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99)화 (199/504)

199화. 싸움

도산사에 가서 향을 피우고 집에 도착한 고청운은 시집간 세 누이 모두 남편과 아이들을 대동하고 고청운 부자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모두들 이렇게 한자리에서 만나니 당연히 격동되어 마지않았다.

큰누이 고연은 아들 셋을 낳았고, 둘째 누이 고하는 딸 둘과 아들 하나를 슬하에 두고 있었으며, 사촌인 고용은 1남 1녀를 두었는데, 모두들 얼굴 혈색이 좋은 것이 잘 지내고 있는 듯 보였다.

원래 고청운은 매형, 매부들과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지만, 그들이 자신의 앞에서 지나치게 조심스러워하는 것을 보자 그저 아이들에게 시선을 집중하는 수밖에 없었다.

큰누이의 셋째 아들은 올해 막 1살로, 한창 놀아주기 좋을 나이였다. 꼬맹이의 살결이 희고 통통한 데다 매우 잘 웃었기에, 고청운은 매우 반기며 줄곧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고, 중간에 참지 못하고 몇 번이고 뽀뽀까지 하였다.

한창 담소를 나누며 꼬마와 놀아주고 있느라 고청운은 순간 소석과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봐 주지 못하였고, 소석이 가끔씩 고청운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예의 주시하지 못하였다. 그래서인지 이날 밤에는 소석과 다른 아이들과의 충돌이 잦았다. 소석은 아이들을 무시하며 놀아주지 않는 것이 아니고, 아예 아이들의 장난감을 빼앗아댔다. 

정원에는 아이들이 워낙 많이 있어서 모두 평화롭게 공존하진 못했을 테지만, 그래도 너무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아이들이 울음소리를 그치지 않자, 어른들은 모두 애를 먹었다.

고청운은 매우 이상했다. 

‘소석이는 오늘 다른 아이들과는 재미있게 잘 놀았어. 오늘 낮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녀석이 왜 이렇게 거칠어진 거야?’

그는 소석이 아픈 줄 알고 부랴부랴 품에 안고 이마를 만져 보았으나, 열은 없었다. 

“소석이, 너 어떻게 사촌동생들과 사촌형을 때릴 수가 있어?”

고청운은 분명 사촌형이 한참이나 더 큰 형인데, 소석이 감히 쫓아가 밀어 넘어뜨리니 말문이 막혔다.

‘소석이가 이렇게 폭력적인 면모가 있다는 것을 왜 진작 못 알아차렸지? 감히 다른 아이들과 싸우다니?’

소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머리만 아이의 품에 묻고 있다가 숨죽여 말했다.

“아빠, 잠을 자고 싶어요.”

고청운은 아이가 너무 피곤해서 그랬으리라 생각하고는 더 개의치 않고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른들은 어린애들끼리의 싸움에 너무 개입하지 않는 법이었다. 아이들끼리는 다투는 게 흔한 일이라 어디 다치지만 않으면 되었다. 

그날 밤, 고청운은 자신을 꼭 붙잡고 놓지 않는 소석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 * *

이튿날 정오.

“자, 소석아, 오늘은 아버지와 산에 오를 게다.”

고청운은 그를 안고 뒷산으로 갔고, 그들의 뒤로 고삼원이 땔감 패는 칼을 지니고 따라나섰다. 뒷산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우거진 수풀이나 오래된 숲이라고 하기에는 괴리가 있는 그저 자그마한 산비탈이었는데, 이곳은 마을 사람들도 자주 찾아 나무를 했기에 오가는 사람이 많아져서 길도 하나 나 있었다.

산 위의 초목은 무성하게 드리워져 있지는 않았다. 키가 크고 작은 서로 다른 나무들과 관목 수풀들만이 심겨 있을 뿐 있었다. 지면은 한 겹의 잔디로 이뤄져 있었는데, 큰 나무들은 모두 베어 없애버렸다. 그래서 고청운도 소석을 데리고 갈 수 있을 정도였다. 

“좋아요, 좋아요.”

소석은 너무 기뻤다. 요 며칠 아버지가 매일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자신을 상대해 줄 겨를이 없었는데, 지금 갑자기 자기와 함께 있어주겠다고 하자 기뻤던 것이다.

“나랑 아빠, 그리고 삼원 아저씨만 있나요?”

소석이 확인하듯 물었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이번에 산에 오른 것은 산에 자라고 있는 많은 식물들 중 등나무 줄기를 찾기 위함이었다. 등나무 줄기는 일종의 덩굴 속성의 식물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 등나무 줄기를 이용하여 등나무 의자, 등나무 상자를 만드는 등 일상생활 용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 임계촌에는 대부분 대나무 숲이 많이 조성되어 있어 등나무 줄기를 찾고자 이 산을 찾는 사람은 매우 적었다. 

“아빠, 뭐 찾아요?”

소석은 고청운이 좌우를 살피며 나뭇가지들을 꺾는 것을 보다가 심심해져서 나뭇잎의 진액을 짜내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고청운은 그런 소석을 보며 웃곤 대답했다. 

“아비는 등나무 줄기를 찾고 있는 거란다. 등나무 줄기를 본 적이 있니? 엉덩이를 때리는데 쓰는 그런 등나무 줄기 말이다.”

소석은 그 말을 듣자마자 멍하니 눈을 깜박거렸다.

고청운은 손짓을 해서 아이의 오동통한 엉덩이를 때리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나중에 네가 잘못하면 이 아버지는 널 손으로 때리지 않고 등나무 줄기로 매를 때리려고 한단다.”

고청운은 소석이 예전에 장난이 심하여 한두 번 때린 적이 있었는데, 이 꼬맹이는 그때까지 그런 혼이 나 본 적이 없어 숨이 막힐 정도로 울었었다.

소석은 그 말을 듣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엉덩이를 만지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소석이는 얌전해서 아빠가 때리지 않아요.”

“넌 어제저녁과 오늘 얌전히 있지 않았지. 심지어 말도 듣지 않았다. 아버지가 분명히 떡을 사촌동생이 먹게 주라고 했는데, 네가 다 먹지 않았더냐? 게다가 사촌동생을 울리기까지 했지 않았니.”

고청운이 화를 내며 말했다.

그러자 소석은 머리를 수그리고 포동포동한 손을 맞잡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아버지가 덩굴줄기 하나를 찾아 네게 벌을 줄 때 사용할 것이다. 나중에 네가 잘못하면 그 등나무 줄기가 네 엉덩이에 떨어질 거야.”

고청운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적당한 등나무 줄기를 찾기 시작했다.

“삼원아, 여기 등나무 가지 몇 가닥이 어때 보이니? 이 중에 어떤 것이 더 좋을까?”

고청운은 눈앞에 보이는 세 종류의 등나무 가지를 비교해 보고 있었다.

고삼원은 어쨌든 어려서부터 산에서 자라서 이쪽으로는 경험이 풍부했기에, 쭈그리고 앉아서 덩굴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런 등나무 줄기는 너무 약합니다. 가운데 있는 것도 그래요. 오른쪽의 이 덩굴줄기가 가장 적합합니다. 보세요, 아주 질기죠? 어쨌든 이런 것은 너무 연하지고 딱딱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마른 것도 좋지는 않으니 이게 딱 적당합니다."

고청운은 고삼원의 의견을 듣고서 하나하나 시험해 보았는데, 그가 한 말이 맞는 것 같아 결국 그 나무줄기를 선택하였다.

사실 등나무 줄기가 엉덩이를 때리는 징계 도구로 쓰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가 아는 일부 가족들은 어떠한 잘못에 대해 몇 대를 때릴 것인지 규정하는 집안도 있었다. 

등나무 줄기는 탄성이 있고 부드러운 편이어서 맞으면 매우 아팠다. 엉덩이에 살이 약한 부위에 맞으면 통상적으로 멍이 들고는 하였는데, 여기서 몇 번 더 때릴 때 같은 부위에 집중해서 매를 가하면 피부가 찢기고 살이 터질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기에 그 고통을 당해 본 이들은 그 아픔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통증은 몸에 큰 무리를 주지는 않았는데, 설령 손에 매를 맞더라도 피부 겉의 살만 상하고 근육은 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등나무 줄기로 엉덩이를 때리는 것이 첫 번째 불문율이었다. 

고청운이 소석을 데리고 와서 등나무 매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게 했던 이유는 그가 나중에 실수하지 않도록 강렬한 기억을 남겨서 겁을 주기 위함이었다. 

물론 만약 아이가 정말 장난이 심하고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고청운은 자신이 절대로 이 등나무 매를 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손을 대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소석의 나이도 아직 너무 어렸다. 

고청운은 소석이 자기 친자식인지라, 그렇게 매를 들 정도로 엄격하게 나가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는 그저 아이에게 겁을 주는 용도였을 뿐이었다. 

고청운은 천천히 등나무 줄기를 깎아 매로 다듬어 갔다.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 기본적인 매의 모양이 완성되었는데, 질기면서도 탄성이 있고 손에 들리는 감촉도 매우 좋았다. 그가 등나무 매를 들고 옆의 관목을 때리니, ‘철썩’ 하는 소리와 함께 나뭇잎이 흩날리는 것이 보였다.

‘음, 잘 만들어졌구나. 촉감도 정말 좋았고, 꼭 소몰이 회초리 같네.’

“으아앙, 아빠…….” 

그의 귓가에 갑자기 와앙 하고 몇 차례의 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고청운은 소석의 이런 모습을 보자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웠다. 

‘그저 아들을 놀라게만 하려고 했는데, 잊고 말았구나.’ 

결국 꼬맹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등나무 매 때문에 떨어져 나부끼는 나뭇잎을 보고는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고청운은 왠지 모르게 이런 아들이 너무나 귀엽게 느껴졌다. 

고청운은 등나무 매를 고삼원에게 건네주고, 직접 아들을 안고서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착하지, 우리 소석이는 울지 않아. 네가 순순히 말을 잘 들어주기만 하면, 아버지가 네게 매를 드는 일은 없을 게다.”

“돌아가서는 얌전히 있을게요.”

아들은 그의 목을 꼭 껴안은 채 흐느끼며 말했다.

“말을 아주 잘 들을 거예요, 아빠. 소석이 때리지 마세요.”

“그래, 네가 말만 잘 들으면 결단코 매를 들지 않으마.”

고청운은 아이를 안고 인내심을 가지고 어르며 말했다.

“그럼, 아버지에게 말해보렴. 왜 사촌형과 싸우고 사촌동생의 떡도 다 먹어버렸던 거니?”

고청운은 자세히 물어본 후에야 아들이 자기가 다른 아이를 안아줘서 질투심에 그런 일을 벌인 것이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런 결과에 그는 어쩌지도 못하고, 어린아이의 독점욕이라는 것이 그저 귀엽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이 꼬맹이가 갑작스레 하루아침에 변모하여 자신에게 속사정을 알리지도 않고 이런 수법으로 남을 괴롭혔다는 것이 또 그를 몹시 못마땅하게 만들었다.

그가 다시는 다른 아이를 안아주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하고 나서야 소석은 비로소 흐느끼는 것을 멈추었다. 다만 시선을 계속 뒤로 돌려 고삼원이 들고 있는 등나무 매를 쳐다보는 것으로 보아, 여전히 약간 심리적 두려움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 *

집으로 돌아오자, 소진씨가 한눈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소석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고청운의 팔을 토닥여 소석을 안아 들고 물었다. 

“소석이를 왜 이렇게 울렸느냐? 아직 이 어린 애를 뒷산까지 데려가서 뭘 하고 온 게야?”

“어머니, 괜찮습니다. 이 아들은 2살 남짓한 나이에 온 동네를 돌아다녔었는데요 뭐. 또 뒷산에는 위험할 것도 없어요. 뒷산에 가서도 소석이 혼자 걷게 하지 않고, 다 제가 안고 다녔습니다. 얼마나 무거웠는지 어머니는 모르세요. 지금 제 팔이 다 시큰거립니다.”

고청운은 자신의 팔을 비비며 화제를 돌렸다. 

“누이들과 조카들은요?”

“네 아버지가 분업을 좀 시키셨단다. 제각각 물건을 사오라고 시키셨어. 모레면 잔치 술을 돌려야 하지 않니, 요 이틀간 준비를 마쳐야 한단다.”

소진씨는 품에 안고 있는 소석이 얌전하게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것을 보고는 내심 어여삐 여기며 웃으며 말했다. 

“너는 여기 관여할 바 없다. 그리고 조카들은 다 마을 아이들과 놀러 나갔단다. 얘들이 어디 집에 붙어 있겠니.”

“예, 도와드릴 일이 생기면 불러 주세요.”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석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이제 서재에 가서 책을 볼 테니 다른 사람을 찾아 놀거라.”

그가 막 뛰어나오는 소만과 고삼원에게도 말했다. 

“삼원이는 이곳 길이 익숙할 테니 나를 도와 일을 처리해 주렴. 소만이는 소석이를 돌봐 주거라. 다른 아이들과 노는데 데려다주고, 싸우지 못하게 잘 지켜보렴.”

고청운은 한 줌밖에 안 되는 어린 녀석이 싸우다가 크게 손해를 볼까 봐 겁이 났다.

지금은 고청운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만 소석 앞에서 다른 애들을 껴안지 않으면, 소석도 더는 욱하지 않고 다른 애들과 잘 지낼 수 있을 것이었다.

전에 간씨 집과 하겸죽의 집에 갔을 때처럼 말이다. 

두 사람이 “예.” 하고 답했다. 

소석은 아버지의 말이 내키지 않았다. 여전히 아버지와 함께 있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서재’라는 두 글자를 듣고는 더 이상 칭얼대지 않았는데,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서재에 들어가면 외증조할머니와 어머니가 아버지 독서를 방해하지 말라고 일러줬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서재’라는 두 글자는 소석에게 있어 금지 구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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