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상경 (3)
말이 나온 김에 자신의 두 사촌동생인 고청평과 고청운에 대해 말해보자면, 둘의 자질은 보통이었다. 승패 여부는 그들이 얼마나 노력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텐데, 운이 좀 좋으면 20대에 수재에 합격할 수는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거인이 될 확률은 매우 희박하였다.
고청운은 현시를 준비하면서부터 전시를 치르기까지 수많은 학자들을 보아왔었다. 많은 사람과 교류해 오면서 진짜 천재란 어떤 사람들인지, 보통 사람들은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는데, 천재는 아주 쉽게 과거에서 두각을 나타내었고, 일반적인 사람들은 아주 많은 시간을 들여서야 겨우 시험에 합격하였다.
물론 그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사촌들에게 미리 알리지는 않기로 하였다. 필경 이런 관점은 그저 자신의 생각일 뿐이므로, 세상일에는 예외가 워낙 많은지라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이 개안을 하여 뛰어난 학식을 가질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역사상 이런 예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공부를 막 시작한 처음에는 우둔했는데, 갑자기 머리가 좋아져 과거 시험에서 급부상한 후 순탄하게 길이 펼쳐지는 사람도 있었으니 말이다.
또한, 고청운은 고청평과 고청안의 문제에 대하여 숙부와 숙모에게 상세히 이야기를 하였다. 그들 내외더러 아이들을 너무 몰아붙이지 말고, 늘 집에서만 공부하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된다고 말하며, 밖에 나가 활동도 하고, 체력 관리도 중요하다고 알려 주었다.
고청운이 시험장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자, 고이하는 비로소 과거 시험이 단지 책에 있는 지식뿐만 아니라 수험생의 건강 여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는 것을 진정으로 깨달았다.
그는 고이하가 변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몰랐지만, 그로서는 이미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뒤이어 그는 두 사촌동생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운동을 하고 있던 고청운은 힘들어져서 더는 못할 것 같자 운동하는 걸 그만두고, 소석을 자신의 어깨 쪽으로 내려오게 하였다.
소석은 구르듯 내려갔고, 고청운은 황급히 아이의 팔뚝과 종아리를 자세히 주물러 보았다.
‘내 착각이 아니었구나. 소석이는 정말 살이 많이 올라 있었어. 몸이 아주 튼실해졌구나!’
고향집에서 어른들은 소석의 교육에 간섭할 수 없었기에, 매번 소석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아이의 몸이 축날까 봐 맛있는 것을 잔뜩 만들어 와서 소석에게 먹였다. 여기에 각양각색의 여름 과일까지 곁들이자, 그 결과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소석은 정말 살이 잘 올라 있었다!
아기들의 통통한 모습이 귀엽다고는 하지만, 소석의 시커멓게 그을린 피부를 바라보는 고청운의 마음은 아렸다. 다행히 소석은 피부가 벗겨지지는 않았는데, 간미가 특별히 전해 준 약 같은 것을 잊지 않고 수시로 발라준 덕분이었다.
고청운은 순간 우울해졌다.
‘모레면 벌써 상경이니, 이젠 무엇을 해도 늦었구나.’
그는 그저 배 위에서 지내는 한 달간 그나마 소석에게 햇볕을 덜 쬐게 하여 피부색이 조금이라도 더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간미와 연 씨가 틀림없이 그를 붙들고 한참을 괴롭힐 것이었다.
고청운은 간미를 떠올리면서 멍해지기 시작하였다.
“아빠, 무슨 생각해요?”
소석 그의 귀를 꼬집었다.
“네 엄마가 보고 싶구나. 우리는 곧 상경할 텐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가고 싶지 않으냐?”
고청운이 아이에게 뽀뽀를 했다.
“그러고 싶어요!”
소석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큰 눈을 반짝이며 큰소리로 말했다.
이전에 고청운은 소석의 이런 동작이 매우 사랑스럽다고 여겼으나, 지금의 소석 시커멓고 또 뚱뚱해진 모습으로 같은 동작을 해 보이자 예전만큼 귀여워 보이지 않았다.
흠흠, 그래도 다행히 부자지간의 정이 남아 있어서인지 그래도 마음 한편으론 여전히 이전과 마찬가지로 귀엽게 느껴졌다.
소석을 재운 고청운은 아이가 잠든 모습을 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그림 솜씨는 그다지 훌륭하지 못했기에, 매번 많은 종이를 낭비하고 나서야 그나마 만족할 만한 초상화를 얻을 수 있었다.
소석의 초상화 말고도 고청운은 고계산과 노진씨, 그의 부모님도 함께 그림에 담았다. 이 그림은 그가 경성으로 가지고 돌아갈 것이었다.
반면, 소석을 그린 초상화는 집에 남겨두어 그의 가족들이 볼 수 있게 하기로 하였다.
* * *
이틀 뒤, 임계촌의 벼가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아쉽다고 해도 이별의 날은 반드시 돌아오는 법이라, 드디어 고씨 집안에도 이별의 날이 밝았다.
이때 누이들은 아이까지 데리고 돌아와 배웅을 준비해 주었다.
사당에서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며 고청운에 대한 앞길이 순탄하기를 기원한 후, 고씨 식솔들은 함께 도화진까지 고청운을 배웅해 주며 이별의 말을 한가득 쏟아내고 있었다.
고백산은 눈시울이 촉촉한 채 고청운의 손을 잡고 말했다.
“경성에서 일을 잘해야 한다. 네가 큰 고관대작이 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성실히 일해서 몸과 가족을 잘 돌볼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된 게야.”
그들 고씨 가문에서는 아직 고청운만큼 출세한 사람이 나오지 않았기에, 아직은 그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큰할아버지는 항상 그가 젊고 혈기 왕성해서 관직에서 남에게 걸려 추락하거나 해를 입을까 걱정이 많았는지, 이런 말을 요 며칠 동안 아주 여러 차례 말했다.
“알겠어요, 큰할아버지. 집에서도 건강에 유념하세요. 몸조심하시고 100세까지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80세까지 살면 만족한다.”
고백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빨이 이미 몇 개 빠졌지만, 그 미소가 유난히 자애롭게 느껴졌다.
“나는 집에서 반드시 가솔들을 잘 단속할 것이다. 너를 방해하게 두지 않으마.”
그는 관리된 자의 가족들이 사고를 치게 되면 늘 누군가 이 일을 꼬투리 잡아 관직에서 끌어내리는 빌미로 삼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였다.
“그럼 큰할아버지, 부탁드립니다.”
고청운은 든든한 큰할아버지가 있어서 매우 기뻤다.
도화진을 지나쳤으니 고씨 집안사람들은 이제 곧 헤어져야 했다. 그리하여 그의 가족 몇몇만 고청운을 따라 도강 부두까지 가기로 하였다.
도강 부두에 이르자, 사람들은 작별인사를 나누느라 또 한바탕 크게 떠들어댔고, 고청운과 소석의 손을 여전히 잡고 놓지를 못했다.
소진씨와 노진씨는 서로 부축하면서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숙모 이 씨가 옆에서 달래고는 있었지만, 그 자신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 숙부 모두 눈시울이 붉어져 그저 강물 쪽만 보고 있었다.
소석도 분위기에 휩쓸려 불안한 듯 움츠린 채, 고대하의 품속에서 눈을 부릅뜨고 줄곧 고청운을 쳐다보고 있었다.
고청운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말이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그는 옆에 있는 방자명을 한번 보았는데, 이때 왕 씨 역시 방자명을 붙잡고 놓지 못하고 있었다.
“공부 열심히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
한참 말이 없던 고청운이 드디어 입을 열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고청평과 고청안을 툭툭 치며 말했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조금 흐느끼고 있는 것을 느꼈다.
“형, 잘 지내요.”
고청평이 그의 손을 잡았다.
고청안은 나이가 어린지라 이미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고청운은 자신의 큰누이와 둘째 누이를 다시 쳐다보았다.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는 이들을 옆에 있던 매형이 부축하고 있었다.
“큰누이, 작은누이,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를 잘 부탁해.”
그는 하상춘과 임요조를 한번 바라보더니, 다시 침착히 말을 이었다.
“큰누이와 둘째 누이 좀 잘 부탁드려요.”
두 사람이 말했다.
“청운이, 안심하시게. 우리가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겠네.”
이미 출항 시간을 넘겨버린 시점이었다. 딱히 재촉하지는 않았지만 배 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고청운과 소석은 고삼원이 깔아준 깔개 위에서 절을 하며 작별을 고했다. 고청운은 절을 마치고 일어나서, 그들의 손을 잡고 낮은 소리로 마지막으로 말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이제 배에 올라야 해요. 몸조심하세요.”
그러자 소진씨가 왈칵 울면서 고청운을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울부짖었으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청운의 체면을 더 깎을 수 없었기에 금방 놓아주었다.
“이 할미의 예쁜 손주야. 정말 아쉽구나. 가지 않으면 안 되겠느냐? 남아 있을 수는 없는 게야?”
노진씨는 너무나 슬퍼졌다. 매번 손자를 이렇게 보낼 때마다 다시는 더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것이다.
늘 이번이 손자를 보는 마지막 모습이라고 생각할 때면, 감정이 이성을 앞지르고는 하였다. 그녀는 그저 그의 앞날이고 장래고 다 필요 없이 그저 옆에 두고 있고만 싶었다.
고청운이 등을 토닥이며 부드럽게 위로했다.
“할머니, 안심하세요. 휴가를 얻으면 반드시 뵈러 올게요.”
노진씨는 그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옆에서 소석은 눈물을 참고 있었다. 아버지가 울면 안 된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이 배에 올랐을 때, 그의 품 안에 안겨 있던 소석은 이미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울면서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를 연달아 외쳐 불렀다.
이 한 달 동안, 집안 어른들 모두가 소석을 매우 총애하였다. 소석도 가족들과 오래 지내다 보니 이렇듯 자연히 깊은 정이 든 것이었다.
배가 천천히 멀어져갔고, 고청운은 멀리서 아직도 줄곧 자리를 지키며 서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족들은 강가에서 멀어져 가는 배를 향해 끊임없이 손을 흔들고 있었는데,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도 언뜻 보였다. 그의 할머니는 아직도 큰누이 품에 안겨 울고 있었고, 그의 어머니도 둘째 누이와 꼭 붙어 있었다.
“부모를 모시는 사람은 먼 여행길을 원하지 않는 법이지.”
고청운은 유명한 시구를 중얼거리며 방자명을 보았는데, 그의 두 눈도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부모를 모시는 사람은 먼 여행길을 원하지 않는 법이지.”
방자명은 두 손으로 난간을 붙잡은 채 고청운이 읊던 시구를 따라 되뇌었다.
“사실 네 부모님은 너와 함께 상경하셔도 아무 문제없을 텐데……. 어차피 집안의 가업이야 네 큰 사촌형이 관리할 테니 말이야.”
고청운은 대답하지 않고, 소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착하지, 울지 말고 가자. 선실로 들어가자꾸나.”
고청운에게 얘기를 들어 알고 있었던 방자명은 그 일로 인해 고청운의 마음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의견이 서로 다르니 어쩔 수 없지.’
두 사람은 떠나온 도강 선착장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다가 각자 선실로 돌아갔다.
* * *
소석은 고청운의 품에 안겨 아주 오랫동안 흑흑 대며 울었는데, 고청운이 아무리 타일러도 듣지 않았다.
고청운은 아까 소석 가족과 이별할 때의 분위기에 너무 취해서 자기도 모르게 이러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한 달을 같이 지내오면서 분명히 정이 많이 든 모양이었다.
그는 자기의 눈을 꾹꾹 누르면서 한숨을 쉬었다. 사실 고청운 자신도 가족을 떠나기 아쉬웠지만, 그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 때문에 집에 틀어박혀 있을 수 없었다.
다른 유명한 시에서도 ‘다정자고상이별(多情自古伤离别)’이라고, 예로부터 정이 많은 이별은 서러운 법이라고 하였다. 결국 고청운은 아들을 더 타이르지 않고 그저 말없이 꼭 끌어안아 주었다.
그러고 있다가 잠시 후, 그는 짐을 펼쳐 그 안에 있던 긴 옷을 찾아냈다. 이 옷은 바늘땀이 촘촘한 것이 아주 공들여 잘 지은 옷이었는데, 이 옷들은 모두 소진씨가 집에서 직접 그를 위해 한 땀 한 땀 지어 준 옷들이었다.
집에서 소진씨는 틈만 나면 그에게 옷을 지어 주었는데, 간미가 지금 회임 중이어서 옷을 만들 여력이 없을 것이라며 직접 옷을 짓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고청운은 힘든 일은 하지 말라며 설득하다가, 어머니의 모정을 알기에 결국엔 그냥 하도록 두는 수밖에 없었다. 옷 짓는 일이 힘이 드실지언정 오히려 이렇게 하는 것으로 어머니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면야, 그는 매우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