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209)화 (209/504)

209화. 걱정

고청운의 옷 말고 소석의 옷들도 있었다. 이것들도 모두 그의 어머니와 큰누이, 둘째 누이가 짬을 내어 바느질해서 지어 준 것이었다. 

심지어 이번에 상경할 때는 고대하조차 자신이 모아왔던 은자를 다 고청운에게 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고청운은 이 돈을 받을 수 없었다. 

그는 축하 연회로 인해 들어온 축의금에서 은자 500냥만 챙기고, 나머지 돈은 모두 그의 아버지에게 논을 사는 데 쓰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지금 집에서 관리하는 논밭은 30묘가 더 늘어났다.

그의 명의로 된 1,000묘의 토지는 아직 면세 한도 내였는데, 지금까지 가족들의 모든 논밭을 그의 명의로 해 두었음에도 아직도 면세 한도가 다 차지 않았다.

보아하니 가업을 위해 땅과 돈을 더 모으는 여정은 아직도 한참이나 남은 것 같았다. 역시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도 오래 울어서인지 소석의 눈이 부어 있었다. 고청운은 소만을 시켜 선실 부엌에서 뜨거운 물 한 대야를 가져오게 하였다. 뒤이어 그는 소석의 얼굴과 몸을 닦아 주기 시작했는데, 날씨가 더운 것도 있었지만 너무 우는 통에 소석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아빠, 가슴이 답답해요.”

소석은 고청운의 손을 끌어다 자신의 오동통한 가슴에 얹어놓더니, 큰 눈을 가늘게 뜨고 딸꾹질까지 하며 말했다.

“좀 불편해요.”

고청운은 원래 슬픔에 잠겨있다 말고, 꼬맹이의 천진난만한 말에 웃어버렸다. 

며칠 전, 노진씨는 날씨가 더워지자 밥 생각이 없다고 하였다. 고청운 외의 식구들은 급히 의원을 청해 집으로 모시려고 했는데, 노진씨는 한사코 의원을 보지 않겠다며 죽어도 싫다고 완강히 버티는 것이 아닌가.

가족들은 할 수 없이 그녀를 어르고 달래어 겨우 밥 몇 술이라도 더 드시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고 나자, 고청운은 그제야 자신과의 이별을 또다시 앞둔 할머니가 마음이 힘들어서 그렇게 된 것임을 알고 괴로웠더랬다.

하지만, 소석 녀석까지 그때 이것을 배워서 써먹게 될 줄이야.

“응, 이 아버지도 알아. 자 착하지, 가슴이 답답한 것은 오래 가지 않을 거야."

고청운은 소석의 볼에 뽀뽀를 해 주었다. 

뒤이어 그는 열려 있던 창문으로 밖을 보았는데, 지금 배가 강 위에 떠 있어 육지보다 서늘할 뿐만 아니라 배가 바람을 가르며 운행 중에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더 기다리면 곧 시원해질 것 같았다.

* * *

그날 밤, 고청운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그의 잠의 질은 언제나 매우 훌륭한 편이었는데, 일신상에 병으로 인한 문제가 있지 않은 한,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날은 거의 없었다. 물론 일전에 있었던 고사장에서의 일은 제외였다. 그것은 그냥 악몽일 뿐이었다. 그는 지금까지도 가끔 첫 향시를 치를 때 배정받았던 악명 높은 호실을 생각하면 그때의 그 악취가 코끝에 선한 듯 느껴졌다.

방자명의 말을 듣자니, 그의 장인어른인 하상도 같은 말을 했다고 하였다. 이 경험에 대해서는 그도 입을 다물고 더 말하지 않았다.

고청운은 도통 잠이 들 수가 없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의 건강 상태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이번이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그분들의 건강 상태를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밖에 나가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니 마음이 정말 괴로웠다.

하여 그는 몰래 할아버지, 할머니가 정말 100세까지 장수할 수 있기를 남몰래 빌 수밖에 없었다.

세월은 결국 지나가게 마련이었다. 고청운과 소석은 아무리 슬펐다고는 하나, 그 다음 날 강물 위에서 동쪽에서부터 떠오르는 태양에 온 세상이 밝아지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소석은 한밤 자고 일어나더니 울고불고 난리 치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강물을 보러 나가고 싶다고 떠들어 댔다.

고청운은 동의하지 않았고, 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아니면 <삼자경>을 외우게 가르치며 선실 내에 조금 더 머무르게 하였다. 그는 경성에 도착할 때 즈음이면, 소석 틀림없이 <삼자경>을 다 외울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더불어 고청운은 줄줄 외우던 당시와 송사도 소석 암송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하였다.

고청운은 그저 소석 자신처럼 시구를 짓고 읊는데 실력이 모자라지 않기를 바랐다. 지금이라도 대량으로 시를 조기 습득하게 하여, 오랫동안 노력을 기울인다면 아이의 시 짓기 실력이 중상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공부하는 데 힘이 들 수도 있었다.

방인소도 늘 자신의 시 짓기 실력이 간미와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었다. 그는 자신이 재능은 없는데, 단지 실력을 갈고닦아 만든 장인정신으로 시를 짓는다고 하였다.

* * *

하루하고도 반나절 뒤, 그들이 탄 배는 부성에 도달했다. 이틀을 더 기다려야 경성으로 가는 해선으로 갈아타고 바닷길로 나갈 수 있을 것이었다.

갈아탄 해선이 부두를 떠날 때, 고청운은 멀어져가는 부성을 바라보며 자신이 진짜 또다시 고향과 멀리 떨어지고 있음이 실감났다. 그는 속절없이 또 한동안은 마음이 괴로웠다. 그는 배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서신을 한 통 작성하여 고향 집으로 부쳤는데, 그게 그나마 위안이 됐다.

이날 고청운은 소석을 끌어안고 갑판 위에서 바람을 쐬고 있다가 하 씨를 부축해서 산책을 나온 방자명과 마주했다.

양측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고청운은 하 씨의 배를 힐끗 쳐다보고 말했다.

“배에 정말로 아기가 둘이나 있다고 하던가요?”

고청운은 방자명의 집안에 쌍둥이를 낳을 확률이 높은 유전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 하 씨의 배가 이제 막 회임 6개월 차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8개월 되었을 때의 간미의 배만큼이나 우뚝 솟아 있는 것을 보자 정말 놀라웠다!

“집에서 이미 의원을 불러서 확인했어.”

방자명은 기쁨에 겨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 시대의 여성의 출산이란 목숨을 걸어야 했는데, 만약 쌍둥이를 출산해야 한다고 하면 더 큰 난관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의 어머니만 해도 누이와 고청운을 출산하다가 몸이 상했는데, 그 일이 아니었더라면 고청운 뒤로도 몇몇 동생들이 더 있었을 것이었다.

하 씨의 눈은 줄곧 작은 소석이를 향해 있었는데, 시커멓고 뚱뚱해진 소석의 모습을 보자, 일전의 뽀얗고 말랑거리던 옛날 모습이 떠올라 웃음을 참지 못했다.

“경성으로 돌아가면 다들 소석이의 변한 모습을 보게 될 텐데, 간미가 특히 많이 놀라겠어요.”

소석에게 시선을 향한 방자명 역시 참지 못하고 웃었다. 준수한 얼굴에 멋진 웃음이 터져 나오자, 갑판 위에 산발적으로 분포해 있던 여인들의 눈도 함께 반짝였다.

고청운은 매우 우울해져서 코를 문지르며 자신의 다리 곁에 꼭 붙어 있는 아직 1m도 되지 않는 키의 꼬맹이를 바라보았다.

작은 소석이는 고청운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그는 빛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 씨의 배를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외숙모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일러 주었기 때문에 조심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특히 고청운은 소석한테 그녀의 배에 부딪히지 않도록 하라고 주의를 주었는데, 만약 그렇지 않으면 벌로 기름기 없는 음식만 먹게 될 거라고 하였다. 

“됐어요. 남의 불행을 보고 즐거워만 말고, 어서 소석이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하얗게 되돌리는 방법들 좀 생각해 보세요.”

고청운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요즘 들어 그는 소석에게 낮에는 햇볕을 쬐지 못하게 하고 있었는데, 새벽녘이나 저녁때만 갑판으로 나와 바람을 쐬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 당장은 예전처럼 하얗게 되돌릴 방법이 희박하게 느껴졌다.

‘바다 위를 항해하고 있어서인가?’ 

고청운은 그 원인을 여기에 돌려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 씨가 입을 가리고 한번 웃더니 낭랑하게 말했다.

“겨울은 되어야 다시 돌아올 것 같네요.”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어쩔 수 없나 보군요.”

방자명은 말이 없었다. 고청운이 왜 이렇게까지 소석의 피부를 희게 되돌리는데 집착하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가 보기에는 소석이 건강한지가 가장 중요했다.

방자명은 지금 소석 입고 있는 옷을 훑어보더니, 아이가 위아래로 옅은 색 계열을 입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다시 자세히 생각해 보던 방자명은 최근 들어 소석이 붉은색 옷을 전혀 입고 다니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옛날에는 고청운이 소석에게 빨간 옷을 입히길 즐겨 했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다시 지금 소석의 피부색이 생각나자, 방자명조차 어이없게도 은근히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하 씨는 여기에 얼마 더 머무르지 않고 곧 여종의 부축을 받으며 선실로 돌아갔다.

고청운과 방자명도 여러 장소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지나가던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며, 인적이 드문 장소로 옮겼다. 그곳에서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암암리에 남은 여정이 평온하고 순조롭기를 기원했다.

* * *

태풍이 출현하는 시기는 대부분 여름과 가을에 걸쳐져 집중되어 있었다. 지금이 이미 8월 초이니 마침 태풍이 제일 자주 발생할 수 있는 시기였다. 다행히 이 배의 선장은 경험이 풍부해 매번 태풍을 마주하기 전에 미리 기슭으로 돌아가 태풍이 지나길 기다렸다가 다시 항해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배를 운항한다면 안전하기는 하겠지만, 운항 시간은 그만큼 더 늘어났다. 

물론 시일이 더 걸린다고 하더라도 고청운 외의 사람들은 모두 선장을 원망치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태풍은 피해야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특히 방자명이 그러할 것인데, 그는 하 씨 배 속의 아이들까지 걱정을 해야 해서 이럴 거라면 차라리 운하를 통해 강을 따라 내륙으로 가야 하지는 않을까, 당연히 속도야 느리겠지만 바다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제 생각에는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만약에 우리가 제시간에 한림원에 도착 보고를 올리지 못한다고 해도 오(吴) 대인께서도 아무 말 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가 우리를 서길사를 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게다가 고향을 왕복하느라 길에서 소모한 시간은 어차피 휴가 기간으로 치지도 않잖아요.”

고청운도 그가 내륙의 길을 이용하는 방법을 지지했다.

오 대인은 한림원의 최고 지도자인, 정5품의 장원학사(掌院学士)직을 맡고 있었다. 

“내가 아까 선장에게 가서 물어보고 왔는데, 태풍은 북쪽으로 갈수록 그 위력이 약해진다고 해. 그렇다고 해도 나는 아직 걱정이 되는 게 있어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어.”

방자명의 얼굴에 걱정의 기색이 역력했다. 

두 사람은 얼마 전에 있었던 태풍을 기억하며 잠시 의논을 거쳐 항주 부근의 부두에 내려서 바로 경항 대운하(*京杭大运河: 세계에서 가장 긴 고대 운하)로 가서 마저 상경하기로 결정하였다.

고청운은 나들이 한번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였다.

“그러고 나서, 조문헌은 진짜 널 더 안 찾아왔어?”

남은 경로를 결정하고 나자 방자명은 긴장이 조금 풀린 듯 갑자기 화젯거리를 바꾸었다. 

고청운은 일순 멍하니 있다가, 그를 힐끗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습니다. 우리 집에서 잔치를 열었던 날, 사형이 직접 오지 않고 다른 사람을 보내 합격 축하 선물을 보냈더군요. 하지만 전 사람을 보내 다시 선물을 되돌려 보냈어요.”

고청운은 결코 그를 보고 싶지 않았고, 그가 보내온 물건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잘했군.”

방자명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번에 고향으로 돌아가 조상님께 제사를 지낼 때 보니, 장씨네 사람들도 왔더구나. 이전에 그의 드세던 거만함과 시건방짐이 옛날과는 좀 달라졌어, 지금은 태도가 완전히 변했더라고. 특히 매형의 어머니가 유독 그랬지. 우리 어머니께 어찌나 살갑게 웃으시던지. 우리 어머니께서는 맘은 불편하셨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그냥 화기애애하게 계셨어. 아마 누이에게 힘든 일이 생길까 걱정되셔 그러셨던 것 같아. 아이……. 난 우리 집에 이번에 태어날 아이가 사내아이였으면 좋겠어.”

곧 아버지가 될 예정인 데다 그의 누이가 처한 처지를 생각하자, 방자명은 이런 생각까지 들었던 모양이었다. 

고청운은 그가 어느 성별의 아이를 낳는지에 대한 화제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대답을 이어갔다. 

“사내아이인 게 조금 더 낫지요. 하지만 여자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다 자신의 아이입니다. 나중에 여식들이 시집갈 때 시댁에서 불편을 겪지 않도록 우리가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그의 진심이었다.

두 사람은 발치에 있던 소석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세를 바꾸어 가며 고청운의 곁을 맴맴 돌 때까지 잠시 이야기를 더 나누다가 비로소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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