무 높았기 때문에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 보일 뿐이었다.
고청운은 이제야 드디어 봉급이 생긴 셈이니, 괜히 이곳에서 그동안 일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한림원이 워낙 돈이 돌지 않는 곳이라, 운영비가 적게 들어 관료 한 명, 한 명에게 돌아가는 돈은 거의 무에 가까웠다. 운영비란 현대의 판공비, 접대비 등에 상당하며 매년 일정액을 유용할 수 있었고, 다 사용치 않으면 당연히 나누어 가졌다.
다만 그는 장수원으로부터 거의 매년 한림원의 운용비는 나눠가질 만큼 남지 않으니 기대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말이나 양을 기르는 부서라도 모두 한림원보다 운용비 수입이 많았다. 적어도 말똥을 내다 팔 수 있었는데, 이런 것도 다 돈이 되었던 것이다.
고청운은 한림원에 얼마나 더 머물게 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이곳에 머무르게 되면 학문에 전념할 수 있다지만, 그는 나가서 관리다운 실제 일을 좀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고청운은 문득 장수원을 떠올렸다. 그는 한림원에 남지 않고, 그보다 며칠 먼저 예부로 관직을 옮겨 정6품 주사로 승진했다.
예부는 존귀하고 한적한 관아인 셈인데, 고청운은 그가 왜 예부에 갔는지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그의 스승님 또한 이전에 예부의 관원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런 방면의 인맥이 있어 그를 예부로 보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수가 된 후로도 고청운의 업무 내용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고, 서길사가 하던 일을 지금도 하고 있었다. 다만, 소추의는 더 이상 그의 교습이 아니었다.
물론 약간의 변화라면, 정식 한림관이 되면 그는 앞으로 집무실의 반을 나누어 숙직하면서 황제의 하문에 대비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숙직이란 밤마다 한림원에 있다가 혹시나 황제가 갑자기 무슨 문제를 묻겠다고 하면 입궁해서 황제 앞에 가서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가령 가끔 황제의 시흥이 폭발하면 시를 읊고 기분을 맞춰야 하고, 역사나 고사를 알고 싶다고 하면 바로 궁금증을 풀어드려야 하였다.
황제와 면식이 있다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었다. 전제는 황제가 묻는 질문에 완벽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일 황제를 만난다고 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결국은 사람마다 자신의 특기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못하는 것도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여러 번 물어도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황제는 더 이상 말을 건네지 않을 것이고, 다른 관리들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등 앞길이 결코 순탄치 않게 될 것이었다.
한편, 소추의의 의도에 대해서는, 사실 그때 밀조 사건 이후 고청운과 방인소는 토론을 거친 결과 소추의의 속뜻이 자신의 집안 살림이 어느 정도 괜찮아 보여 무엇인가를 갈취하려 한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그렇게 큰 담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너무나 뻔히 보이는 이런 간단하고 거친 수단을 쓰다니 말이다.
사제지간 둘은 그렇게 간단할 것 같지 않은 이 일의 이면에 대해 거듭 추측하고 퇴고했으나, 고청운은 한참 동안 관찰해 보고 나서도 그 예측이 정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왜 뒤에서 그저 잔꾀만 부렸을까?’
고청운은 줄곧 강적과 맞닥뜨리고 있었다.
고청운은 설령 그에게 갈취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한들, 자신의 말을 그에게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것은 우선 간미가 자신에게 준 축하 선물이기도 했고, 만일 이번에 말을 줘버렸다가 그가 재미라도 보고 또 다른 것을 요구하면 그것도 큰일이었던 것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그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더 나았다.
“고 형, 정용후네 가족이 언제 귀경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고청운은 자신의 업무 습관에 따라 물건들을 늘어놓고 있다 말고 담자례의 질문을 듣게 되었다.
‘정용후?’
고청운이 그를 쳐다보았다.
“얼마 전 세자의 편지를 받았는데, 다음 달 초에 돌아온다더군.”
담자례는 고개를 끄덕였다.
육택은 이미 월성에서 4년간 머무르고 있었는데, 원래는 1년 전에 전근할 수 있었지만 은광과 관련된 사정이 변해서 좀 더 남아 있다가 최근에 일을 마치고서야 상경 일정이 정해졌다.
“그 내용은 관보에 적혀있지 않은가?”
고위 관리들과 관련된 사항은 매월 관보에 실리고 있었는데, 황제가 두 달 전에 그들의 귀경을 명하는 성지를 내렸다.
“관보에는 매형이 돌아온다고만 돼 있을 뿐, 언제 돌아올지는 언급이 되어 있지 않아서요. 혹여 모르고 계신 줄 알고 알려드리려고 했을 뿐입니다.”
담자례가 입꼬리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고청운은 “그렇군.” 하고 화답할 뿐, 더는 그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고청운은 일전의 육훤과의 편지에서 담 씨가 3년 전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육훤은 편지에서 자신에 대한 어머니의 태도 변화가 그다지 크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변화가 없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자신의 아이가 있으면 어머니로서 분명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을…….
그는 자기 스스로도 소석과 소어를 대할 때 겉보기에는 공평해 보이지만, 소석이 자신의 첫 번째 아이이기 때문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그 아이를 가장 사랑했다. 단지 그는 자신이 그런 티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일은 간미조차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조차 이미 이럴 지경인데, 어찌 의붓아들과 자신이 낳아 기르는 아이에게 똑같이 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고청운은 육훤이 담 씨의 태도에 대한 답변을 유보한 걸 보고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강요할 수 없었다.
계모로서 사람을 해칠 마음이 없다면 담 씨는 착한 사람일 것이었다. 현재 육택과 육훤의 사이가 좋은 데다 일찌감치 육훤을 세자로 책봉해 뒀기 때문에 그가 실수하지 않는 한 그 지위는 절대적으로 안정될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헤아리기 어려우나, 그렇다고 해서 남의 생각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과한 예의를 차릴 생각도 별로 없었고, 이전에 그들에게 구린 일이 있다고 속단할 것도 없었다.
오후 내내 아무 일 없다가, 퇴근 시간이 되자 고청운은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 * *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송죽서재를 거치게 되어 있어, 고청운은 생각해보고 용기를 내서 서재의 대문으로 들어갔다.
그는 화본이 진열된 서가 옆에 가서 섰다. 지금은 사람이 별로 없는 시간이었기에, 간혹 사람들이 들어와서 화본을 사 갈 뿐이었는데, 대부분이 <장군전기>를 들고 신이 나서 서점을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사장정의 말대로 그렇게 과격한 반응들은 아닌 듯한데?’
그러나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한 금의를 걸친 소년이 책을 들고 기세등등하게 걸어 들어와 직접 사장을 찾아 힘껏 탁자를 두드리며 말했다.
“결말은 언제 나오죠? 당연히 결말은 비극일 테지요? 이 책을 살 수 있어서 반가웠는데 내용을 보면 볼수록 이상해지더군요. 마지막을 보니 왠지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결말은 아니겠지요?”
사장이 주판알을 튕기는 동작을 멈추고 말했다.
“공자, 결말은 다음 달에나 출간될 예정이고, 그 결말이 어찌 될지는 모릅니다. 결말은 황량 선생님만이 알고 계십니다.”
미소를 지으며 말을 마친 그는 오른쪽에 세워진 작은 나무판을 가리켰다. 나무판 위에 두 줄의 글자가 쓰여 있는 것을 보였다.
“마지막 책이 출판되지 않았으니 의견이 있으면 저기 일침황량이라고 적힌 목판 아래에 글을 적으세요. 그럼 부마께서 전달하시어 황량 선생님께 보여드릴 겁니다.”
고청운은 보고도 얼떨떨하지만 답답하기도 하였다.
‘저 방명록이라는 것이 쓸모가 있는 걸까?’
그 소년은 부마 소리를 듣더니 낙담했다. 부마가 일을 너무 잘해서 황량 선생의 정체를 이렇게까지 꽁꽁 감출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소년, 자네가 저 사장에게 물어봐야 소용없을 걸세. 저 사장은 내막을 모르지 않나. 황량 선생의 신원은 신비롭게 감추어져 있고, 경화소보에서도 알아내지 못했다고 하네. 차라리 하고 싶은 말을 저 방명록에 남겨 두시게. 이렇게 하면 황량 선생이 책자를 가져다가 읽을 것이니. 모두가 합심하여 원하고 있는 만큼 결과가 그렇게 슬프지는 않을 것일세.”
가게 안의 손님 두 명 중 한 명, 뚱뚱한 중년이 말했다.
그 소년은 우울해 보였지만, 방명록에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
그가 글을 쓰는 동안, 고청운은 걸어와서 다른 방명록을 뒤지기 시작했는데, 모두 열몇 권이나 되었기에 대충 뒤질 수밖에 없었다. 방명록에 쓰여 있는 내용은 각양각색이었다. 주로 더욱 빠른 출간을 요구하는 재촉이 많았으며, 직접 결말을 짓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고, 애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비극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비극에 동조하는 자들까지 있었다……. 하지만 위협적인 내용이 압도적으로 더 많았다.
특히 글 내용이 미치도록 위협적이고 말투가 매서워, 고청운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면 큰 사달이 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장정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고청운은 남몰래 기뻐했다. 굳건하고 믿음직스러운 사장정은 줄곧 이 압력을 견디면서 그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있었다.
“당신도 황량 선생님의 책을 좋아하는 분입니까?”
소년은 자신의 의견을 적은 뒤에도 고청운이 열심히 방명록을 지켜보고 있자 다가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