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술자리
모두가 다 문중의 땅인 족전의 좋은 점이야 알고 있었지만, 이것은 모두 돈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었다.
문중의 사업에 필요한 돈을 다 어디서 구할 수 있단 말인가? 다른 세 집에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으니, 친족 중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제일 큰돈을 내야 할 것이었다. 그들은 생활 걱정이 없었고, 저쪽 세 집안은 아직 먹고 사는 문제가 힘에 부치지 않는가?
고청운은 본래 이런 조상의 제사와 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고, 반드시 거행해야 할 의식이라 의례 참여하는 것뿐이라고 여겨왔었다.
고백산도 족학의 이념을 세우는 일에 그렇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으나, 나중에 일부 권문세가의 대가족이 한데 모여 살면서 매우 강한 단결력을 지니고, 그 힘을 기반으로 문중의 인재들을 배출하여 매 세대 혹은 격세대간 뛰어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최소한 가족들의 재산을 사람들에게 빼앗기지 않고 지켜낼 수 있었다.
이런 작은 임계촌에서 그들 고씨 집안의 문중 모두가 다 하나 같이 나약하고 무능한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면, 다른 두 성씨를 가진 집안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했을 것이었다.
감은 먹을 수 있는 연한 것을 고르는 것이 정상이니, 실현 가능한 방법을 선택하여 발전을 도모해야 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사람 수가 많고 세력이 큰 것을 중시하였지만, 고청운은 자신이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만큼 나이가 들거나 일정한 성과를 낸 후에 족전을 살 예정이었다. 적어도 그때는 부족함이 없이 살고 있을 것이고 지금처럼 궁색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 수중에 100냥도 채 안 되는 은전밖에 가지고 있지 못해 이 돈을 다 지출할 순 없었다. 게다가 경성에서 써야 하는 지출 규모가 커서 자신이 생활비로 쓸 것은 남겨두어야 했다.
본래 고청운은 지출을 강행해서 출혈을 감수하려고 생각했었으나, 그의 큰아버지는 이번에 논 10묘와 황무지 10묘만을 산다고 말하며, 합쳐 봐야 은지 120냥 정도 들고 이 농지를 고청운의 명의로 두면 면세 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 족전이 있으면, 매년 대략 은자 20냥의 수입이 확보될 것이기에, 족학의 운영도 가까스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교사의 수입이나 아이들의 서적 구입 비용은 제외를 해야 했다. 이 외에는 족학을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기타 지출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아이들의 문방사우 구입 비용이야 10살 이전의 아이들에게는 자부담하게 하면 되었고, 서적이야 베껴 써서 마련할 수 있었다. 어차피 초반 3년간은 기초적인 계몽을 거쳐 글공부를 해야 하기에 필요한 서적이 많지도 않았다.
이렇게 되면 두 집에서 절반씩의 비용을 부담하면 되었다.
한편, 고청량은 고청운이 돌아온 후 하 씨의 서점에서 독립해 혼자 장사를 시작하였는데, 돈을 좀 벌었다고 하며 큰할아버지 댁에서 부담할 비용인 60냥의 은자라는 거금을 투척하였다.
물론 이 돈은 그만 부담했을 돈이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가 근 4년 동안 집에서 번 돈 등 모든 유동 자산을 그에게 투자하여 장사 밑천을 마련해 준 것일 테니 말이다.
사실 고청운은 자신에게 곧 돈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진사 합격을 축하하는 술자리가 오늘 시작되었던 것이다. 향시 합격 때 받은 선물비용을 생각해 보면 그가 이번에 받을 수 있게 될 축하 선물의 규모를 대략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대개 진사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조상님들께 제사를 지낼 때 이런 과정을 겪었는데, 일부 사람들은 관직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종잣돈을 다 이런 자리에서 마련하였다.
고백산이 현장에서 이렇게 계획을 밝히자, 친족들 중에서 반대의견을 표하는 자는 나오지 않았다. 몇 집은 살림살이가 좀 나았기에 기꺼이 은자를 기부하려고 하였다. 이것은 문중의 큰일이라 지금 힘을 써 놓으면 이후에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능력만 있다면 모두 기꺼이 아낌없이 돈을 지불하고자 하였다.
다만 아쉽게도 고씨 가문 대다수는 모두 농가로, 돈이 여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몇 집만이 진작부터 글을 깨치고 나가서 학문을 계속하거나 점원이 되거나, 또는 장사를 하는 사람이 있는 집만이 은자를 조금 보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다른 세 집에서 내놓은 돈은 겨우 대여섯 냥에 달했는데, 이로써 가까스로 3묘 정도의 황무지를 살 수 있는 은자가 충당되었다.
세 명의 다른 문중 어르신들은 아직도 무안해하고 있었다.
고백산은 이 같은 결과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뒤이어 모두가 문중의 사람들이 지켜야 할 문중의 규범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는데, 이것들은 이미 지켜지고 있던 일들이라 지금은 다시 한번 되짚어 보는 정도일 뿐이었다.
고청운네 문중에서는 온 가족을 통틀어 아직 규범을 준수하지 않는 사람이 나오지는 않았다. 문중의 법도로 단속해야 할 사람은 적어도 최근 20년 동안 나오지 않았는데, 남의 집 닭과 개를 훔치거나 주색과 도박을 하는 문중의 식솔은 아직 없었다. 있다고 한들 이미 몇 대 맞아가며 버릇을 고쳤거나 이미 돌아가셨거나 가문에서 축출되어 없었다.
예를 들어 고청운의 아버지만 해도 한차례 크게 맞은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다행히 횟수가 많지 않았고 깊이 빠져 있지는 않아서, 아버지가 그 사건을 잘 감춰버렸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알져지지 않았다.
“할아버지, 저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에 대해서 좀 더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청운은 일이 거의 상의 된 것을 보고 의견을 내었다.
“아이들은 삼자경을 배우면서 바로 조정에서 금하고 있는 율법 지식을 배우게 되는데, 저는 주로 우리 생활과 직결된 것을 먼저 배우면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깨우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잘못으로 온 가족이 연루되거나 심지어는 전 가문이 화를 입는 것이 가능한 시대였다.
고백산도 이 화제로 고청운과 사전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가족회의에서 모두가 상의해 볼 수 있도록 고청운이 다시 한번 의견을 낸 것이었다. 말이 모두이지 실은 다섯 집안에 각 대표자 한 사람씩만 자리에 나와 있었다. 다만, 단 한 사람, 고청운만이 가문과 상관없이 예외적으로 추가 참석자로 자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의 사회적 지위로 보아 이런 회의에 출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네 말이 맞다. 당연히 그것 또한 배워야지. 가족들에게 화를 입히지 않으려면 당연히 배워야 할 게야.”
고백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계산을 한번 보고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자네들 의견은 어떠한가?”
“수장님, 무슨 의견이든 따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모두 이익이 돌아가는 일인데 어떻게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고백산은 마을과 문중에서도 신망이 높았고, 고청운이 제의한 것 자체가 모두 가문의 영광이자 자랑거리일 뿐이라, 더 이상 반대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좋다, 그럼 이렇게 결정이 난 것이구나.’
고청운은 큰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있는 한, 자신의 집에서는 앞으로 권세를 믿고 남을 속이고 기만하는 식솔들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았다.
가족들이 그를 잘 뒷받침해 주어야 비로소 고청운도 조정에서 자신의 입지를 더 안정적으로 다질 수가 있을 것이었다.
고청운은 다시 한번 집안에 고백산과 고계산이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들은 사회 경험이 풍부하고 세상 물정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고백산은 공부를 했던 사람으로, 안목과 식견이 결코 낮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이 진사에 급제하였다고 하여 경거망동하지 않을 것이었다. 할아버지 또한 아무리 기쁜 일이 있어도 바깥사람들 앞에서는 티를 잘 내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귀향 후 고삼원을 시켜 현에서 몰래 수소문하여 알게 된 결과였다. 적어도 고청운은 요 며칠 동안 문중의 사람들에게 무슨 나쁜 행적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
이 일을 상의하는 것을 끝으로 모두들 해산했다. 말이 모두이지, 사실 부녀자들과 어린아이들은 일찌감치 고청운의 집으로 가서 잔치준비를 도와주고 있었다. 점심 술자리가 시작되고부터는 술자리가 계속해서 이어져 일손이 필요했던 것이다.
과연, 고청운의 계산은 그럴듯하게 맞아떨어졌다. 연회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찾아 들었던 것이다. 그가 알고 지내던 친지나 벗들뿐만 아니라 아예 모르는 사람도 매우 많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찾아왔는데, 그중 대다수는 상인들이었고, 외지 사람도 있었으며, 동향의 사람들도 있었다. 동향 현지의 사람들이 찾아온 것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몇 년 전 향시를 볼 때 알게 된 사람들이 온 것까지는 어떻게 이해를 할 순 있었지만, 아예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고청운이 물어보니 외지에서 온 이들은 도화진이나 임산현을 지나는 행상들로, 이곳에 어떤 신임 진사가 연회를 차린다고 하여 그저 함께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려는 듯했다.
고청운은 어안이 벙벙했다.
‘몇 년 동안 도강 부두가 생겨나면서 읍내에 예전보다 사람이 많이 유입되기는 했지만, 이런……. 방문객이니까 특히 이런 기쁜 날에 축객을 할 수도 없고. 특히 축하 선물을 보내오는 자들도 있지 않은가.’
* * *
여전히 집안에서는 한 차례의 술자리가 떠들썩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그 다음 날에는 극단을 초청하여 마을에서 극을 공연하였는데, 더욱이 동네방네 소문이 나면서 마을 사람들을 모두 끌어들여 모처럼 다 같이 즐거워하였다.
여러 해 동안 보지 못했던 악단 활동까지 어우러져 집안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또 영리한 행상인은 노점을 마련해 작은 물건과 음식을 만들어 팔았고, 장사가 아주 잘 되었다.
다음 날 술자리에서 고청운은 마침내 하 수재의 일가를 만나 볼 수 있었다.
“스승님, 드디어 돌아오셨습니까!”
고청운은 만면에 웃음을 가득 담아 그들을 안쪽으로 안내하였다.
“부성에 있는 벗을 만나러 가셨잖습니까? 제자는 아직 스승님께서 소식을 받지 못하신 줄 알았습니다.”
“노부가 본래는 모르고 있었는데, 네가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문이 멀리까지 퍼져서 노부의 친한 지인이 대신 소식을 듣고 우리에게 전해 주었단다. 노부가 부랴부랴 돌아왔는데도 너무 늦게 왔지?”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훤칠한 키의 고청운을 보며 흐뭇해했다.
고청운은 자신이 가르친 학생 중에서 가장 출세 가도를 달리고 있는 학생이었다. 옛 친구들이 신임 진사 중 한 명이 자기가 가르쳤던 학생이었다는 것을 알고 매우 놀라며 부러워하는 표정을 보니, 그의 마음은 꿀을 한가득 머금은 듯 달콤해졌다.
고청운은 멀리 경성에 있었지만, 하 수재와는 매년 서신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렇다고 가족이나 친구만큼 빈번하게 왕래하지는 않았다.
고청운은 사람과의 친분은 어떻게 유지하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평소에 연락을 하지 않으면서 몇 년 후에까지 똑같은 감정으로 지낼 수 있기를 바랄 수는 없었다.
먼 친척이 가까운 이웃보다 못하다는 말은 결코 헛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조금도 늦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스승님을 번거롭게 해드렸네요.”
그는 스승님의 곁에 있던 조 씨를 보고 급히 인사했다.
“사모님, 몇 년 못 뵈었지만 자태가 여전히 조금도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둘 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는데, 급히 돌아온 것이 보였다.
조 씨는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녀석도 참, 경성에서 지낸 지 몇 년 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말솜씨가 좋아졌구나.”
주위를 둘러본 그녀가 물었다.
“간미는? 어째 보이지가 않네?”
“그녀는 같이 오지 못하고 경성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 회임 중이어서 장거리 이동이 어려웠습니다.”
고청운은 간미 이야기만 나오면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래야지, 당연히 그래야지. 아이를 가졌으니 조심해야지. 축하하네, 참 소석이는?”
그녀는 고청운이 아들을 본 것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