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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214)화 (214/504)

214화. 출근 (1)

그들은 집에서 말을 타고 한림원으로 갔는데, 가는 시간이 반시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한림원과 호부의 위치는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고청운은 아침에 방인소와 함께 길을 나섰다.

고청운은 좀 신기했다. 

‘하, 스승님과 함께 출근도 다 해보는구나. 하 수재와 함께 시험을 본 것도 모자라 스승님과도 출근길에 나서보게 되다니!’ 

이 시대의 관원들의 출근길을 보면, 연로하거나 몸이 허약한 자들은 마차나 가마를 타기도 했지만, 젊고 건강한 관원들은 거의 말을 타고 출근했다. 특히 무관들은 병이 있거나 걸을 수 없는 상황이 아니고서야 거의 말을 탔다.

관아가 있는 방향으로 가는 길은 초행길인데다가 길에 불빛도 없었다. 날이 아직 밝지 않아 사방이 온통 칠흑 같이 어둡고, 하늘에는 별 몇 개만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새벽바람이 쌀쌀하게 불어와 고청운은 말을 빨리 달리지 못하고 방인소의 마차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어 넓고 곧게 뻗은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는데, 방인소의 마차 밖에 풍등 2개가 달려 있어 길을 밝혀 주어 그런대로 괜찮았다. 

어느 정도 가다 보니 문벌 귀족들이나 대신들의 거처가 나타났다. 이곳은 더욱 조용했지만, 빛이 매우 밝았다. 저택들의 입구에 모두 두 개의 등롱이 걸려 있어 길을 아주 밝게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가는 도중에 여러 관리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계속해서 다른 관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기본적으로 각 집의 마차에는 각 집안의 표식이 달려 있었고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관원이 있으면 한 발짝만 길을 양보하였다. 4품 이상의 관원들은 아침 조정에 나서야 해서 이미 길을 떠나고 없었고, 이 시간에 이 길을 가는 관원들은 모두 4품 이하의 관원들이었다. 방인소는 정5품이라 남에게 양보하는 일이 드물어 비교적 빠르게 갈 수 있었다.

모두들 조용히 길을 재촉하고 있을 뿐, 가는 길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고청운은 빛에 의지해 천천히 길을 따라가 정양문이 위치한 거리에 이르렀다. 고청운의 앞뒤로는 마차들이 줄을 지어 굽이굽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때는 등불들이 켜져 있어 주변이 매우 밝았는데, 이 시간이 되자 이미 날이 밝아 불빛 없이도 길이 잘 보였다.

* * *

묘시가 되기도 전에 고청운은 관아에 도착했다. 정양문이 닫힐 때 고청운은 왼쪽으로 돌고, 방인소은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갔다.

헤어질 때, 방인소는 마차의 창문을 열고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잘해라.” 라고 말했다.

고청운도 손을 흔들며 빙긋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안심하세요.”

한림원은 고청운이 상상한 것처럼 높고 웅장한 큰 건물 구조가 아니었다. 건축 양식은 그저 사합원의 모습을 따랐고, 사용된 건축 자재들이 조금 더 고급스러울 뿐이었다.

대문을 들어서서 먼저 문간방을 통과하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관리 한 명이 책상 뒤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읍례하며 말했다.

“소관 양유(梁唯)가 대인을 뵙습니다.”

고청운은 그의 절하는 동작과 입고 있는 옷으로 미루어 보아, 그가 정9품의 한림원의 시서(侍书)직이라는 것을 알았다. 고청운도 급히 답례하며 물었다. 

“좋은 아침일세. 양 시서, 이건 출근해서 작성해야 하는 건가?”

그는 마음이 매우 갑갑해졌다. 생각지도 못하게 이 시대의 관리도 매번 출석 체크를 해야 했던 것이다. 또 관원이 무단결근할 경우, 하루당 20대의 매를 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었고, 1년에 35일을 결근하면 1년의 징역을 살게 하며, 징역을 받으면 관직도 빼앗겼다. 

방인소의 말에 따르면, 일부 아직 퇴직을 앞둔 사람들조차 관직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평소에 출근할 때에 목숨을 걸고 지각하지 않도록 주의한다고 하였다. 만약 사정이 허락지 않는다면, 차라리 앞당겨 사직을 하더라도 그런 꼴을 당해 체면을 더럽히는 일은 피했다. 

양유가 가진 장부에 출석 기록으로 이름을 적은 후, 고청운은 적힌 이름이 몇 없는 것을 보고 만족스러웠다. 

묘시가 지났을 때에는 모두가 다 도착해 있었다. 

한림원의 공목(*孔目: 관원이 아닌, 한림원의 문서를 취급하는 사람)이 서길사들을 밝은 방으로 데리고 갔는데, 방 안에는 탁자와 의자가 열 개씩 갖추어져 있었다. 공목은 이곳이 바로 서길사들이 공무를 보는 곳이라고 소개하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고청운은 비록 단체로 사용하는 사무실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자리가 생겨서 좋았다.

그와 방자명, 두 사람은 한 곳을 정해 앞뒤로 자리에 앉았는데, 그들이 도착 보고를 한 시점이 이미 늦은 편이었는지, 사천성에서 와야 하는 서길사 한 명이 아직 경성에 도착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서길사 7명은 모두 도착 보고를 완료하였다. 

모두들 이미 시험 후에 모임을 가진 적이 있어 서로가 다 잘 아는 사람들이라 만나자마자 인사도 나누고 나니, 고청운은 마음이 좀 놓였다. 

고청운은 근황을 물어보다가 그들이 모두 자신들보다 열흘정도 일찍 와서 이미 각자 임무를 분담하여 도맡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급히 몇 마디를 나누고 난 후, 사람들은 아직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터라 감히 크게 웃고 떠들지 못하고 그저 업무에 몰두하며 바삐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고청운은 책상 위에 놓인 것들을 보고 있었다. 그는 붓, 먹, 종이, 벼루를 일일이 살펴보니 모두 품질이 좋은 것인 걸 알고, 빨리 써 보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그러나 지금 자신을 상대해 주는 사람이 없자, 고청운은 그저 책상 위의 시집 한 권을 집어 들어 여기저기 넘기며 시간을 보냈다.

한림원은 정5품의 관청이었다. 이곳의 최고 지도자는 정5품의 학사인데 성은 오씨로, 고청운은 이미 그를 만나 본 적이 있었다. 대략 40대 초반의 중년인 그는 얼굴에 수염이 없었고 이목구비가 뚜렷하였으며 단정한 것이 나라의 안팎으로 명성이 자자한 학자였다. 고청운은 상대방과 인사를 나눠봤을 뿐인데도 그의 말이 간결하고 매우 힘이 있으며, 일 처리가 매우 노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듣자하니 오 학사는 서예에 조예가 깊다고 하였다. 시부, 천문지리(天文地理)에 있어서도 두루 인지도가 높았다.

그의 휘하에는 시독학사, 시강학사가 각 두 명씩 종5품 관원들이 더 있었다.

고청운은 이것이 바로 한림원의 지도부라고 생각했다. 이때 그들은 아침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회의를 통해 그들에게 어떤 일을 시킬지 논의하였을 것이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오 학사가 사람들을 정원에 모이게 하여 고청운과 방자명 두 사람을 간단하게 소개하고는 소(苏)씨 성을 가진 시강학사 한 명을 지명하여 고청운의 교습을 맡게 하였다. 

방자명의 교습을 맡은 자는 잠씨 성을 가진 시독학사로 같은 정6품직이었다.

고청운은 이 말을 듣고 좀 놀랬다. 

‘저 사람은 장 형이 말했던 사람이 아닌가. 아무리 잘해도 잘 어울리기가 힘든 사람이라고 하던데.’

교습이란 한림원에서 서길사들에게 행하는 일종의 양성 프로그램으로, 옛 것에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방식을 채택하였기에, 시종, 시강, 수찬, 편수, 검토 중 학문의 우수한 자를 선택하여 교육을 일임하였다. 

고청운은 더 놀라 있을 시간이 없었다. 소 대인이 재빨리 그를 한쪽으로 불렀던 것이다. 그 사람은 아리따운 수염을 가진 중년으로, 대략 45세가 되어 보였고, 키가 크고 수척하였으며, 얼굴은 아주 평범했지만 상냥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서로 인사하고 관등성명을 한 후, 고청운은 앞에 있는 소 대인의 이름이 소추의(蘇秋意)라는 것을 알았는데, 정말…… 시적인 이름이었다. 

“신지(慎之), 자네는 무엇을 잘하는가?”

소추의는 그의 자명을 친절하게 불렀다.

고청운이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소생은 그저 산술 쪽으로만 조금 나을 뿐입니다.”

소추의가 머리를 끄덕이며, 수염을 훑었다. 

“자네는 너무 겸손하구만. 서길사에 합격했다는 건 모든 방면에서 뛰어 났다는 의미인데 말이야.”

고청운은 웃기만 하면서 코를 매만질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세. 요 며칠 본관이 급한 일이 있으니, 자네는 먼저 우리 한림원에서 하는 일에 대해 파악을 하고 있게. 특히 수사(修史)에 대해 알아보고 있으면, 본관이 바쁜 용무를 다 마치고 나서 구체적으로 할 일을 다시 알려줌세.”

소추의가 얼굴에 미안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고청운은 혼자 책을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한림원 안에는 장서가 풍부하기가 이루 비할 데 없는 황실 장서루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밖에서는 보기 어려운 서적들이 다양하게 갖추어져 있었는데, 역대 고전과 희귀한 진본 서적들이 대다수 이곳에 다 모여 있었다. 

고청운은 이것 때문에 즐겁기도 했는데, 아무도 자신을 상대해 주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저 책만 있으면 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는 지금 신입이니까 말을 적게 하고 책을 많이 읽으면 되었다. 

소추의가 말한 수사(修史)는 한림원의 대사가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이것은 하 왕조 전체의 대사이기도 하였다.

전 왕조의 역사를 편찬하는 것은 주로 자신이 정통 왕조임을 증명하고 진짜 천하의 주인임을 밝히는 작업이었다. 이 외에도 고청운은 역사를 거울로 삼는다는 뜻도 있다고 생각했다.

전 왕조의 역사를 편찬하는 것은 본래부터 당나라 이후 전해 내려오는 관례였다.

당나라 이전의 사서들은 모두 개인 또는 사관이 역사를 집필했다. 그러다가 당나라에 이르러 황제가 조직적으로 참여해 학자들이 집단으로 사서를 편찬했다. 이때부터 중국의 역사서 편찬 작업은 모두 단체를 조직하여 제작하였는데, 이 관례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속한 하 왕조 역시 그러했다. 이전 화(华) 왕조의 정사를 편찬하기로 한 이 결정은 홍정 3년에 결정되어 아직까지도 그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

역사서를 편찬하는 것은 매우 엄숙한 일이었다. 현 왕조의 승상이 앞장서고 다른 대학사 몇 명이 부수로 한림원에 자리 잡고 진행하는 작업이기에 한림원 사람들도 모두 참여해야 했다. 이 밖에도 황제는 재야에 있는 박학다식한 사람들의 참여를 호소하기도 하였다.

고청운은 자신도 앞으로 이 작업에 참여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물론 조수 정도의 존재로 참여하게 될 것이었는데, 그는 지금 아직 신입이라, 이렇게 엄숙하고 거창한 일에는 아직 차례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감이 나누어진다고 한들 기껏해야 오탈자 정도를 교정하는 작업이 될 것이었다. 

역사서를 편찬하는 수사관의 큰 업적을 생각하자, 고청운은 매우 감동스러웠다.

만일 그런 일을 도맡아 하는 관인들이 한두 번 지적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청운은 많은 이익을 얻을 것이 분명했다.

이것이 바로 한림원에서 지내면서 얻을 수 있는 좋은 점 중 하나였다. 그리고 왕조의 초창기에나 누릴 수 있는 대접들일 것이었다. <화 왕조의 역사서>가 집필이 완료되고 나면, 집필을 위해 모인 사람들은 흩어지게 될 것이고, 앞으로 그렇게까지 좋은 직업거리는 또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고청운은 그토록 간절히 원함에도 불구하고, 수사관에게 접근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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