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207)화 (207/504)

207화. 상경 (2)

고청운이 무심코 내뱉은 ‘경성으로 가자’는 말은 고씨 가문에 일파만파로 번져 파란을 일으켰고, 마침 서재를 지나던 소진씨도 그 말을 듣게 되었다.

저녁에 소석을 목욕시킬 때, 소진씨는 그 말을 해서는 안 되었다며 고청운을 책망했다.

“경성에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네가 평평이랑 안안이까지 그곳에 데려간다면 무슨 좋은 일을 보겠니?”

소진씨는 소리를 낮춰 원망하며 고청운을 노려봤다.

어차피 그녀의 마음속에는 남편을 제외하고 제일 중요한 사람은 아들뿐이었다. 

고대하 역시 거들고 나섰다. 

“낮에는 한림원에 일하러 가야 하고, 저녁에 돌아와서는 시간이 별로 없을 텐데, 그들을 잘 가르치지도 못하게 된다면 외려 그들 앞을 그르치게 될 게야.”

그는 매우 언짢아했다.

고청운은 무슨 상황인지 멍하니 생각해 보다가 오후에 자신이 무심코 내뱉었던 말이 떠올라 웃음을 참지 못했다. 

동생들이 고향과 멀리 떨어진 경성에서 적응할 수 있을지는 말할 것도 없었고, 그 자신도 그들의 공부를 가르칠 시간이 확실히 많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현성의 서당 선생님 정도만 되어도 나은 수준을 가지고 있었기에, 관직에 오르려면 지금부터라도 공부의 기초를 다져야 했다. 만약 큰 문제나 질문이 있다면, 굳이 자신이 아니더라도 큰 사촌형인 고청명이나 혹은 서신을 통해 하겸죽에게 가르침을 청해도 될 것이었다. 

지금 자신을 따라 상경하면 오히려 임산현에서보다 제대로 배우지 못할 수도 있었다.

설명을 들은 소진씨는 그제야 얼굴에 웃음이 되찾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자, 소석아, 할머니가 여기 좀 씻어줄게.”

그 말에 고청운은 아들을 바라봤는데, 소석은 아직 대야에서 나무 오리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못 들은 척하는 것을 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소석아, 이제 우리 자러가자꾸나.”

소석은 그 말을 듣자마자 입을 헤벌리며 웃고는 ‘네, 아버지.’하고 대답했다.

고청운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휴가 기간의 훈육을 통해 소석은 이전보다 말을 잘 듣게 되었다. 만약 한 달 전이었다면, 그 아이는 분명 물속에서 몇 분 더 놀 것이라며, 수면을 두드리면서 불만을 표시했을 것이었다.

* * *

이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되는 듯했고, 이별의 날이 다가올수록 가족들의 분위기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고대하와 소진씨는 소석을 품에서 떠나보내야 하자, 마음속의 섭섭함을 다 표출해낼 길이 없었다.

고연과 고하는 아들딸들을 데리고 와서 하루를 묵었는데, 고청운이 이렇게 경성으로 떠나면 또 한참이 지나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안심하세요, 저는 3년에 한 번 집에 갈 수 있는 휴가를 받을 수 있어요.”

고청운이 그들을 위로했다. 하 왕조의 휴가 제도는 당나라와 비교하면 아주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다. 예를 들면, 부모가 삼천리 밖에 있으면 3년마다 한 번씩 30일의 휴가를, 오백 리 밖에 있으면 5년마다 15일의 휴가를 주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의 고향 집은 경성으로부터 삼천 리가 넘게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오가는 길에서 소모되는 시간을 제외하고 3년마다 한 번씩 30일간 집에 머무를 수 있었다. 

“3년이나 걸린다고!”

소진씨가 눈시울을 붉히며 한숨을 쉬었다.

고청운은 그녀 옆에 앉아 고대하와 눈을 마주쳐 보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할 수 있는 위로는 진작에 다 건넨 후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찍이 아버지에게 함께 상경을 하자고 권유하였으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직 동의하지 않고 있었다. 나이가 많아서 괜히 경성에 갔다가 객사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할아버지, 할머니야 아들 부부만이라도 고청운을 따라 상경하라고 말했지만, 이 또한 고대하가 동의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대하가 일어서서 괜히 한 바퀴를 서성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미 몸이 별로 좋지가 못하시다. 내가 너를 따라갔다가 마지막을 못 지켜드리게 될까 봐 두렵구나. 그리고 부모님은 상관 안 하고 우리만 전자를 따라가 복을 누리라니, 어디 그게 되겠느냐.”

소진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큰 도리에 대해 남편이 매일같이 일장 연설을 해대서 이미 질려버렸던 것이다. 

그녀는 무슨 큰 도리 같은 것은 알고 싶지 않았고, 그저 아들과 손자와 함께 지내고 싶을 뿐이었다. 며느리가 아이를 하나 더 가졌다고 하니 두 명의 어린아이가 집에 있게 되는데, 다들 손이 모자라지 않을지 걱정되었다. 전자의 스승님 내외가 계신다 한들 마음이 놓이지가 않았다.

그랬다, 소진씨는 이 젊은 부부가 하인과 유모를 초청할 거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고청운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건강을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지금 66세, 65세였다.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확실히 젊지 않으신 나이였으나 이 시대에서는 이미 장수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나이였다. 몸은 노화로 늘 병을 달고 있었는데, 그런 점들이 두 분을 몹시 괴롭게 하였다. 그들은 예전에 기근을 겪기까지 해서 젊었을 때 몸에 큰 무리가 갔었기에, 이렇게 노화한 지금은 예전에 얻은 병이 발작을 일으켜 댔다.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는 이웃 현에서 꽤 유명한 의원을 집으로 모셔 진맥을 하였는데, 의원은 이것이 모든 노인들이 겪는 결점일 뿐이라며 몸을 보양하는 약선 처방만 남기고 돌아갔다. 

지금 이 효성 지극한 부친은 만일 그들이 경성에 가 있는 이 시기에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마음이 불안하기만 하였다.

“어차피 우리는 아직 젊으니 나중에 또 함께 할 기회가 있을 것이오.”

고대하가 소진씨의 어깨를 툭툭 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경성에는 전자의 스승님댁도 있질 않소.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고청운은 아버지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어머니, 안심하세요. 3년 후에 정식 승급이 있어요. 그때 반드시 조정에 어머니를 봉고(*封诰: 5품 이상 문무관의 가족에게 토지나 작위를 주는 것)해 달라고, 황제의 칙명을 내려달라고 청할 거예요. 봉고 되시면 녹봉도 나온다고 해요.”

고청운은 이 일이 생각나 급히 말씀드렸다.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더 기쁘게 만들어 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소진씨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가 다시 정색하며 말했다. 

“폐하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게 옳은 게다. 나는 봉고니 녹봉의 유무 따위 상관없다.”

고청운은 하하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대하는 겨우 한숨을 돌렸다.

“맞다. 애들 숙부네 집에서 시부모님을 돌봐 주실 테니 안심하고 상경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 말이 진심이던가요?”

소진씨는 오늘 고이하 부부가 돌아왔을 때가 생각나 말했다. 

고대하는 동생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정상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청운은 그들 둘이 열렬하게 토론하는 것을 보고 방으로 돌아갔다.

* * *

집에 돌아와서도 소석은 목마를 타고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고계산이 자신의 나이를 잊은 채 직접 고대하와 함께 손수 만들어준 것이었다. 육훤이 온 후부터 소석은 말을 좋아하기 시작했고, 특히 육훤이 떠나던 날 그가 떠날 때 말을 타고 떠나는 것을 보더니 너무 좋아했다.

고청운도 이따금 아이를 데리고 말을 타고 한 바퀴씩 마을을 돌곤 하였는데, 아직 어리지만 않았다면 소석은 틀림없이 스스로 말을 타겠다고 했을 것이었다.

소석을 지극히 귀여워하는 고계산과 고대하는 소석 말이 좋다고 하자 곧장 이런 목마를 만들어주어 항상 타고 놀 수 있게 하였다.

고청운이 옆에서 소석을 지켜보고 있던 고삼원에게 물었다.

“삼원아, 네 아버지께서 뭐라고 하시던? 정말 며느리라도 보신다고 했니?”

요 며칠 그는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서도, 마을의 소문을 듣고 있었다. 

고삼원에게 혼담을 넣으려고 찾아온 며느리는 계모의 친정 조카딸이었다.

고삼원이 당연히 거절하자, 두 사람은 크게 싸웠다. 지금 고삼원은 능력이 있고 글자도 잘 알며 계산도 할 줄 아는 데다가 곁에는 고청운까지 있으니, 충분한 저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여 고삼원은 당연히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하려 드는 것을 두고만 보지 않으려 하였는데,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계모 쪽의 사람은 절대 수용할 수가 없었다.

“이미 소식을 들으셨어요?”

고삼원은 머쓱해하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고청운은 그에게 달려온 소석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머니께서 알려 주셨다.”

“어휴, 저는 이 혼사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전 숙부와 함께 상경하고 싶어요.”

고삼원이 단호하게 말했다. 

뒤이어 경성에서 자신이 관리하는 저택이 생각난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에 상경해서 주변 사람들이 방세를 올렸는지 봐야겠어요. 다른 사람들도 방세를 올렸다고 하면 우리도 올려야지요.”

고청운이 빙긋 웃었다. 

그가 이번에 진사 시험에 합격한 뒤로, 임산현에 가지고 있던 집값이 크게 뛰었다. 두 채의 저택 중 하나는 고청운이 예물로 간미에게 준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이 머물던 삼중 정원이 딸린 저택인데, 두 집 모두 임대료가 크게 올라 적어도 갑절은 넘게 받을 수 있었다. 

이곳은 모두 고청운이 살던 곳으로, 특히 작은 정원이 있는 저택이 아주 인기였는데, 많은 수재, 동생들이 앞다투어 세를 얻으려 하고 있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모두 미신을 매우 맹신하는 경향이 있어, 이곳이 풍수가 좋아 충분히 덕을 볼 만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왕순이 그 말을 전해줬을 때 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고청운은 고삼원에게 돌아가 쉬라고 말한 후, 멍석 위에서 팔 굽혀 펴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소석은 눈알을 굴리더니 타고 있던 목마를 내던지고 바로 고청운의 등에 걸터앉았다.

고청운은 그의 갑작스런 습격에 깜짝 놀랐지만, 다행히 힘이 좀 남아서 끝내 아이의 체중을 버텨내며 엎어지지 않았다.

“소석이, 너!”

갑자기 뭔가 이상함을 느낀 고청운이 소리쳤다. 

소석은 그저 깔깔 웃으며 아버지의 등에 자기 몸을 대고 엎드린 채 외쳤다. 

“이랴, 이랴, 말아 달려라!”

‘젠장! 이 녀석이 나를 말이나 소 취급을 하다니?’ 

고청운은 속으로 생각하다 말고 방금 무엇이 이상하게 느껴졌는지를 골똘히 생각해 보다가 마침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아챘다!

‘소석이가 더 무거워졌구나!’

고청운은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운동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소석아, 너무 손을 크게 흔들지 말거라. 그러다 떨어질라.”

그러자 소석은 갑자기 고청운의 가슴을 부여잡고 있던 손을 멈추고는 순순히 엎드려서 <삼자경>을 외워 보이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소석이 이미 삼자경 반 권을 거의 다 외웠다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해졌다. 소석의 기억력은 그보다 훨씬 좋았다. 몇 번만 따라 읽으면 거의 다 기억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애들이 다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소석의 기억력이 정말 좋으니 고청운은 아이를 가르치기가 매우 수월하였다. 소석의 그런 점들은 고청운을 더없이 기쁘게 만들었다.

고청운은 요사이 고씨 집안의 사람들에 대해 한번 궁리해 보았다. 

고청명은 이미 수재 시험에 합격했지만, 거인 시험을 준비하느라 많이 불안할 것이었다. 반면, 고청량은 말할 것도 없이 이미 사업을 시작해서 동생 합격조차 바라지 않았기에 다시는 시험을 치러 가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자기 아들에게 시험을 치러 보내겠다고 하며, 자신은 공부를 할 재목이 아니라고 했었다. 

고청운은 답답했다. 중국 사람들은 꼭 이렇듯 자신이 해내지 못한 일을 후대의 자식들을 시켜서라도 업적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예를 들어 그도 소석을 가르칠 때, 그의 기억력이 자신보다 현저히 뛰어나서 한참 동안 고민했었다. 

‘나는 장원을 거머쥐지 못하였지만, 우리 아들이라고 하지 못하라는 법이 있나? 혹시나 이 아이가 장원급제에 성공한다면?’

이렇듯 모두 같은 생각일 것이었다. 그래서 고청량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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