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수관(授官)
황제가 문득 여학을 세우기로 한 일에 대하여, 고청운 역시 매우 의아하게는 여겼지만, 시대적으로나 풍토적으로도 크게 도가 지나치다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에는 역사적으로도 누군가 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는 황제가 왜 지금 별안간 이런 방편을 내놓았는지에 대해 의아할 뿐이었다. 왜 그는 몇 년 더 사회적 풍토가 조성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을까? 조금은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어쨌든 이 정책은 꽤나 많은 지지를 얻어냈다. 고청운도 산관 시험의 책론 문제를 통해 여학을 운영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기하였다. 여성의 교육 수준과 자질은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치니, 유아기 때부터 어머니를 통해 사상이나 교육적으로 좋은 영향을 받아 생각이나 감정이 바람직하게 변화하는 것이 앞으로 나라의 미래나 인재 양성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었다.
만약 아이의 어머니가 지식을 갖추고 학식이 풍부하다면, 그녀가 길러낸 아이는 상식적으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어머니가 양육한 아이들보다야 분명 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황제가 너무 이른 시기에 정책을 펴서 되레 조정의 중신들의 반감과 압력에 의해 여학이 무산되지는 않을까?
고청운은 지금 이 두 서원이 잘 정착할지는 몰랐지만, 우선 대강 서원이 건립 예정된 주소를 알게 되자마자 바로 그 근처의 땅을 매입하였다. 다행히도 대부분은 관망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쉽고 빠르게 매입할 수 있었다.
서원에 가까이 위치한 땅의 가치는 다른 곳보다 당연히 더 높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때문에 그는 300냥씩이나 주고 땅을 점하였다.
위치와 관련된 정보의 출처는 어디서 온 것일까? 이는 사장정이 먼저 알려준 것이었다. 그가 별 생각 없이 위치를 발설한 것일 뿐인데, 고청운은 그 근방의 집들이 비교적 세가 잘 나갈 것이라는 것까지 내다본 것이었다. 그는 서원을 다니려는 외지에서 온 학생들에게 세를 놓거나 혹은 직접 가게를 내는 것도 괜찮겠다는 구상까지 하고 있었다.
사장정도 함께 땅을 매입했는데, 서원 예정 부지에서 더 가까운 곳을 매입할 수 있었다.
고청운은 늘 땅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부동산적 가치가 앞으로도 하락할 리가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려면 지리적 위치가 좋은 곳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였다. 이후에 경성이 더 많이 발전하게 되면 반드시 그 지역 전체가 발전하게 될 테니, 도시에 와서 살려고 하는 인구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었다.
최근 그가 대흥현에 20묘의 땅을 산 것도 아주 오랫동안 눈여겨보고 준비해오다가 매입한 것으로, 장원을 매입한 것이기에 앞으로 가정에서 쌀이나 채소를 사지 않고 바로 구할 수가 있게 되었다.
게다가 대흥현이라는 지역은 경성과 매우 가깝게 위치해 있어 중급 토질의 밭임에도 불구하고 한 묘에 12냥씩이나 받았다. 매입에 들어간 수수료를 포함해 20묘의 면적을 매입하는데 고청운은 무려 250냥을 지출했고, 지금 그의 수중에는 또다시 200냥 정도의 은자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그는 서원에 근접한 위치의 땅에 아직 주택을 짓지 않았다. 현재 수중에 남은 돈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인데, 어차피 주택만 다 지으면 임대료는 다시 생길 것이었다. 생활비는 일남방 쪽에서 받는 임대료로 충당을 하고 있으니, 집을 지으려면 지을 수는 있는 상태였다.
“신지!”
사장정은 고청운이 사색에 잠겨있는 모습을 보고는 그저 일말에 기대를 품은 채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참지 못하고 먼저 고청운을 소리쳐 불렀다.
“도대체 우리 의견에 동의하는 건가, 안하는 건가?”
‘사람들에게 뭘 돌려줘야 한다고?’
고청운의 입꼬리가 솟구쳐 올라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치지 않을 걸세. 이렇게 그냥 둘 것이야. 자네가 사랑하는 빙 낭자가 어찌 되건 말건, 그냥 이렇게 둘 걸세.”
이제 와서 행복한 결말로 이야기를 바꾸는 것은 그간 고수해 온 이 책의 정서와 맞지 않았다. 앞에 그가 복선을 깔아놓은 게 다 비극적인 결말을 향한 것들이었는데, 이런 복선을 헛되이 날려버리면 결국에는 이야기의 앞뒤가 맞지 않게 될 것이었다.
고청운은 황제가 여학을 운영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여자 주인공이 첩으로 살지 않기로 마음을 정한 후 자살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으려던 것을 여자 주인공이 비구니만 지내는 암자로 출가하는 설정으로 내용을 고쳤다.
그녀는 남자 주인공이 아무리 찾아도 자신을 찾아내지 못하도록 아주 멀고 먼 곳으로 그를 피해 떠났는데, 이후 여자 주인공은 뛰어난 의술을 익혀 현지에서 명성이 자자하게 되어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애석하게도 그녀는 화본의 마지막에 병을 얻었고, 그간 잊지 못한 사랑하던 이를 그리며 상사병까지 겹쳐 우울한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었다.
그녀가 죽은 후에 남자 주인공은 결국 그녀를 찾아냈지만, 안타깝게도 너무 늦어 결국 그녀의 무덤만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고청운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 후세에 전해지던 그리움에 대한 십계의 내용을 기억나는 대로 실었는데, 내용을 거의 다 잊어버렸으나 간간히 남아 있는 기억에 근거하여 여전히 형식을 갖춰 내용을 적어 두었다. 원본과 일맥상통 하기는 할 것이나 아마 한마디도 같은 구절은 없을 것이었다.
[첫째는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 만나지 않아야 사랑하지 않으리. 알지 못해야 그리움도 없으리. 서로 만나 사랑했으니 어찌 서로를 몰랐던 때와 같으리. 어찌해야 가슴에 새겨진 지독한 그리움을 달랠까…….]
“신-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어조를 길게 늘이며 고청운을 부른 사장정은 우울한 듯 고청운을 바라보더니 그의 소매를 잡아당겨대며 말했다.
“정말 안 되겠는가? 내가 누군가에 의해 무참한 꼴을 당하는 것을 차마 눈 뜨고 볼 자신이 있는 건가? 결말을 바꾸겠다고 대답하지 않으면, 나는 당장 오늘 밤에 어디로 가서 잠을 자야 할지 모르겠네, 흑흑……. 나는 정말 목숨이 아깝다네! 이 세상천지에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또 있을까. 나는 이렇게 내 벗의 손에 의해 죽게 되는 걸까.”
고청운은 그대로 의자에 앉았다.
사장정은 입이 마르도록 말을 이어갔는데, 아무리 매달려도 고청운이 흔들리지 않자 결국 어찌할 도리가 없게 되었다.
“나중에 가서 어느 독자가 불만을 가져서 화를 당해도 이제 나랑은 상관없는 일인 거네.”
사장정은 찻물을 한 모금 마시려다가 이미 차가 다 식은 것을 깨닫고 급히 따뜻한 차 한 잔을 다시 따라 마시고 나서 입을 또 열었다.
“내가 외출을 좀 자제해야겠군. 그저 공주께 몇 대 더 맞기밖에 더 하겠는가. 이 철석같이 냉정하고 무정한 마음씨를 가진 자 같으니라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고청운은 한참 동안 그의 고뇌를 듣고 나니 동요하기는 했지만, 결국 그의 결정을 더 확고히 하였다.
“참, 서재 사장님에게 극단 하나가 찾아 왔네. 자네의 화본을 극본으로 만들고 싶다는데 그 일에 동의하시는가?”
사장정은 별안간 다른 일이 생각나서 급히 물었다.
“허락한다면 바로 극을 꾸리고 돈을 지급하겠다고 하네. 내가 보기에는 큰돈을 줄 것 같지는 않네. 실은 내가 그 극단주를 좀 알고 있습니다만, 그는 매우 인색한 사람일세. 하지만, 오히려 극은 매우 잘 만드는 자이지.”
‘내가 쓴 화본을 연극으로 각색한다고?’
고청운은 그 성과에 낙관했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필명이 더 큰 명성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난 이견이 없으니 자네가 알아서 진행하게.”
고청운은 완전히 손을 떼기로 했다. 어쨌든 극단에 대해서는 사장정이 그보다 훨씬 더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 이미 성혼을 한 터라, 더 이상 무대에 올라 공연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극을 보러 가는 것은 여전히 아주 좋아했기 때문에 거의 매일 끊임없이 연극을 보러 다니고 있었다.
“공주께 피해가 가지만 않았으면 내가 반드시 완아를 연기했을 텐데.”
사장정의 말투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하지만 이 일이 잘만 성사된다면 경성의 다른 극단들도 내게 화본을 사겠다고 줄을 서 있을 것이고, 하하, 그렇게 되면 또 한몫 벌 수 있을 걸세.”
고청운도 듣고 보니 기뻤다. 또 돈이 나갈 일들이 있었기에 지금 궁색했기 때문이었다.
“참, 이 극단에서는 작품 제목을 좀 바꾸는 게 어떤지 생각하고 있네. 남녀 주인공의 사랑에 중점을 두고 연극을 구성할 예정인데, 전쟁터에 나가는 장면이 없으니 화본의 제목과 어울리지가 않아서 연극의 제목을 좀 바꾸자고 하는데 그렇게 하라고 해도 되겠는가?”
사장정은 이 말을 꺼내기가 미안했는지 목소리 크기가 많이 줄어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어느 한쪽 의견만 들어주고 남은 한쪽은 시원하게 처리할 수가 있는데, 이번 극단주는 내가 고향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 자주 그의 극단의 노래를 듣곤 해서 결국 그쪽 체면도 조금 세워줘야 할 것 같아서…….”
고청운도 감정선으로만 치중해서 연극이 구성된다고 하면 확실히 <장군전기>라는 제목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허락하기로 하였다.
두 사람은 제목을 바꾸는 일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결국 화본에서 줄곧 남녀 주인공의 연정을 대표하며 일관적으로 등장했던, 네 가닥을 꼬아 만든 <매화 반지>로 연극판 제목을 결정하기로 하였다.
옛날에 미혼 여성은 반지를 끼지 못했지만, 반지로 연정을 언약하는 풍습은 오래되어 여인의 연정 상대인 사내 쪽에서 여인에게 반지를 선물하는 관습이 있었다.
<태평광기>(*太平广记: 고대의 소설)에서도 반지와 관련된 시구가 기록되어 있었는데, 그 내용엔 ‘반지가 이어져 만들어진 고리를 보고 낭군을 기억한다. 우리의 인연도 이 같이 환을 그리며 끝이 없길(捻指环相思,见环重相忆。愿君永持玩,循环无终极).’ 등이 있었다.
“좋네. 그 제목 마음에 드니 그렇게 하세.”
사장정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어쨌든 그 혼자서는 딱히 좋은 이름을 지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또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사장정은 날이 점점 더 어두워지자, 통금 때문에 집에 돌아가지 못할까 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파하기로 했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결말을 수정하는 것을 단념하지 않았는지 우선은 먼저 돌아가 결말을 나중에 출간하겠다고 하였다. 한 달의 여유 기간을 두어 조금 더 고청운을 설득해 볼 요량인 듯했다.
고청운은 이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 * *
사장정이 집으로 돌아간 뒤에야 하겸죽이 귀가했다. 고청운은 그가 후원으로 오는 것을 보고 궁금증이 일었지만, 말을 선뜻 꺼내기가 어려웠다.
“청운이, 한림원에 순조롭게 잘 남을 수 있겠는가?”
하겸죽은 얼굴 가득 동경을 품고 말을 꺼냈다. 뭇 문인에게는 한림원에 남아 관직 생활을 영유할 수 있다는 것이 확실히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일반적인 진사들에게는 그럴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고청운이 코를 만지며 웃었다.
“며칠 뒤면 결과가 나올 겁니다.”
고청운은 하겸죽의 귀경을 반길 수밖에 없었다. 그가 고향집의 서신을 가져와 주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은 그동안 서로 서신을 주고받고는 있었다고 하나 가족들의 진짜 사정을 알지는 못했는데, 하겸죽이 눈으로 직접 보고 와서 전해 주니 고마웠다. 이번에 하겸죽은 경성으로 과거를 보러 오기 전에 친히 임계촌에 한번 들러, 자신의 가족을 방문하고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직접 만나 뵙고 와 주었다.
고청운은 그제야 서신에는 적혀있지 않던 소식을 알 수가 있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비록 3년 전보다는 몸이 좀 더 안 좋아졌지만 여전히 식사도 잘 하고, 정신도 맑으며, 요즘 들어서는 큰 걱정거리도 없다는 것이었다. 또 하겸죽에게 소어를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을 했다는데, 죽을 때까지 소어를 못 보게 될까봐 걱정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의 부모님은 아주 건강하시다고 하였다.
고청운은 이런 소식에 기뻐하면서도 3년 전 고향에서의 이별 당시에 어렴풋이 느꼈던 두려움을 떠올렸다. 그는 저번이 두 노인을 뵙는 마지막이 될까 걱정했었다.
비록 그가 어렸을 때, 그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를 포기하려 했다고 하더라도, 그가 3살이 될 때까지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 듯 약을 지어 먹여 주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이다. 나중에 그의 몸이 회복되고 나서 또 얼마나 잘해 주려고 애썼던가. 여러 해 동안, 어쨌든 자신의 혈족인 데다 전생의 외할머니의 영향까지 더해져서인지, 고청운은 두 노인에 대해 더욱 깊은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의 부모와 비교하면, 아주 적은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고청운은 그들이 아직 정정하다고 하니 매우 기뻤다.
전해 온 다른 소식들로는 그의 두 사촌 동생이 현재 동생(童生)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모두 원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아직 수재에 합격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고청운은 자신의 사촌 형이 20대 초반이 되어서야 겨우 수재에 합격했던 것을 떠올리며, 수재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았던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