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구상 (1)
신임 진사들이 한림원에 도착하자, 장수원은 드디어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는 초유 등의 차례가 도래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고청운은 이 잠 시강이라는 자가 매우 분별력이 있다고 여겼다. 적어도 잠 시강은 초유를 거의 입에 올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주로 방자명과 담자례만 자주 비웃고는 했는데, 머리 모양새부터 옷까지 관련해서 시를 지어낸 뒤 그 시구를 한림원 벽에 써 두기까지 하였다.
고청운은 이를 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시와 문장이 정말 뛰어나다고 느꼈다.
한편, 한림원의 잡역부들에게는 매일같이 벽을 닦아야 한다는 귀찮은 일이 생겼지만, 그들의 숙련된 벽 닦는 동작을 보니 이제는 이미 그들도 습관이 된 것 같았다.
방자명은 이런 상황에 대해 몇 번 한숨을 내쉬다가 고청운에게 불만을 토로한 후 다시 냉정을 되찾고, 이후에는 그를 무시하였다. 담자례의 경우엔 그의 입도 매우 독한 편이라 늘 은근히 서로를 풍자했다.
두 사람이 서로 맞장구를 치듯 혹은 공차기를 하듯이 왔다 갔다 풍자의 말을 던지고 받는 것은 구경꾼들을 모을 뿐이었다.
고청운은 갑자기 한림원이 사실은 매우 시끌벅적한 곳이라고 느껴졌다.
또한, 그는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적어도 자신의 시문 감상 수준이 1할 정도는 높아졌다고 여겼다.
이러한 상황에서 초유가 잠 시강으로부터 아직 방자명과 담자례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느냐고 묻자, 잠 시강의 사람 됨됨이를 아는 이들은 모두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잠 시강이 항상 시간이 넘치는 사람은 아니니까.”
방자명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찻잔을 한 모금 마시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이제 익숙해진 듯하오.”
담자례는 오히려 미간을 더욱 잔뜩 찌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짝 중얼거렸다.
모두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고청운이 며칠을 더 지내고 나니 9월 초아흐레가 되었고, 다시 일 년에 한 번 찾아오는 중양절이 다가왔다. 집 안에는 이미 국화떡, 산수유 등을 장만해 두었다. 이날은 예년과 다름없이 관료들이 휴가를 냈는데, 올해는 9월 초 열흘이 휴무일로 이틀이나 휴무일이 이어져있어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올해에 고청운은 독립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최소한의 예의와 선물치레 등을 자신이 직접 준비해야 했기에 사전에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그는 현재 사람들과 교제하는 범위가 매우 좁았는데, 같은 해 시험에 합격한 동기들이나 동료 상사들 외에는 거의 교류하는 이가 없어서 기본적으로는 인간관계가 거의 한림원 안에 국한되어 있었다.
한 명을 더 한다면 사장정을 추가할 수 있을 텐데, 이것은 매우 이외이기도 하였다.
고청운은 명절 선물을 보낼 대상을 간미와 상의해 선별하였다. 다행히 간미가 이런 교육을 받고 자라, 누구와의 관계가 어떠한가에 따라 어떠한 선물을 마련해야 하는 지 잘 알고 있어서 그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미아, 내 곁에 있어주어서 정말 좋소.”
고청운이 오랫동안 앉아있는 그녀를 보고, 그녀를 일으켜 세워주며 진심으로 말했다.
비록 그도 곁에서 돕기야 했지만 기껏해야 명첩을 쓸 뿐, 어떻게 어떤 선물을 준비하는지는 모두 간미가 바삐 처리해 주었다.
원래 이런 일에는 혜향이 훌륭한 조수로 함께 했었지만, 지금은 그녀도 회임 중이었다. 간미는 그녀가 쉴 수 있도록 휴가를 보냈다.
“당신이 고생이 많소!”
간미는 고청운의 말을 듣자마자 웃음을 참지 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일들은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관서에서 직무를 보는 당신의 일이 많이 힘들지요.”
고청운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 방충이 있으니, 적절히 사람을 안배해 선물들을 발송해 줄 것이었다.
일을 거의 마무리한 두 사람은 정자 쪽으로 걸어갔고, 조금 걸었는데도 지친 간미는 그냥 앉아서 쉬었다.
“당신은 올해 중양절에는 산에도 못 가겠군. 스승님과 외할머님은 가시오?”
고청운은 잡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가신대요. 외할머니께서 장원까지 가신다며 소석이를 데리고 간다고 하셨는데, 이번에는 햇볕에 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어요.”
간미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당신이 작은 소석이를 고향집에 한 번 데려갔다가 아이를 검고 뚱뚱한 모습으로 바꿔놔 버렸는데, 하필이면 그 아이는 왜 붉은색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할까요? 아니, 지난번에 외할아버지께서 데리고 놀러 나가셨을 때, 어떤 어른이 소석이를 거무칙칙하고 뚱뚱하다고 놀렸다지 뭐예요. 어린 소석이가 그 말을 듣고 슬퍼했답니다. 그 나이 어린 녀석을 어른들이 왜 분별력 없이 놀려대는지.”
고청운은 듣자마자 그 사건으로 며칠 동안이나 울적해하던 아들을 떠올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아 소석이 옆방에서 들어왔다.
지금이 바로 오후 신시이니, 소석이 간미의 배 속에 있는 아이에게 태교를 해 줄 시간이었다.
헐떡거리며 달려오던 작은 소석은 정자에 있던 고청운과 간미를 보자, 눈을 번쩍 뜨고 외쳤다.
“아빠, 엄마, 제가 늦었나요?”
그의 뒤로는 소만이 따라다녔다.
소만은 고청운과 간미 모두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절을 한 후 바로 밖으로 나갔다.
고청운은 일부러 고개를 들어 태양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아니. 늦지 않았단다.”
소석은 삽시간에 작은 입을 벌리고 웃더니, 소매로 땀방울을 닦고 간미 앞에 서서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이내 간미의 배 가까이에서 태아의 동정을 듣기 시작했다.
“동생이 나를 상대해 주지 않아요.”
실망한 소석은 손을 볼록한 배에 얹고 가만히 기다렸고, 잠시 후 간미의 배 속에서 아이의 주먹과 발길질을 느낄 수 있었다.
고청운은 소석 옆에 쭈그려 앉아 있다가 함께 놀랐다.
“동생이 움직였어요.”
“진짜 움직이는구나!”
고청운도 깜짝 놀랐다. 그가 방금까지 아주 오랫동안 만졌는데도 계속해서 아무 움직임도 없었는데, 소석이 만지자마자 배 속의 아이가 응답했던 것이다.
‘이런 운 좋은 녀석!’
고청운은 아들을 질투할 지경이었다.
“혹시 여동생일지도 몰라요.”
간미는 이번 회임에서 느낌이 매우 좋았다고 하였다. 그녀의 피부는 줄곧 붉은 끼가 돌고 희고 보드라웠는데, 소석을 가졌을 때와는 사뭇 달라서 그녀는 아마도 이번에는 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동생도 괜찮지.”
고청운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한마디 대꾸했다. 이미 아들이 있는 만큼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민감한 이야기를 피해갈 필요는 없었다.
배 속에 있는 동생과 인사를 하고 난 후, 소석은 가슴이 뿌듯해져서 책을 외우기 시작했다. 아이는 삼자경부터 외우기 시작했고, 시어도 모두 외웠다.
그랬다, 이런 것이 이른바 이 시대의 태교였다. 사실 이것은 간미가 소석에게 소일거리를 찾아준 것이었다. 주로 이 시기에 그녀의 배가 점점 불러옴에 따라 가족의 관심이 자신들도 모르게 그녀의 배에 쏠려, 항상 자신만이 집안의 중심이었던 소석은 처음에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아서 좀 억울해했다. 그래서 고청운과 간미는 상의를 거친 후 이런 방법으로 어린 소석에게 동생에 대한 기대를 걸게 한 것이었다.
하지만, 고청운은 이제 와서 좀 후회가 되었다. 애초에 소석만 키울 것도 아닌데, 이렇게 소석이 혼자 사람을 독점하고 자란 기간이 길어지면 독점욕이 더 커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의 나이차이가 적으면 티격태격할 수도 있었지만, 같이 자라게 된다면 말이 더 잘 통하고 더 정이 들 것 같기도 하였다.
그는 설령 이 고대 세상에 오래 살아왔다고는 하더라도, 간미가 소석을 낳는 광경에 매우 놀랐었다.
고청운은 아기를 낳는 게 너무 무서웠다! 그는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전생과 현생을 막론하고 여인을 만나 아이를 낳은 적이 없었다. 무엇을 아는 것과 실제 경험하는 것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이는 완벽한 별개의 일이었다.
더욱이 간미는 침상까지 같이 쓰는 자신의 아내이지 않던가. 그녀가 목숨을 거는 일을 감수하고 그를 위해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정서나 취지부터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소석은 현재 <삼자경>을 다 배웠기에, 간미는 아이에게 <천자문>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소석의 교육 문제라면, 고청운과 방인소 두 사람 모두 진사여서 이치대로만 아이를 가르칠 수 있다면 교육의 정도야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정말 적었다는 문제가 있었다. 집으로 귀가할 때마다 이미 오후 시간이라 저녁밥을 다 먹고 나면 산책을 하고 또 잠깐의 숨통을 돌릴 시간 정도는 필요했기에, 소석에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정말 적었다.
비록 고청운은 그렇게 일찍 잠들지 못할 테니, 공부를 계속할 것이었다. 그는 잠을 안 자도 상관이 없었지만, 소석은 정말 많이 자야 했다.
고청운은 한탄했다. 오죽하면 그 많은 관료도 자제들을 직접 계몽을 해 주지 못하고 족학으로 보내버렸을까.
비록 방인소가 고청운보다 조금 더 한가했을지라도, 그는 소석을 너무 좋아하는데다가 소석의 애교에 벙글벙글 웃으니, 어찌 소석을 엄하게 대할 수 있겠는가?
고청운은 자신에게 아들이 생긴 후, 마침내 왜 많은 관리들이 아무리 아버지 자신은 영민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은 오히려 부잣집 도련님처럼 키워지는지 알게 되었다. 일부 원인은 아마도 아버지가 직접 가르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고, 집안의 다른 사람들이 지나치게 아이를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는 소석이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임계촌에서 귀경한 이래로 소석의 교육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궁리했다.
‘우리 집안은 경성에서 세력이 미미하여 족학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니, 더 바깥에 나가 거인이나 수재가 운영하는 서당에 소석이를 보내야 할까?’
고청운은 전생에서 존재하던 유치원을 떠올리며 좋은 서당을 물색하려다가 문득 아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장수원의 아들은 이제 갓 태어났고, 방자명의 아이들은 아직 배 속에 있고, 방희림은 아직 성혼도 치르지 않은 상태였다. 초유는 그의 집안에 가학(家学)이 있어 아주 편할 것이었다…….
* * *
중양절 휴가 때 소석을 데리고 장원으로 등산을 갔던 방인소와 연 씨는 고청운과 간미 모두를 장원에 데려가려 하였으나, 고청운은 그들의 초대를 완곡하게 거절하고 집에 남아 소설을 집필하려 했다.
그랬다, 그는 또다시 화본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이유로는 한림원의 업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한가해지기 시작하면서 매일 제 시간에 출퇴근이 가능해질 수 있었고, 두 번째로는 돈이 부족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그의 유일한 수입원은 바로 그가 일남방 지대에 지어 둔 저택의 월세였는데, 임대료가 가구당 100문에서 200문씩 가격을 올려 받는다 하더라도 월 임대료로 생활비를 삼는 것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였다. 특히 춘절 때에 춘절 선물을 마련하는 것이 큰 고민이었다.
이 기간 동안엔 그를 찾아 대필을 부탁하며 윤필비를 주는 사람도 없었는데, 아직 그의 명성이 높지 않았기에 이럴 것이면 본업으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