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집들이 (2)
8월 30일 오전이 되자, 그들은 이사한 집에서 처음으로 주방의 불을 지피고 밥을 지어 방인소, 방자명, 장수원 등의 사람들을 접대하였다.
식사 자리에서 고청운과 사람들은 한림원을 주제로 대화를 했는데, 서길사를 3년째 해 온 장수원이 이번에 전관 선발에 합격해 정7품의 한림원 편수(*编修: 국사편찬에 종사하던 사관)직 자리를 맡고 있어 한림원 내부의 일에 대해 좀 더 잘 알 수가 있었다.
다들 착실하게 식사를 마치고, 저잣거리의 풍문 등의 흥미로운 주제로 얘기를 했는데, 먼저 경화소보에서 나온 이야기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가 그 다음에 직접 공수한 관직 생활의 정보를 이야기했다.
장수원과 방인소가 주로 말을 많이 하는 편이었고, 고청운과 방자명은 이제 막 귀경하여 아직 정황을 많이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잠시 후 붉은 옷을 입은 작은 소석이 식당으로 들어와 고개 숙여 인사했다.
“외증조할아버지, 진지 잘 잡수셨어요?”
고청운이 아이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먼저 혼자 놀러 가 있는 게 좋겠구나, 외증조부님께서 아직 식사를 다 마치지 못하셨으니, 잠시 더 기다리거라.”
“네, 그럼 소석이는 좀 기다릴게요.”
소석은 손가락을 맞대면서, 실망한 듯 고개를 떨구고 느릿느릿 자리를 떠났다.
방인소는 그런 소석을 보자마자 그와 저잣거리 나들이를 가겠다고 약속했던 것이 생각나 웃으며 말했다.
“노부는 먼저 일어나겠네.”
서둘러 자리를 떠 소석에게 가버리는 다급한 그의 뒷모습에 고청운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방인소가 떠난 뒤에야 세 젊은이는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고청운이 밥상을 물리자, 세 사람은 정자까지 걸어갔다.
곡우가 차를 올렸다.
“백부님이 계시니 어떤 말은 하기가 힘들었네.”
방자명이 한숨을 내쉬었다.
고청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장수원은 찻잔을 들어 보이며 가볍게 입김을 불어 찻물을 식히다가 다시 찻잔 덮개를 닫고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그러하지. 나도 스승님 앞에서는 함부로 말을 못하겠더군.”
세 사람이 마주 보고 웃었다. 뒤이어 고청운은 장수원의 득남 소식을 축하했다.
장수원과 방자명 모두 이 화제에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세 사람은 잠시 남의 집안일을 토론하였다.
“그 대흥(大兴)현 현령의 첩이 그렇게 사납다면서요? 시어머니까지 그렇게 고부고분하게 만들어 놨다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습니다! 그 현령이라는 자도 참 줏대 없는 자이지 않습니까.”
고청운은 소보를 펼쳐 표제를 보고 말도 안 된다고 탄성을 내질렀다.
이 소보란 것이 생겨난 이후로는 다들 더 이상 이야기할 거리가 없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
“그러게 말이야. 그냥 어디 한적한 산간벽지면 몰라. 경성 근처에서 감히 이런 짓을 벌이다니. 그자는 정말 생각하는 뇌가 없기라도 한 건가?”
방자명도 분노하기 시작했다.
“자네들도 좀 보게. 이번 일은 반드시 어사도 눈여겨볼 거야. 이 현령이라는 자가 도대체 누구의 눈 밖에 나서 이런 일까지 다 폭로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이 경화소보는 ‘민간 어사’로 불릴 만해.”
장수원도 ‘응.’ 하고 답하고는 소보를 한 번 훑더니 말했다.
“꼭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아니면 전혀 생뚱맞은 이야기일 가능성도 있지.”
“그럴 가능성도 있기야 하죠.”
고청운은 더 변론을 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 소보는 간혹 한두 차례 실수를 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는 또 다음 페이지를 보았는데, 눈에 잘 띄게 테두리를 두른 공간 안을 장식한 기사거리를 보니 바로 사장정과 안락공주의 이야기였다. 모두 좋은 말들이었는데, 예를 들면, 오늘 사장정과 공주가 어디 가서 나들이를 했다거나 사장정이 무슨 물건을 사서 공주에게 선물을 했다 같은 내용들이었다.
그는 이 소보 취재원의 소식통에 정말 감복했다.
그가 고향에서 돌아오기 전 황제는 사장정에게 그들의 성혼을 명령하였고, 간미의 말로는 그들의 성혼 때 사람을 보내 축하 선물을 보냈다고 하였다.
고청운은 지금 생각해보니 두 사람의 사이가 매우 좋았던 것 같았다. 처음에 안락공주를 싫어했던 사장정이 어떻게 된 일인지 공주에게 좋은 감정이 생겨난 듯했다.
고청운은 기뻤지만, 사장정과 공주가 아직 신혼여행 중이라 연락할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끝나자, 세 사람은 한림원으로 화제를 옮겼다.
“자네들은 사실 서길사라는 직급이 조서를 작성하고 폐하께 경전을 설명 드리는 일 등을 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거야. 다만 이런 기회는 다른 직무에 비해 비교적 적어. 폐하께 경전을 해설할 수 있는 기회는 자네들이 때마침 당직을 서고 있을 때가 아니고서야, 자네들에게까지 그 기회가 돌아가는 일은 없을 테지.”
장수원이 숨김없이 솔직히 말했다.
“모두 다 이런 기회를 독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으니, 누가 오 학사와 친하게 지내는지 봐둬야 할 거야.”
고청운과 방자명은 그의 말이 이해가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황제에게 얼굴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니 다들 눈독을 들일 만했다.
“예전의 서길사는 시부와 서예가 뛰어난 진사들 중에서 선발했지. 물론 외모도 중요했는데, 나를 예로 들면 나는 3년 전만 해도 좀 실력이 떨어졌음에도 나중에 얼굴 덕에 기회가 좀 있었지 뭔가. 하지만 지금은 요구사항이 더 많아졌지. 단순히 책에서만 봤던 내용으로는 안 되고, 실무적인 능력이 필요해. 폐하께서 민간 사정에 관한 질문을 하셨을 때 대답을 할 줄 알아야 하네.”
장수원은 고청운을 한 번 보고 나지막이 말했다.
“시험 당시에 나는 자네가 반드시 서길사로 선발될 것을 알고 있었어.”
고청운은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폐하께서는 또 호부의 일에도 관심이 많으셔서 가끔 산술에 관한 이야기도 하시는데, 자네는 산술 쪽 실력도 괜찮으니 오 학사가 자네를 반드시 서길사로 삼으려 했을 것이 분명하네.”
장수원이 웃었다가 한참을 망설이고는 또다시 말을 이었다.
“어쨌든, 이제 막 벼슬생활에 돌입한 것이니 신중하게 잘 처신하면 될 거야. 한평생을 한림관으로 지내면서 곧 퇴직을 바라보는 잠(岑)씨 성을 가진 시독학사가 한 분 계신데, 경험이 많은 분이라고는 하나 나는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자네들은 그저 그와 관련하여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잘 기억해 두게.”
고청운과 방자명은 듣자마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시독이면 정6품 관원이었다. 그런 나이에 정6품이라는 것은 그만큼 성격이나 처신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어디가도 얻을 수 없는 장수원의 고마운 정보들을 들은 후, 방인소도 그들에게 수업을 해 주었다.
방인소 역시 관직 생활을 오래 버텨낸 노장 중 한 명으로서 그들에게 요령을 전수해 주었다.
사실상, 방인소가 그들에게 전하는 관리의 요령은 간단한 것이었다. 그는 이전에도 말했었지만, 지금 다시 한번 말해 주었다.
그것은 바로 신중함이었다!
“벼슬길이란 마치 독사들이 모여 있는 장소와 다름없다. 청운아, 너는 사람됨이 바르고 진실하지만, 관직에 진출한 이상 더 신중해져야 해.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을 유념하거라. 말이 화를 부르는 법이다. 입을 다물고 남의 장단점에 대해 논하지 말아야 한다.”
방인소는 이 점에 대해서는 방자명에게 매우 안심하고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이것에 대해 귀동냥으로 배웠기 때문이었다. 반면, 자신의 제자에 대해서는 오히려 매우 불안한 점이 있었다.
“어쨌든 말조심해야 한다.”
방인소는 다시 한번 당부하고, 바로 쓴웃음을 지었다.
“노부가 일찍이 네게 말한 적이 있을게다. 너는 평소 행실이 좋으나, 이번 기회에 네게 다시 일깨워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문회같은 자리에서도 마음대로 탁상공론을 해서는 안 되며, 어느 순간에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아명이 너도 마찬가지다.”
방인소는 고개를 돌려 방자명에게도 신신당부했다.
“백부님, 안심하세요. 새겨듣겠습니다.”
방자명의 얼굴이 매우 진지했다.
방인소의 서재에서 나온 고청운과 방자명은 함께 정원을 나섰다. 두 사람 모두 서길사가 되어 같은 부서로 출근하게 된데다, 낯익은 사람들도 있어서 그렇게 많이 떨리진 않았다.
대문 입구에서 방자명을 배웅한 후, 고청운은 바로 다른 문으로 들어갔고, 오른쪽으로 돌아나가 새로 터놓은 샛문을 통해 자신이 사는 집 정원으로 돌아왔다.
* * *
9월 초하루에 고청운은 처음 한림원으로 출근을 하였다. 전날 저녁에 만약 팔 굽혀 펴기를 피곤할 때까지 하지 않았다면, 그는 반드시 몸을 뒤척여대며 잠에 들기 어려워했을 것이다.
전날 밤, 그는 머릿속에 내일 할 말을 생각해 두었다. 머릿속으로 한번 상황을 재연해 보았고, 특히 관직 생활에서의 예의범절을 깊이 새겼다. 사람에 따라 인사의 예법으로 절하는 방법이 달랐는데, 관료 사회의 등급이란 절대적이어서 반드시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되었다. 자신들의 분수에 지나치는 행동을 하는 것은 큰 죄였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 그로서는 첫인상의 중요성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첫인상이 좋으면 일을 하는 데도 반쯤은 먹고 들어가는 것으로, 만약 첫인상이 좋지 않다면 그와 반대되는 상황에 처한다고 할 수 있었다.
고청운은 단 하룻밤 만에 수많은 난잡한 꿈을 꿨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꿈 내용은 모두 잊었고, 그저 정신적으로 매우 피곤함만을 느꼈다. 그는 차가운 물로 세안을 하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고청운은 일어나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밖엔 아직 고요한 적막 속에 몇몇 집들의 촛불만 켜져 있었는데, 역시 모두들 일찍 일어나 관아에 올라가야 하는 관리의 집들이었다.
간미는 이제 회임한 지 한참이 되어 한창 잠이 많아질 때였다. 고청운은 그런 그녀를 깨우지 않고 몸을 바삐 움직여 관복을 입고, 옆집으로 건너가 방인소와 함께 아침밥을 들었다.
“오늘 침상에서 잘 일어나지더냐?”
방인소는 고기 찐빵 하나를 들고 천천히 먹으며 고청운의 안색을 살폈다.
고청운은 얼굴에 아직 잠이 남아 있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평소에 독서를 하는 시간보다 일찍 일어났습니다만, 평소 일어나는 시간과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6시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새벽 5시에 일어난 것인데, 평소보다 겨우 한 시간 일찍 일어났을 뿐이었다.
지금 그는 저녁에 책을 읽는 것과 글씨 연습 외에 다른 운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저녁때가 되면 아무리 늦어도 저녁 10시에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니 수면시간은 절대적으로 충분했다!
그와 방인소는 아침에 조정에 들 필요가 없어서 아침 묘시(卯时)에 맞춰 서에 도착하면 되었다.
묘시는 현대의 오전 5시에서 7시까지에 해당했기에, 일반적으로 늦어도 7시까지는 관서에 도착하도록 하면 되었다. 만약 거리가 먼 곳에 산다면 4~5시에 일어나야 할 것이고, 아침에 조정에까지 들어야 한다면 3~4시에는 일어나야 할 것이었다.
한림원은 동장안길(东长安街) 옥하(玉河) 북쪽 다리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북쪽 다리, 북교 부근은 황성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이 시대의 경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구분되었다. 내성은 성곽이 세 겹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바깥에서 안쪽으로 내성, 황성, 자금성 순서였다. 정양문(*正阳门: 내성의 정문)으로 들어서면 가장 바깥쪽에 있는 것이 내성이며, 관리들이 일하는 중앙의 각 부서는 거의 정양문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