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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201)화 (201/504)

201화. 또 다른 목표 (2)

그들 옆방의 객실에 고하 부부도 마침 고청운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참이었다.

“평소 내 앞에서는 말만 잘하시더니, 어째 제 동생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신 거예요?”

그가 대답했다. 

“됐소, 그 얘기는 하지 맙시다.”

그녀는 자기 남편의 성정을 잘 알고 있었는데, 참하고 무던해서 입바른 말을 시키기가 아주 어려운 사람이었다. 

“고가(高家)에서 뭐 들은 것은 없어요?”

고하가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고가? 그들이 뭐라고 했소?”

임요조는 무슨 일인지 모르는 듯 장부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는 지금 연회 준비에 필요한 장부의 기록 관리를 돕고 있었다. 

“그럼 제가 들은 것을 말해 줄까요? 용이 남편인 고송(高颂)이 자기 남동생인 고량(高良)에게 제 동생을 스승으로 모시게 하려는 것 같다니까요?”

고하는 요 며칠 동안 고용이 한 말을 생각하며 분노해서 말했다. 

“그 사람들은 지금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거예요. 그는 아직 일개 수재가 아닌가요? 그들 눈에는 그가 뛰어난 재주라도 가진 것처럼 보이나 봐요. 어떻게 제 동생의 제자가 되려는 생각을 할 수가 있죠? 낯짝도 참 두껍지.”

‘흥, 동생이 고량을 현학에 넣어주지 않았더라면, 작년에 고량이 수재에 합격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전자보다 2살 어린 주제에, 내 동생을 스승을 모시겠다고? 부끄럽지도 않은가!’

임요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혹시 잘못 들은 것은 아니오? 그쪽 집이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을 거요. 그렇게까지 장담하지 마시오.”

“그렇기를 바라야죠. 당신은 모르시겠지만, 제 동생의 귀향 소식이 임산현 전체에 퍼졌을 거예요. 한번 봐보세요. 내일모레 잔치를 벌이면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또 자신들의 아이들을 데리고 와 제 동생한테 조언해 달라고 부탁을 해댈 거예요.”

잠든 막내아들을 바라보던 고하는 지금 아이가 겨우 1살 남짓한 것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동생에게 공부를 배울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 * *

한편, 고청운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임산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스승으로 삼기 위해 점찍었는지를 말이다. 

그를 스승으로 모시거나 가르침을 청하려는 사람도 많았고, 또 의외로 ‘어떻게 그렇게 빨리 진사가 됐느냐’는 성공 비결을 들려달라는 사람도 많았다. 

그는 자신이 아직 젊다고 생각해서 제자를 받는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제자를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귀찮은 일이던가. 단순히 제자의 공부뿐 아니라 제자의 심리, 생활상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때로는 딸 하나를 잃어야 하는 일도 있었던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방인소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만약에 고청운이 속에 딴 맘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들 집안은 바로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었다. 

이때, 그는 현성에 가서 연회에 참석할 일이 있었다. 현령의 초청이라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연회에는 방자명도 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간 각자의 볼일로 바쁘기도 하였고, 방씨 가문의 합격 축하 연회가 고청운네보다 3일 늦게 거행될 터라 두 사람의 일정이 딱 엇갈려 오늘 아니면 못 볼지도 몰랐다.

고청운은 연회석에 앉으니, 할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방자명과 함께 자리한 현령보다 은연중에 높은 신분이었던 것이다. 또한, 같이 자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에서 서로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라 평등하게 교제하고 있는 와중에 흥을 깰 수도 없었고, 또 난처한 화제를 말하게 될까 어려웠다. 그래도 분위기만은 매우 화기애애했다.

물론 연회 자리에 그의 장인인 간지원이 있었더라면, 고청운은 당연히 몸을 낮추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렇게 현령과의 연회를 마치고, 고청운은 방자명과 함께 나왔다. 두 사람 모두 연회석에서 술을 마신 터라 우마차는 타고 싶지 않아 그대로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고청운은 고삼원한테 성문 쪽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게 하였다.

“내일 저희 집에서 연회를 마련하니, 기억했다가 꼭 오세요.”

고청운이 당부했다.

“술만 한 잔 걸치고 바로 나갈게. 내 광명에 자네 빛이 바래면 아니 될 테니 말이야.”

방자명이 농담을 하며 웃었다.

고청운은 그를 한 번 자세히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죠. 그러기에 누가 방 형에게 이렇게 생기라고 하던가요?”

고청운이 보통 사람에 속하는 준수함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방자명은 매우 준수한 데다가 머리에 진사의 후광까지 두르고 있으니, 연회에 가면 틀림없이 서로 다른 나이대의 수많은 여성들이 분분히 의견을 논하며 그만을 훔쳐보고 있을 것이 뻔했다. 

아리따움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천성이었다. 

두 사람은 잠시 한담을 나누다 보니 벌써 성문에 도착했다. 어차피 다들 나중에 이야기할 시간이 좀 더 있으니 급할 것 없었다. 

* * *

고청운이 집에 돌아와 보니, 조옥당이 진작에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일찍이 오늘 오후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아 두었었다. 

조옥당을 만나자, 고청운은 매우 기뻐하며 이별 후의 근황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옥당 사형의 아들과 딸은요? 왜 안 데리고 왔습니까?”

고청운은 그가 혼자 오자 궁금해서 물었다.

“외할머니가 뼈가 영 신통치 않으셔서 몸이 좀 편찮으신데,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외가에 가 외할머니 시중을 들어주고 있네.”

“얼마나 아프신 거예요?”

어쩐지 조옥당이 자신이 귀향했음에도 바로 찾아오지 않는다고 이상히 여기고 있던 터였다. 고청운이 다시 물었다. 

“경성에서 좋다는 약재들을 가져왔는데 할머님께 쓸 수 있는 약재가 있는지 한번 가서 보세요.”

“아니 그럴 필요 없네, 오래된 병이라 필요한 약은 다 갖추고 있어.”

조옥당은 내심 감동했다. 그는 그들이 오랜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고청운이 이미 진사의 신분이라 신분 차가 커져서 서로 못 보는 새 간극이 생겼을 줄 알고 좀 불안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고청운의 자신을 향한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러한 생각이 들자, 조옥당의 태도가 한결 더 부드러워졌다.

“청운이, 어쩜 이리 대단할 수가 있는가? 이리도 젊은 나이에 진사에 합격하다니 말이야.”

조옥당은 올해 이립의 나이, 즉 서른이 되었다. 지금 그는 입술 위쪽으로 수염을 기르고 있었고, 몸은 여전히 건장해 보였으며, 표정도 침착했다.

그의 말에 고청운이 빙긋 웃었다. 

“어찌 한 것은 없습니다. 타고난 자질 덕이지요.” 

이내 고청운이 바로 말을 이어 나갔다.

“농입니다, 농이에요. 저는 그저 운이 좋았지요.”

조옥당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했다. 

“아니야, 내가 보기에도 천부적인 자질이 있어야 함이 맞네. 나를 봐. 이미 30살이 되었는데, 작년에야 겨우 원시에 합격해 수재가 되었을 뿐이지 않은가. 석차는 심지어 제일 뒤에 걸려 있었는데, 자칫하면 낙방이었지. 몇 년간 공부하러 현에 가 있지 않았더라면 언제 합격할지도 몰랐을 거야.”

“그럼, 옥당 사형은 계속해서 거인이 되는 시험을 마저 준비할 생각인가요?”

고청운이 또 물었다. 두 사람은 줄곧 연락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그가 수재에 합격한 일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매번 고청운은 경성에서 그의 부모님, 장인, 장모, 하겸죽, 조옥당에게 서신을 부치고 있었는데, 간혹 방자명도 조옥당에게 서신을 부치면 두 사람이 함께 우송료를 부담하기도 하였다.

“나는 지금 현에 남아 공부를 계속하기 어려워. 아버지께서 요 몇 년 동안 몸이 그다지 좋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나도 공부하는데 많은 돈을 썼으니 말이야. 또 아들이 이미 글공부를 시작했으니, 몇 년만 더 지나면 이제 공부에서 손을 떼야 할 게야. 그때가 되면 돈 들어갈 일이 더 많아지지 않겠는가?” 

조옥당은 웃으며 말했다. 

“아들의 성질이 나와 같아서 시문을 공부하는 것보다는 무예 공부를 더 많이 하는 편이긴 하지만, 어쨌든 집안에 수재 하나는 더 늘려볼 셈이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지금 집안의 가업을 관장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조옥당은 공부를 계속하겠지만, 생업이 바빠지면 앞으로 준비할 시험에 합격할 가능성이 그만큼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는 수 없었다. 그의 아버지 몸이 편찮으시니, 집안의 유일한 아들인 그가 집안을 건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청운은 조옥당이 떠나자, 사촌동생 2명을 불러들여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집에 머무는 시간을 틈타 아이들에게 시험장에서 어떻게 냉정함을 유지하고, 평소에 어떻게 공부하는지, 어떤 책을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지 등을 급히 전수하였다. 

꽃 한 송이가 홀로 피어 있다고 봄이 온 것이 아니었다. 정원 가득히 백화가 만발해야 비로소 봄이 온 것이었다. 고청운은 자신의 사촌동생들도 자신과 같이 과거에 합격할 수 있기를 바랐다.

* * *

6월 19일, 고청운의 집안에서는 연회를 열어 고청운의 진사 합격을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른 아침부터 성대한 제사를 거행하였는데, 고씨 문중의 사람들은 외부에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은 모두 급히 돌아와 제사에 참석해야 했다.

사내와 사내아이들은 사당 안에 있었고 여인들은 밖에 서 있었다.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는 분위기는 엄숙했고, 전체 제사를 지내는 과정에서 고백산의 소리가 들리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고백산과 고계산 등 몇 문중의 어른들의 경건한 모습과 다른 친족들이 기뻐하며 문중을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청운은 비로소 자신이 고대에 속해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였다. 그제야 고청운은 진정으로 한 가문에 대한 진사의 영향력을 체감한 것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탁월한 공헌이나 성과를 거두면 다른 친족들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었다. 게다가 족보, 종법, 혈연관계 등도 강화되어 자연히 문중의 규범과 가훈은 족속에서 권위가 생겼고 자제들을 단속하고 한 곳으로 모을 수 있게 되었다.

고백산은 조상님 제사 때 문중의 몇 어르신들과 함께 의논하여, 그가 운영하는 서당을 문중에서 운영하는 족학(族学)으로 바꾸려 하였다. 그리하면 문중 친족의 자제들에게 몇 년 동안 무료로 책을 읽게 하고 글을 배우게 하며 셈을 할 수 있게 가르칠 수 있었다. 자질이 있는 사람은 계속 남아 공부를 하게 하고, 이쪽에 자질이 없는 자제는 그래도 배운 것을 토대로 나가서 일을 찾을 수 있게 하면 되었다.

글을 읽을 줄만 알면, 일은 찾기가 비교적 쉬워져서 꼭 임계촌에 갇혀 농사를 지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 임계촌 사람들이 그들을 따라 공부를 하고 싶으면 학비를 내고 입학도 가능하게 하였다.

이 계획에는 모두 동의했다.

“그럼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문중의 어느 어르신이 공공연하게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럴 돈이 있으면 문중의 땅을 사야지요!”

“맞습니다. 집집마다 조금씩 돈을 지출합시다. 각자 가정 형편에 맞게 내야지요.”

고백산이 천천히 말했다. 어차피 문중이라고 해도 다섯 집밖에 안 되는데, 자신과 동생네를 제외하고는 다른 세 집은 돈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도 크게 지출을 바라지는 않고, 다만 그들에게 한마디 하였을 뿐이었다.

고청운은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이 일은 큰할아버지가 진작부터 그에게 말했던 계획이었다.

과연, 사람들은 모두 문중의 농토를 사는 것에 매우 찬성하는 모양새였다. 

문중의 농토인 족전은 제전(祭田), 학전(学田), 묘전(墓田), 의전(义田) 등으로 나뉘는데, 제전이라 함은 말 그대로 농토의 생산물이 종사의 제사에 주로 쓰였다. 학전은 주로 문중에서 지출하는 학비로 쓰이는 것으로, 모두 친족들의 공동 재산에 속하였다.

보유하고 있는 은자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선 학전으로 사서 농사를 짓고,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데 사용하는 것이 좋고, 다른 족전의 분류는 자금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천천히 사들여 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문중의 족전을 사고 나면, 고씨 가문은 결집력이 있는 가문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었다. 앞으로 다른 사람이 임산현의 고가(顾家)라고 언급할 일이 생기면, 그것은 자신의 집안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로 쓰일 것이며, 전체 현성에서도 큰 영향력을 끼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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