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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220)화 (220/504)

220화. 곤란하다 (1)

세월은 전과 다름없이 흘러 눈 깜짝할 사이에 연말이 되어 있었고, 그는 벌써 3개월째 출근하고 있었다.

고청운은 한림원에서 잘 적응해 일을 돕고 있었으나, 황제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

다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자신은 강한 진취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동군여호(*同君如虎: 황제를 대하는 것은 호랑이를 대하는 것과도 같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선은 스스로 계속해서 지식을 축적해 나간다면 나중에 정말로 황제를 만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지금도 장서루의 책을 틈틈이 빌려보며 국가의 규율을 익히고, 치국지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계산 및 산술에 관련된 학문에 더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의 출간된 산술 학문과 관련된 서적을 출간 순서에 따라 한 번씩 읽어 볼 생각이었다. 그래야만 자신이 어떻게 책을 써야 할지, 또 읽어온 책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은 공사를 행하는 장소라, 그는 말수를 줄이고 신중한 모습으로 풍문에 휘말리지 않고 동료들과 천천히 친밀해져 가고 있었다. 물론 다들 붙어 있어야 하니 어떻게 해서든지 친해진 것뿐이었다.

집안의 일로 돌아와, 고청운은 이미 근처의 한 서당을 알아보았는데, 한 거인이 연 곳으로 일단 거리가 집에서 멀지 않았다. 그가 잘 가르친다는 말을 듣고는 춘절을 쇠고 나서 아들을 보낼 참이었는데, 춘절에 소석이 4살이 되니 정식적으로 교육을 시작해도 될 것 같았다. 

한편, 간미는 배가 이미 남산만큼 커져 있었다. 산기가 다가왔는데, 산파도 바로 요 며칠 내로 출산이 진행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은 춘절을 쇠는 시기였다. 설령 모두가 아무리 기쁜 명절을 보내고 있을지언정 모든 가족들의 주의력은 여전히 그녀에게 쏠려 있었다. 당초 사람들은 모두 섣달그믐에 둘째가 태어날 줄 알고 있었는데, 섣달그믐이 지났는데도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고 있었다.

‘이것도 며칠 늦을 수가 있구나!’ 

다들 초조해하고 있었는데, 의원은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뿐이니 조급해하지 말고 안심하고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진작부터 일찌감치 조급해서 쩔쩔매고 있었다.

가족들이 절박한데에 비해 간미는 오히려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원래 생활대로 잘 쉬면서 시간을 내어 조급해하는 고청운을 위로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고청운이 어찌 조급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 씨는 12월 12일에 쌍둥이를 순산했는데, 방자명은 둘 다 딸이었지만 마냥 기뻐하며 그 앞에서 걸핏하면 실없이 웃어 댔다. 그의 준수하고 멋지고 소탈했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정도였다.

고청운은 방자명의 출산 소식이 반가웠지만, 자신의 아내는 좀처럼 출산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안타까워했다.

* * *

마침내 모두들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정월 초사흘에 간미의 출산이 임박하였다.

아이는 사람들이 한숨을 돌리자마자 바로 태어났다. 

다행히 둘째 아이라서 그런지 비교적 빨리 태어났는데, 지난번 저녁 무렵에 소석을 낳을 때보다 훨씬 빨리 태어나 주었다.

이번에도 아들이었다.

고청운은 저번보다 더 잘 아내의 출산에 임했다. 최소한 저번보다는 울지 않고 그저 긴장만 할 뿐이었다. 둘째 아들이 나온 날이 몹시 추웠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둘째 아들의 모습에 고청운은 마음속으로 큰 기쁨을 느꼈다.

* * *

만 한 달이 지나자, 그는 이 아들을 방씨 가문의 계승자로 보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스승님은 이미 필요 없다고 했지만, 그는 늘 미안한 마음이 컸던 것이었다.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점유하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 그 은혜를 갚게 된다면 이는 또 아들에게 불공평한 일이 될 것이었다.

“부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셔요?”

간미는 자신의 부군이 우두커니 작은아들을 쳐다보고 있는 걸 보았으나, 공교롭게도 그의 눈빛에는 초점이 없었다. 오늘은 아들의 30일 만월례라 연 씨의 도움을 받아서 고청운의 지인들을 초대해 대접하는 등 바쁜 일이 산더미였다. 

그녀는 부군이 일을 다닌 이후 다른 집 부인들과는 거의 교제를 하지 않고 집에서 안정을 취하며 지냈었다. 지금 아이가 만 1개월이 되었으니, 그녀는 처음으로 부군의 동료들 모임에 얼굴을 비추는 격이라 자연히 다른 모임이나 잔치보다 유달리 중요하게 진행하였다. 

다행히도 하루 종일 별 탈 없이 잔치를 치렀고, 지금은 그저 너무 피곤할 뿐이었다.

고청운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지 막 한 가지 문제가 생각났을 뿐이오. 미아,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 스승님이 우리 아들을 방씨 가문의 후계자로 삼으려고 하셨던 일을 기억하오?”

그는 간미가 이미 산달을 다 보냈으니, 지금 이 일을 거론해도 그녀의 정서나 회복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을 꺼냈다. 

그렇지 않았다면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말했을 것이었다.

간미는 어리둥절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그녀가 기억하지 못할 수가 있겠는가? 그녀는 어머니의 유일한 자식이라 외할머니가 어려서부터 매우 잘해 주었다. 특히 외할머니는 장래의 자신이 죽고 나서 자신의 향불을 올려줄 수 있는 후사에 대한 희망을 모두 그녀에게 일임하였는데, 그런 요구가 워낙 컸었기 때문에, 간미가 어릴 때부터 마땅한 혼사를 찾지 못하고 있던 것도 있었다. 

나이가 이미 꽃다운 나날로 접어들었음에도 그녀는 아직 적정한 혼처를 찾지 못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그녀의 운이 매우 좋아서 이렇게 좋은 부군을 찾게 되었다. 지금 그녀는 외할아버지에게 매우 감사하고 있었다.

“당신의 의견은 어떠오?”

고청운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간미는 비록 어릴 적부터 자신의 미래의 아이가 어떠한 상황에 놓이게 될지 알고 있었지만, 잠자코 있었다. 그녀가 성혼할 때 외할머니가 그럴 필요 없다고 이미 생각을 정리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부군이 이 문제를 거론할 줄은 몰랐다.

“우리 외할머니께서 필요 없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녀는 요람 속에서 달콤한 잠에 빠져 쿨쿨 자고 있는 아들을 보고 있었다. 

‘내 막내아들.’ 

부군은 그의 아명을 그물을 빠져나간 물고기라며 소어(小鱼)라고 부르자고 하였다.

이 아이를 후계로 보내게 되면 앞으로 이 아이는 자신을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었다. 그 생각을 하자 그녀의 마음은 매우 괴로웠다.

“외할머님께서 그리 말씀하셨었소.”

고청운은 조금 쑥스러운 듯 코를 만지작거리며 침상 가장자리에 앉아 다시 소어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늘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소. 스승님은 나에게 너무 많은 도움을 주셨지 않소. 스승님께서 안 계셨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오.”

그러나 그는 소어에게도 조금 불공평한 점이 있다고 여겼다. 이 아이도 자라서 자신의 아이를 갖게 될 텐데, 왜 하필 자신을 후계자로 만들었냐고 물어볼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이 시대에서는 보통 막내아들을 양자로 보내기 마련이었다.

“저는 이해해요.”

간미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그가 외할아버지를 어떻게 대하는지 잘 알고 있기에 잠시 생각해보고 말했다.

“시부모님께 여쭈어 봤어요? 동의하실까요?”

고청운은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이번에 집에 갔을 때 난 그대가 회임한 걸 알리는 김에 후계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했었다오. 큰할아버지께서 조금 기분 나빠 하셨던 것 외에는 우리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 할 것 없이 큰 이견을 보이지 않으셨소.”

처음에 방인소를 스승으로 모실 때, 방씨 가문에서 제시했던 조건인 만큼 고씨 집안에서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단지 후에 그가 진짜 방인소를 스승으로 모시고 나서는 방인소도 지금까지 이 조건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성혼을 치르기 전에, 연 씨가 더 이상 후계에 관한 일은 없던 것으로 하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고청운은 미안한 마음에 시간이 지날수록 이 일에 대해 더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당연히 아들을 방씨 가문의 후계자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세상의 누가 자기 아들을 다른 집에 보내는 일을 달가워하겠는가. 그들이 보내고 나면, 그 아이는 자신들을 더 이상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었다. 

고대의 계승 절차는 매우 엄격했다. 현대에서처럼 법적으로만 올라가는 게 아니라 생부, 생모를 계속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했다가는 재산 분할, 혈연 승계 문제까지 다시 거론됐을 만큼 엄숙한 사건이었다.

방인소의 지위 또한 방씨 가문의 일원 중에서 가장 높았기에, 그런 그가 후계자로 낯선 성을 가진 아이를 데려오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고청운은 그런 방인소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없잖아 있었으나, 이것은 그 자신이 품고 있는 인정(人情)일 뿐이었고, 그런 인정에 보답하고자 무고한 자신의 아들을 후계로 보내는 것은 또 아들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만약 연 씨가 후계에 관한 일을 없던 일로 삼자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도 이렇게까지 갈등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순간, 너무 울적해져 있던 그의 모습을 보고 간미가 다가와 말을 건 것이었다. 그는 그제야 시원하게 자신의 고민을 표출하여 근심거리를 꺼내 보였다. 

간미는 오랫동안 잠자코 있다가, 결국 한마디만을 말할 뿐이었다.

“부군, 당신이 하고 싶어 하시는 대로 해요. 전 그 의견을 따를게요.”

“그럼 스승님께 여쭈어 보고 오리다. 허락하신다면, 소어를 후계자로 보내드리고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으로 합시다.”

오랜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사실 간미가 회임한 후부터, 그는 이미 아주 오랫동안 이 고민을 해 오고 있었다.

어차피 족보상으로 친아들이 아니더라도 같이 살 것이었다. 아버지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만, 좀 클 때까지 기다려서 사정을 알려주면 되었다. 둘 사이에 감정만 있으면 아들이 무엇이라 부르든지 그는 다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미 밤이 깊었고, 잠시 할 말이 없던 두 사람은 이날 밤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고청운은 침상에 누워서 엎치락뒤치락했다. 간미도 역시 그랬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녀도 분명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었다.

* * *

그 다음 며칠 동안, 고청운과 간미는 약간 우울해져 있었다. 그들은 잘 숨긴다고 숨겼지만, 방인소와 연 씨가 누구인가. 노련하고 어른스러웠던 두 사람은 오랫동안 그들과 함께 살았었기에 평소와는 다른 부부의 기색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방인소가 무슨 일이 있었냐 묻자 고청운이 물음에 답했다.

“저는 한림원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무도 저를 겨냥하여 공격하지 않습니다. 전 그중에서 가장 출중한 인재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일 떨어지지도 않으니까요. 저는 그곳에서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비록 그의 전시 성적은 4등에 배경에 별다른 눈요깃거리가 없었지만, 10등 안에 들은 여러 인재들의 배경이 매우 인상 깊었다. 바로 방자명이 그러했는데, 그는 인물이 준수할 뿐만 아니라 장인어른이 이부의 관리로, 이 장인어른과 관련해서는 최근에 다시 한 계급 더 승진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바로 종4품 관원이 되는 것이었다!

4품은 문턱이라고들 표현하고는 하는데, 중급 관원으로부터 상급 관원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되는 첫 번째 난관이었기 때문이었다. 상급 관원의 가장 중요한 첫 시작은 결국 4품 이상이라 볼 수 있었다. 4품 관원부터 매일 아침 조정에 나설 수 있고, 자주 황제를 대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하 관원들과는 절대적인 차이가 부여되었다. 허나 많은 사람들이 일생 동안 정5품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관직 생활을 마감하고는 하였다. 

예를 들어 방인소의 경우, 그의 품계는 이미 5품에서 10년 가까이 머물러 있었는데, 연세가 이제 거의 퇴직을 바라보는 나이인지라 이변이 없는 한 마지막 몇 년 동안은 더 이상 승진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방자명이 그의 앞날보다 훨씬 더 전도유망하고 더 좋다고 할 수 있었다. 다른 면모는 말할 것도 없었는데, 방자명의 교제 능력이나 언변, 일 처리 수완 등의 면은 고청운 자신보다 더 나았던 것이다.

게다가 10위 안에는 담자례까지 있었다. 그는 비록 오만하게 굴었지만, 선배들 앞에서는 조금 겸손해서 명문세가의 자제다운 풍모는 잘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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