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집들이 (1)
“부군, 집에 사람이 더 필요할까요?”
간미의 질문에 고청운의 상상이 잠시 중단되었다.
‘더 필요한가?’
고청운은 속으로 자기 집에 속한 하인들을 헤아려 보았다.
머슴 소만이는 늘 소석을 따라다녔고, 곡우와 춘분은 여종으로 간미를 모시는 일을 하고 있었다. 혜향은 총무 같은 역할로 간미의 일을 책임지고 행하고 있었고, 그녀의 남편인 방충은 연 씨가 이미 그의 노비 문서를 자신에게 넘겨주었기에, 고청운은 몇 개월 동안 시험적으로 채용하여 집사로서 적합한지 눈여겨보고 있었다.
바깥일의 관리는 당연히 고삼원의 담당이었는데, 그는 고청운을 따라 동행하는 것 외에도 방세를 받는 일 등을 수행해 주고 있었다.
고삼원을 포함해서 그들 집에는 모두 6명이 일을 해 주고 있었기에, 고청운은 사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 많으면 관리하기도 벅찼으니 말이다.
“부족할 것 같으면 사람을 더 구해야겠지요. 지금은 문간방에 전임자가 없기는 하지만, 대신 방충과 소만이 있으니 그들이 교대로 문간방의 일을 맡아도 될 것이오. 물론 사람을 하나 더 들이는 게 제일 좋을 것 같기도 하오만, 당신이 결정하시오.”
고청운은 이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남주인은 밖의 일을 도맡고 여주인은 가정 내부의 일을 도맡아 관리하는 것이 이 시대의 도리라 그 경계를 침범하지 않고자 했던 것이다.
간미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부군, 무슨 말씀이신 줄 잘 알았습니다. 저는 저희 집이 지금 이 상태 그대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지금 집안 형편이 어려운데다 아직 돈을 쓸 데가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럽시다. 나는 이제 다음 편 화본으로 무슨 내용을 쓸지 고민 중이라오. 신선과 요괴가 나오는 이야기를 써야 하는지, 아니면 재능이 뛰어난 주인공과 아리따운 여인으로 가득한 무용담을 써야 할지 말이오. 아 참, 오늘 방 형과 함께 한림원에 갔었는데 오 대인께서 우리에게 서길사가 해야 할 일을 한 차례 설명을 해 주셨소. 허나 녹봉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오.”
고청운은 아까의 생각을 하니 답답해졌다.
서길사는 정식 관원이 아니어서 정식 품계와 직함이 없어 녹봉이 없었으며, 기껏해야 생활 보조금 명목의 비용을 조금 받았다. 본 왕조의 녹봉체계는 정봉(正俸)과 수당(津贴), 생활 보조금 이 세 종류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생활 보조금이란 일반적으로 받을 수 있는 겨울과 여름철에 입는 관복, 비단과 공단 등의 견직물, 겨울옷을 짓는 면화직물, 차, 술, 쌀과 국수 등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관원이 받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서길사는 정봉과 수당은 없고 생활 보조금만 받을 수 있었다.
이 내용을 알게 되었을 때, 고청운은 무기력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것은 3년 동안이나 무급으로 일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 아닌가? 오죽하면 시험 볼 때 일부 진사들은 서길사로 합격하고도 스스로 서길사를 포기하고 지방으로 내려가거나 주사(主事)와 같이 품계는 더 낮을지언정 정식 품급이 있는 관료가 되거나 하는 등 서길사가 되는 것을 싫어했을까.
그들이 과연 시야가 너무 좁아서 그런 선택을 했겠는가? 물론 그렇지 않았다. 형편이 좋지 않은 일부 사람들은 경성에서 지내는 동안 들어가는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좀 더 이성적으로 봉급이 있는 벼슬을 택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차피 지금은 한 왕조의 말기도 아니어서 현재 관직 자리는 공석이 많아 결원을 기다리는데 오래 시일이 걸리지도 않았다.
그가 알고 있던 고향의 열 몇 명의 향시 합격 동기들은 시험에 합격하고 바로 고향의 가족들을 경성으로 불러와 같이 살았는데, 이렇게 되면 생활비의 부담이 매우 커지기 때문에, 당초 그들의 시험의 성적이 매우 좋았음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기회를 포기하고 다른 관직을 선택하였다.
그들이 합격한 이번 해의 시험에서는 총 10명의 서길사를 배출했는데, 그 전의 시험에서는 매 회마다 거의 2~30명에 달하는 서길사를 뽑았던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조정에서 3년마다 새로 임명하는 서길사의 정원이 원래 일정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번 정원은 특히 적었다고 할 수 있었다.
“괜찮아요, 부군. 아직 제 혼수가 남아 있습니다.”
간미가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고청운은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꾸했다.
“지금 나를 놀리는 건 아니겠지요. 내가 언제 당신의 혼수에 기대어 생활을 부양한 적이 있소? 만약 그런 날이 오면 나는 끝장난 것이오.”
그는 그렇고 그런 다른 사람들같이 진부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느 날, 그는 만약에라도 간미의 혼수를 동원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언제고 형편이 호전되었을 때 반드시 다시 간미에게 돈을 돌려줄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첩을 들일 생각도 없었기에, 나중에 그의 자산은 모두 간미와 자신의 친아들이 물려받을 테니 부족할 게 없을 것이었다. 또한, 지금의 사회적인 풍토로 보자면, 아내의 혼수를 생활에 보태 쓰는 것은 아무래도 그리 보기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니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그런 상황을 피해야 했다.
물론 이런 사회적인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내의 혼수를 사용하는 것에 별 문제가 없었다. 예를 들어 가난한 학생이 고시를 계속 준비하기 위해 상인의 여식을 아내로 맞이하고, 아내의 혼수 덕분에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오르는 사례도 많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보통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나중에 상인의 여식을 집에서 내쫓지 않는 한, 그녀의 원래 지위를 가정에서 잘 보존만 해 준다면 이런 일로 왈가왈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부군, 당신과 저는 가족이 아닙니까. 만약에라도 돈이 부족해지면 꼭 제게 말씀해 주세요.”
부군이 그런 케케묵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녀는 이 말을 입 밖에 내어 말할 수 있었다. 만약 고청운이 그런 낡아빠진 사상을 가진 남편이었다면, 그녀는 절대로 이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을 것이었다.
“알겠소.”
고청운은 그녀의 손을 잡고 정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무 오래 서 있었소. 이리 오시오. 저쪽으로 가서 좀 앉아봅시다. 아직도 해가 참 뜨겁소.”
정자에 앉아 있으면 그늘이 져 있어서 시원했다.
금세 춘분이 차게 식힌 맹물 두 잔을 가져왔다. 그들 부부는 모두 차를 거의 마시지 않고 집에서 모두 끓여서 식힌 맹물을 즐겨 마셨는데, 물론 간미 역시 고청운의 영향을 받은 탓이었다.
두 사람은 물을 마신 뒤 고청운이 이번에 집에서 가져온 은자를 어떻게 쓸지 의논하기 시작했다.
고향에 갔다 오는 데 사용되는 노잣돈을 아꼈다고는 해도, 여전히 지출한 돈이 있었다. 소석이 중간에 이틀을 앓아 소주에 머문 것까지 합하면, 모두 합쳐 100냥 가까이 이번 여정에서 소모했는데, 고향집에서 쓴 것도 합치면 현재 그의 손에는 대략 4, 50냥의 은자만 남게 되었다.
현재 두 사람은 장원을 하나 더 사들이고 싶어 했다. 장원이 있어 경작을 할 수 있게 되면 매일 채소나 고기를 사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평소 자신의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지 않았는데, 방인소의 집에 장원이 있어 그곳에서 식사했던 것이다. 직접 요리를 하더라도 방인소네에서 공수해 올 수 있으니, 당분간은 식재료가 부족하지 않을 것이었다.
하인들이 먹을 음식은 대부분 사서 해결할 수 있었고, 큰 금액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걸리는 점이 하나 있다면, 경성에서는 논밭을 사는 것이 매우 어려워서 적절한 기회를 잡지 않은 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이 돈을 집이나 가게를 사서 임대하는 데에 쓴다면? 이것도 적절한 방도인 것이, 지금처럼 여유가 좀 있을 때 빨리 사들이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부군, 관직 생활을 시작하게 되셨는데, 위에 계신 다른 대인들께 명절 선물을 올려야 하지 않습니까? 이 돈은 남겨두었다가 선물을 사는 데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간미가 주의를 주었다.
고청운은 멍해졌다가 머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 일을 깜빡 잊고 있었소! 이 돈은 우선 쓰지 않고 남겨두었다가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자세히 살펴보고 써야겠소.”
그는 상사에게 선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해 보지도 못했는데, 신분이 신분인지라 그런 상황에 처해본 적이 없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것이다.
확실히 관직 생활에서 선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는 일반적인 관례 같은 것으로, 다른 사람들이 다 선물을 보내는데 자신만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괜히 상사에게 트집잡힐 수는 없었다.
이래서 청렴한 관리를 사람들이 그렇게 떠받드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관직 생활을 한다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의 기억 속에는 아주 유명한 청관 해서(*海瑞: 중국 청나라의 대표적인 청렴한 관리)가 있었다. 고청운은 그의 삶의 족적에 매우 감복했지만, 그렇게 사는 것은 정말 견딜 수 없었다. 고청운은 그저 자기 스스로 뇌물을 받지 않고 탐관오리가 되지 않도록 자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관청의 몇몇 암묵적인 규칙을 안 이상 자신의 지덕(智德)과 재기(才氣)를 감추고 속세와 어울릴 거라 생각했는데, 스스로 특별히 눈에 띄게 행동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고청운은 자신의 그런 생각에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꼈다.
‘내 속마음이 이랬구나!’
그는 여전히 하늘에 높이 걸려 있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태양 아래 그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대나무 잎사귀가 파랗게 빛나고 있었고, 미풍은 스산하게 불고 있었으며, 드리워진 대나무 그림자가 어우러져 매우 일상적인 여름 광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이런 풍경에 뒤숭숭해진 머릿속과 달리 그의 마음속은 차가워졌다.
“부군, 모레가 휴무일인데 어느 분을 초청해서 집들이를 할까요?”
간미의 목소리가 마치 먼 곳에서 전해 오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고청운은 멍해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무도 초대할 생각이 없소. 방 형네와 장 형네 부부만 부릅시다.”
그는 미래의 그의 동료들은 아직 집에 부르지 않기로 하였다. 그들이 앞으로 자신과 가치관이 부합하는지를 더 지켜봐야 했다. 진사에 합격하기 전에 사귄 벗들에 대해서는 아직 그렇게까지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기도 했고, 또 대다수는 경성에 머무르고 있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자신이 소년 시절에 사귄 벗들이 가장 오래됐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고청운은 간미와 집안 이야기를 더 나누었는데, 여인은 집 꾸미는 것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는 듯이 간미도 문발 색깔까지 하나하나 따져 자신의 의견을 물었다.
고청운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인내심을 갖고 대답했다.
그러자 간미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더 흥분하고 말았다.
방택 쪽에서 저녁을 먹자며 청해 와서 대화가 끊어질 때까지, 두 사람은 아주 사소한 이야기까지 늘어놓았다.
고청운은 문득 자신이 보통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렇게 고상한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그의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는 관직 생활을 해 나가면서 자신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동을 할 거라 마음먹었다. 그는 탐관오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에게는 목숨을 보전하고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것이다.
심지어 그는 탐관오리가 될 만한 재목이 아니었고 아직 그 조건도 갖추지 못하지 않았는가. 그는 지금 녹봉조차 받지 못하는 처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