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벼슬길보다 가족이 더 소중하다
“부끄러웠다?”
방자명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슬픈 심경을 나타내고 있었다.
“내가 일전에 계속해서 너에게 황량 선생의 책을 추천했었잖아. 너, 그때마다 속으로 나를 비웃으며 바보 취급을 해왔던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저는 속으로 기쁘면서도 또 무안하고 미안했었어요. 절대 방 형을 비웃거나 한 일은 없습니다.”
고청운은 머릿속을 빠르게 회전시켜 보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를 어찌 다독여야 옳은 것인지 몰랐다.
“나는 믿지 않아.”
방자명은 스스로 팔짱을 낀 채 그를 계속해서 응시했다.
“어차피 나는 지금 마음이 너무나도 괴로우니, 너에게 보상을 요구할 거야.”
고청운은 그를 한참 자세히 살펴봤지만 결국 자신이 손해를 입힌 셈이어서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
“그래요, 어떻게 보상을 해야 할까요? 아무리 그래도 결말은 고치고 싶지 않습니다. 며칠 전 장정이 몇 번이나 왔음에도 절대 고치지 않았어요.”
“나머지 화본을 먼저 보여 줘. 그러고 나서 내가 다시 의견을 말해 줄게.”
방자명의 안색이 다급해 보였다.
고청운은 응낙했다. 어쨌든 자신에게 초고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의 승낙을 얻고 나서, 방자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의 미안한 마음이 일단은 진정성이 있는 것으로 치겠어.”
방자명은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였는데, 고청운은 자기가 정한 결말을 고치지 않는 선상에서 그의 의견을 모두 수렴하기로 하였다.
“아버지, 두 분은 왜 그렇게 오래 나와 계세요?”
그때 소석이 걸어 나와 고청운과 방자명을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외증조할아버지가 두 분을 찾으세요.”
고청운과 방자명은 그제야 그들이 뒷간 밖에서 오랫동안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을 상기했다…….
‘답답하긴, 어디 말할 장소가 없어서 여기서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었지? 너무 바보 같았어.’
* * *
자리로 되돌아가자, 방인소가 의심쩍다는 눈으로 그들 둘을 훑어보며 물었다.
“왜 이렇게 오래 나갔다 온 게냐? 오지 않는 동안 음식이 다 식었구나. 그리고 청운아, 너는 어떻게 한 번 나갔다가 온 뒤로는 얼굴에 기운이 없어 보이는 것이냐?”
고청운은 하겸죽과 나지막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방자명의 미간이 지금 춤을 추고 있는 게 보였는데, 그 모습을 통해 방자명이 얼마나 기쁨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스승님, 전 이제 괜찮습니다.”
고청운은 분개를 식욕으로 승화하여 와구와구 식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래, 오늘 저녁은 평소의 속박에서 벗어나 잠시 해방감을 주는 게 좋겠어. 찐 갈비가 간도 담백하고 느끼하지 않게 잘 만들어졌으니 참 맛있구나. 아들 영량이에게도 줘야겠어.’
소석 이 꼬맹이는 며칠 전에 그에게 다시는 그 아명을 부르지 말고 본명으로 말하라 했다. 고청운은 자신도 아이를 존중하는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그 의견에 동의했다.
‘그리고 난 다른 사람을 통해 어렵게 얻어낸 습자본을 그에게 건네주고, 또 나중에 발간할 내용을 미리 보여주기로까지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 형이 뭐라고 말했더라? 의견을 제시해? 이런 여우같은 친구 같으니라고.’
자신이 원하는 줄거리가 아니라면, 그놈은 틀림없이 자기를 괴롭혀 댈 것이었다.
“아버지, 기분이 별로이신가 봐요.”
큰아들 소석이가 작은 그릇을 들고 식사를 하다 말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숙부는 매우 기뻐보이시는데, 분명 아버지를 괴롭히신 거군요.”
그 아이는 말을 마치고 아버지가 자기에게 집어준 갈비를 한입에 먹어 치우고는 뼈다귀 하나를 토해냈다.
갈비는 매우 맛이 좋고, 기름지지도 않았다.
소석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참지 못했는데, 그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바로 고기였던 것이다.
하겸죽은 식사 중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고청운은 무표정했고, 방자명은 기쁨이 넘쳐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만 생각하기로 하고, 별말 없이 그냥 식사하기로 하였다.
지금 자리에 방인소가 있기에 묻기가 거북하기도 하였다.
* * *
고청운의 예감은 정확했다. 그 다음 며칠간 그는 방자명의 폭격을 당해내야 했는데, 방자명이 결말을 바꿀 것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주는 게 아닌가. 도도하게 의견을 제시하는 그 모양새가 어찌나 놀랍던지, 너무 생트집을 잡는 것 같았다.
이 사건 외에도 마지막 출판을 앞둔 책의 예고가 공개되어, 독자들이 여자 주인공은 출가 후 비구니가 되고 남자 주인공은 그녀를 찾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이것은 비극적인 결말이 아니던가?
이에 경성이 들끓자, 모두들 너도나도 일침황량을 찾아내 그에게 ‘대화’를 요구하기 위하여 행동을 개시하였다.
사장정이 재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고청운은 휴가를 내고 귀향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내가 내 몸 하나 숨길 능력이 없을 줄 알고?’
도주술(*도망가는 기술)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영원히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 * *
고청운이 한림원의 장원대학사인 오 학사에게 휴가를 내어 귀향하고 돌아오겠다고 했을 때, 오 학사는 매우 놀라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편수가 되자마자 바로 귀향을 할 예정인가?”
고청운은 꿋꿋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갓 승진하고 나서 이렇게 빨리 휴가를 내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은 적어도 관서에 남아 자신이 돌봐야 하는 업무 상황을 숙지하고 나서 휴가를 내고는 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청운은 워낙 서길사로 지난 시간을 보내면서 한림원의 사정에 익숙하기도 했고, 특히 직속상관도 그대로여서 휴가를 내기로 하였다.
자신의 최고 상관이 자신에 대해 나쁜 인상을 가졌다고 해서 자신의 승진을 방해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있겠지만, 고청운의 마음속에는 역시 벼슬길보다는 가족이 더 소중했다.
“대인, 하관의 고향은 경성에서 천 리나 떨어져 있습니다. 조부모님과 부모님은 모두 고향 집에 머무르고 계시는데, 3년이나 만나 뵙지 못하고 인사를 올리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불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가족 분들은 상경하지 않으시는 겐가?”
오 학사가 호기심에 물었다. 그는 고청운이 이미 경성에 자신의 집과 가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노인분들을 봉양할 수 있었다.
이 말을 듣자마자, 고청운은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하관도 역시 그들이 경성으로 오기를 바랐지만, 저희 조부모님께서는 이미 고희(*70세)에 가까운 나이시기 때문에, 고향을 떠나기 어려워하셨습니다. 그분들은 고향을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고 계십니다.”
문득 사정을 크게 깨달은 오 학사가 수염을 꼬며 말했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어떤 노인분들은 진정으로 고향을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기도 하시지.”
오 학사는 자신의 허락을 기다리고 있는 고청운을 보고, 황제가 이 인재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황제가 몇 차례 한림원으로 왕림했을 때 매번 그의 학식을 고찰한 바가 있는데, 심지어 그의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주었었다. 이걸 보면, 이 사람은 황제의 안중에 일정 무게감이 있는 인물인 것이었다.
관원들에게 있어 황제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것은 일종의 승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고청운이 어떻게 이런 상황을 야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황제가 그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로써 고청운의 전도는 유망하다는 것이었다.
그가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평소 한림원에서도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으로도 이 사실에 수긍할 수 있었다.
“그래, 본관이 자네 청을 들어주겠네. 다만 요 사이에 회시 시험의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고, 그 다음에는 전시와 조시가 예정되어 있으니 우리 한림원이 가서 도와야 할 일이 많네. 자네는 우리 한림원의 젊은 인재가 아닌가.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공무로도 바쁠 테니, 휴가와 관련된 일은 새로운 서길사의 명단이 나올 때까지만 기다렸다가 진행하시게.”
오 학사는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고청운은 지금 당장이라도 바로 고향으로 떠나고 싶었지만 오 학사가 이렇게 까지 이야기하는데, 그저 ‘대인의 분부를 따르겠습니다.’ 라고 응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구대전이 끝난 이후, 보화전에서 새로운 진사 시험을 조직하여 종합 성적이 제일 뛰어난 사람을 선택해 서길사로 올리면, 예부에서는 신임 진사의 명부를 한림원으로 보냈는데, 여기서부터는 장원학사가 다시 황제를 모셨다.
고청운도 3년 전 그런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다.
시험 문제 같은 것은 몰라도 한림원의 일원으로서 최소한 예부, 병부를 도와 시험장 배치 같은 자질구레한 일이나 심지어 진사들이 점심 때 무엇을 먹든지 하는 모든 일들을 그 밑의 관원들이 처리해야 했다.
그때가 되면 정말 바빠지겠지만, 다행히 이런 행사는 3년에 한 번밖에 없었다.
* * *
오 학사의 집무실을 벗어난 후, 고청운은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소 시강인 소추의를 만났다. 그는 자신이 막 서길사가 되었을 때 오 학사가 자신에게 안배해 준 교습, 즉 사수 같은 사람이었다.
“대인.”
고청운은 윗몸을 45도 각도로 굽혀 인사했는데,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규율에 맞추어 읍례하였다.
소추의는 곁눈질로 흘겨보더니 “그래.” 하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오 대인의 집무실에서 방금 나온 겐가?”
“예.”
고청운은 공손히 대답하며 말을 아꼈다.
소추의는 입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웃었다.
“이제 편수가 됐으니 앞으로 잘 하시게나.”
“대인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고청운은 감사의 말을 올렸다.
고청운이 여전히 진지한 모습을 보이자, 소추의의 눈에 한 가닥 혐오감이 번뜩였다. 그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듯 바로 소매를 뿌리치며 자리를 떠버렸다.
그가 막 떠나자 방자명이 바로 뒤에서 튀어나와 고청운 옆에 서서 낮은 소리로 물었다.
“너 아직도 그와 말을 섞는 거야?”
고청운은 방자명을 보기만 해도 귀가 아팠다. 그가 며칠간이나 자신을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이곳은 한림원 안이었다.
“그는 상관인데, 그를 만나서 어찌 말 한마디 안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제가 죽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고청운이 이를 갈며 반문했다.
“만약 제가 그에게 공손하게 굴지 않는다면, 그는 틀림없이 제 행위를 한림원 전체가 다 알게 만들 거예요. 저도 답답하네요. 한림원엔 젊은 인재가 이리 수두룩한데 왜 전 저 사람의 눈 밖에 난 걸까요?”
고청운은 이 일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 오 학사가 자신을 소추의의 하관으로 배치했을 때, 고청운은 여전히 매우 기뻤다. 어쨌든 소추의는 입이 독하고 사람을 풍자하기 좋아하는 잠 시강보다 마음이 상냥해 보였고, 또 자신의 질문에도 끈기 있게 대답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단오절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휴일을 보내고 있었으나, 마침 소추의는 당직을 서는 날이라 출근을 하였다. 고청운은 자신의 직속상관이 출근을 했기에 따라 나왔고, 덩달아 한림원에 남아 당직을 서게 되었다.
그러니 고청운은 자연스레 작년 단오절의 상황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