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출근 (2)
고청운은 저녁에 간미와 대화를 나누면서 말했다.
“한림원의 크고 작은 벼슬을 합하면 도합 60~70명이나 있는데, 그중에서 명사들이니 대학자니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역사 편찬에 분주해서 나를 상대해 줄 시간이 없는 것 같소.”
“부군, 당신은 이렇게 뛰어난 사람인데, 분명 누군가는 알아봐 줄 거예요.”
간미가 그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고청운은 생각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웃었다.
“사실 명성에 눌렸을 뿐이오. 그저 명사와 대유들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할 뿐이었소. 스승님의 학식만으로도 이미 내가 배우기에 충분하지 않소. 그리고 사실 나는 독학을 할 시간이 있다오. 이렇게 좋은 조건이라니! 참, 장서루에 산술 서적을 한 권 보고 있는데, 책 내용이 어찌나 좋은지 밖에서는 보지 못했던 책이라오.”
“그렇죠, 그런 책들을 우리가 밖에서 보지 못하는 게 정상일 거예요. 부군, 혹 시간이 나면 전 왕조의 이총운(李丛云)의 시집을 찾아봐 주실 수 있나요? 밖에 있는 것이라고는 모두 하나하나 분리된 시들 밖에는 없는데, 한림원에는 있는지 한번 알고 싶어요.”
그녀도 비록 사서오경 등을 배웠지만 과거 시험을 볼 수 없어 그런 서적들을 깊이 연구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에, 평소에는 시집과 여행기 혹은 화본 정도를 읽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도 지금의 부군 덕분에 이런 독서 생활이 가능했다. 집안에는 모셔야 할 시부모도 없었고, 또 근방에는 자기의 혈육이 살고 있었으며, 직접 거들어야 하는 살림살이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많이 내서 소일해야 할 일이 없으니, 이렇게 한가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았더라면 어디 칠현금을 타고 그림 그릴 시간이 있었겠는가.
“시간이 나면 찾아보리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이총운의 시는 전 왕조에서 유명했고, 그 문체는 고청운의 생각에도 매우 뛰어났다.
* * *
다음 며칠간, 고청운의 벼슬 생활은 아주 파란만장하면서도 평탄함 그 자체였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면, 이틀을 쉬고 난 후 고청운이 다른 관원들의 호출을 받아 일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가 도와야 하는 사람은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으로, 책을 찾아 주거나 아니면 글을 교정하는 것을 돕는 일들을 하였다. 이런 매우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니, 사람들의 열정은 쉽게 식곤 하였다.
한림원의 또 다른 책무로는 축문, 조서(*册立: 황명으로 책립하는 것, 황비를 봉하는 것), 책봉(册封), 비문(碑文)과 유제문(谕祭文) 작성 등이 있었고, 이 밖에 실록도 편찬해야 했다. 성훈(*圣训: 황제의 조서), 본기(*本纪: 제왕에 관한 기술을 하는 역사서), 옥첩장 및 기타 역사서 등은 한림원이 맡거나 한림원이 편찬에 참여하도록 편수, 검토 등의 직위를 가진 관리가 관여했다.
그래서 그중에 한 가지 직무만 맡게 되어도 일거리가 매우 많았다.
고청운보다 지위가 낮은 관료들조차 바빴기 때문에, 모두 다함께 바삐 일할 수밖에 없었다.
장수원도 한림원에 있었으나 같은 곳에서 근무하지 않아 원내에서 얘기하기가 쉽지 않아서, 점심때나 돼서야 겨우 며칠씩 밀린 대화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눈 후, 장수원도 모두 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겪어 봤다고 말해 주었다.
고청운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안심했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고 몸소 체험해 보면서 스스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었다.
한림원에서는 점심시간으로 한 시진을 주었다. 점심시간에 보통 사람들은 집이 아주 가깝지 않은 이상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한편, 오후의 퇴근시간은 조정의 규정상 봄 절기에는 오후 4시, 가을 절기 이후로는 오후 3시로 정해져 있었다.
점심 때 사람들은 모두 말을 탈 줄 알기에 가장 가까운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해결했는데, 가능하다면 가족들에게 부탁해서 집에서 보내준 점심을 먹으면서 점심값을 절약할 수도 있었다.
방인소는 집에서 밥을 보내 주고 있었지만, 고청운의 경우 가족들의 호의만 마음으로 받기로 하였다. 그는 이제 막 입사한 터라 동료들과 더 어울려야 한다는 생각에 밖에서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하길 원했던 것이다.
이날 정오, 그들은 운외루(云外楼)의 객실에서 식사를 했다. 이번에는 지방의 세력가인 초유가 접대를 한 것이었다.
다 같이 식사를 하다가 얘기를 나누면서 자연히 한림원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너희들은 제1갑 합격자라 좋겠군, 우리 같이 3년이나 한림원에서 잔심부름 같은 것도 안하고 직접 관직을 맡고 있으니. 나는 여기서 무슨 일이든 다 나를 시키느라 진이 빠지고 있다네.”
2갑에서 9위라는 석차로 합격한 공봉명(龚凤鸣)은 27살로, 본가가 경성이라 자세한 배경은 알 수 없었지만 집안 형편이 좋은 듯 평소 씀씀이가 크고 타고 다니는 말이 다른 이들의 말보다 월등히 좋아서 첫 출근부터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초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희도 모두 갓 벼슬길에 들어선 신입이라, 공 형이 3년 동안 답사를 해야 한 것처럼 우리도 해야 합니다.”
“그럴 리가?”
공봉명은 반신반의했다.
고청운은 입을 열고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지금 몹시 배가 고팠기 때문인데, 오늘 하루 물 마실 겨를도 없이 바빠서 허둥지둥했던 것이다. 또 뒤에서 투덜대면서 욕하는 것이 자신에게 좋을 것 같지 않아서 참견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초유는 교제 능력만은 정말 탁월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누구 하나라도 냉대를 느끼지 못하도록 대화 분위기를 주도하려 애썼던 것이다. 이번에 그는 이번 합격자 열두 사람 모두를 모셔왔다. 장원 공번충만이 일이 있어 오지 못했을 뿐이었다.
‘음, 이 홍소 완자가 참 맛있네. 요리가 근사해.’
옆에 있던 방희림도 그런 식으로 먹는 데에만 몰두했다. 그는 그들보다 보름 늦게 도착 보고를 하였다.
“희림 형(*지식인 간 부르는 호칭), 성혼 일자는 잡았소?”
어느새 초유가 화제를 이곳으로 돌렸다.
이 화제를 꺼내면 모두들 질투심을 품곤 하였다.
“축하하네. 탐화랑, 겹경사로군. 과거도 합격하고 성혼도 치르게 되니 정말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소.”
모두들 잇달아 축하했다.
고청운도 그랬듯, 전시 석차가 나오자마자 진사 중 아직 혼인을 하지 않은 신임 진사들이 유독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탐화랑 방희림과 담자례 두 사람이 소년 진사들 중에서 제일 젊고 능력도 뛰어나 눈에 들어왔다.
특히 담자례는 방희림보다 집안 배경도 훨씬 뛰어났고, 또 방희림보다 더 잘생긴 외모로 경성 규수들 사이에서 열풍을 일으켰다.
고향에 돌아가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는 일 때문이었는지 담자례는 아직 혼처가 결정되지 않아 어느 집과 혼인을 맺는지 알 수 없었으나, 방희림은 곧바로 혼처가 낙점됐다.
그들의 시험을 주관했던 좌사 백엽의 서녀를 아내로 얻은 것이었다. 서녀라고는 해도 사실 적녀에 가까웠다. 백엽은 3남 1녀를 두고 있었는데, 아들들은 모두 본처 소생이며, 서녀인 막내 딸 하나는 총애를 많이 받아 적모가 곁에서 키웠으니 적녀로 봐도 무방했다.
고청운은 방희림이 백엽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러 찾아갔을 때 우연히 만난 백씨 집안의 처녀와 첫눈에 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말은 방희림이 그에게 말해 준 것으로, 고청운은 사실의 진위까지는 알지 못했다. 애초에 그들이 백엽의 댁을 방문하러 갈 때 모두들 들어갔던 시간이 서로 달랐던 것이다. 일부는 한 사람씩 들어가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들어갔는데, 방희림이 어떻게 백씨 아가씨를 만날 수 있었을까?
고청운은 바로 이 점이 이상했다.
‘백씨 아가씨가 어떻게 앞마당까지 올 수 있었을까? 그렇게 우연히 탐화랑을 만날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는 요즘의 예법이 몇 년 전보다 느슨해졌다고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백씨 아가씨는 욕을 먹었을 것이었다.
방희림은 축하의 말을 듣자마자 젓가락을 내려놓고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모두 백 대인의 배려 덕이오.”
고청운은 고개를 돌려 그를 한 번 보고는 속으로 은근히 웃었다.
‘이 녀석도 낯가죽이 두꺼운 사람이로군. 어쩌면 지금 부끄러움 한 점 없이 이렇게 가식을 보일 수 있을까?’
하지만 과거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국가 법조계의 제 일인자의 딸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의 행운과 실력에 그저 감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인생에서 이기는 사람들의 흐름이었다! 물론 공주를 신붓감으로 데려오는 것보다는 조금 모자랐지만 말이다.
“성혼을 언제 치른다는 말은 아직 안 하셨죠? 축하 선물을 대동하고 있다가 꼭 참석하겠습니다.”
이때 담자례가 끼어들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었다.
그는 최근에 잠 시강과 암암리에 말다툼을 하며 매우 불유쾌한 분위기를 조성하고는 하였다. 오늘 초유가 밥을 먹으러 나오라고 초대한 자리에 나오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나중에 불참한 것을 안 좋게 생각할지 몰라 자리에 참여한 것이었다.
“10월 초하룻날로 정했네. 때맞추어 어김없이 청첩장을 보낼 예정일세.”
방희림이 웃으며 또다시 말했다.
“우리 스승님도 오신다고 하네.”
그의 혼인식에 그의 스승님이 직접 왕림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뭇사람들은 또 한 차례 부러워했다. 방희림의 스승님은 정말 유명한 대학자였던 것이다. 그는 평소에 매우 보기 힘든 사람으로, 평소에는 고향에 틀어박혀 가르치는 일만 하시거나 은둔 생활을 즐기는데, 방희림의 혼인식 날 볼 수 있게 될 줄은 몰랐다.
이는 방희림에 대한 대학자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방희림은 대학자의 막내 제자이기도 하였는데,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게 되면 방희림의 사형들도 그를 좀 더 배려해야만 할 것이었다. 그의 몇몇 사형들은 모두 관직 생활을 아주 잘 해내고 있었지만 말이다.
고청운은 신부를 맞이하는 소식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들이 죄다 따라가서 신부를 맞이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건 힘들 거야. 그러니 혼인식 날 새신랑을 골려주는 백미도 성사되기 힘들 것 같구나.’
모두들 앞다투어 반드시 성혼식에 참가하겠다고 의사표시를 하였다.
“참, 자례 형, 방 형, 요즘도 잠 시강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소?”
초유가 갑자기 물었다.
잠 시강은 60대 초반의 나이로 장수원의 말대로 2~3년 후에는 곧 벼슬에서 내려올 사람이었는데, 평생 한림관으로 살면서 다른 벼슬을 한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의 학식은 확실히 뛰어나고 수십 년을 한림원에서 지내며 가장 경험이 풍부한 것을 자랑했지만, 훈계하기 좋아하는 성품은 그다지 탐탁지 않았다.
그는 걸핏하면,
“젊은 녀석들이라고는, 하여간 고생은 조금도 하지 못하지. 나 때는 말이야…….”
이렇게 말하면서 그가 겪어왔던 고초들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고는 했던 것이다.
그래, 이 정도는 별일도 아니었다. 고청운도 그 사람한테 당했던 적이 있어서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는 문인으로서의 병폐 또한 지니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는 무엇이든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으면 눈에 거슬리는 대로 걸핏하면 그 내용을 시로 써서 남을 욕하거나 아니면 산문을 써서 사람을 풍자하고는 하였다.
그는 경화소보의 가장 인기 있는 작가이기도 했는데, 그에게 지급하는 윤필비가 꽤 높다고 하였다.
그러다 보니 한림원 동료들은 그를 마주 하는 일에 긴장을 하게 되고 또 그를 싫어하게 되었다.
그는 특히 잘생긴 젊은 사내를 유독 싫어했는데, 젊은 진사를 만나면 그의 풍자와 헐뜯는 습관이 발동되곤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객관적으로 잘생겼는지 궁금하면 잠 시강을 만나보고 당한 태도를 살펴보라고 권했다. 만약 나쁜 대접을 받았다면, 축하를 할 일이었다. 그자가 단연코 미남인 것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의 태도가 매우 좋았다면, 자, 그자의 생김새가 좀 평범한 축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었다.
장수원, 초유, 담자례, 방자명은 모두 그의 공격을 받아왔으며, 고청운도 몇 차례 공격을 받은 바 있었다. 그러나 고청운이 누구인가. 좀 뻔뻔스럽겠지만, 그는 이 일을 그저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방면으로는 장수원도 겪고 깨달은 바가 심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