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답청(踏靑) (2)
고청운은 간미를 바라보았다.
간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이미 숙제를 봐주었는데, 다 한 것이 맞아요.”
“착하구나, 정말 잘했네.”
고청운은 아이의 머리를 만져 주며 흥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내일은 날씨가 좀 추울 것 같은데, 동생도 아직 이렇게 어리니 안 나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 네가 집에 남아서 동생을 좀 봐 주련?”
소석이 맹렬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조금도 춥지 않아요, 추위가 대순가요. 저랑 동생이 옷을 좀 더 껴입으면 되잖아요.”
소어도 바로 따라했다.
“안 추워요, 조금도 춥지 않아요.”
소어는 고개를 맹렬히 흔들더니, 통통한 우윳빛 얼굴에 칠흑 같이 까맣게 빛나는 큰 눈에 갈망을 가득 담은 채 고청운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버지, 저 연 날리러 나가고 싶어요. 서당에서 학우들은 다 가봤다고 하는데, 저만 못 가 봤어요.”
그의 팔을 잡고 흔드는 소석의 눈에도 갈망이 담겨 있었다.
자신과 꼭 닮은 모습을 한 두 작은 얼굴들을 보며 고청운은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아이를 더 낳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자신과 똑같이 생긴 얼굴이 눈앞에 몇 개가 더 있었을 테니, 더 못 견뎠을 것이었다.
“그래, 그럼 같이 가자꾸나.”
남몰래 한숨을 쉰 고청운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는 간미를 한 번 쳐다보았다.
‘이건 정말 타협하지 않을 수가 없잖소.’
형제는 환호했다.
“외증조할머니께 내일 같이 안 가시겠냐고 여쭈러 갈게요.”
소석은 말을 마치자마자 쌩하니 몸을 돌려 곧바로 나갔다.
“형아, 형아 기다려. 나 기다려.”
소어는 형이 나가는 것을 보고는 다급히 뒤뚱뒤뚱 따라갔다.
“좀 천천히 가.”
소석은 귀찮은 듯 멈춰 서더니, 두 손으로 가슴께에 팔짱을 끼고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땅딸막한 동생에게 말했다.
“어째서 내가 어딜 가든지 다 따라오는 거냐? 정말 귀찮구나.”
소어는 헤헤 웃으며 형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소석은 할 수 없이 동생과 함께 느릿느릿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고청운과 간미는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 부부는 그들 두 형제 사이의 일엔 관여하지 않았는데, 아주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어떤 일이건 간에 둘이서 해결하도록 했다.
현재의 정황으로 볼 때 형제 사이는 그래도 좋았다. 모든 어린아이들은 으레 큰 아이와 노는 것을 좋아하는 법인데, 소어는 그의 형을 따르는 것을 매우 좋아했고 또 모방하는 것도 좋아했다. 소석은 처음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고 외려 귀찮아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조금씩 변해갔다.
고청운은 간미를 보다가 미안해져서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원래는 우리 둘이서만 가려고 했는데, 결국엔 꼬맹이 두 녀석까지 달고 가게 되었소.”
간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말했다.
“두 녀석이 얼마나 영민하다고요. 설령 내일 우리가 몰래 갔다고 하더라도, 결국 들켰을 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때 가서 얼마나 난리가 났을지…….”
그녀가 다른 집 아이들을 봤을 때, 다들 자기 아버지를 두려워하였지만, 그들 집안의 두 아들은 오히려 부군을 가까이하고 친근히 여겼다. 그들은 인정에 호소하거나 애교를 부리고 생떼를 써야 하는 일 모두 부군을 향해 하였으며, 그런 일로 그녀까지 귀찮게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분명히 자기 부군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들을 엄숙하게 돌봤었다. 특히 소석에게는 더 했는데, 소석이 작년부터 공부를 하러 가서 자신의 잔꾀만 믿고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요령을 부렸다가 부군에게 들켜서 정말 등나무 매로 맞은 적도 있었다.
당시 그녀는 아들이 울고불고 매달리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파 막아보려 했지만, 부군은 아이를 훈육할 때는 우선적으로 어른들의 의견이 서로 일치해야 하고 아이들 앞에서 다투거나 변덕스러운 처벌을 해서는 안 되며, 말의 앞뒤가 일치하고 또 훈육을 행할 때는 단호하게 집행해야 아이가 잘못을 깨닫고 고치기 더 쉬워진다고 말하였다.
소석은 그 당시의 매질로 인해 작은 엉덩이가 부을 정도였기에 며칠 동안이나 울어댔었다.
결국 부군은 그 일로 며칠 동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원성을 샀다. 부군은 거듭 자신이 특별히 하옥된 죄수를 관리하는 하급 관리를 찾아가서 어떻게 사람을 때려야 덜 아픈지, 근골이 상하지 않게 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워 와서 소석이 그렇게 아프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명했는데도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였고, 그저 너무 엄하게 때렸다는 소리만 들었을 뿐이었다.
물론 나중에 가서야 부군이 정도를 지켜서 매질을 했다는 것이 증명되기야 했지만, 소석이 막 매를 맞았을 당시 상처만 보면 꽤 끔찍해 보였었다. 하지만 상처 부위는 열감도 없고, 며칠 약을 바르니 곧장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때 이후로 소석은 얌전히 공부를 하고 더 이상 잔꾀를 피우지 못했다. 지금 그는 이미 네 권의 책을 다 배우고 오경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 성적이 같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좋았다. 소석은 오경을 배우고 있으나 다른 아이들은 이제 막 사서를 배우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천방지축이 되게 버릇을 들였소.”
고청운은 한탄하며 말을 이었다.
“하 사형이 하는 이야기를 듣자니, 그 집 아들은 아버지를 보면 쥐가 고양이를 만난 것처럼 군다고 하던데, 우리 집 아들들은 왜 두 놈 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와 있는지.”
올해 하겸죽은 회시에 다시 참가하였는데, 지난번에 얻은 교훈에 힘입어 배 위에서 춘절을 쇠면서까지 사전에 출발하여 1월에는 이미 경성에 도착해 있었다.
시험이 끝날 때까지 하겸죽 일가는 줄곧 고청운의 집에서 지냈고, 시험이 끝난 지금 하겸죽은 한 차례 병이 났다가 몸이 막 회복된 상태였다.
“부군이 그렇게 버릇을 들이지 않으셨습니까.”
간미가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며칠 전에는 또 부군께서 소석이의 말이 되어 말을 태워주셨잖아요.”
게다가 또 얼마 전엔 앞마당에 특별히 공간을 별도로 조성하여 시소, 미끄럼틀, 그네를 하나 마련해두었는데, 이웃의 아이들까지도 다 고청운의 마당으로 놀러오고 있는 지경이었다.
“내가 버릇을 그렇게 들이지 않을 방도가 있겠소?”
고청운이 말했다.
“내가 소석이에게 매를 들고 나서 스승님께 바로 불려갔소. 그 일을 거론하시며 한차례 혼쭐을 내셨는데, 내가 소석이에게 화풀이를 했다고 하시지 뭡니까. 휴, 스승님은 지성이 넘치시는 분인데도, 그저 소석이와 소어만 보시면 이성이고 뭐고 다 사라지시는 모양이오.”
다행히 부부에게만은 마지막 한 가닥의 이성이 남아 있었던 방인소는 고청운에게 훈육을 일임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두 꼬맹이는 아마 야생의 곰돌이새끼마냥 자라고 있었을 것이었다.
* * *
이튿날, 아침 일찍부터 온 집안이 분주해졌다.
하겸죽은 이미 다른 사람들과 외부 약속이 있어 일찍 집을 떠나고 없었다. 방인소 역시 친한 벗을 보러 약속 장소에 나가 있었다. 무슨 일인지 연 씨는 밖이 춥다며 밖에 나가지도 않고 집에만 있고 싶어 하였다.
고청운은 나들이를 위해 아이들 옷, 장난감, 연, 담요, 작은 의자, 간식, 풍로, 찻잔 등을 다 챙겨 가야 했는데, 이렇게 준비를 하니 큰 상자 한가득 다 아이들 짐이었다.
“이래서 어린이가 귀찮다는 게다. 아들아, 보거라. 이게 다 너희들 물건이다.”
고청운이 웃었다.
형제는 이때 똑같은 남색과 백색이 섞인 옷을 입고, 여기에 얇은 장삼을 하나 더 걸치고 있었는데, 희고 보드라운 작은 얼굴이 더 귀엽게 도드라져 보였다.
“귀찮지 않아요. 소어는 아니에요. 안 귀찮아.”
소어가 머리를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 아이는 아직 2살이라 발음이 아직 또렷하지 않았으나, 이미 어느 정도는 어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자질에 관해서는 소석과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가까스로 연 씨와 작별한 후, 그들은 마침내 출발할 수 있었다. 4명이니 마차 한 대면 되었다. 그리고 어차피 이런 날은 마차를 대절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들은 많은 하인들을 대동하면서 다니지 않았기에, 소만과 고삼원이 앞에 앉아 마차를 몰았다.
성문을 나온 후, 고청운은 마차 창문의 절반 정도를 열어, 모두가 밖을 내다볼 수 있게 해 두었다.
“부군, 저것 좀 보세요!”
간미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고청운이 보니, 먼 곳에 보이기 시작하는 들판이 온통 짙푸른 색채를 띠고 있어 보는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였다. 때는 만물이 피어오르는 춘삼월이라 바람과 볕이 따스하고 날이 맑으며 온화한 기분이 물씬 풍기는데다가, 오늘은 햇볕이 유난히 따사로운 것이 확실히 봄나들이를 하기 좋은 날이었다.
가는 길 내내 시외를 향하는 마차와 우마차들이 줄을 지어 성 밖으로 나갔다가 다른 길목에서 갈라지기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한 시진을 더 가고 나서야, 그들은 마침내 운하 변에 도착했다.
* * *
마차에서 막 내리자마자 고청운은 눈앞의 북적이는 인파에 놀랐다.
‘어허, 설마 도시 전체의 인구가 다 여기로 온 것은 아니겠지? 어찌 이리 사람이 많은 거야?’
멀지 않은 강변 양쪽에는 수양버들이 한들거리고 방초가 무성히 자라 있었다. 또한, 꾀꼬리가 노래 불렀고 제비가 춤을 추었으며, 기쁨이 가득한 정취가 넘실대고 있었다. 강기슭에 자라난 풀숲 사이사이 갖은 색의 꽃이 경쟁하듯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바둑을 두거나 차를 마시는가하면, 술을 마시거나 강가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고청운은 꽃을 꺾어 귀밑머리에 꽂은 소녀의 간드러진 모습도 보았는데, 주변에 있던 소년들이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때 소녀 옆에 있던 나이 있어 보이는 사내가 매섭게 그 소년들에게 눈을 부라렸다. 고청운은 그가 열성적으로 호위하는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정말 시끌벅적하네요!”
간미가 감탄했다.
고청운은 마차를 세워 두는 소만을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고삼원에게 말했다.
“삼원아, 주변을 조심해야 한다. 이런 곳에 유괴범 같은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소어가 아직 어리니 좀 더 조심하자꾸나.”
말을 마친 고청운은 고개를 돌려 소석에게도 엄숙한 모습으로 말했다.
“소석아, 잘 듣거라, 여기서는 마음대로 뛰어다녀서는 아니 된다. 이곳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뛰어다니다가 아버지를 놓치기라도 한다면 이 아버지가 너를 찾을 수가 없게 될 게야.”
소석도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불끈 쥐고 대답했다.
“아버지, 안심하세요. 제가 동생을 잘 돌볼게요.”
고청운과 간미는 강가를 거닐었고, 소석과 고삼원은 연을 날렸다. 소어는 연을 날리는 형 뒤를 따라다니다가 가끔씩 다시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뛰어와 한 바퀴 돌고 나서 다시 형에게로 달려갔다.
강물은 맑아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였는데, 수심이 깊고 얕은 곳이 제각각 이었다. 눈에 보이는 수초는 푸르렀고, 강기슭에는 수양버들이 낮게 늘어져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는데,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푸르른 풀내음이 폐부에 가득 차오르며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잘 왔다!’
그때 고청운이 멀지 않은 곳에 관아에서 온 듯한 포졸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요즘 부윤(*府尹: 부에서의 최고 책임자)께서 참 정책을 잘 피고 있는 듯하오. 이런 사람 많은 곳에 포졸을 배치하면 최소한의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효과가 있지.”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도난이나 유괴 등 사건이 발생하기 쉬우므로,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은 줄곧 자신의 아이들을 지키는데 신경을 쏟고 있었다.
고청운도 예외일 수는 없었고, 간미와 고삼원, 소만 역시도 줄곧 시선을 두 아이들로부터 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