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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210)화 (210/504)

210화. 이사 (1)

항로에 대한 걱정을 하던 그들이 항주에서 하선하여 곧바로 다른 항로를 이용하는 것으로 노선을 변경했기 때문에, 귀경은 당초 예상보다 7~8일이나 더 걸리게 되었다.

드디어 성문 어귀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가족들이 사람을 보내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방 집사의 막냇손자 방충(方忠), 바로 혜향의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집까지 가는 동안 말이 없었다. 고청운 등의 일행은 이미 피로가 극에 달하여 지칠 대로 지쳐 있었는데, 그래도 다행인 것은 소석도, 하 씨도 무탈했다는 것이었다. 다만 고청운과 방자명은 정신적으로 너무 긴장하고 있던 데다가 원래 예정보다 여정이 길어진 바람에 너무나도 피곤하였다. 

방자명 일행을 집에 내려주고, 마차가 곧 방택 앞에 도달하려고 할 때 즈음 고청운이 소석을 불러 깨웠다.

“소석아, 어서 일어나자. 집에 도착했다. 어머니께서 집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그 말을 들은 소석은 눈꺼풀을 몇 번 끔뻑거리더니, 멍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고청운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해 주자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소석 기뻐서 다급히 물었다. 

“아빠, 엄마는요? 어디 계세요?”

어미를 다급히 찾는 모습에 고청운은 가슴이 찡했다.

꼬맹이가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정말 수고가 많았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북에서 남으로, 또 남에서 북으로 동행하느라 오가는 시간을 모두 합치면 배 위에서 보낸 시간만 이미 석 달이나 되었다. 

다행히 아이는 몸이 튼튼한 데다 자신이 정성껏 보살펴 주어 중도에 단 한 차례 이틀간 여정을 지체 한 것 외에는 두려움에 떨지 않고 여정을 잘 마쳐주었다. 

마차에서 막 내리자마자 연 씨와 간미가 이미 대문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서로 마주하자 매우 흥분한 모습들이었는데, 특히 소석의 검고 퉁퉁하게 변모한 모습에 다들 보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모습들이었다. 

그녀들이 줄곧 자신의 뒤통수를 따갑도록 응시하고 있어 머리털 다 곤두설 지경이었으나, 결국 고청운은 이를 무시하고 뻔뻔하게 마차에서 내렸다.

소석은 어머니의 배가 불룩해진 것을 보았으나, 이런 모습은 이미 외숙모에게서도 보았던지라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자연히 동생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감히 다가가지는 못하고 어머니의 배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경외감에 차 있었다.

간미는 허리를 구부려 그의 작은 손을 잡으려 하였는데, 배가 너무 불러 있어서 생각한 대로 행동이 따라주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였다. 그때 연 씨가 나서서 쪼그려 앉아 소석에게 말을 걸었다.

소석은 두 사람이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것을 보더니, 웬일인지 입을 삐죽거리다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어서 오려무나, 내 증손자야.” 

이번에는 연 씨가 흥분해서 손주의 무게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품에 안아 들며, “내 새끼, 내 새끼야.” 하면서 울부짖었고, 집안 하인들 모두 그 소리를 듣고 후원 안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소석아, 왜 우는 거니. 집으로 돌아왔으니 기뻐해야지.”

간미는 매우 다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이미 회임 7개월 차가 되어, 천천히 걸어서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고청운은 간미의 부풀어 오른 배를 보고 마음이 앞서 다급히 부축해 주며 말했다.

“수고 많았소, 미아! 지금 몸은 좀 어떠하오? 아직도 입덧이 있소? 밤에 자는 것은 좀 어떻소?”

간미는 거의 4개월 동안 보지 못한 남편의 얼굴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장신인 그는 꼿꼿한 체구에 푸른 옷을 입고 있었으며, 여전히 준수한 얼굴에는 피곤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고, 턱수염도 난잡하게 나 있었는데 그런 모습이 되레 조금 성숙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별안간 그녀의 얼굴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가 원하는 대로 자신을 부축하게 그대로 두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저는 그런대로 괜찮아요. 배 속의 아이가 아직 귀찮게 굴지 않거든요. 다만 고향으로 돌아가 시아버님, 시어머님을 뵙고 올 수 없었던 것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고청운도 빙그레 웃으며 낮게 말했다. 

“괜찮소, 우리 부모님은 이런 일로 아무 말도 안 하실 거요. 게다가 당신은 지금 스스로가 얼마나 집안의 큰 공신인지 모르는 것 같소! 아이를 회임한 몸이 아니오.”

“부군, 아직 우리 소석이가 왜 저리 울고 있는지 말씀 안 하셨어요.”

간미는 고청운의 말솜씨에 넘어가지 않고 원래의 주제로 돌아왔다. 

고청운은 코를 문지르며, 이해하지 못한 듯 말했다.

“아마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겠소? 아 그렇지 참, 스승님은? 이제 곧 퇴근하실 때가 된 것 같은데.”

“곧 돌아오시겠지요.”

간미가 고청운의 질문에 대꾸해 주면서도 눈앞에 있는 소석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소석은 울음을 멈추더니 그간의 일을 소상히 고자질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저를 때렸어요! 으흑…… 큰 몽둥이 하나를 들고 돌아오셨어요. 삼원 아저씨가 가지고 있어요. 엉엉엉, 외증조할머니, 아버지더러 그거 버리라고 말 좀 해 주세요.”

고청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치욕적일 수가! 등나무 매를 완성한 후 한 번도 아이를 때린 적이 없는데!’

“그리고 아빠가 나한테 욕까지 하셨어요. 제가 시커멓고 뚱뚱해져서 경성의 가족들이 저를 싫어하게 될 거라고 밖에 나가 해를 못 보게 하셨어요…….”

‘아들아, 그건 단지 너를 위해 그리 하였던 것이다. 단지 효과가 없었을 뿐이지. 그렇게 하고도 아주 조금밖에 희어지지 않았잖니……. 경성을 떠나기 전의 희고 보드라웠던 시절은 생각하면…… 넌 시커멓게 된 것이 맞단다…….’

“아빠는 또 남의 머리라고 이렇게 다 밀어버리셨어요. 이것 보세요. 머리카락이 다 없어졌어요! 너무 못생겨지게 만들어 놓으신 것 아니에요?”

‘그건 다 네가 더위를 먹지 않게 하려던 것이 아니냐? 분명히 머리 깎기 전에 의견을 물었을 때는 좋다고 하더니! 절대 반대라고는 하나도 안 했던 녀석이!’

“또 아빠는 생선을 먹으라고 하시는데, 아주아주 먹기 힘든 물고기였어요. 소석이는 생선을 삼킬 수조차 없었는데도 아빠가 계속 먹으라고 강요해서 정말 토하고 싶었어요…….”

‘아니, 그래놓고 나중에는 아주 잘 받아먹지 않았더냐? 아주 즐거워 보이던데. 먹으라는 한마디 말에 바로 받아먹기 시작해 놓고는 나는 네가 이미 생선을 아주 잘 먹게 된 줄 알고 있었다만?’

연 씨와 간미는 중간에 껴들 수가 없었다. 소석이 와르르 쌓아 두었던 이야기를 쏟아 내었던 것이다. 

말주변이 아주 좋은 소석은 집으로 가는 길 내내 그간 자기가 겪었던 억울함을 모조리 털어놓는 등 입을 멈추지 않았다.

소석은 앞에서 신명나게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가느라 그런 그를 뒤따라가는 아버지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한 것을 알지 못했다.

간미는 고개를 들어 고청운의 검게 변한 얼굴을 바라보았고, 회임으로 둥글둥글해진 얼굴 위에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소석이가 경성을 떠나기 전보다 말이 많이 늘었네요.”

소석의 말투는 고향의 사투리와 경성의 표준어가 섞여 있는 말투였는데, 조금도 어색하지 않고 아주 거침없었다.

“고향집에서 동네 아이들과 자주 어울리면서 말도 많이 했소. 동네 어르신들한테 잡혀서 이야기도 많이 하면서 그렇게 천천히 단어의 양이 늘기 시작하더군. 난 어린 나이인 이 녀석의 인내심이 이리 대단한지 몰랐소. 

오는 동안 소석이 아주 ‘아빠, 아빠’ 하면서 내 환심을 사려고 그렇게 알랑댔는데 경성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다니. 이 녀석의 기억력이 이렇게까지 좋은지 몰랐는데 아주 곤혹스럽구려.”

고청운은 사실 소석의 이런 행동거지를 보고는 만족스러운 마음이 더 컸는데, 어쨌든 아들은 기억력이 좋은 편이고, 또 인내심도 대단했던 것이다. 이렇게 떠들어 일러바치고 싶던 사건들을 여기 도착할 때까지 이렇게나 오래 참을 수 있었다니 대단했다. 

그의 말에 간미의 얼굴에서 웃음이 더욱 커졌다.

* * *

고청운이 수염을 깎고 소석과 목욕을 하고 나자, 방인소도 드디어 퇴근을 하고 귀가했다. 모든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니 아까보다도 더 흥분이 고조되었다.

소석과 방인소는 다정하게 붙어 있었는데, 비록 소석이 아직도 방인소의 곁에 붙어서 고자질을 해대고는 있었지만, 고청운은 속으로 내심 기분이 좋았다. 소석이 돌아와서도 가족들과 어색해하지 않고 이렇게 잘 지내다니, 이것은 정말 좋은 일이었다.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식탁에는 고청운과 소석 즐겨 먹던 음식들이 가득했다. 배에서 한 달 넘게 대충대충 끼니를 해결하던 두 사람은 지금 갈비찜, 동과 갈비탕, 소고기 수육 등을 보고는 매우 기뻐하며 게걸스러워 보일 정도로 식사를 했다. 

“오는 내내 여정을 조금이라도 단축하고자 재촉하느라, 소석이 병이 나 이틀간 잠시 정체한 것 외에는 쉬거나 머무는 일정이 없이 바로 돌아왔어요.”

고청운이 먹던 중에 짬을 내어 한마디 했다.

그들이 무사히 경성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가족들은 이미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들이 오는 동안 길에서 잘 먹지 못하고 제대로 잘 수 없었던 것이 정상이었다.

식사 후, 고청운은 고향집의 근황을 모두에게 이야기 해주었고, 어느덧 시간은 늦은 밤이 되었다. 

모두들 제각기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이날 저녁, 소석은 방인소, 연 씨와 함께 잤다. 원래 소석은 이런 구도를 원하지 않았지만, 고청운이 얼굴을 찌푸린 것을 보자 자기가 오후에 아버지에게 안 좋은 말을 했던 것이 생각났던 듯 바삐 이를 승낙했다.

모두들 마음속으로 웃어댔는데, 과연 집에 아이 하나 있는 것만으로도 온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던 것이다. 

오늘 저녁은 평소보다 밥맛도 더 좋았다.

간미를 부축해서 방으로 돌아올 때, 하늘에 떠 있는 밝은 달을 본 고청운은 이번 여정에서 돌아오는 데 며칠이 더 늦어지는 바람에 올해 중추절도 배 위에서 보냈다며 미안해했다.

“괜찮아요. 내년 중추절을 함께 보내면 되니까요.”

간미가 그의 손을 잡았다.

고청운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그녀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 * *

고청운은 다음 날 방자명과 한림원에 귀가 보고를 하러 갔는데, 오 대인은 모레가 휴일인 것을 보고 9월 초에 다시 출근하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고청운은 매우 기뻐했다. 주어진 3일간의 휴가 기간 동안 마침 이사를 하면 되었던 것이다. 

“이사하게 된 것을 축하해!”

한림원을 나올 때 방자명이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내가 도와줄까?”

고청운은 그를 힐끗 흩어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럴 필요까지 없어요. 내일 점심때 이사가 다 끝나고 나면, 식사하러 오세요.”

방자명은 “그래.”하고 대답했다. 

고청운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방자명에게 물었다. 

“아까 제가 좀 자세히 보니, 장원, 방안, 탐화를 포함한 우리 13명의 서길사 중에서 절반 정도만 업무를 시작한 것 같던데요. 다른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늦게 오는 겁니까?”

방자명은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물론 네가 모르지는 않을 테지. 아직 도착하지 못한 이들이야 내륙에 사는 사람들이잖아, 배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은 적은 편이지. 배를 탈 수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마차로 이동을 하는데, 거리가 우리 고향보다 가깝다고 한들 마차로 이동을 할 테니 이동 시간이 더 많이 걸릴 거야. 특히 연 형의 경우, 고향이 사천이라고 하던데 잘 봐. 우리보다 한 달은 더 늦을 걸?”

고청운이 생각해도 그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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