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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224)화 (224/504)

224화. 답청(踏靑) (3)

간미는 포졸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속으로 기뻐했는데, 보다 더 주변이 안전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번에는 언덕 아래 저편에 서 있는 천막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천막은 모두 연이나 음식 따위를 파느라 펴둔 것이었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천막은 저쪽에 있는 노점 상인들을 위한 것이군요.”

아마 저 행상인들은 일정 관리비를 지불해야 했을 것이었다. 

“고 대인.”

그때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와 고청운이 시선을 돌려 보니, 긴 장삼을 입은 5명의 문인들이 자리에 앉아 있다가 그를 발견한 것인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고청운이 자세히 눈여겨보니, 그들은 원래 살고 있던 월성에서 시험을 보기 위해 상경한 거인들로, 상경한 이후 시험을 치르기 전에 특별히 시간을 내어 자신과 방인소를 방문했었다. 그들은 고청운이 지내는 집에서 시험을 준비하지는 않고 월성에서 별도로 운영하는 회관을 이용했는데,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지역민들이 머무를 수 있기도 하였고, 또 처음 과거 시험을 치르러 상경을 한 응시자의 경우 무료로 숙박할 수 있었다. 

“대인과 사모님을 뵙습니다.”

다섯 사람이 차례로 인사를 하였다. 그들은 고청운을 사석에서 만난 것이 매우 기쁜 듯하였다. 

고청운과 간미도 고개를 끄덕여 화답했다. 

“자네들도 왔는가.”

고청운은 그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눈 후, 바로 물었다.

“하 사형은? 자네들, 왜 하 사형과 함께 오지 않은 겐가?” 

그는 아침에 분명히 회관에 간다고 했었다. 

그러자 나이가 서른 대여섯 살 되는 거인 하나가 공손하게 대답하였다. 

“대인께 아룁니다. 하 형께서는 회관에 남아 여해(如海) 형님과 바둑을 두고 계십니다. 두 분께서 교외 나들이에 관심이 없으셔서 저희만 나왔지요.”

고청운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이 자리에 없어서 이상하게 여겼건만, 이제 막 몸이 나은 사람들이…….”

그 말에 몇몇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까의 그 나이가 제일 많던 거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대인, 혹여 저희 응시생들이 필사해 둔 답안지를 한 번 보시고 의견을 주실 수 있으신지요?”

고청운이 듣자하니, 이들은 4월에야 합격자 명단 발표가 있는 것을 잘 알고는 있었으나, 그때까지 조급한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어 혹시라도 그들의 시험 결과가 이번 시험에 합격할만한 여지라도 있는지 자신의 도움을 얻어 조언을 구하려던 모양이었다. 예전의 그가 시험을 치른 직후 방인소에게 달려갔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라도 하면 심리적인 압박이 좀 덜해졌었다. 

고청운은 일찍이 하겸죽의 답안을 확인해 주었는데, 하겸죽은 답안 작성이야 잘 써냈다. 다만, 그와 함께 시험에 참가한 다른 이들의 수준을 알 길이 없어 도대체 이 수준의 답안으로 시험에 붙을 수 있을지는 알 방도가 없어, 고청운은 방인소에게 자문을 구해도 보았으나, 돌아오는 답변이라고는 합격 여부의 당락을 짓는 것은 그저 운에 달렸다는 것이었다. 

“그래, 내일부터 시간이 있으니 자네들 시간 날 때 가져와 보시게. 정말 확실치 않은 문제들은 우리 스승님께라도 여쭐 터이니.” 

고청운은 그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어차피 시간을 좀 들이는 것만으로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대인께 감사드립니다.”

그들은 대답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읍하였다.

사람들이 그들을 에워싸자, 소어는 긴장하여 뛰어 돌아와 고청운의 허벅지를 말없이 끌어안고 있었다. 

몇몇이 소어를 보고서는 한바탕 아첨을 하였으나, 고청운이 마른기침을 한 번 하자 바로 눈치 있게 인사를 고하고 자리를 피하였다.

고청운 일행은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갔는데, 소어는 뛰어다니다 지쳐서 고청운이 아이를 안고 갈 수밖에 없었다.

* * *

먼저 자리를 떠난 몇몇의 거인들이 고청운의 뒷모습을 보며 부러운 듯이 말했다.

“하 형이 정말 부럽군요. 고 대인 같은 분을 벗으로 두시다니 말이에요. 고 대인의 가르침을 몇 수만 받아도 눈에 띄게 발전할 텐데, 한 달 넘게 지도를 받으실 수 있었다니. 제가 보기에도 하 형의 책론 분야가 특히 막 시작하셨을 때보다 엄청 좋아지셨던데요.”

“부러워해서 무엇 하겠소.”

활달한 성품인 아까의 나이가 많은 거인이 부채를 부치며 말했다.

“저분들은 어렸을 때부터 벗이었다고 하오. 그러니 어디 보통 감정이겠소. 정말 저 둘이 부럽다면 왜 고 대인은 부러워하지 않으시오? 잘들 보시오. 고 대인의 나이는 여기 모여 있는 우리들 중 그 누구보다도 어린데 이미 서길사가 아니신가. 듣자하니 얼마 전에 산관 고사까지 마치셨다고 하니, 그간 고 대인의 학문적 성취를 고려하면 반드시 한림관이 될 수 있으실 것이오.”

서길사가 비록 다른 진사들보다 3년 늦게 벼슬을 한다고는 하지만, 서길사 출신의 경우 벼슬길에 오른 후 출세가 빠른 편이었다. 더욱이 한림관 출신이 아니면 내각에 들어 고관대작의 반열에 오를 방법도 없었으니, 얼마나 많은 문인들의 선망의 대상이겠는가 말이다!

“소생이 한림원에 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듣자하니 폐하께서 한림원에 자주 왕림하셔서 서길사의 학문을 직접 시험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꽤 쓸 만한 정보통을 두고 있었던 어떤 이가 넌지시 알려 주었다. 

“더 들어보니, 폐하께서 고 대인에게 하문하는 것을 꽤 좋아하신다고 합니다. 벌써 몇 번이나 시험을 하셨다고 해요. 왕림만 하신다고 하면 반드시 고대인을 점찍어 시험을 보신다니 말입니다.”

“폐하께서?”

아직 황제를 본 적조차 없었던 사람들은 동경해 마지않았다. 지금의 황제는 대중의 민심과 여론이 꽤 좋은 편이었는데, 이로써 대권이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태후가 번번이 제압을 당해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있으니, 이미 실권을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진왕은 왕부에서 하루 종일 향락을 일삼고 있었다. 

“폐하께 시험받는다는 것이 매우 긴장되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리 원해도 그런 기회조차 찾아오지 않는 것을…….”

* * *

한편, 고청운은 지인들을 속속 마주치게 되었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있는 지역이라 아는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는 확률이 높았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다들 가족들을 데리고 놀러 나온 것이었기에, 마주친다 한들 인사나 겨우 나누고 바로 흩어졌다. 

다만 이번에 마주친 이는 가볍게 인사만 나눌 수는 없었다.

“신지!”

건너편 방희림이 손을 흔들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고청운은 그의 목마를 타고 앉은 아이를 보고 급히 소리쳤다. 

“천천히! 제발 조금 천천히 걸으시게. 아드님이 위에 앉아있지 않은가.”

방희림은 되레 점점 빨라지는 걸음으로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괜찮네, 내 아들은 정말 튼튼하니.”

‘한 살 반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튼튼하다고?’ 

고청운이 위에 앉아 있는 아이를 보니 방희림의 아들은 신이 나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정말로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래도 안고 있는 것이 낫겠네.”

간미와 그가 인사를 다 나누기를 기다렸다가 고청운이 권했다. 

“조심하시게, 집에 돌아가서 제수씨께 괜한 말 듣지 말고.”

그러자 방희림은 그제야 아들을 안아 내려 소석과 함께 놀게 하며 말했다.

“아이들도 데리고 왔군?”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봄의 정취가 너무 좋아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네.”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며 웃고 있는 것을 보자, 간미는 그 둘이 이야기를 나누려는 것 같아 바로 아이들을 돌보러 앞으로 나갔다. 

“자네는 지방으로 내려 갈 준비는 다 되었는가?”

그를 보고 그간 들었던 향간의 소문이 떠올랐던 고청운은 지금 소문의 당사자가 눈앞에 있으니 바로 질문을 이어나갔다.

“아니면 큰 현으로 가서 지현(*知县: 현의 지사)이 되려는 겐가? 자네는 지금 정7품이니 지방 보직은 현령뿐 아니라 동지(*同知: 지부(知府)를 보좌하는 정5품 관직)도 될 수 있었을 것이 아닌가.” 

관례에 따라, 경성에서 벼슬을 하다가 지방의 관직을 수임하게 되면, 한 계급 승진하여 임용될 것이었다.

방희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도 들었군.”

“한림원에서의 상황이 아주 좋았는데, 왜 몇 년 더 있지를 않고. 조금 더 나중에 지부로 발령받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지난 3년 동안 친분이 두터워진 터라 고청운도 이런 말을 꺼낼 수가 있었다. 

방희림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언젠가 결국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는 것이라면, 나에게는 늦게 내려가게 되는 것보다는 지금 가는 것이 더 낫네.”

예전과는 달리 지금 조정은 내각에 들어가려면 지방에서의 관직 경험을 수반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경성에서만 관직 생활을 했다가는 바로 위로 승진을 할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고청운은 방희림이 처한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은근히 추측을 해 보았다.

방희림은 고청운과 같은 농가의 일천한 집안 출신으로, 금방(金榜)에 이름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가문의 저력이 많지 못했다. 고청운은 만약 그가 관직 생활을 해서 받는 녹봉 외의 수입이 더 없었더라면, 그의 집은 다른 향신집안들과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었다. 

평소 방희림은 겸직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탐화랑이자 한 번 본 것은 잊지 않는다는 능력의 소유자인 덕에 민간에서 명성이 매우 높아 가끔 상인들이 찾아와 글을 부탁하고는 하였던 것이다. 그가 받는 윤필료는 진사 합격 동기들 중에 제일 높았다.

고청운은 방희림 집안의 식솔이 매우 많다고 들었는데, 한 분의 조부로부터 내려온 위아래로 이삼십 명의 식구로 구성이 되어 있으니 집안이 그리 부유하기는 힘들었을 것이었다. 설령 그가 지금 백엽의 딸을 부인으로 얻었다고는 하나, 부인이 아무리 많은 혼수를 해 왔다고 한들 방희림의 인성과 자존심으로 미루어 보아 필경 아내의 혼수를 사용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었다.

그가 진사에 급제한 후, 고향의 부모님 및 형, 형수, 동생 등 십여 명이 모두 함께 경성으로 와서 생활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살림살이가 꽤 넉넉하지 않게 되었고, 거기에 아내의 가족들까지 있어 두 사람 사이에 때때로 갈등이 있는 듯했다.

이것은 간미가 연회에 참석했다가 알게 된 사실들로, 간미가 전해 주는 소식들을 듣고 있자니 고청운은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생활 습관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한 지붕 밑에 모여 사는 것이 혼인인데, 서로 너그럽게 이해하지 않으면 갈등이 심화되어 정말 쉽게 충돌할 수 있었다. 애당초 고청운이 아내를 얻을 때 생각했던 것은 바로 비슷한 가문끼리 혼인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간미를 아내로 맞이했을 때, 애당초 부모님과 간미가 서로 함께 어울리지 못할까 봐 걱정했었다. 다행히 그의 운은 비교적 좋은 편이었다. 부모님과 간미 모두 친화력이 좋은 사람들이었고, 거기에 더해 성혼을 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분가를 해서 지금의 생활에 이르렀으니 아무런 큰 갈등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를 생각하면 고청운은 방희림의 선택도 이해가 갔다. 

‘분명 경성에서의 생활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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