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225)화 (225/504)

225화. 원념(怨念) (1)

지방에 내려가 관직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일종의 단련이 되기도 할 것이라 생각한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희림, 그럼 어느 현으로 갈 예정인가?”

희림은 그의 자명이었다.

방희림은 소어를 쫓아 뛰느라 넘어지고 부딪히면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하던 아들을 한번 보고는 말했다.

“아직은 확실하지 않네. 하지만 확실히 말해 줄 수 있는 건 벽촌 외지는 아니라는 걸세.”

고청운은 웃었다. 벽촌 외지 발령이라면 귀양 가는 것이 아닌가. 백엽이 건재하므로 어떻게 해도 그가 벽촌 외지의 작은 현에 머무를 리는 없었다. 아마도 그는 세금이 더 많이 걷히는, 좀 부유한 큰 규모의 현으로 가게 될 것이었다. 혹은 정치상의 업적을 쌓기 쉬운 곳으로 갈 터인데, 어쨌든 누군가 그의 발자취를 그대로 인용해도 될 만큼 괜찮을 곳으로는 가게 될 것이었다. 

“신지, 난 진사에 합격했다 한들 모든 상황이 다 나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배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고난이 도사리고 있지.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참 쉽게도 변하는군.”

방희림은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는 머리위에 쓰고 있던 목관을 제대로 고쳐 쓰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이번에 지방으로 부임하게 되면 부모님께서는 형제자매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가실 것이네.”

‘그렇게 되면 그가 느껴야 하는 압력은 좀 적어지겠구나.’

“그것 또한 꽤 잘된 일이구만. 아마 경성에 거주하는 것이 익숙지 않은 가족도 있었을 것이네.”

고청운이 한마디 화답했다. 그는 방희림의 집에 몇 번인가 가본 적이 있었다. 그의 가족들은 경성어를 구사할 줄 몰랐는데, 상경하고 나서야 천천히 익혀가기 시작했다고 했었다. 

“나는 지방에 내려가서 반드시 잘 해내야만 하네. 최소한 어떤 성적을 거둘 수는 있어야 하겠지. 내가 원해서 직접 지방으로 내려간 것이기는 해도 그 정도는 되어야 지방에 부임하고 나서도 뒷말이 없을 거야.”

활달한 성향이었던 방희림은 집안의 근심을 빨리 내던져 버리고는, 자신이 동경하는 지방 장관이 된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현령은 백리후(百里侯)라고 불리는 자리로, 현에서 제일 큰 통치자, 즉 지방 장관과 같은 자리였다. 확실히 그가 이 자리에서 재능을 발휘한다면 자신의 정치적 업적을 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었다. 

고청운은 그와 교제해 오면서 그가 평소 큰 뜻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는데, 그의 사상은 고루하지 않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사상들도 꽤 있었다. 

두 사람이 수양버들나무 아래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시간이 이미 정오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따금씩 아이들이 그들 곁을 씽씽 지나치며 놀고 있었고, 거기에 따스한 바람까지 불어오자 정말이지 흡족한 풍광이 아닐 수 없었다. 

“신지, 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자네가 내 말을 잘 들어줄 때면, 나는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는 것 같네.”

방희림은 말을 끝마치고 하하 웃었다. 

“자네는 꼭 사람으로 하여금 뭔가를 속 시원히 털어놓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한다는 말이지. 자네를 대하고 있으면 난 꼭 말이 많아진다는 말이야.”

사실 고청운은 이 말을 많은 사람들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고청운은 고개를 저었다.

“희림 자네가 날 좋게 봐주신 덕이지. 그런 말을 듣게 되니 감개무량할 뿐이네.” 

두 사람은 서로 눈이 마주치자 웃음을 터뜨렸다.

“내 부인이 아직 언덕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군. 먼저 가시게. 아이들도 배가 고플 게야.”

방희림은 하늘에 떠있는 태양을 올려다보며 시간을 가늠했다. 아들이 벌써 몇 번이나 땅바닥에 넘어져 굴러댔는지 옷이 새까맣게 탄 것처럼 더러워져 있자, 방희림은 돌아가서 아내의 잔소리를 들을 생각에 두피가 다 뻣뻣해져서 아들을 안고 우울하게 가버렸다.

소어는 동생이 멀리 가는 것을 보고 못내 아쉬워하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고청운은 소어의 구질구질해진 옷을 보고도 질색하지 않고 그저 먼지를 툭툭 털며주고는 안아 올렸다.

“부군, 여기서 조금만 더 계셔줄래요? 제가 소석이를 데리고 마차에 가서 뜨거운 물을 끓여오겠습니다. 아이들이 분명 배가 고플 거예요.”

고청운이 드디어 다른 사람과 말을 끝낸 것을 보고는 간미가 급히 다가와 말했다. 그녀도 방금까지 몇 명의 친구를 만났지만, 소어를 보러 건너온 것이라 말을 길게 나누지 않았다. 

고청운이 대답했다.

“그럼, 가보시오.”

고청운은 소석이 오래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 소석의 이마에 땀이 많이 나서 간미가 소석의 옷을 갈아입히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쯧쯧.’ 

작은 소석은 뚱뚱한 몸매의 소유자임에도 늘 뛰어 다녔는데, 신체 능력만은 민첩하였다. 

그때, 간미를 기다리던 고청운은 익숙한 인영이 눈에 보이자 먼저 인사를 건넸다.

“자례!”

두 사람은 한림원에서 2년여 동안 매일같이 얼굴을 안 보려고 해도 안 볼 수 없는 위치에서 근무를 해왔으나, 불미스러운 일이 있은 뒤로는 마음의 간극이 생겨 줄곧 무관심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만나면 인사는 해야지.’

“고 형.” 

그를 보자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인 담자례는 그의 어깨에 매달려 있는 소어를 보고는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흰 장삼을 걸치고 있는 담자례는 워낙에 출중하신 외모라 수많은 군중들 사이에서도 아주 돋보였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고청운도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었다. 다만 그는 너무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고청운 스스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인지 그것이 아주 비호감으로 여겨졌다. 

두 사람은 몇 마디 건성으로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고청운은 담자례가 어떻게 한 명의 몸종만 데리고 봄나들이를 왔는지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설마 다른 사람과 약속을 하고 나온 걸까? 이런 때는 보통 가족들을 대동하고 나설 텐데.’

담자례는 작년에 이미 성혼을 한 상태로, 아내가 된 자는 국자감의 제주(祭酒)직을 맡은 관리의 적녀였다. 두 사람은 이제 성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혼일 테니, 이럴 때일수록 함께 밖을 나서야 도리에 맞았다.  

‘남의 일 따윈 더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고청운은 소어를 안고 조금 더 걸어가면서 주변의 유치한 말들을 듣게 되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들풀이 무성하고 사람이 한적한 장소가 있었지만, 그는 생각을 조금 해보고는 바로 방향을 돌려 마차로 돌아가 점심 식사를 할 준비를 하였다. 

“아빠, 오줌 마려워요.”

품속의 소어가 꼼지락거리다가 갑자기 소리쳤다.

고청운은 아이가 자기 몸에 오줌을 눌까 봐 그 말을 듣고 재빨리 내려놓았다.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오고가는 곳이라 정말 그의 옷에 오줌이라도 싼다면 큰 불편이 따를 것이기 때문이었다. 

소어가 오줌을 싸러 갔는지 고청운은 주변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리자 자기도 모르게 귀를 쫑긋했다.

“이 <장군전기>의 결말이 도대체 어떻게 되려는 걸까? 정말 궁금해 죽겠어. 황량 선생은 글 쓰는 속도가 너무 느리신 거 아니야? 너희들 중에 그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 없어?” 

고청운이 어리둥절해하며 왼편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귀족 차림의 소녀 몇 명이 그의 맞은편에서 천천히 걸어가며 대화하는 것이 보였다. 그녀들의 주변에 계집종들이 한 무더기 뒤따르고 있는 것을 보니, 위로는 사람이 많고 세력이 있는 집안의 여식들일 것이었다. 

고청운은 감히 이야기를 자세히 엿듣지 못했다. 소어가 볼일을 다 본 후에  새를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얼른 바지를 추켜올려줘야 했던 것이다. 소어의 손도 씻겨 줘야 했지만, 이쪽 강물 수심이 너무 깊은 탓에 좀 있다가 돌아가 다시 씻겨야 할 것 같았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도대체 장군과 빙 낭자가 다시 상봉할 수는 있는 걸까? 황량 선생이 글을 정말 끔찍하게도 썼던데. 만났다가도 이따가 또 헤어지고, 또다시 오해가 생겨나지를 않나, 정말이지 책으로 뛰어들어 이건 오해라고 직접 알려주고 싶을 정도였지 뭐야. 

으으……. 그리고 빙 낭자가 다쳤던 대목에서는 내가 다 눈물이 나더라. 빙 낭자가 일심하여 장군을 위한 것을 온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 하필 이때 장군이 또 기억을 잃어버렸으니. 지금은 빙 낭자의 존재마저 기억하지 못할 게 또 무어란 말이야! 이 비정한 사내 같으니, 처음에 그렇게 좋아하게 만들어 놓고는!”

한 줄기의 앳된 목소리가 울컥 울려 퍼졌다.

고청운은 민망해서 얼굴이 좀 빨개졌다. 그는 이번 편에서 욕을 먹는 것도 재미있게 느껴져 기억상실이라는 패까지 꺼내 든 것이었다. 이번 화본 작품은 원래 장편으로 구상을 한 것이라 지금도 아직 완결이 나지 않았다. 

이 화본은 시작은 좋았으나 점차 남성 독자들에게 자극적인 요소가 많이 없어 남성 독자들이 대거 탈락해 나갔고, 심지어 경쟁사가 그의 작품이 너무 여성스럽다는 유언비어까지 퍼트린 참이었다. 그렇게 수입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고청운은 그만 다급해져서 자신이 원래 구상했었던 화본의 이야기로 되돌아와 점점 냉정을 되찾으며 원래의 기본 구상을 따라 집필해나가기 시작했다. 

나중에 뜻밖에 안락공주가 이 책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고, 그녀의 선도 하에 경성의 귀족 여식들과 대갓집 규수들 모두가 이 화본을 보기 시작하여  일대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로써 남성 독자들의 유출로 인한 손실을 거의 상쇄할 수 있었다.

고청운은 원래 여인들이 한때 안락공주 때문에 자신의 화본을 지지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매회 출간이 될 때마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따라다니며 화본을 구매하자 놀랐다. 또 황량 선생에게 연락이 닿지 않아 화본에 대한 보상이나 물건을 송죽서재에 맡기고 가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가게에서는 독자들로부터 받은 물건들을 고청운에게 전해 주었다.

사장정이 귀족 여식들이 그에게 보내는 보상을 어찌 할지 자신의 의견을 물은 적이 있었는데, 고청운은 그 포상들을 완곡하게 거절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 당시 고청운은 자신에게 천 냥 이상의 가치가 있는 포상을 받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었다. 정말 배포가 큰 여인들이 아닌가! 게다가 그녀들이 포상으로 자신을 회유하여 극의 흐름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곤란했다. 특히 그가 잔학할 정도로 극의 흐름을 휘어잡고 있을 때 자신을 찾아내려고 백방으로 애를 썼다지 않은가. 

간미는 연회에 참석했다가 돌아와서 화본과 관련된 부녀자들의 원망 가득한 여론을 여러 번 들려주고는 했었다. 

물론 일부 소녀들은 연서를 함께 보내주기도 했는데, 이 소녀들의 후일의 명예와 정조를 위해서 고청운은 간미에게 부탁하여 이 편지들을 태워버려 흔적을 남기지 않는 수밖에 없었다.

매번 함축적이고 은밀하게 쓰인 연서를 받을 때면, 고청운은 화를 피하기 위해 더욱 집에서 조심스럽게 꼬리를 감추고 숨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간 남자 주인공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사람들의 원망이 가장 컸었는데, 송죽서재의 각종 평론이 가득한 방명록을 보면 그를 지지해서 감사의 말을 남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실은 협박의 내용이 제일 많았다. 이런 시기에 고청운은 사장정에게 직접 연락조차 하지 못했고 원고를 주러 갈 때에는 고삼원을 몰래 보내 전해 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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