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들통나다
사장정의 방문은 고청운이 두통에 시달리게 하였다. 비록 그는 자신이 쓰게 될 결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 왔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불평할 줄은 몰랐다. 고청운은 사장정이 사흘이 멀다 하고 자신을 설득하러 찾아오는 통에 정말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고청운은 두통에 시달리느라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5일이라는 시간이 꼭 일 년 같이 느껴졌다.
5일 후, 황제의 성지가 내려왔는데, 이로써 고청운은 정식으로 관직을 수여받게 되었다. 그에게는 한림원 정7품의 편수(*编修: 국사편찬에 종사하던 사관)직이 내려져, 한림원에 유관되었다.
그가 한림관에 남게 되자, 고청운 일가는 기뻐했다. 앞으로 그가 어디를 가서 벼슬을 하게 되던, 한림원 출신이라는 것이 그의 가장 큰 타이틀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림관은 문관으로는 최고의 출신 중 하나였고, 나중에는 그 덕에 남들보다 빠른 승진이 이뤄질 것이었다.
물론 스스로 노력과 운이 계속된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잠 시강처럼 평생 한림원에만 남을 수도 있었다. 한림원에만 남아 있게 되면 품계가 낮아 권세를 누릴 기회가 없어, 집안 형편이 남보다 더 청빈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관례에 따르면, 한림원 편수로 3년 정도 더 근무하면 다시 승진할 기회가 왔지만, 때론 그 이상의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었다.
고청운은 이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부서에 적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제일 좋았기에, 한림원에 남게 된 사실에 불만은 없었다. 여기서도 계속해서 많은 것을 배워 나갈 수 있었고, 나중에 자신의 당직일이 되거나 조서를 쓸 일이 생기면 황제와도 더 자주 대면할 기회가 생길 것이었다.
그는 이 밖에도 서길사 동기들의 향방도 알아냈다.
방자명은 고청운과 같이 한림원에 남게 되었는데 7품인 한림원 검토(檢討)직을 수여받았고, 그보다 한 등급 아래 직위였다. 담자례는 그와 마찬가지로 정7품 편수직을 수여받았다.
공봉명은 낙방하였지만, 지금 다른 관직을 고르고 있었다. 이부의 이런 점은 상당히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는데, 전직 서길사로 하여금 원하는 부서를 선택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이다.
이런 제도는 서길사를 우대하는 셈이었다.
* * *
관직이 수여되었다는 소식이 퍼져나가자, 축하하러 오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역시 관례에 따라 가족들끼리 저녁에 한바탕 축하의 자리를 마련했다.
하룻밤 사이, 사람들은 모두 기쁨에 들떠 있었는데, 특히 방인소와 연 씨는 기쁨에 겨워 연거푸 술잔을 기울였다.
고청운이 도중에 잠시 볼일을 보러 갔을 때 방자명이 따라 나오더니, 자리를 벗어나자마자 고청운의 목을 껴안고는 이를 악물고 그의 귓가에 다가가 물었다.
“청운아, 너 왜 계속 나한테만 숨겨왔던 거야?”
방자명의 말에 고청운은 깜짝 놀랐다.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고청운은 자신의 예감이 들어맞았다고 생각하며 애써 진정했다.
“인정을 안 하는 거니?”
방자명은 매우 실망한 모습으로 눈을 꼭 감은 채 서있었다.
고청운은 그의 팔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났다. 고청운은 심장박동이 매우 빨라졌고, 목도 가려워져 마른기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널 나를 속이고 있어. 내게 숨기고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거야.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일일 게다. 결국은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러면서 방자명은 뒤돌아서서 손수건으로 손을 깨끗이 닦았다.
“너 아직도 변명을 할 생각이야? 그럼 말해 봐, 황량 선생이 네가 아니라고.”
방자명은 그의 뒤를 따라와 그의 맞은편에 다시 섰다. 고청운의 몸짓을 놓치지 않고 쫒고 있는 방자명의 두 눈에는 기대와 설렘이 가득 차 있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분명하게 말을 꺼냈다면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수긍할 수밖에 없나. 항복이다.’
“하하, 방, 방 형도 알게 되었습니까?”
“너였어! 정말로 너였다고!”
고청운이 직접 시인하는 것을 듣자, 방자명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였음에도 여전히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너였을 수가 있지? 난 왜 이리 어리숙해서 뻔히 보이는 진실을 보고도 아직까지 몰랐을 수가 있냔 말이야.”
방자명이 고청운의 주위를 빙빙 돌며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내 눈이 멀었지, 눈이 삐었어.”
고청운은 코를 문질렀다. 자신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일침황량이 자신의 필명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고청운은 오히려 그를 그렇게 오랫동안 속일 수 있었다는 것이 조금은 놀랍기까지 하였다.
그가 책에서 인용한 시구 중 일부는 간미가 쓴 것이었고, 그 자신도 글 뒤에 자신의 아내가 이 부분을 쓴 것임을 분명히 밝혔었다. 만약 방자명처럼 그들 부부를 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면, 이 점만 연상해보아도 쉽게 알아맞힐 수 있었을 것이었다.
본래 고청운은 방자명이 일찍부터 자신의 또 다른 신분을 알아맞힐 것이라고 짐작했었는데, 방자명이 그간 자신의 책을 즐겨 읽어왔었기 때문이었다.
“청운아!”
방자명이 갑자기 그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애써 침착한 체하며 말했다.
“너 그간 나를 속이느라 참으로 고생이 많았구나. 그 죄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장군전기>의 결말이 비극인지 아닌지 솔직히 말해 줘. 오늘 점심 때 가서 최신 발행한 후속편 한 권을 사왔는데, 내용을 다 읽고 나니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더라.”
‘장정의 작업 능률이 이렇게까지 높았단 말인가? 원고를 전한 지 겨우 5일 만에 벌써 인쇄물이 나왔다고?’
하지만 인쇄소 몇 곳과 모두 연결돼 있는 사장정의 업무 능력상 이 같은 작업 속도는 정상범주에 속했다.
고청운은 자신의 어깨가 또 무겁게 느껴졌다. 그가 고의였다는 것은 알지만 결말을 내보내지 않았다니, 스스로 이치를 따져보아도 어쩔 수 없었다.
“방 형이 똑똑해서 이미 결말을 알아맞혔는데, 제가 무슨 할 말이 더 있겠습니까.”
고청운이 힘주어 말하였다.
“아-.”
방자명이 머리를 감싸 안고 비명을 질렀다.
그는 충격을 받았는지 고청운의 등을 한 대 후려쳤다.
“말도 안 돼! 날 속이다니! 아니 날 속인 사실을 잊어 줄 테니, 네가 보상을 해 줘. 비극만은 안 돼. 마음이 너무 아프단 말이야.”
‘미치겠다!’
고청운은 얼른 비켜섰다. 하인들은 그들이 치고받는 것 같은 상황을 연출하자 부리나케 가버렸다.
“방 형, 좀 진정해요. 이건 그냥 이야기일 뿐입니다. 큰일도 아니니까 우리 밥 먹고 천천히 대화를 나눠요. 다른 사람들 놀라게 하지 말고.”
“안 돼, 난 이미 식사를 다 했어.”
방자명은 자신이 2년 넘게 쫓아다닌 화본의 결말이 결국 비극이라고 하자 선뜻 받아들이기 싫어졌다.
“안 돼요, 안 돼. 전 최종 결말을 이미 다 써 두었어요. 이제는 더 고칠 수 없습니다.”
고청운이 머리를 저었다.
‘반드시 강인하게 나가야 한다. 그가 무슨 말을 하건 결말을 고쳐서는 안 돼.’
방자명은 그의 결연한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얼떨떨해져서, 바로 많은 증거를 수집해서 난동을 부릴 생각을 바꾸었다.
한편, 방자명은 기쁘기도 하였다.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화본이 나의 10년 지기 친한 벗이 집필한 작품이라니!’
그는 처음에는 호기심에 황량 선생의 정체를 추측하면서, 단지 이런 통속적인 화본을 쓰고 있음에도 상대방의 깊은 글 솜씨를 엿볼 수 있었다. 황량 선생은 어휘 사용이 간결하며 의미가 분명했고, 역대 왕조의 역사와 사건도 정확히 묘사하고 있었다. 또한, 화본의 흐름이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매끄럽게 묘사되어 있었는데, 등장인물이 살아 숨 쉬는 듯해 소박하니 생동감이 있어 쉽게 빠져들 수 있었다.
특히 방자명이 고향에 있을 때 작가가 책을 쓰기 시작했고, 그가 경성에 도착하자 일침황량 역시 바로 경성에 상경하여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방자명은 고청운에게 상대방이 자기 고향 사람이어야 한다고 토론했었는데, 뜻밖에도 진짜 그였다니…….
사실 도중에 그도 의심이야 했었지만, 어쨌든 자신은 오랫동안 고청운과 함께 지내 와서 어떤 일에 같은 관점을 가지고 또 공통의 관심사를 가졌었기 때문에, 그저 그의 글의 내용이 자신이 생각하는 도리에 맞고 심지어 일침황량의 화본 일부 관점도 자기와 꼭 맞아떨어지더라도 그저 자기 입맛에 딱 맞다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도 작가가 누구인지 눈치채지 못했고,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두 번째 작품을 접하고서야 비로소 주목해 보았으나, 일침황량의 개인 정보를 알 턱이 없으니 또다시 알 수가 없었다.
이전에 그는 문풍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 고청운과 꽤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속으로 계산을 해 보니 일침황량은 14년 전에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당시 고청운은 겨우 12살이었는데, 그때 방자명은 그가 이제 막 수재에 합격했을 때라 너무 어리니 그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청운은 독서 생활이 매우 규칙적인 사람으로 늘 생각하는 바와 언행을 일치시켜 바른 생활을 해 오고 있었다. 그가 어린나이에도 노련할 정도로 자제력이 강한 걸 보면 평소 책을 읽는 게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방자명은 과거에만 매달리다 보니 그가 어느 틈에 그런 긴 작품을 써냈는지 상상도 못했다. 그가 집필한 작품의 글자 수는 그간 4백만 자가 넘는 장편이었다…….
정말 4백만 자였다! 생각만 해도 어이가 없었는데, 그 긴 내용을 연재하는 중간에 독서와 공부를 병행하는 고청운은……. 거기에다 출신까지 곁들여 보게 되면 자동적으로 그는 후보에서 제외되고는 하였다.
경성에 도착했을 때, 방자명은 뜻밖에도 이 천 리 떨어진 곳에서 낯익은 저자를 보고 마음속으로 기뻐했었다. 그는 다시 한번 작가가 당최 누구인지 주시해 보았지만 안타깝게도 작가의 신분은 꽁꽁 잘 숨겨져 있었다. 게다가 방자명은 이성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여전히 자신과 사귀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의심해 본 적도 없었다.
그는 진실을 지나치게 갈구하지 않았고, 자신도 일신상에 바쁜 일이 많아 더 이상 작가의 신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다만 본의 아니게 사실을 알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청운이와 부마가 아는 사이라니!’
이 사실은 고청운이 직접 해 준 말이었다!
방자명은 사장정과 송죽서재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거기다 <장군전기>라는 화본에 그 익숙한 시구도 등장하지 않던가. 그는 이것으로 비로소 대담한 추측을 하나하나 해 보기 시작했다!
그가 여기까지 짐작한 것 외에도, 자신이 황량 선생의 작품을 들고 있을 때마다 보이던 고청운의 어색한 표정! 그때마다 빠르게 화제를 돌리기 위해 취했던 그의 행동들. 이렇게 모든 것이 밝혀지게 된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도 방자명은 어떻게 해야 할지 남몰래 궁리했다. 원래는 자신이 정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을 더 미루려 했으나, 최근 발간된 책을 구매하여 읽은 후 문득 마음속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더는 다른 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이 급히 그를 찾아가 결판을 낸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해 보니 방자명은 자신이 그동안 엄청난 사기를 당하면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화를 조금 낼 작정이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자신은 일침황량과…….
‘안 돼, 화가 나지 않으니 이를 어쩌지? 생각만 해도 설레잖아. 하하……. 안 돼,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잡아 놓고!’
이때 방자명의 표정은 너무 슬퍼보였다.
그는 괴로워하는 얼굴로 고청운을 한번 보고는 고개를 떨구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
“청운아, 우린 십수 년 동안 친분을 쌓아왔지. 나는 네가 나의 제일 친한 벗이라고 생각했는데 넌 날 속였구나. 너 내가 말실수라도 할까 봐 겁내서 말을 못했던 거니?”
놀란 고청운이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 꺼내기가 부끄러워서 그랬던 것일 뿐이에요.”
분명 중간에 사실을 밝힐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청운은 망설이는 바람에 지금까지 사실을 밝히는 일을 미루고 있기는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